지난 6월 2일 참여정부평가포럼의 월례 강연회에 참석한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에 대한 선거법 위반 논란은 7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중선관위)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했다’며 ‘선거법 위반’으로 결론을 내림에 따라 이를 둘러싼 공방은 2라운드로 접어들었다. 강연 당시 노 대통령은 “제 정신 가진 사람이 대운하에 민자 투자하겠느냐”며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직접 겨냥해 비판했고,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 대해서도 “한국의 지도자가 독재자의 딸로 해외 신문에 나면 곤란하다”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중선관위는 이에 대해 현행 공직선거법 9조 ‘공무원의 정치 중립 의무’ 조항을 들어 심의했고, 그 결과 선관위원 중 5명이 ‘선거법 위반’이란 의견을 냈으며, 2명만 ‘위반이 아니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중선관위는 “특정 정당 집권의 부당성을 지적한 것은 중립적이지 못하다는 것이고, 대선 후보 희망자를 폄하하는 발언을 한 것도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라고 판단했다”라고 밝혔다. 선관위는 또한 결론이 난 직후 노 대통령에게 ‘중립 의무 준수와 재발 방지’를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그러나 이번의 중선관위 결정은 ‘이중 잣대’라는 지적에 직면할 전망이다. 즉, 과연 대통령을 단순하게 공무원으로만 볼 것인가의 문제와 지난 2004년 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중선관위의 결정과 비교해도 일관성이 없다는 것이다. ■ 대통령은 정치적 발언을 해선 안 된다고? 이번 참평포럼에서 문제가 된 대통령의 발언은, 선거 중립의 범위를 넘어선 정치적 발언인지 여부에 대한 법적 잣대로 봐야 한다는 게 대다수 법률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그러나 일부 보수언론과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에게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한 통치자’라는 지극히 정치적 잣대를 들이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어, 노 대통령이 강연 당시 이명박 전 시장을 향해 “민자 사업으로 하겠다는데, 제정신이라면 대운하에 투자하겠는가”라는 발언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염두에 둔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이 됐다고 해외에서 보도한다면 곤란하다”는 발언은 그 내용에 동의하고 안하고를 떠나 순전히 정치적 판단의 문제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이 과연 대통령이나 지방자치단체장, 그리고 국회의원 등 ‘선출된’ 정무직 공무원에게도 적용되는 것이 마땅한가 하는 것에 대한 논란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문제다. 최근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자신의 전임자이자 범여권의 주요한 대선 후보로 떠오르고 있는 손학규 전 지사를 향해, “영어마을은 전시성 낭비행정의 대표적인 사례”라며 “경기 영어마을은 전국 12개 영어마을의 적자를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적자를 냈다”면서 “도가 나서서 영어마을을 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비난했다. 김 지사는 “학교 교실도 제대로 지어주지 못하면서 호텔 같은 영어마을을 지어서야 되는가”라고 반문하고, “이만한 시설이면 소방서를 10개 이상 짓는다”고도 했다. 김 지사의 이 같은 발언은 “대선 후보 희망자를 폄하하는 발언을 한 것도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라며 중선관위가 거론한 노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의 중요 이유와 일치한다. 그러나 중선관위와 경기도선관위 어디에서도, 그리고 그 어떤 언론도 김 지사의 ‘정치적 발언’을 문제 삼지 않았다. ‘이중 잣대’라는 지적이 충분히 일 수 있는 대목이다. 중선관위가 노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여부를 판단하는데 있어 기초한 주요 법적 근거는 공직선거법이다. 여기에 부수적으로 국가공무원법도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의 참평포럼 발언의 쟁점은 크게 세 가지다. △노 대통령의 발언이 선거운동인지, 그리고 지금이 선거운동 기간에 해당되는지 △노 대통령이 이번 선거에 부당한 영향을 행사했는지 △대통령의 중립의무는 어디까지로 제한되어 있는지 하는 문제다. ■ 노 대통령의 발언, 선거운동으로 볼 수 있나 먼저 노 대통령의 발언을 선거운동으로 볼 수 있는가의 문제를 살펴보자. 