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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참 싸가지가 없어요”

[인터뷰] 노래꾼 손병휘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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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1호 ⁄ 2007.07.02 13:31:23

“아~ 참…” 긴 탄식부터 흘러나왔다. 민중가수 손병휘 씨를 만났다. 87년 6월항쟁을 고스란히 지나온 86학번이다. 그를 만난 곳은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보도사진작가 이시우 씨를 위한 촛불문화제에서다. 이시우 씨 역시 86학번, 외모 상으론 서울구치소에서 단식농성중인 이시우 씨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사진쟁이와 노래쟁이의 차이일까? 손병휘 씨는 이날처럼 슬프게 노래를 불렀던 적은 없다고 말했다. 이시우 씨와의 인연은 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때의 이시우 씨에 대해 손병휘 씨는 “그땐 사진 찍는 놈인줄 몰랐어요”라고 말한다. 꽤 친했던 사이임이 느껴진다. 긴 탄식을 한 그는 어두워지는 하늘을 바라봤다. 묻지도 않은 이야기들을 술술 꺼낸다. 척 보기에 외향적인 성격임이 드러난다. 촛불문화제가 끝나고 자리를 옮겨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는 최근 4집 앨범을 낸 가수다. 민중가요를 부르는 대부분의 가수가 그렇듯 판매는 시원찮아보였다. 거리의 가수일 뿐이다. 대놓고 물었다. ‘마흔 셋인데, 87년 당시 함께 했던 사람들하고는 연락은 하고 사나? 어떤가? 당신은 거리에 있는데 그들은 뭘 하고 있나?’ 껄끄러울 줄 알고 던진 질문에 의외로 쉽게 대답한다. 아주 자주 만난단다. 4집 앨범을 낸 기념으로 친구들이 축하모임을 열어준다고 한다. 87년 당시 함께 운동했던 친구들은 그의 앨범을 구매해주는 ‘손님’이기도 하다. 재밌는 것은 그 모임은 그만 축하하는 것이 아니라 청와대 비서관으로 승진한 동기의 축하모임이기도 하단다. 87년도 거리에 함께 있었던 친구 중 한 명은 청와대 비서관에, 한 명은 거리의 민중음악가로 변해 있었다. 그는 자신의 부인을 ‘고위층’이라고 불렀다. 부인이 있기에 음악을 계속 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앨범을 낼 때마다 마누라님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며 웃었다. 다행히 4집 앨범은 만족스러워서 기분이 좋다고 덧붙인다. 역시 민중가수를 하며 먹고 사는 것이 수월치는 않아 보인다. ■ ‘삐딱’한 자유. 난 노래꾼, 그리고 대중가수 일 뿐. 그의 이번 앨범 제목이 ‘삶86’이다. 그래서 6월항쟁과 386세대에 대해서 물었다. 그랬더니 질문이 잘 못 됐다고 펄쩍 뛴다.

“386이라는 것은 조선일보가 만들어놓은 말이잖아요. 그리고 386에는 학번 개념이 들어가 당시의 6월항쟁을 대학생들의 투쟁으로 규정하는 경향이 있지요. 하지만 당시의 시위는 정확히 말해 대학생들만이 만든 것이 아니죠. 대학 안 나온 분들도 많았고, 무엇보다도 당시 상황은 ‘시민’들이 동력이 돼서 만든 거잖아요.” 그랬나? 일리가 있다. 사고가 자유로워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정국에 매일같이 거리에서 노래를 해 온 그였다. 그러면서도 노동자 집회에는 나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친 노무현도 아닌 듯 싶다. 이라크 파병에도 반대했고, 한미FTA도 반대한다. 그의 정체성이 궁금해졌다. 이미 예상한 질문이었을까? 아니면 평소 생각이 그대로 나타났을까? 그는 생각해보지도 않고 거침없이 대답해 나간다. 그는 자신을 쁘띠브르주아라고 표현했다. 프롤레타리아가 아니라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라면 자신의 계급성을 생각해야 하고 투쟁해야 한단다. 하지만 자신은 쁘띠브르주아기 때문에 노동자가 아닌 ‘시민’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다시 물었다. 노동자와 시민이 어떻게 다르냐고. 그리고 노래꾼 손병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느냐고 말이다. 역시 자기 생각이 술술 나온다. “내 정체성이 프롤레타리아라면 난 변혁을 노래해야 하고, 노동자들의 집회 현장에서 노래해야 하겠죠. 하지만 난 노동자가 아닌 시민이고 내가 즐겨 부르는 장르는 포크와 락입니다. 응원가 같은 투쟁가와는 맞지 않거든요. 기존의 틀에 얽매일 필요는 없죠. 때문에 자유스럽죠. 시민. 자율성이죠. 그래서 저는 제가 민중가수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저를 그냥 노래꾼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민을 믿느냐’는 질문에 그는 역시 빠르게 답한다. “노동자는 못 믿지만 시민은 믿죠. 아니, 믿는다? 같이 갈 뿐이죠. 내가 뭔데 시민들을 믿고 안 믿고 합니까?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에서 기여할 뿐이죠. 시민은 참 기회주의적이거든요. 그게 맞는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기회주의적인 것이 더 정직한 것 아닌가요?” ■ “세상이 참 싸가지가 없어요” 87년 이후 20년이 지났다. 현재를 어떻게 보고 있는 지 궁금했다. 그의 불만이 튀어나온다. 중간 중간 ‘개판, 구질구질하다’같은 단어들이 튀어나왔다. 직설적이다.

