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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개발자, 야근은 당연한 것”

[현장 인터뷰] 한국의 노동 4편 - 휴대폰 개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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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7호 ⁄ 2007.07.23 13:57:16

미디어다음의 블로거 기자인 김욱 기자는 요 몇 달 동안 ‘야근 기획’을 진행하고 있다. 그런 김 기자에게 SBS 이대욱 기자가 최근 ‘IT 분야에서 직업병으로 고통 받는 분을 인터뷰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다. 열악한 노동환경의 프로그래머 현실을 다룬 뉴스에서 그건 꼭필요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김 기자는, “그런 하소연 하는 분의 댓글은 많이 받았지만 그분들 연락처는 확보하지 못했다”고 했다. 김 기자가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 전직 휴대폰 개발을 하셨다는 분의 연락이 왔다고 한다. 김 기자에 따르면, 그는 휴대폰 개발 분야에 7년간 종사하면서 두 번이나 입원했고 이러다 죽을 지도 모른다는 공포까지 느꼈다고 한다. 결국 휴대폰개발 일을 그만두었고 현재는 계약직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다음은 김욱 기자가 보내온 ‘휴대폰 개발자’님과의 일문일답 ■ 일반인들도 궁금해 할 것 같은데, 먼저 휴대폰이 출시되는 과정을 설명 해주십시오 “휴대폰 개발에는 크게 SW과, HW, 기구 3분야가 있습니다. 기구라는 분야가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데, 휴대폰케이스·버튼 등과 같이 금형을 제작하고 하청을 주고 관리하는 분야입니다. 대략 일 년 이후 출시예정 제품들의 로드맵이 계획되어 있습니다. 일반인이 생각할 때에는 휴대폰 제조사가 소비자에게 직접 휴대폰을 판매하는 것으로 아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제조사는 이동통신사(이통사)에게 휴대폰을 납품하고 이통사가 대리점등을 통해 판매하는 것입니다. 휴대폰을 구매하는 곳이 이통사이기 때문에, 이통사에서 납품을 받지 못하면 그 제품은 출시되지 못합니다. 따라서 진정한 갑은 이통사입니다. 제조사는 이통사와 휴대폰 스펙을 협의한 후에 개발을 합니다. 이 때 부가서비스 규격을 협의하는데, 만일 새로운 규격의 부가서비스가 새로 탑재된다면 그 모델 개발팀의 고생은 예약되어 있는 겁니다. 휴대폰은 기능에 따라서 개발기간이 달라지는데, 보통 6개월~1년정도 걸립니다. 그러나 모양만 조금 바꾼 ‘face lift’ 모델은 개발기간이 짧습니다. 처음에 기능을 개발하고 자체 테스트를 거친 후 어느 정도 안정화(기준은 조금씩 다르다)가 이루어지면 이통사에 휴대폰을 수십 대 보내서 ‘망연동’을 거칩니다. 이통사 망연동을 통과해야 출시할 수 있습니다.” ■ 이통사와 기기회사, 소프트웨어 회사가 어떤 식의 협업과 하청이 이루어집니까. 혹시 소통이 안돼 업무에 곤란을 겪은 적은 없습니까 “이통사는 SKT·KTF·LGT가 있고, 제조사는 삼성·엘지·모토로라·팬택 정도가 규모 있는 회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조사에서는 주력제품을 개발하고, 저가폰 같은 모델은 외주를 줍니다. 이때 SW·HW·기구 모두 턴키로 외주를 주는 경우도 있고, SW·HW·기구 각각 따로 외주 개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구멍가게 수준의 외주업체는 제조사와 직접 거래하지 못하고 제조사 하청의 하청을 받습니다. 제조사에서 일 진행이 어렵다고 판단하면 외주업체 개발자를 제조사에 상주시킵니다. 