노 대통령이 연설을 행한 6월 2일은 그 어떤 선거 기간도 아니다. 공직선거법 33조는 선거 기간을 ‘후보자 등록 마감일의 다음날부터 선거일 전일까지’로 규정하고 있다. 같은 법 59조는 ‘선거운동도 이 기간에 한해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선거운동 기간도 아닌 것이다. 현재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당내 경선을 치르고 있는 한나라당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고 할 수도 있다. 공직선거법에 규정된 당내 경선 조항을 보면, “지금은 예비 후보자들이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기간”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한나라당 내의 선거운동이다.
그렇다면, 노 대통령의 발언이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중선관위의 결론에는 심각한 의문점이 남는다. 당적을 이탈하기는 했지만, 노 대통령은 열린우리당 출신이다. 한나라당과는 ‘정신적 코드’가 맞지 않는다. 그런 노 대통령이 한나라당의 당내 경선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면, 범여권이 보다 상대하기 쉬운 후보를 은근히 ‘밀어주는’ 방식을 쓸 것이라는 것은 상식 중의 상식이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이명박, 박근혜 양 주자를 모두 비판했다. 그것도 아주 격렬하게 말이다. 또 중선관위가 말하는 ‘선거’라는 것이 일반적으로 올 연말 치러질 17대 대통령 선거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법적으로 대선 후보자 등록도 안된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에게 노 대통령이 대선에서의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는 것은 아예 말이 되지 않는 소리다.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의 발언을 겨냥해 “사전 선거운동 금지를 어겼다”고 주장하지만, 선거가 없는데 어떻게 사전 선거운동이 성립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 정치적 발언에 법적 잣대 들이대는 중선관위 두 번째로 따져볼 것은 노 대통령이 이번 선거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는지의 여부다. 이 문제에 대한 판단의 잣대는 무엇보다도 노 대통령의 발언이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 중 누구에게 더 유리하거나 혹은 불리하게 작용했는지의 여부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이 역시 근거가 없는 주장이다. 노 대통령은 이 전 시장에 대해선 ‘경부 대운하`공약의 타당성’을 문제 삼았다. 또 박 전 대표에 대해서는 ‘독재자의 딸’이라는 직접적인 표현으로 비판했다. 게다가 이 두 사람이 공통으로 제시하고 있는 ‘경제성장률 7%’의 허구성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현행 공직선거법 58조에는 ‘선거에 관한 단순한 의사개진 및 의사표시, 입후보자와 선거운동을 위한 준비행위, 정당의 후보자 추천에 관한 단순한 지지 및 반대 의견개진 및 의사표시, 통상 정당 활동 등은 선거운동으로 보지 않는다’는 조항이 명시돼 있다. 노 대통령이 이번 참평포럼 강연에서 행한 발언은 이 중, ‘선거에 관한 단순한 의사개진 및 의사표시’와 ‘정당의 후보자 추천에 관한 단순한 지지 및 반대 의견개진 및 의사표시’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노 대통령이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를 비판한 것은 하나의 정치적 수사라는 분석이 가능해진다. 실제로 청와대 측은 ‘노 대통령 발언은 선거법 제 58조상에 적어도 해당될 수 있거나 아예 해당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 대통령 역시 “부당한 정치적 공세에 대해 반론하고 정치적 견해를 지지자들 앞에서 밝혔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 대통령만 ‘정치적 중립’ 지켜라? 우리의 공직선거법은 유독 대통령의 정치적 중립 문제에 대해서 ‘까칠하게’ 대한다. 국민의 직접 투표에 의해 선출된 정무직 공무원은 대통령 이외에도 지방자치단체장과 국회의원 등이 있다. 그러나 지자체장이나 국회의원이 어느 정파의 대선 주자에 대해 원색적인 비난이나, 근거 없는 폭로를 ‘습관적으로’ 자행해도 중선관위나 지역 선관위는 관심조차 없어 보인다. 최근 한나라당 내에서 ‘막무가내’ 식으로 벌어지는 이명박-박근혜 양 진영의 무차별 폭로전에 대해 선관위는 그동안 당내 문제라는 핑계로 뒷짐을 지고 있다. 그러나 유독 대통령의 정치적 발언에 대해서는 법의 칼날을 내리친다. 지난 2003년 중선관위는 노 대통령이 그해 12월 19일 노사모가 주최한 ‘리멤버 1219’ 행사에 참석해, “시민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다시 한 번 여러분들이 나서달라”고 발언한 것을 문제 삼아, ‘공명선거 협조 요청서’를 발송했다. 