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법학교육에 ‘로스쿨 시대’가 열렸다. 국회에서 3일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이 통과됐기 때문이다. 국회는 이날 국회의장의 직권으로 상정된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을 전격적으로 통과시켰다. 사법개혁의 일환으로 ‘로스쿨’ 도입 논의가 시작되어 지난 93년 사법제도발전위원회가 출범된지 14년만이다. 2009년 3월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출범을 앞두고 법조계의 지각 변동이 시작됐다. 이에 따라 전국의 대학들이 로스쿨 유치를 위한 ‘전쟁’에 본격 돌입하게 됐다. 교육인적자원부도 로스쿨 대학 선정, 입학생 정원 및 선발 방식, 법학적성 검사를 비롯한 새로운 법조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한 실무 작업에 들어갔다. 로스쿨(Law school)이란 실무 위주의 법학교육을 하는 3년제 법학전문대학원을 말한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학부 전공에 상관없이 지원하도록 해 법조인의 다양성을 꾀하자는 취지로1870년 처음 도입하면서 시작됐다. 우리나라에선 93년 출범된 사법제도발전위원회가 2005년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로 바뀌고, ‘법조인 양성교육 제도개선 연구’의 결과가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이란 이름으로 변경되면서 로스쿨 도입이 가시화됐다. 법안에 따르면 로스쿨 입학자격은 학사학위 소지자에게 주어진다. 이들을 일반전형 또는 특별전형을 통해 선발하되 지원자의 학부성적과 적성시험을 전형자료로 활용하고 어학능력, 사회활동 경력도 평가하도록 했다. 로스쿨 인가를 받으려는 대학은 교원 1인당 학생수를 15명의 범위 안에서 전체교원을 확보해야 한다. 전체교원의 20% 이상을 실무경험을 가진 변호사로 채우되 외국변호사도 실무경력교원에 포함된다. 또 법학전문도서관 등 시설과 장학제도도 갖춰야 한다. 한편, 로스쿨이 도입되더라도 기존에 사법시험을 준비하던 수험생들의 혼란을 막기 위해 현행 사법시험은 로스쿨 졸업생이 처음 나오는 2012년까지는 유지된다. 이후 1~2년간 사법시험이 존치될 것으로 예상된다. 2012년엔 첫 변호사 자격 시험과 기존의 사법시험이 함께 치러질 전망이다. 사법개혁추진위원회는 5년간 한시적으로 유지할 것을 권고했기 때문에 사법시험이 폐지되는 시점은 2014년이 유력하다. 사개추위의 로드맵에 따르면 2009년 로스쿨이 개교할 경우 기존 사법시험은 2012, 2013년에 합격 인원을 대폭 줄인 뒤 2014년에는 완전히 폐지될 예정이다. 2009년 이후 법학부에 진학한 학생들은 졸업 다음 해까지만 사시에 응시할 수 있다. 로스쿨 입학 자격은 4년제 대학 졸업자와 학사 학위 자격자다. 법학을 전공하지 않은 학생을 정원의 3분의 1 이상 선발하도록 의무화했기 때문에 국가가 인정하는 독학사도 입학할 수 있으며, 대학에서 법학 과목을 전혀 공부하지 않아도 지원할 수 있다. 로스쿨 선발방식은 각 대학은 법학적성시험(LEET)과 학부 성적, 외국어 능력 등을 종합해 선발하게 된다. 법학적성시험은 암기형 법학지식이 아닌 법학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능력을 테스트하는 ‘수학능력 시험’ 방식으로 치러지게 된다. 교육부 관계자는 “내년 8월경 치러지는 첫 시험에 대비해 연말까지 법학적성시험을 개발해 모의시험을 치를 예정”이라고 밝혔다. ■ 갈 길 바쁜 ‘로스쿨’… 산너머 산 한편, 로스쿨제는 도입됐지만, 이에 앞서 해결해야 할 난제들은 아직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구체적인 세부 사항에 대해서는 시행령에 모두 위임했기 때문에,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교육인적자원부는 7월 중 법률안을 공포한 뒤 9월 시행령을 제정하고, 9~10월까지 대학의 로스쿨 인가신청을 받아 2008년 3월까지 인가대상 학교를 결정하겠다는 계획이다. 교육부는 산하에 로스쿨을 전담할 대학선정 등 핵심역할을 담당할 법학교육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 위원회는 법학교수 또는 부교수 4명, 1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판사로서 법원행정처장의 추천을 받은 자 1명, 1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검사로 법무부장관의 추천을 받은 자 1명, 1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변호사로서 대한변호사협회장의 추천을 받은 자 2명, 10년 이상 교육행정에 종사한 공무원 1명, 학식과 덕망이 있는 자 4명 등 모두 13명으로 구성된다.
