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5일 과테말라에서 개최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제 119차 총회에서 러시아의 소치는 가장 유력한 후보였던 한국의 평창을 누르고 2014 동계올림픽 개최권을 따내는 이변을 연출했다. 독일의 주간지 <슈피겔>은 5일자 인터넷 판에서 당일 소치에서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시의 중앙에 있는 극장 앞 광장에 모여 결정이 나기를 기다렸는데 승리의 소식이 중앙의 거대한 스크린에 전해지는 순간 군중들은 ‘소치, 소치, 러시아’를 외쳤는데 “마치 어디에서 라도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거대한 ’환호성의 폭발‘이 일어났다”고 당일 현지 분위기를 묘사했다. 밤새도록 러시아의 TV 방송국들은 과테말라에서의 투표결과를 보도했고 한 스포츠 채널의 앵커는 자신이 방금 들은 소식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우리의 승리‘라고 몇 번이나 외쳤다. 사실 소치의 승리를 믿었던 러시아인은 거의 없었다. 그들은 최근 러시아와 서방국가들, 특히 미국과의 갈등과 과거의 올림픽 개최 경쟁에서 러시아가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다는 사실 등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LA타임스(LAT)는 5일자 보도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투표 전날 오스카 베르쉘 과테말라 대통령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러시아가 “불행하게도 동계올림픽을 개최할 기회를 한 번도 갖지 못했다”고 강조한 사실을 보도하면서 러시아의 선수들은 구 소련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난 반세기 동안 동계 올림픽에서 수많은 메달을 획득해온 사실을 아울러 지적했다. 사실 러시아는 자타가 공인하는 스포츠 최강국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미국의 보이콧으로 인해 반쪽올림픽으로 끝난 구소련 시절인 80년의 모스크바 올림픽을 포함한다 해도 제대로 된 동·하계 올림픽을 개최 해본 적이 없었다. 물론 더 이상은 아니다. 2014년 올림픽은 시 중심에서 25마일 떨어진 산악지대에서나 눈을 볼 수 있고 야자수림이 울창한 덥고 습한 아열대 기후 지역인 남부 러시아의 흑해 연안에 위치한 여름 휴양지(?)에서 준비되고 있으니까 말이다. ■푸틴의 집요한 노력 LAT는 푸틴이 결과가 발표되기 전 모스크바로 떠났지만 그가 과테말라에서 머물었던 36시간은 소치가 원했던 효과를 발휘한 것이 분명하다며 그의 집요한 로비 노력이 승리의 원동력이라고 분석했다. 푸틴은 지난 수요일 프레젠테이션에서 IOC 위원들에게 경기 시설에 인공눈이 아닌 외곽 산악지대의 ‘진짜 눈’을 보장했으며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문제 즉, 현재 ‘아무것도 없는 소치’에 11개의 새 경기장을 차질 없이 지을 것을 보장해 위원들이 가장 크게 우려하던 문제점을 불식시키려 노력했다. LAT는 또한 6년 전에 IOC위원장에서 물러났지만 아직도 ‘올드 멤버‘들에게 영향력을 가진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전 위원장 입김도 배제할 수 없는 요인으로 지적하면서 소치의 승리는 그가 아직도 일정수준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음을 가늠하게 만든다고 분석했다. NBC 방송도 같은 날 인터넷 판에서 소련 주재 스페인 대사 출신인 사마란치가 1980년 모스크바에서 IOC 위원장이 된 뒤 2001년 역시 모스크바에서 열린 IOC 총회를 통해 위원장직에서 물러난 사실을 설명하며 친러파인 그의 영향력을 소치가 승리한 요인 중 하나로 지목했다.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Guardian)>은 6일자에서 이번 동계올림픽 유치전에서 러시아 정부와 대기업들의 물량공세나 로비와 함께 ‘보이지 않는’ 푸틴의 영향력을 승리의 요인으로 지적하면서 이런 푸틴의 행동을 2005년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가 당시 2012년 하계올림픽 개최를 위해 IOC 총회가 열렸던 싱가포르 방문해 유치전을 벌였던 것과 비교했다. 이렇게 국가 최고지도자들이 올림픽 유치전에 적극 나서는 것은 이미 하나의 트랜드가 됐다는 것이 가디언의 분석이다. ■기업들의 영향력 무엇보다도 이번 올림픽 유치전에서는 기업들의 영향력과 로비 역시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는데, 특히 서유럽에서 사용되는 천연가스의 절반을 공급하는 러시아 최대 에너지 기업인 ‘가즈프롬(Gazprom)’이 막강한 자금력과 영향력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로비에 나섰고, 한국 역시 평창의 승리를 위해 ‘삼성’을 중심으로 기업들이 치열한 로비전을 벌였지만 역부족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LAT는 이런 현실에 대해 비밀투표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기업들의 힘과 영향력이 ‘의미 있는 역할’을 했지만 사실 선정과정에서 명백하게 드러나는 부분은 당일의 ‘투표’결과 뿐이라고 묘사했다. 