“개판이죠. 6월 항쟁 20주년 기념행사만 해도 그래요. 왜 그 행사에 비 같은 아이돌 가수들이 나와야 하죠? 6월 항쟁을 기념하는 행사라면 민중가요를 불러야 하거든요. 그렇지 않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따로 6월항쟁 2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합니다. 하긴, 그쪽만 그런 것이 아니죠.(웃음) 노동자들이 거리에 나와서 싸울 때마다 나가는 가수들이 있죠. 노동자들의 투쟁이 끝나고 사측과 잘 해결되고 임금이 인상되면 축제를 하거든요. 하지만 그 축제에는 함께 싸워줬던 가수들은 부르지 않죠. 이승철 같은 TV에 나오는 가수들이 나오죠. 물론 많은 출연료를 지불하면서 말이죠. 세상이 참 싸가지가 없어요.” 삐딱하게 비꼬듯 던진 그의 말이 안타깝지만 현실이라는 생각에 덩달아 기분이 구질구질해진다. 싸가지가 없다는 말은 음악을 이야기하면서 더욱 그 의미가 확실해진다. “경제는 재편되고 사는 것은 풍요로워졌는데 우리 사상이나 문화, 사람들의 수준은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요. 뭐, ‘품위’랄까? 그런 것이 우리에겐 없죠. 사람들이 참 싸가지가 없는 거죠. 물질적인 것만 추구하고 그 이후가 없죠. 음악도 마찬가지에요. 대중가수들이 ‘락’을 한다고들 하죠. 헌데 락을 하는 가수들이 사회에 대해선 아무 말도 않고 사랑만 노래하죠. 미국의 락 가수들은 안 그러거든요. 베트남을 노래하고 이라크를 노래하고 아프가니스탄을 노래하거든요. 락 가수라면 말이죠. 그런데 우리는 어떻죠? 사랑노래 고함치면 락 이라고 합니다. 그냥 락 같은 멜로디일 뿐이죠. 참 싸가지가 없어요. 우리나라에서 락을 하는 사람이라면 안치환이 있죠. 치환이형, 내 라이벌이죠. 하하. 농담 아니구요. 서로 인정하는 라이벌 관계에요. 하하.” 그렇다. 우리 사회엔 ‘무개념’이 너무 많았다. 사회뿐만 아니라 문화도, 음악도 그랬다. 인터뷰를 마치며 기자들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한다. 역시 ‘싸가지’에 대한 것이었다. “기자들도 ‘싸가지’가 없어요. 이번 앨범 내면서 보도자료도 냈거든요. 그런데 다들 그거만 보고 써요. 인터뷰를 해도 보도자료에 있는 것만 물어보고, 기사 나간 거 보니까 고맙긴 한데, 척 보니 보도자료랑 예전 인터뷰 짜깁기해서 쓴 거거든요. 노래는 들어나 봤는지 모르겠어요. 그거 하나도 공부 안 하고 쓴 거거든요? 그러니 싸가지가 없는 거죠.” 조심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사회만 말할 것이 아니라 기자들 스스로도 ‘싸가지’를 찾아야 하니 말이다. -유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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