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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교육이란 이름 앞에 선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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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5호 ⁄ 2007.07.09 13:36:57

한국에서 교육이란 이름 앞에 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대학총장과의 토론회가 있었다. 이를 두고 뒷말이 많다. 교육부에서 대학마다 확인하며 출석을 강요했다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가십거리를 메인으로 잡는 언론이 있는가 하면, 노 대통령의 교육관이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이분법적 교육관이라며 비난하는 언론도 있다. 한국 교육의 현실이 어디에 있으며 어디에서 문제를 찾아야 하는 지에 대한 옳은 인식이 없이 늘 그런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이 씁쓸하다. 지금 한국 교육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한 마디로 처참하다. 한국의 중등 교육은 오로지 한 가지에 맞춰져 있다. 대학입시이다. 다른 것은 생각할 수도 생각할 여력도 없다. 거기에는 교육부도 중고등학교도 학부모도 누구도 예외가 아니다. 여기에서 벗어나려는 사람이 있다면 쉽지 않은 그만큼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이처럼 모든 중등교육이 대학입시에 맞춰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대한민국은 교육후진국이다. 대학에 간다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대학의 서열화에 있다. 이미 대학들은 좋은 대학과 좋지 않은 대학으로 나뉘어져 있어서, 학생들은 누구나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목숨을 건다. 목숨을 건다는 말은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다. 학생들은 정말 목숨을 걸고 실패했을 때는 자기 목숨을 버리는 일이 허다하게 신문지상에 오르내리고 있다. 부모는 부모대로 전투태세가 되어, 조금이라도 더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현상은 치유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어버렸다. 대학교는 자신들의 구미에 맞는 학생들만 나름대로의 노하우를 발휘해서 뽑으려고 한다. 학생들은 자신의 가능성을 모두 그 기준에 맞추어야 한다. 여기에서 공교육은 사라지고 사교육만 춤을 춘다. 가정형편이 넉넉한 학생들은 그마나 따라 갈 수 있지만, 사정이 어려운 학생들은 언감생심 꿈꾸기도 어려운 상황으로 빠져 들어간다. 누가 학생들에게 이런 어려움과 상실감을 요구하는가? 단연코 이기적인 대학들이 그 첫 번째 자리에 있다. ■ 내신반영률과 3불 정책은 균등한 교육기회를 위한 최소한의 합의 이번 대학입시 논란의 핵심은 내신비율 반영률이다. 대학들이 좋은 학생만 뽑기 위해 교육을 파행으로 몰고 가는 것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를 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고, 그것이 내신비율 반영률을 50%로 높이는 것이다. 내신비율을 높이면 자연스레 학교수업이 중요해지고 공교육 강화로 이어져 많은 학생들에게 골고루 그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대학당국은 자율화를 내세워 내신비율을 낮추고 자신들의 기호에 맞는 학생들을 뽑겠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더 과열된 입시열풍, 더해질 사교육의 증가 그리고 교육받을 권리의 불평등한 구조에 대해서는 아무런 책임감도 없다. 다만 자신들 기준의 우수한 학생 뽑을 권리만을 주장한다. 이런 과정에서 나온 것이 대학총장들과의 토론회 중의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이다. 발언의 핵심은 이렇다. “내신반영률 50%는 이미 2004년 당사자 간의 합의이며, 일종의 국민적 합의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 기본을 잘 지켜 달라.” 이미 당사자 간의 합의를 통해 결정된 것을 지켜달라는 것과 합의를 무시하고 집단으로 해결하려는 것이 이번 대입시 혼란의 포인트이다. 그 책임은 당연히 대학당국에 있다. 토론회 도중 노 대통령의 발언에서 와 닿는 부분이 있다. 교육 정책에서 학생들의 애로점에 대해 얘기할 때 그 절반은 외고 학생들 이야기라는 거다. 외고는 입시 학교가 아닌데도 대학입시에서의 대부분의 애로점은 외고 학생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이다. 