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모두들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지만 그래서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고 누구 하나 기억해내려고조차 하지 않지만 그래도 그건 여전한 진실이다. 한때 우리는 모두가 별이었다. 저마다 꼭 자기 몫만큼의 크기와 밝기와 아름다움을 지닌 채, 해 저문 하늘녘 어디쯤엔가에서 꼭 자기만의 별자리에서 자기만의 이름으로 빛나던, 우리 모두가 누구나 다 그렇게 영롱한 별이었다.” - 본문 중에서 섬이라는 이름은 묘한 울림을 지니고 있다. 또 섬이라는 곳이 주는 알 수 없는 고독과 쓸쓸함이 우리들로 하여금 그곳으로 가게 만든다. 섬은 그 자체로 이미 하나의 고독을 형상화 하고 있는 것이다. 이생진의 연작시 ‘성산포’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술에 취한 섬 물을 베고 잔다/파도가 흔들어도 그대로 잔다/저 섬에서 한 달만 살자/저 섬에서 한 달만 뜬 눈으로 살자/저 섬에서 한 달만 그리움이 없어 질 때까지” 시인이 성산포에서 만난 고독의 정체가 무엇인지 확인할 길은 없다. 그러나 그의 시편을 읽는 동안 우리는 무언가로 침잠해 들어가는 자신을 만난다. 그것은 우리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또 다른 얼굴이다. ■모든 인간은 별이다 이 책, <그 섬에 가고 싶다>의 작가 임철우는 1954년 전남 완도에서 태어났다. 1980년 5·18 당시 전남대 영문과 4학년으로 광주에 있었던 임철우는 필연적으로 광주민주화 항쟁을 겪게 되고, 이후 5월의 광주는 그의 문학의 밑거름이 되어 ‘5월의 작가’라고 불린다. 5월 광주를 증거하는 대표적인 작가로는 시인 황지우와 이 책의 작가인 소설가 임철우를 들 수 있다. 물론 이들 이외에도 그해 오월을 노래하고 형상화하는 작가들은 많다. 그러나 이들처럼 5월 광주에 천착하는 작가들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5월 광주는 이들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숙명이기 때문이다. 공무원이었던 아버지 때문에 조부모와 고향집에 남겨졌던 그는 어린 시절이 외로웠고 어머니가 그리웠다. 열 살 때 광주로 이사와 온 가족이 함께 살게 되었는데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 하지 못해 무단결석과 가출을 여러 번 감행했다. 고교 2년부터 뒤늦게 마음을 잡고 공부를 시작해 1973년 전남대학교 영문학과에 턱걸이로 간신히 합격했다. 이후 혼자 소설 습작을 시작했고 군 제대 후 3학년에 복학하자마자 교내 문학상에 두 번 연속 당선되면서 자신감을 얻었다. 광주 민주화 항쟁 후 고향에 내려가 무기력하게 보내다가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다시 광주로 돌아와서 소설을 쓰기 시작하여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했다. 임철우는 1998년 봄, 10여 년 동안 집필해 온 대하소설 <봄날>을 완간했다. 등단 이후 끊임없이 그의 소설에 등장하던 5월의 광주는 마침내 다섯 권짜리 장편 <봄날>을 써냄으로서 그의 마음속에 늘 가시처럼 걸려있던 광주에 대한 빚을 조금이나마 덜어냈다.
