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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만 재외국민도 선거권 행사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 “재외국민 선거권 제한한 공선법·국민투표법 등 헌법불합치”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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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4호 ⁄ 2007.07.02 14:17:46

재외국민도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헌법재판소(헌재)가 재외국민의 선거권을 제한한 관련 법 조항들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헌법불합치란 해당 법률 조항의 위헌성을 인정하면서도 위헌 결정에 따른 법적 공백을 막기 위해 법 개정 때까지 일정기간 해당 조항의 효력을 유지하거나 한시로 중지시키는 것을 뜻한다. 헌재가 28일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조항은 한국 국적을 갖고 있으나 국내 주민등록이 돼 있지 않은 재외국민과 국외거주자에게 선거권을 제한한 공직선거법과 국민투표법 등의 관련 조항이다. 따라서 200여만 명으로 추산되는 재외국민과 단기 해외 체류자도 국내의 각종 공직선거에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재외국민이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외국에 거주하거나 체류하는 사람을 뜻한다. 대한민국 국적을 갖고 있는 영주권자도 재외국민에 포함된다. 그러나 한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 해외로 이주한 뒤 그 나라 시민권을 취득하게 되면 그때부터 재외국민에서 제외된다. 외교부에 따르면 2005년 1월 기준으로 재외국민 수는 유학생·주재원 등 단기 체류자 약 115만 명과 영주권자를 포함한 장기 체류자 약 170만 명에 이른다. 이 중 선거권이 있는 19세 이상은 210만 명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헌재는 올해 12월 대통령선거와 내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혼란을 막기 위해 법 개정 시한을 내년 12월 31일까지로 정했다. 국회에서 법 개정이 이뤄질 때까지는 잠정적으로 현행법이 적용된다. 따라서 올해 대선에선 이들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을까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들이 연말 대선과 내년 총선에서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을 지는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 관련기관이 부재자투표나 해외 선거구 획정 등 선거권 행사 절차를 마련하는 가에 달려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현실적으로 선거 6개월 전에는 법이 개정돼야만 실무적인 준비를 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이번 대선에서 큰 변수로 작용할 재외국민 선거권을 두고 이해득실을 따지고 있는 상황. 따라서 이번 대선에서는 현행법이 그대로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 헌재, 공선법·국민투표법 헌법불합치“선거권 제한 정당화할 수 없어” 헌재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법 조항은 공직선거법 15조 2항 1호, 16조 3항, 37조 1항, 38조 1항과 국민투표법 14조 1항 중 국내에 주민등록이 돼 있어야 한다는 점을 선거권 행사 요건으로 규정한 부분들이다. 헌재 전원재판부(주심 김종대 재판관)는 “선거권을 제한하는 입법은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하고 불가피한 예외적인 때에만 그 제한이 정당화될 수 있으며 이 경우에도 선거권의 본질적인 내용은 침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재외국민과 단기 해외 체류자 등에게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권을 제한한 선거법 제37조 1항에 대해 “단지 주민등록 여부에 따라 선거권 행사 여부가 결정되도록 한 것은 헌법에 보장된 재외국민의 선거권과 평등권을 침해하고 보통선거 원칙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재외국민의 국민투표권을 제한하고 있는 국민투표법 조항에 대해서도 “주권자인 국민의 지위에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주민등록 여부만을 기준으로 해 재외국민의 국민투표권 행사를 전면 배제하는 국민투표법 14조 1항은 국민투표권을 침해한다”고 밝혔다. 또 헌재는 지방선거 참여권 제한에 대해서는 “주민등록이 돼 있는 국민과 주민등록을 하지 못하는 재외국민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며 “국내 거주 재외국민에게만 체류 기간을 불문하고 획일적으로 선거권을 박탈하는 것은 헌법상 평등 원칙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한편, 헌재가 부재자 신고 대상을 국내 거주자로 한정한 공직선거법 38조1항에 대해서도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림에 따라, 유학생·주재원 등 국외 거주자도 부재자 투표를 할 수 있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부재자 선거로 비용이 늘겠지만 우리나라 경제력으로 감당할 수 있고, 비용 부담 때문에 민주국가의 근본인 국민의 선거권을 제한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판시했다. ■ 헌재, 99년 “위헌 아니다”서 8년만에 “헌법 불합치”로 뒤집어 헌재는 1999년 재외국민의 선거권을 제한한 옛 선거법 37조 1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한 바 있다. 당시 헌재는 북한 주민이나 총련계 재일동포의 선거권 행사 가능성과 선거 공정성 확보의 어려움, 기술적인 문제점 등을 들어 재외국민의 선거권 제한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외교통상부도 지난달 열린 공개변론에서 “재외국민은 병역과 납세 의무가 면제되거나 별도 관리되고 있어 이들에게 선거권을 부여하는 것은 내국인과 형평성 시비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며 부정적 견해를 밝혔다.