그 외의 대부분의 학생들은 외고 학생들을 위해 잠시 물러서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 핵심이다. 이게 우리의 현실이고 그토록 부르짖는 입시 문제의 현주소이다. 3불 정책도 큰 틀에서 다르지 않다. 정부가 3불 정책을 유지하는 이유는 이것을 폐지했을 때의 입시광풍과 그로 인한 공교육의 붕괴가 너무도 당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당국은 단지 대학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이유만으로 3불 정책에 노골적으로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 언론에서도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러나 백번을 양보해도 대학의 의무는 우수한 학생들을 뽑는 것이 아니라 우수한 학생들을 길러내는 데에 있다고 생각된다. 이런 의미에서 대학의 진정한 자율성은 입시전형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학문의 자유와 대학자체의 경쟁력에서 찾아야 하는 것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 사학법은 다시 무덤속으로 이런 와중에 사학법 재개정 합의 소식이 들린다.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합의로 이번 7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했다고 한다. 열린우리당은 그 동안 줄기차게 요구해 왔던 개정사학법의 핵심인 사외이사제를 지켜냈다. 장하다 우리당이여! 이런 우리당의 요구를 기꺼이 들어준 한나라당의 양보는 의외이다. 지금까지 사학법 하나만을 위해 다른 많은 민생 법안들을 볼모로 투쟁해 왔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양보할 수 있다니 놀랍기도 하다. 이제 그 속을 들여다보자. 이번에 합의된 내용의 핵심은 △개방이사제 △이사장 친인척 학교장 허용 △이사장의 다른 사학 이사장 학교장 허용 △임시이사 임기 부활 등이다. 허용, 허용, 부활 등의 단어가 들어간 항목은 한 눈에 봐도 우리당의 양보가 눈에 띈다. 이건 지금까지 사학이 가지던 족벌운영과 사유화의 행태를 그대로 허용하겠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개방이사제를 지키기 위해 중요한 핵심들을 다 양보해 버린 것이다. 이 정도나 되니 한나라당이 합의 해 준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포 떼고 차 떼고도 마지막까지 지키려던 개방이사제는 어떤가? 현행법은 개방이사 4분의 1을 학교운영위원회에서 2배수 추천한 후 재단이 임명하도록 되어 있다. 이것도 사실 마뜩찮다. 그나마 학교운영위원회의 추천이라는 게 유일한 희망이다. 하지만 이번 재개정 합의는 이런 마지막 희망마저 꺾어버렸다. “개방이사추천위원회를 꾸리고 이사 4분의 1을 재단과 학교운영위원회에서 각각 동수(또는 과반수)로 구성해 2∼4배수 추천하면 재단에서 임명”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재단 측의 영향력이 훨씬 크게 작용하게 될 것은 뻔한 이치다. 게다가 2~4배수로 추천하면 임명도 재단에서 하게 된단다. 너무 어렵다. 한 마디로 다시 쉽게 요약하면, “개방이사제 이름은 살려 두고, 개방이사 임명은 재단에서 한다.”로 정리되는 것이다. 누더기가 되어서라도 유일하게 살아 있던 사학법이 다시 무덤 속으로 굴러 들어가게 되었다. 무덤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이제 아무도 모른다. ■ 한국교육의 희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지금도 로스쿨법, 교원평가제 관련법, 국립대 법인화법 등 교육 관련 법안들이 이해관계에 따라 국회통과가 미뤄지고 있다. 한국 교육의 미래를 희망을 가지고 바라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도 지켜지지 않는 것이 너무도 많다. 입시정책을 둘러싼 대학과 정부의 논란에서도, 이번 사학법 재개정 합의 과정에서도 그대로 목격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아예 희망을 놓을 일은 아니다. 아이들의 권리를 뒤로 한 채 사학의 권리만을 채워주는 비겁한 정치인들의 행태를 기억하는 국민들은 무수히 많다. 자신들의 목적만을 위해 학생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대학당국의 이기적인 모습은 가슴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아직도 아이들이 살만한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이들은 넘친다. 그리고 그 희망을 엮어 가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한국교육의 희망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이다. <김만중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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