<그 섬에 가고 싶다>의 배경이 되는 섬의 이름은 ‘낙일도’다. 그리고 그 섬에 사는 사람들의 이런 저런 이야기가 이 소설의 뼈대를 이루고 있다. 섬에서 태어난 사람답게 임철우는 섬이라는 공간이 주는 막막함과 섬사람들의 잿빛 감성을 잘 묘사하고 있다. 이 작품에는 별에 대한 인상적인 묘사가 자주 등장한다. 그 문장들을 읽노라면, 마치 윤대녕의 소설 <많은 별들이 한 곳으로 흘러갔다>의 제목을 만났을 때처럼 마음 한 켠이 어둑해진다. 우리는 모두 우리만의 ‘그 섬’을 가지고 있다. 굳이 섬이라는 형상을 띄지 않더라도 ‘그 섬’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아늑하다. 어린 시절, 왠지 모르게 우리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아궁이의 불빛처럼, ‘그 섬’은 우리에게 가난하고 무기력했지만 나름의 행복을 선사해주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 못난이 별 별들도 사랑을 하고 별들도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별들도 죽는다. 우주의 아주 작은 먼지 덩어리에서부터 초신성으로 변할 때까지 별들 역시 우리네 인간과 흡사한 삶의 과정을 지나간다. 여름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별똥별은 우리의 눈으로 볼 때는 아름답지만, 실상 그것은 작은 유성 하나가 죽음에 이르는 길이다. 무수한 별들이 우리 머리 위에 빛나고 있지만, 그것들 모두가 우리에게 사랑받고 찬양받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저 우리의 관념에 홀려 ‘무슨무슨 자리’라고 마음 내키는 대로 별들에게 이름을 붙인 것이다. 가장 밝은 별 북극성의 밝기는 촛불 100만 개를 켜 놓은 후 그 불빛을 100미터 거리에서 바라본 것 같은 것이라고 한다. 헌데 우리는 한 가지를 깜박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그 북극성은 우리와 동일한 시간대를 지나가고 있는 불빛이 아니라, 100만 년 전의 불빛이라는 것이다. 북극성과 지구와의 거리는 약 100만 광년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매일같이 의미 없이 쳐다보고 있는 북극성은 바로 지금 이 시간에는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사실 누가 100만 년 후의 일을 알겠는가. 바로 다음 순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데.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이 책(그 섬에 가고 싶다)의 공간적 배경인 낙일도는 현실의 섬이 아니라 보길도의 외형에서 따온 섬이다. 보길도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고산 윤선도의 유배지였다. 흑산도에서 유배생활을 했던 정약전이 <자산어보>라는 불멸의 기록을 남겼듯이, 보길도에서 윤선도는 <어부사시사>를 건졌다. 그렇게 본다면, 윤선도의 유배생활은 그리 불행한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문장의 바탕화면으로 섬을 그려 넣고 있는 문학작품 중에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아마도 정현종의 ‘섬’일 것이다. 단 두 줄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고, 그 섬에 가고 싶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어찌 보면 허무할 수도 있는 그 작품이 널리 읽혀지는 이유는 ‘우리 모두는 개개의 섬’이라는 인식을 널리 공유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임철우의 세상 바라보기는 매우 따스하다. 대개 자신이 겪었던 어둠을 노래할 때 그 목소리는 격앙되게 마련인데, 임철우는 오히려 낮고 따뜻한 목소리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그의 영혼이 맑고 깊은 까닭이며, 동시에 더 낮은 곳을 향해 여전히 걸어가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섬은 그 자체로 고독이고, 침잠이다. 그러나 섬은 짙푸른 바다 위에 홀로 나부끼는 깃발이기도 하다. 망망한 바다를 지나다가 만나는 섬의 그림자는 우리들에게 까닭 모를 희망을 주고, 버틸 수 있는 힘을 준다. 한반도에 부속된 섬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제부도, 대부도, 백령도, 강화도, 석모도, 영종도, 남이섬, 붕어섬, 고슴도치섬, 고대도, 녹 도, 삽시도, 안면도, 외연도, 원산도, 장고도, 효자도, 고파도, 선유도, 무녀도, 비안도, 어청도, 비금도, 압해도, 거문도, 보길도, 고금도, 울릉도, 독도, 거제도, 외도, 매물도, 한산도, 미륵도, 사량도, 가파도, 비양도, 추자도, 마라도, 우도, 차귀도……. 이름 하나하나가 모두 우리를 향해 손짓하고 있다. 섬을 찾는 사람들과 섬을 떠나는 사람들, 섬에 남은 사람들은 섬을 떠나기를 원하고, 섬을 찾는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오래 머물길 원한다. 섬은 그런 곳이다. 마치 우리의 고향이 그러하듯이. <유성호 기자>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 정현종, ‘섬’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