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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만 씨 자살로 살펴본 한국영화의 문제와 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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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6호 ⁄ 2007.07.16 11:56:58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의 제작 책임을 졌던, 영화사 바인 필름의 대표 조진만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합니다.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까지, 단순히 한두 가지만의 일로써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고인의 지인들의 추측으로는 그의 자살에는 충무로의 불황도 어느 정도는 이유를 준 것 같다고 하네요. 영화사의 대표였으니 결국 투자의 문제였겠죠. 한국영화의 불황이 굉장히 극심한 상황입니다. 예전에 저는 전도연의 칸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 직후, 그 수상이 한국영화계에 미칠 여파에 대해 섣부르게 접근하는 언론을 비판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충무로는 냉정한 판단을 잃지 않았던 듯합니다. 모 영화관계자는 “영화 <밀양>의 선전과 호평 그리고 여우주연상 수상이 한국영화의 침체된 분위기를 단박에 살려낼 수는 없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맞는 이야기입니다. 앞으로도 상황이 나아지기란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줄줄이 사탕이죠. <캐리비안의 해적3>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갔고, 지금은 초대형 작품 <트랜스포머>가 극장가를 싹쓸이하고 있습니다. 그뿐인가요? <다이하드 4.0>, <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 등 앞으로 한참 더 남았습니다. 언론은 보통 할리우드 대작과 한국영화의 억지대결구도를 만들면서 “한국영화 흥행 비상!” 등의 호들갑을 떨곤 합니다. 하지만 그런 식의 기사는 충무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제가 늘 강조하는 것이지만, 관객이 영화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판단하는 점은 ‘국적’이 아니라 ‘가격대비 만족도’입니다. 8천원이라는 돈, 쉽게 보일지는 몰라도 관객으로선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이고, 모자란 용돈을 절약해 마련한 돈입니다. 같은 돈 내고 기왕이면 더 화끈하고 재미있을 것 같은 작품을 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무작정 “한국영화 좀 봐주세요” 식의 읍소로 접근할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충무로가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충무로는, 언론의 뻔한 기사에 의존하기보다 관객이 한국영화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스스로 움직여야 할 때입니다. ■ ‘심형래’를 보면, ‘길’이 보인다 기대작 <디-워>는 8월 2일에 개봉합니다. 총 70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됐고, 미국 현지에서도 1500개의 상영관을 확보해 개봉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심형래 감독은 스스로 영화의 너무 많은 비중을 차지하려 하면서, 제작기간이 길어졌다는 식의 문제점을 노출한 바가 있습니다. 이런 점은 분명히 비판해야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관객은 심형래와 <디-워>를 몇 년째 호의적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그 기대 수치도 높습니다. 그 말 많던 <용가리>가 그렇게 처참하게 실패했는데도 말이죠. 그 이유는 뭘까요? 심형래의 성공요인은 인간적인 요소에 있습니다. 관객은 스크린쿼터 문제로 한국영화인들에 대한 반감이 높아진 사이에, 심형래의 주장인 “내가 개그맨 출신이라는 이유로 천대받았다”는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받아들이면서 세계시장 진출에 노력하는 그의 도전정신을 높이 평가한 것입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즐거움과 함께 희망을 준다는 것입니다. 프로야구를 생각해봅시다. 1990년대 중반까지 중흥기를 이끌었던 프로야구의 핵심 모토 중 하나는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이었습니다. 