지난해 10월 푸틴은 이미 가즈프롬이 올림픽 메인 스폰서 자격을 얻기 위해 1억 8천만 달러를 지불할 것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세계 최대의 알미늄 기업인 올레그 데리파스카(Oleg Deripaska) 역시 올림픽 선수촌과 아이스 스케이팅 경기장 및 기타 시설 건설에 투자 하고 싶다는 의향을 밝혔다. 뿐만 아니라 이 기업은 현대화된 국제공항으로 재개발될 예정인 소치 공항도 인수했다. 인테로스(Interros)의 운영자이자 러시아를 대표하는 사업가 중 하나인 블라디미르 포타닌 역시 2억 3천만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는데 그의 회사는 코카서스 산맥의 스키리조트 사업에서 손을 떼려던 당초의 계획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이런 친 정부성향 대기업들의 투자는 ‘올림픽이 차질 없이 진행되기 위해서‘라는 관점에서는 긍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투자자들은 장기적으로 이익이 될 투자를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사실이고 투자 전망 역시 좋을 수 있다. 그리고 소치의 동계 올림픽 개최는 이미 러시아의 흑해 해안, 특히 소치의 부동산 가격상승을 주도 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의 대기업이나 ‘큰손’투자자들만이 이 거대한 프로젝트의 잠재적 이익을 가져가는 것은 아니다. 소치 고속도로 터널 공사에 필요한 콘크리트와 각종 첨가제를 생산하는 스위스 기업 시카(Sika)의 마케팅 코디네이터 레지나 발레예바는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근무하는 회사가 소치와 관련해 대규모의 계약을 했다며 국내기업 뿐만 아니라 외국 기업들도 러시아 남부에 대한 투자확대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발레예바는 러시아의 지속적인 문제점도 아울러 지적했는데, “시간이 지나면 소치는 단지 부자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지역이 될 것이며 일반인들이 그곳에서 겨울 스포츠를 즐길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면서 “이런 대규모 프로젝트에서 이익을 얻는 사람은 오직 부자들뿐”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런 비판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푸틴과 러시아 정부는 대대적인 외국인 투자 유치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는데 푸틴은 이번 동계올림픽 유치 여부와 상관없이 소치에 120억 달러 규모의 대대적인투자를 약속한 바 있다. 그리고 동계올림픽 개최는 소치에 대한 ‘투자 이익’을 ‘극대화’ 할 수 있는 ‘최고의 조건‘이기도하다. 따라서 ‘투자‘와 ‘비즈니스‘라는 관점에서 보면 푸틴이 시의 25마일 외곽의 산악지대에서 거의 대부분의 올림픽경기가 개최 됨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에는 동계올림픽을 개최하기 적합한 다른 곳도 많다) 스키와 해수욕이 모두 가능한 소치의 장점(?)을 열심히 홍보하며 올림픽 유치에 매달린 이유가 분명해진다. 아무튼 소치의 승리는 러시아의 경제성장과 해외 투자유치 노력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은 분명하다. 물론 러시아는 동계올림픽을 “돈 주고 샀다(?)”는 불쾌한 주장에 직면하게 됐지만 말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동계올림픽 유치로 인해 비록 푸틴이 내년 상반기에 대통령직에서 퇴임하더라도 현재의 ‘크렘린 팀‘이 적어도 2014년 까지는 일정한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 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누가 이익을 보는가 러시아 사람들은 2014 동계올림픽을 소치에 유치하는데 성공한 것에 대해 대부분 환호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동계올림픽을 위한 시설비용으로 정부는 엄청난 예산을 투자해야한다. 이에 대해 비판론자들은 결국 부유층들이 개발 이익을 가져갈 것이고 그로인해 빈부격차가 더욱 커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올림픽 유치를 위한 홍보와 축전 비용으로 3천만 달러를 지출했고 2주간의 동계 올림픽 개최비용은 15억 달러를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알렉산더 슈코프 부총리는 돈 문제가 이슈가 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는 입장이다.