또 2004년 3월에는 노 대통령이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줄 것으로 기대한다”는 취지의 방송기자클럽 특별회견의 발언 등을 문제 삼아 ‘선거중립의무 준수’를 요청한 바 있다. 특히 2004년의 ‘선거법 위반 결정’은 노 대통령 탄핵이라는 헌정사의 전무후무한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했다. 공직선거법 9조를 들여다보면, ‘공무원, 기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자(기관 단체를 포함)는 선거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의 행사 기타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하여선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공직선거법은 또 60조에서, ‘국가공무원법 제2조(공무원의 구분)에 규정된 국가공무원과 지방공무원법 제2조(공무원의 구분)에 규정된 지방공무원은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대통령은 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공무원에 해당된다. 그러나 ‘선거운동’의 금지일 뿐, ‘정치활동의 금지’로 볼 수는 없다는 게 학계의 전반적인 지적이다. 또 ‘공무원의 정치운동을 금지’하는 국가공무원법 제 65조의 ‘정치운동의 금지’ 조항을 보면 ‘공무원은 정당 기타 정치단체의 결성에 관여하거나 이에 가입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자신이 한 명의 공무원이자 정치인이고 관례적으로 정당에 소속돼 있는 대통령을 단순하게 ‘공무원’이라는 신분으로만 정의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누구나 다 알듯이 대통령은 원래 정치인이다. 학계 일부에서는 “국가공무원법이 대통령에 대해서는 ‘정치운동의 금지’ 조항 자체를 적용시키지 않고 있다”고 해석하고 있고, 청와대 역시 동일한 주장을 하고 있다. ■ 청와대, 헌법소원 등 정면 대응…속 끓는 한나라당 “미흡하고 아쉽다” 한편 중선관위가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을 근거로 ‘선거법 위반’이라는 결정을 내리자, 청와대는 법적 대응 방침을 분명히 하고 있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매우 유감스럽고 납득하기도 어렵다”며 “법적 문제를 면밀하게 검토해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애초 헌법소원을 거론했던 것과 비교해 한 발 물러선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 청와대는 “다만 법리적인 문제를 면밀히 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신중히 대응하겠다는 것”이라고 부인했다. 특히 “선관위의 ‘준수 요청’ 처분이 선관위법에 규정돼 있지 않는 등 애매하기 때문”이라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이와 관련해 전해철 청와대 민정수석은 한 언론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선관위가 ‘선거법 위반’이라고 위중하게 결정했음에도 선관위법에 규정이 없는 ‘준수요청’을 했다”며 “법률, 헌법상 대응을 하려면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전 수석은 “어떤 경우에도 법리적 대응은 한다”며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청와대는 또 ‘헌법소원 심판 청구’나 ‘권한쟁의 심판 청구’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선거법 위반 파문은 선관위 결정에도 불구하고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노 대통령의 참평포럼 발언이 ‘선거법 위반’ 논란으로 이어지자, 기자들 사이에서는 ‘지난 2004년의 탄핵의 추억’이 되풀이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나돌기도 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이번에는 지난 2004년과 같이 국회의 탄핵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을 전망이다. 우선 한나라당으로선 탄핵으로 인해 역풍을 맞았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한나라당은 영남지역당으로 전락할 위기까지 몰리기도 했다. 한나라당은 선관위의 이번 결정에 대해 “미흡하고 아쉬운 결정으로 매우 안타깝고 유감스럽다”면서도 “선관위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속은 부글부글 끓어오르지만 이번만큼은 참는다’는 격이다. 한나라당은 다만 “청와대가 헌법소원 등 법적대응에 들어가면 공무원의 선거 중립 의무에 대해 벌칙 조항을 덧붙이는 선거법 개정은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유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