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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초등교생 38%, 6·25는 조선시대 전쟁

용서는 해주자, 그러나 잊어서는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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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4호 ⁄ 2007.07.02 15:39:39

우리나라 초등학생들이 6·25전쟁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초등학생 가운데 상당수가 6·25전쟁을 일본이 한국을 침범한 것으로 알거나 조선시대 임진왜란과 혼동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월간 중앙」이 7월호(6월 18일 발매)에서 초등학생들은 5학년이 되어야 6·25전쟁에 대한 내용을 접하게 된다며, 서울 시내 7개 초등학교 3~6학년 학생 366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결과를 보도한 것이다. 현재 초등학생들이 배우는 7차 교육과정에서 6·25전쟁관련 내용은 초등학교 5학년 도덕과목 부교재인 「생활의 길잡이」9단원 「한마음으로 통일을」에서 다룬다. 이 단원에서도 평화통일의 필요성에 대해 알아보기 위한 연습문제 중 하나로 『6·25 전쟁의 피해 상황을 알아보고 전쟁이 우리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다주는지 적어 봅시다』라며 학생들이 스스로 답을 찾게 할 뿐이다. 6·25전쟁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없다. 이번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학교 수업 시간에 6·25전쟁을 배운 적이 없다』가 3명 중 1명(33.5%)꼴인 것으로 나타났다. 초등학생 10명 중 9명(88.4%)이 6·25전쟁이 무엇인지, 자세히(22.5%) 또는 대충(65.9%) 알고 있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이중 상당수가 6·25전쟁을 『조선시대에 일어난 전쟁이다』(37.8%)라고 잘못 알고 있다. 특히 초등학생 5명 중 1명이 6·25전쟁을 『일본과 우리나라가 싸운 전쟁』이라고 응답했으며 10명 중 4명(41.7%)이 남한과 북한의 현재 경계선을 휴전선이 아닌 38선으로 알고 있었다. 6·25전쟁사를 이렇게 팽개쳐서는 안 된다. 용서는 해주자. 그러나 잊어버리지는 말아야한다. 북한 공산당의 만행과 6·25의 비극을 우리는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1950년 6월25일 미명(未明). 소련제 탱크 300대를 앞세우고 동포의 가슴에 총칼을 겨누면서 이리떼처럼 밀려 내려온 붉은 군대의 남침. 1백만 명의 사상자가 생기고, 십만여 명의 전쟁고아와 미망인이 생기고, 수천의 애국인사가 납치를 당하고, 도시는 폐허가 되고, 공장은 잿더미로 변하고, 조국의 강산은 피바다로 물들고, 3천만 동포는 공포와 기아(饑餓)의 사선(死線)을 헤매었다. 혹독한 추위에 떨어본 사람만이 추위의 고통을 안다. 굶주려본 사람만이 배고픔의 고통을 안다. 독사에 물려본 사람만이 독사의 무서움을 안다. 총격과 방화의 현장을 지켜본 사람만이 그 무서움을 안다. 전쟁의 비극을 겪어본 사람만이 그 참상을 안다. 6·25의 비극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그 처절함과 슬픔을 진솔하게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뼈아픈 상처의 역사를 교육과 기록으로 후세의 보감(寶鑑)으로 삼아야한다. 『우리는 역사에서 도피할 수 없다』라고 링컨이 말했다. 『역사는 도전(挑戰)과 응전(應戰)』이라고 토인비는 말했다. 역사는 우리가 해결해야할 과제를 내어준다. 역사는 곧 숙제가 된다.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는 우리 스스로가 풀어나가야 한다. 민족통일이라는 숙제, 온전한 민주주의 건설이라는 숙제, 부정부패가 없는 정의사회 건설, 가난이 없는 부강한 나라를 건설하는 숙제 등 많은 어려운 역사의 숙제가 우리 앞에 가로 놓여 있다. 이런 역사의 숙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 번째 방략(方略)이 역사의 올바른 이해이다. 「역사는 도전과 응전」이라는 토인비의 말에 폭력을 인용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역사에서 도피할 수 없다』는 링컨의 말을 결부시켜 6·25전쟁을 치른 오늘의 우리민족의 자세를 새롭게 가다듬어야한다. 용서는 해주자. 그러나 절대로 6·25의 비극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박충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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