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우리나라 금융 시스템에 적신호가 켜졌다. 지난 1998년 이전까지 銀行不死라는 선입견 아래 방만하게 운영돼 온 국내 시중은행들이 외환위기 직후부터 국제통화기금(IMF)의 강제적 권고에 따라 BIS자기자본 비율을 높이면서 보다 건실해 지고 있다. 그런데 외환위기 당시에는 유동성이 너무 없어서, 즉 보유하고 있는 자기자본이 턱없이 부족해서 국가부도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면 지금은 정 반대로 자본은 쌓여있는데 쓸 데가 없어서, 즉 돈이 제대로 돌지를 못해서 경제 시스템이 삐걱거리고 있다. 즉 의학적으로 치면 동맥경화에 해당되며 민간경영으로 본다면 흑자부도 위기라고 할 수 있다. [본문] 개인에게 돈은 많이 쌓여있을 수록 좋다. 돈이 사람의 행복을 결정해 주지 못하지만 돈이 많으면 그만큼 물질적 어려움없이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고 또 원하는 만큼 충분히 베풀어 줄 수 있다. 하지만 국가적인 관점에서 보면 돈이 특정 계층 혹은 일부 기관 등 한 곳에 많이 뭉쳐 있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국가 산업을 사람에 비유하자면 돈은 사람의 생명을 지탱해 주는 피와 같다. 이 피가 제대로 돌지 못하고 머리에서 뭉치게 되면 뇌졸중이 오게 되고 동맥에서 뭉치면 동맥경화, 척수나 다리 부근에서 뭉치게 되면 반신불수 등 심각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심장이 피를 온 몸에 계속해서 돌려주듯이 국가 경제에서는 금융기관이 이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런데 한국은행-시중은행으로 이어진 국가경제의 심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돈脈硬化 걸린 시중은행, 돈 쓸데없어 안절부절 지난 1998년 IMF의 요구로 국내 은행권에 도입된 BIS 비율이 8년만에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른것으로 나타났지만 은행업계는 이같은 사실이 조심스럽다는 입장이다. 14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우리·하나·외환·신한 등 국내 은행들의 지난 3월 기준 BIS자기자본비율은 12.99%를 기록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동 기간 미국 12.37%, 영국 12.36%, 독일 12.34%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로 명실공히 세계 최고의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국내 은행들이 최근 대규모 흑자행진에 힘입은 것으로 어느 은행보다 많은 자금을 쌓아놓고 있어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같은 안정성은 은행들 수익구조 및 투자시장 등에서의 금융 전문성 제고로 이뤄졌다기 보다는 예금과 대출금리의 차이 즉 예대마진 폭의 증대와 외환위기 당시 IMF 탈출 명분아래 정부의 강제로 떠앉았던 부실채권의 정상적 처분 등으로 인해 발생된 수익. 하지만 보통정기예금을 통한 수신액으로 이뤄지는 MMF투자, 건설업의 프로젝트 파이넨싱 참여, 주식투자 등 각종 투자를 통해 얻은 수익률은 외국계 은행 등에 비해 상당히 저조한 편이다. 또한 증권사 CMA계좌의 지급결제기능 허용이 기정사실화 되는 등 은행만의 블루오션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점도 일정부분 불안요소. 이로인해 은행들은 금고속에 주체못할 정도로 돈을 쌓아놓고 있으면서도 공격적 투자 등을 함부로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금융당국 및 산업 노동계에서는 경제가 어려운 이 때에 은행이 그 역할을 다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와 관련 노동계 및 일부 벤처업계의 관계자들은 “은행이 수년간 흑자행진을 이어오는 등 충분한 여력을 갖췄으면서도 자신의 수익만을 염두에 둔 채 기업 지원 등 사회적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은행권에서는 “증권업계의 성장, 은행권의 여력, 한미FTA 등을 고려하면 지금의 흑자행진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신기루와 같다”며 위기를 강조하고 있다. 이와 관련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국민은행의 증권사 인수 의지, 신한은행의 여신금융파트 강화, 농협의 금융사업 강화를 위한 로드맵 마련 등을 비롯, 은행권의 매출 1위 경쟁 가열 등의 이면에는 이같은 위기감이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국가 유동성 과잉 빠르게 해결해야 국가산업에서 심장의 역할을 하는 금융기관. 이 중 특히 지급결제권을 가지고 각 개인과 기업에 돈을 유통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곳이 은행이다. 그리고 이러한 은행들과 금융기관 간 거래하는 자본시장을 조정 통제 조작하면서 돈의 흐름을 최종 책임지는 곳이 바로 은행의 은행이라는 한국은행이다. 그런데 이같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한국은행이 국내 유동성 과잉으로 인한 위기감을 드러냈다. 지난 13일 브리핑을 통해 한국은행은 올 4월 말 1,888조원의 유동성에도 내년 토지보상비로 쏟아지는 20조원을 본원통화 승수로 환산했을 때 내년도 유동성 규모가 총 2,000조원을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 놨다. 그런데 이같은 유동성 과잉은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다. 현재 미주·유럽·동남아 등에서 모두 겪는 일이다. 국가 유동성이란 대한민국 내에 돌아다니는 돈의 양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유동성이 적으면 즉 개인과 기업의 필요에 비해 시중에 풀어져 있는 돈의 양이 너무 적으면 생산과 소비 활동이 위축되게 되고 결과적으로 경제시스템이 점차 멈추게 된다. 반대로 유동성이 과잉이면 즉 시중에서 필요로하는 양 보다 많은 양이 흐르게 되면 화폐의 가치가 떨어지고 돈의 흐름이 느려져서 결과적으로 필요한 곳에 제대로 공급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된다. 이와 관련 한은의 고위 관계자는 “정부의 토지 보상비는 중앙은행에서 찍어내는 돈과는 달리 회전력이 높고 자산시장 인플레를 높일 수 있는 힘이 강하다”면서 “지금부터 유동성을 관리하지 않으면 자산시장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이에 따라 노무현 대통령은 유동성 과잉으로 인한 위기 가능성을 보고받고는 경제 수장들을 질타했고 박 승 한은총재, 권오규 경제부총리, 윤증헌 금융감독위원장 등 경제당국의 수장들이 모여 이같은 문제에 대해 논의한 바 있다. ■위기상황서 드러난 문제점 빨리 보완해야 이처럼 우리 금융기관은 IMF 이후 심장의 기능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많이 상실한 상태다. 이에 더해서 유동성 위기 등에 또다른 불안요인들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 14일 은행장들은 은행연합회관에 모인 자리에서 한국은행의 증권사 CMA의 지급결제 허용을 전향적으로 검토한 것에 대해 강하게 성토했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한 관계자는 “증권사가 직접 지급결제망에 접속하게 되면 현재의 자본시장 상황을 볼 때 시중에 묶여있던 부동자금들이 갑자기 몰아닥쳐 유동성 과잉 현상을 더욱 촉진시킬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와 관련 금융권의 전문가는 “이번 위기로 인해 일시적으로 국가적 어려움을 겪을 수는 있지만 결국 이겨낼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는 이번 금융위기상황으로 투자전문성 부족, 금융시장에서의 국제경쟁력 미미 등 대한민국 시중은행들의 드러난 문제를 어떻게 보완 발전시키느냐에 달렸다”고 말했다. -박현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