처음부터 개발이 끝날 때까지 제조사에 상주하는 회사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갑이 오라고 하면 언제라도 가야 한다는 것이죠.” ■ 휴대폰 관련 분야에 종사하는 분들 모두 작업강도가 상당하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휴대폰산업의 작업강도가 이렇게 강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휴대폰을 경쟁회사보다 빨리 출시해서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입니다. 개발자가 ‘칼퇴근’하고 휴일 다 쉬면서 개발하면 경쟁에서 뒤처지게 되죠. 회사는 개발자들이 기계처럼 24시간 일하면 좋을 것입니다. 현재로선 이와 같은 경쟁 환경에서 해결법은 없어 보입니다. 참고로 예전에 노키아 R&D가 한국에 들어 왔다가 실패하고 나갔었는데, 당시 노키아 R&D 센터에 다니던 개발자들은 우리나라 개발자처럼 일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 원청의 기획 오류로 작업이 잘못되는 경우는 없습니까. 혹시 그렇 게해서 시간과 노력이 무산될 경우 그 지체 비용은 누가 지불합니까 “개발 도중에 새로운 기능을 집어넣으라고 하는데, 그것 때문에 일정이 지연되어야 하지만 출시일은 거의 늦춰지지 않습니다. 부품수급이 제대로 되지 않아 출시가 지연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개발이 지연되어 출시일이 지연된 경우 하청업체가 출시지연 사유를 증명하지 못하면 그대로 패널티를 물어야 합니다.” ■ 그리고 개발 착수 후 계약이란 관행이 있다던데 그 부분 왜 그렇게 되고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요 “모델이 출시되지 못하고 개발을 종결하는 경우를 통상 ‘Drop’이라고 합니다. 모델 ‘Drop’은 보통 개발 초기에 많이 발생합니다. 계약 전에도 일단 개발은 시작하는데, 개발 초기에 계약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Drop’ 되면 그 때까지 한 일은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합니다. 원청업체는 돈도 안주고 일을 시켜놓고 계약 전에 개발이 중단되면‘다음 모델 밀어 주께’ 하며 넘어가버립니다.” ■ 소프트웨어산업의 하도급 실태가 심각하다고 들었습니다. 휴대폰업계의 하도급 실태는 어떤가요. 그 과정에서 가격이 얼마나 다운되는지 “‘갑’ 회사에서 자기네 개발자 20명이 하는 일을 ‘을’ 회사에 외주 주면서 15명으로 줄입니다. ‘을’ 회사는 사장 월급도 가져가야 하고 사장 차도 굴려야 하고 사무실 월세도 내야하고, 비 개발자 월급도 줘야 합니다. 그러니 15명이 개발한다고 계약은 하고서는 실제로는 10명이 일 하게 되죠.?결국 사람이 부족하고 부족한 사람을 야근으로 때우게 되는 겁니다. 을 회사에서 하청을 받는 병 회사는 상황이 더 좋지 않게 되죠.” ■ 같이 일하셨던 개발자들의 연령대는 어떻습니까. 개발자 스스로의 40대 이후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고 있습니까 “개발자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까지가 대부분입니다. 얼마 전에 농심데이터시스템에서 IT업계 최초로 정년퇴직자가 나올 것이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사오정이란 말이 있는데, IT에서는 45세까지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많은 개발자들이 40살까지 버틸 수 있는지 고민합니다.” ■ 한국의 소트프웨어 수준이 낮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그렇게 ‘IT 강국’을 외치면서 소프트웨어 수준이 낮은 이유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개발자들이 공부하면 일 안하고 공부한다고 합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어이구 공부하네? 일 없나봐? 널널한가 보지?’라고 비아냥거리는 간부의 말을.