재외국민의 투표권 인정 여부 문제는 이미 오랫동안 논란이 돼왔다. 국내에 주민등록이 돼 있느냐 아니냐만을 기준으로 재외국민에게 부재자투표나 피선거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헌법상 기본권인 참정권과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지적이 계속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헌재는 8년만에 이를 뒤집고, 선거권 제한의 ‘헌법불합치’ 이유로 정보통신기술의 발달과 경제력 신장 등 10여 가지를 들었다. 재외국민들도 인터넷 등을 통해 후보자에 대한 정보접근이 가능하고, 해외 부재자투표를 함으로써 선거비용이나 국가적 부담이 증가하더라도 지금의 경제력으로는 능히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재외국민등록 제도를 통해 북한주민이나 조총련계 재일동포의 선거권 행사를 막을 수 있다는 논거도 들었다. 헌재는 또 납세와 국방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재외국민에게 왜 선거권을 주느냐는 반대 논리에 대해 “우리 헌법이 국민의 기본권 행사를 납세나 국방의무에 대한 반대급부로 예정하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재외국민도 병역의무를 이행할 수 있고, 병역의무와 무관한 여자들도 있다”고 밝혔다. ■ 한나라“모두에게” 열린우리“단기체류자부터”선거권 인정범위 이견 정치권은 헌법재판소의 재외 국민 참정권 부여 결정에 대해 일제히 환영하는 반응을 보였다.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통합민주당 뿐 아니라 민주노동당까지도 대변인 모두가 논평을 통해 “진일보한 결정” 또는 “당연한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어떤 이해득실을 가져올까를 두고, 세부적으로는 당별로 이견을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은 단기체류자는 물론 영주권자에게도 선거권을 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열린우리당은 이번 대선에서는 주민등록이 살아 있는 유학생·주재원 등 해외 단기체류자에게만 우선 선거권을 주자는 입장이다. 지지계층 차이에 따른 유불리 때문이다. 단기체류자의 경우, 젊은 유학생이 많아 상대적으로 ‘진보’층이 많기 때문이며, 오래전 이민을 간 영주권자는 ‘보수’층이 많다는 판단에서다. 열린우리당 윤호중 대변인은 “해외 불법 선거운동 등에 대한 각종 제어장치를 마련하기가 쉽지 않은 만큼, 일단 단기체류자에게만 선거권을 준 뒤 차츰 제도적 보완을 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반면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헌재의 결정은 주민등록 여부로 선거권을 제한할 수 없다는 취지이므로 열린우리당의 주장은 또 다른 위헌 소지가 있다”고 반박했다. ■ 한나라-열린우리, 위원장 자리다툼에 1년 넘게 시간 낭비 한편, 정치권이 대선을 앞두고 불합리한 정치관계법 개정을 위해 정치개혁특위를 설치하기로 했으나 위원장 자리 다툼을 벌이며 시간만 흘려 보내고 있다.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올 대선과 내년 예산 배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정치개혁특별위원장과 예결위원장 자리를 두고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 정개특위가 구성된다 하더라도 각 당의 입장차가 첨예한 부분이 많아 합의 처리가 관행인 정치관계법의 성격상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 밖에 없다.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정치개혁특위 구성에 합의한 것은 지난 4월이었다. 대선을 앞두고 불합리한 선거법과 정치자금법, 정당법 등 정치관계법을 개정할 필요성 때문이다. 이에 앞서 선관위는 지난해 12월 선거운동의 자유를 더욱 확대할 필요성이 있다며 세 개 법안 41개 항목에 대한 개정 의견을 제출한 바 있다. 관련 선거법 개정안도 7개나 현재 국회에 계류돼 있는 상황이지만, 정파 간 이견차이로 머물러 있다. 헌재 결정이 나온 이날도 국회 행정자치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가 관련 법안을 논의했지만 결론이 나지 않았다.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논의한 뒤 9월 정기국회에서 처리하는 방법도 있지만 대선정국에서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 기술적 준비·투표 공정성 확보 등 난제 해결이 관건 우선 재외국민 선거권을 인정하기에 앞서 선거기술적 측면과 공정성 확보를 어떻게 할 것인가는 해결해야 할 선제 조건이다. 선거관리를 담당할 기구와 투표소의 설치, 재외국민 등에 대한 신분확인 절차, 투표방식, 선거운동 방법 등 절차적인 문제 뿐 아니라 공정선거를 위한 방법 등 현실적인 문제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부재자 투표는 어떤 방식으로 가능한지 도 해결과제다. 이와 관련, 선관위 관계자는 “우편 투표 방법을 채택하면 대리 투표 문제가 생길 수 있고, 공관외에 투표소를 설치하면 보안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들도 있다“며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선거법 개정안들이 어떻게 확정될지 모르지만 갖가지 상황에 따른 방안과 문제점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선관위는 최근 재외 국민들을 대상으로 투표 방법, 투표 참여 여부 등을 묻는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있으며 새 제도 마련에 여론 조사 결과를 반영할 계획도 밝혔다. 재외국민에게 선거권을 주려면 단순한 투표 절차뿐만 아니라 여러 경우의 수도 고려해 입법해야 한다. 국내에 주민등록이 돼 있지 않은 재외국민의 경우, 총선에서 지역구 투표를 할 수 있는지 여부도 쟁점이 될 수 있다. 대선이나 총선 정당명부 투표는 모든 선거권자에게 공통의 선택지가 주어지지만,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에선 지역구마다 다른 후보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중앙선관위는 일단 국내에 주민등록이 없는 재외국민에게는 총선에서 정당명부 투표권만 부여하는 방식을 구상하고 있다. 그러나 국회 입법 과정에서 이 구상이 그대로 받아들여질지는 알 수 없다. 헌재의 이번 결정에 따라 주무부처인 외교통상부는 국회 입법과정에 맞춰 대응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그 뒤에 재외 국민의 범위나 투표 행사의 구체적인 방법 등에 대한 법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외교부는 그러나 시기적으로 올해 대통령 선거때부터 재외국민 투표를 하기는 힘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재외국민도 우리 국민으로서 헌법에 부여된 참정권을 향유해야 한다는 것이 그동안 외교부의 입장이었다”면서 “단지, 참정권 행사 범위와 관련해 일시체류자와 외국 영주권자 간 형평성의 문제는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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