현재로서 가장 큰 난제로는 정원 문제이다. 법조계와 학계가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스쿨의 총 입학정원은 다음달까지 확정토록 예정되어 있다. 총 입학정원이 정해져야 인가할 대학 수와 각 대학별 정원이 결정될 수 있다. 당초 정부안은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이 법원행정처장, 법무부장관, 대한변협회장, 한국법학교수회장 등과 협의해 결정하도록 돼 있었다. 하지만 로스쿨의 학생정원 협의에 대한변호사협회와 한국법학교수회가 배제됐다. 이유는 로스쿨 정원을 1,000명선으로 묶어야 한다는 대한변협과 최소 3,000명은 넘어야 한다는 한국법학교수회의 이견이 끝내 좁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변협과 법학계가 정원문제에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될 법원행정처장과 법무부장관측에 정원에 대한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한 로비가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법안에 따르면 각 대학별 정원이 사실상 100명에서 150명 이하로 통과되어 전국에 로스쿨이 설치될 대학은 1,200명 정원을 기준으로 10개 안팎으로 한정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경쟁은 뜨거울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로스쿨 인가를 받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어떻게 해결할지도 중요한 과제다. 또한 전국의 40여개 대학이 로스쿨을 준비해온 데다 사립대와 국립대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또한 쉽지 않아 보인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사법시험에 대한 정비도 필요하다. 주관하는 법무부가 로스쿨 개원 및 운영에 맞춘 관련법 개정을 추진해야 한다. 특히, 망국적 ‘고시병’을 해결하기 위해 마련된 법안이지만 ‘고시 낭인’ 대신 ‘로스쿨 낭인’을 양산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대학들이 주장하는 3000명은 물론, 변호사단체가 주장한 1200명도 현 1000명 합격자 시대의 ‘고시병’을 해결할 수 없다”며 “특히 대학들의 요구에 밀려 로스쿨 설치 대학 및 입학 정원이 늘어날수록 변호사 자격증을 따지 못하는 로스쿨 수료생 비율이 높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변호사 자격시험 이후 판·검사 임용을 어떤 방식으로 할지, 어떻게 직역 교육을 진행할지 여부도 여전히 미지수다. 첫 졸업생이 배출되는 2012년까지 천천히 검토한다고 하지만, 로스쿨 지원을 고민하는 대학생들에게는 초조한 대목이다. 현재 사법연수원생을 상대로 운영되는 군 법무관 제도 역시 변화가 불가피하다. 남학생은 군복무를 마치면 사실상 응시 기회가 없어 법학부가 거의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는 점도 지적된다. 특히, 매년 1500여만원 이상 비싼 학비가 들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법조인들의 부익부 현상을 어떻게 차단할 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시급한 숙제로 지적되고 있다. ■ 찬반 이견 속 대학가 로스쿨 유치 ‘전쟁’ 그동안 로스쿨 유치를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전국 대학들은 이번 로스쿨 도입에 대부분 환영하는 입장이다. 법학계 또한 이번 법안 통과에 환영하는 입장이다. 로스쿨 도입이 경쟁력 있는 전문가 배출 뿐 아니라 지역경제의 발전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로스쿨 도입에 반대해 오던 변호사업계는 “로스쿨 도입으로 법조계와 사회가 혼란이 우려된다”며 로스쿨제를 꺼려하고 있다. 이들은 엄청난 고비용으로 인한 법조인 배출에서의 사법 양극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또한 로스쿨 제도 자체가 사법연수원 과정과 비교했을 때 크게 차별성을 갖지 못할 것이라는 점도 지적한다. 로스쿨도입을 반대해온 일부 법대교수들도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로스쿨 법안 자체가 갖고 있는 문제점이 너무 많기 때문에 이대로 도입될 경우 사법개혁이 아니라 사법개악을 초래할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로스쿨 인가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일부 법대도 로스쿨법안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150명 이하의 학생으로는 경쟁력도 없고 다양한 과목을 제공하지도 못한다는 문제점도 지적된다. 당장 2009년부터 문을 열게 로스쿨 유치를 위한 대학들의 경쟁에는 불이 붙었다. 수년 전부터 수백억원씩을 들여 시설투자를 하고 판검사 출신 교수를 영입하는 등 로스쿨을 준비해온 곳은 전국 40여개 대학에 이른다. 하지만 2012년부터 로스쿨을 통해 배출될 법조인은 늘려 잡아야 연간 3천명 선이 될 전망이어서 실제 로스쿨을 유치할 수 있는 대학은 20여개 안팎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서울대와 연고대를 비롯해 로스쿨을 준비해온 대부분의 대학들이 로스쿨법안 통과에 따른 대책회의를 갖고 로스쿨 유치를 위한 총력전을 시작했다. 대학들은 전임 교수진 가운데 20% 이상을 실무경력 5년 이상의 변호사자격증 소지자로 채우도록 하고 있지만 분야별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교수진 추가 확보계획을 세우는 한편 외국 유명 로스쿨과의 교류협력 체결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명예와 사활을 건 대학들의 로스쿨 유치경쟁이 예상되는 가운데 수백억원을 투자했지만 최종 경쟁에서 탈락하는 대학들의 경우 후유증도 예상된다. <김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