국제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한 소치의 기반시설 비용으로 120억 달러 이상의 공적·민간 자본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고 전체 주민40만 중 33만 명이 거주하는 아파트 지역에는 전기와 가스 공급도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올림픽을 위한 훈련시설이나 경기장, 호텔 등도 전무 하다시피 하기 때문에 사실상 거의 ‘맨땅’에서 모든 것이 건설되어야 한다. 게다가 러시아 정부는 19개 봉우리가 있는 거대한 산악지대에 2만9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스키 슬로프와 리프트시설, 경기장을 새로 건설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사실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경합했던 3개 도시 중 소치는 올림픽을 개최할 준비가 가장 안 되어 있는 곳이고 이런 사실은 자크 로게 IOC 위원장과 위원들도 잘 알고 있다. 올림픽 개최를 위해 투자되는 막대한 비용은 러시아의 교육, 보건 그리고 가족 정책예산을 합친 것을 상회한다. 러시아 정부는 전체 비용의 3분의 2를 정부가 조달하고, 나머지는 크렘린에 협조적인 대기업들뿐만 아니라 해외투자자들도 투자에 동참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푸틴은 올림픽 유치에 성공한 직후 이미 한국 기업들에게도 참여를 요청한 바 있다. 그러나 비판론자들은 소치만을 위한 그런 대규모의 투자계획은 러시아의 지역 간 격차와 빈부격차를 더욱 심화시킬 것으로 보고 있다. 알렉산더 도스코이 알칸젤스크 시장은 라디오 방송인 ‘모스크바의 소리(Echo of Moscow)’에 출연해 “그런 식의 투자는 러시아 연방의 다른 지역들 에게는 오히려 해가 될 것”이라며 “그런 막대한 예산들이 일반 국민들의 아파트 보수공사에 쓰인다면 너무나 많은 국민들이 고마워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환경과 평화대신 돈을 선택한 IOC 2차 투표 하루 전날인 지난 화요일 모스크바에서 “소치는 이겼지만 시민들은 패배했다”는 슬로건을 외치는 반대론자들의 시위가 있었다. 드미트리 코쿠레이가 속한 환경운동가 그룹은 소치를 둘러싸고 있는 산악지대의 독보적인 자연환경이 보존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들의 이런 시각 또는 주장들에 대한 러시아 수뇌부의 의견은 아주 명쾌하다. 즉, 이날 시위는 경찰 당국으로부터 허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시위자들은 강제 해산 됐고 코쿠레이 같은 활동가들은 구금되는 것으로 ‘정리’됐다. 환경 보호론자들의 이런 주장들이 현재 러시아 내에서 논의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미 유네스코(UNESCO) 자연 유산으로 등재된 코카서스 국립공원의 가장자리에 올림픽 선수촌을 건설하는 계획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올림픽에 반대하는 주장에 대한 억압도 이미 오래전부터 ‘꾸준히’ 진행되어왔기 때문이다. 코카서스 산맥 뿐만 아니라 많은 스포츠 이벤트가 개최될 소치 인근의 크라스나야와 폴로나의 스키장 역시 유네스코에 자연 유산으로 등재된 지역 안에 있지만, 러시아 정부는 “자연보호구역 내에서의 개발이 올림픽을 준비하기 위해 필수적”이라며 개발계획을 계속 밀어붙일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에 대해 독일의 환경단체인 ‘나부(NABU)’는 “소치의 올림픽 유치 결정은 비즈니스를 위해 환경 문제가 경시되는 대표적 사례”라고 비판했는데, ‘환경’은 ‘평화’와 함께 올림픽이 추구해온 가장 중요한 가치라는 점을 고려하면 IOC의 이번 결정은 두고두고 비난 받을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소치는 러시아와의 분리 독립 전쟁과 테러로 인해 폐허가 된 체체니아와 코카서스 지방과 인접해 있어 안전문제 까지 우려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사실 IOC가 ‘환경’과 동계스포츠 발전을 고려했다면 기반시설이 잘 갖춰진 ‘잘쯔부르그’가 적합했고, ‘평화’에 무게를 두었다면 세계 유일의 분단국인 한국의 ‘평창’에게 명분이 있다. 그러나 IOC는 올림픽의 전통적인 가치보다는 경제성장 즉, ‘돈’을 선택했다. 자크 로게 IOC위원장도 지난 8일 과테말라 시티에서 제 119차 총회를 마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올림픽 개최지 선정 방식의 변경이 필요하다”며 이번 올림픽 개최지 선정과정에 문제가 있었음을 사실상 시인했다. <유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