그 ‘꿈과 희망’이라는 단어 하나가 불세출의 야구스타들과 어우러져 그 당시의 많은 어린이들에게 분명한 어필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심형래’라는 이름 자체부터, 개그맨 시절의 인지도 덕분에 많은 사람들에게 친숙한 편입니다. 게다가 줄곧 ‘바보 연기’'만 했던 그가 세계시장에 도전하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은 큰 대비효과를 보면서 그를 주목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가 만든다는 영화에도 관심을 두게 되겠죠. 그러나 한국영화는 본래부터 어린이 영화 자체를 천시했던 경향이 강했고, 이제는 아예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영화산업에 있어 ‘어린이 관객’이 차지할 비중이 얼마나 큰 것인지 잘 알았던 것입니다. 괴수의 캐릭터 상품이나 미니어처 장난감, 다 누가 사겠습니까? 당연히 어린이들이 부모를 졸라 사달라고 하겠죠. 결코 무시할 비중이 아닙니다. 단적으로 일본 전대물 <후레쉬맨>을 생각해보세요. 플라스틱 장난감, 그 당시엔 정말 잘 팔렸던 상품 중 하나였습니다. 할리우드의 조지 루카스도 그런 사례입니다. 조지 루카스는 <스타워즈>를 연출·제작하면서 속편과 캐릭터사업 판권을 얻고, 대신 애초 연출료 10%인 5만 달러만 받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이게 결정적이었죠. 그는 시나리오와 각본료로 15만 달러 정도만 받았다고 하는데, 캐릭터 상품권의 40%를 되돌려 받기로 계약했다고 하는군요. 그렇게 해서 그가 벌어들인 돈은 얼마일까요? 시리즈 3개 작품에서만 입장수입 18억 달러에, 캐릭터 수입만도 40억 달러 이상이라고 합니다. 우물 안 개구리, 혹은 ‘안방 챔피언’에 만족할 때가 아닙니다. 이젠 그 ‘안방 챔피언’ 자리마저 빼앗길 판이죠. 영화산업의 저변을 넓히는 것을 고민할 때입니다. 심형래의 말대로 충무로가 정말 그를 '개그맨 출신'이라는 이유로 천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도전과정을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될 이유입니다. 한국영화계의 부족한 점과 나아갈 길을 심형래가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디-워>의 완성도가 <용가리>에 이어 여전히 실망스럽다면, 심형래도 이젠 궁지에 몰릴 차례겠지만요. ■ 충무로에 ‘마니아 초청 대토론회’를 제안한다 해답을 영화전문기자들에게 들으려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냉정하게 말하면 기자들은 영화산업의 ‘주’가 아니라 ‘종’입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주는 어디까지나 ‘팬’입니다. 일반 기업체도 마찬가지예요. 소비자의 한 마디가 무엇보다 소중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충무로는 한국영화의 문제점을 낱낱이 지적하고, 거침없이 후벼 파 줄 마니아들의 지적을 새겨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제안합니다. 충무로에 ‘마니아 초청 대토론회’를 제안합니다. 찾아보면 많습니다. 포털 영화코너나 블로그에 꾸준히 영화 리뷰를 올리는 고수급 리뷰어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별다른 고민 없이 데이트를 위해 극장을 찾아가는 일회성 관객들도 있습니다. 앞으로의 한국영화는, 이런 일회성 관객을 '마니아'로 묶어둘 개성과 재미를 갖춘 영화를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당장 자존심이 상하고 억울할지는 몰라도, 하나하나 후벼 팔 그들의 이야기는 억만금의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소중한 것이 될 것입니다. 자존심을 버려야 할 때입니다. 고개를 숙이고 읍소할 때입니다. 보다 겸손해져야 할 때입니다. 뻔한 조폭 코미디는 인제 그만 제작하세요. 당장 잘 나간다는 이유로, 충분한 연기력이나 연습이 준비되지 않은 어설픈 청춘스타들 내세워서 깜짝 흥행이나 추구할 기획영화도 인제 그만 자제하세요. <중천>으로 120억 원 날렸으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소재나 경향 하나 잘 나간다 싶으면 너도나도 다 따라하는 버릇도 이제 그만두시는 게 좋습니다. 창의력 있는 각본을 쓸 시나리오 작가들을 양성할 때입니다. 그리고 제작기간이 오래 걸린다 할지라도 관객을 그야말로 압도할 수 있는 준비된 영화를 내놓을 때입니다. 그리고 어린이 관객 무시하지 마세요. 자식 이길 수 있는 부모는 없습니다. 제대로 된 어린이 영화 만들어서 캐릭터 상품까지 대박 내는 그런 사례도 만들어보세요. 앞서 이야기했듯이 한국영화가 가장 등한시했던 부분인데, 이거 무시하면 한국영화의 흥행 도약은 어려울 겁니다. 제 제안대로 ‘마니아 초청 대토론회’를 열면, 이보다 더한 얘기들, 충무로에 무엇보다 필요한 이야기들 쏟아지듯이 나올 것입니다. 고개를 숙이면서 귀를 열어 들을 때입니다. 관객은 영화산업의 ‘주인’이지, 뻔한 영화를 보면서 돈 아까워 괴로워해야 하는 실험쥐가 아닙니다. 모든 게 불황인 우리 시대, 한국영화도 이제 ‘경쟁’이 무엇인지 절실하게 깨달아야 할 때입니다. <박형준 대중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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