웃기는 것은 일만 해서 공부 할 시간도 없는데 공부도 안하고 뭐했냐고 또 그럽니다. 외국에서는 기획과 계획, 설계 단계에 많은 시간을 투자합니다. 그러나 한국은 일단 개발부터 들어갑니다. 문제가 발생하면 정확하게 찾고 그 근본원인을 제거해야 하는데 일정에 쫓겨서 땜빵하고 맙니다. 그러니 SW구조는 걸레가 되고 말죠. 신입개발자를 개발에 투입하기 전에 충분한 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그러나 일단 사람이 아쉬우니 신입개발자도 개발에 투입합니다. 제대로 배우지 않은 개발자가 경력이 늘어도 실력은 사상누각에 불과합니다.” ■ 사무실 작업 환경은 어떤가요 “사무실 작업 환경은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책상에 PC와 의자가 전부일 것입니다. 하루 종일 회사에 앉아 있기 때문에 의자라도 좋은 것을 지급해 줘야 하는데, 돈이 없다고 좋은 의자를 사주지 않습니다. 그래도 대부분 사장실 집기는 고급이고 사장의자는 좋은 것 쓰죠. 그래서 개인 돈으로 의자를 사서 사용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원청회사에 파견 나가는 경우도 많은데, 원청회사에서는 좋은 자리를 주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창고 같은 곳에 몰아넣고 일을 시킵니다.” ■ 두 번에 걸쳐 입원하셨다고 들었는데, 그 과정 얘기 해주십시오. 어떻게 회복하셨습니까. 현재 후유증은 없습니까 “처음 입원은 야근을 하고 집에 오던 중, 신호대기를 하는데 뒤에서 음주운전자가 들이 받았습니다. 차를 폐차할 정도의 사고였으며, 전치 3주 진단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프로젝트 때문에 5일 만에 회사로 복귀해서 지팡이 짚고 다녔습니다. 다행히 후유증은 없었습니다. 두 번째는, 제조사에서 회의를 하는데 정신이 흐릿해 지면서 온 몸이 저려왔습니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회의를 마치고 회사로 복귀하다가 근처 병원에 들어가서 나 좀 살게 입원시켜달라고 했습니다. 이틀 입원하고 출근했습니다. 병원비는 내가 냈습니다. 또 한 번은 겨울이었는데, 야근을 마치고 집에 가야 하는데 너무 아파서 집에 갈 수도 없었습니다. 집에 가면 아내가 걱정할 것 같고, 출퇴근 시간을 아껴 쉬고 싶어서 회사 근처 러브호텔에 혼자 들어갔습니다. 약은 먹었는데 몸은 점점 아파 오고 서러워서 눈물이 났습니다. 새벽에 퇴근해서 아침에 출근하는데 졸다가 사고 날 뻔 한 적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신호대기 중에 졸아서 브레이크 밟는 발에 힘이 빠져 앞차를 받은 적도 있었고요. 퇴근길에 집에 운전하고 가다가 가로수를 들이 받고 싶은 적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일 하다가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현재는 공무원으로 계신다는데, 어떻게 이직에 성공하셨습니까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직에 성공한 것은 아닙니다. 계약직입니다. 여기 직원들은 내가 계약직인 것에 대해 걱정 섞인 말을 해 주고 있지만 그다지 신경 쓰지 않습니다. 휴대폰 개발회사 정규직에 있다 해도 언제 회사가 망할지 모르고, 내가 병으로 더 이상 회사생활을 할 수 없게 될 수도 있습니다. 감나무 밑에서 입 벌리고 있다고 감을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공무원 정기채용을 준비하려면 회사 그만 두고 공무원 학원 다녀야 합니다. 정기공채가 아닌 특별채용이 있는데 꾸준히 채용공고를 확인해야 합니다. 공공기관은 기본적으로 토익점수를 750 이상 만들어야 하는데, 회사 다니면서 토익점수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 가족이 어떻게 됩니까. 가족들도 휴대폰 업계에 계신 동안 같이 고생하셨을 텐데 이직 전과 이직 후의 가족의 분위기는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아내와 유치원 다니는 아이가 있습니다. 현재 내 수입으로는 부족해서 맞벌이를 하고 있습니다. 가사일을 내가 많이 해서 집안이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직 전에는 가족과 대화할 시간도 없었습니다. 아이가 그때는 나를 낯설어 했는데 지금은 나를 많이 좋아 합니다. 아이와 주말에는 꼭 둘이 외출하는데, 아이 손잡고 다니는 것이 너무 행복합니다. 아이가 나에게 안기면서 ‘아빠 사랑해요’라고 합니다. 휴대폰 업계를 떠났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보통사람에게는 평범한 일상이 개발자에게는 상상 속의 일입니다. 남들 다 가는 여름휴가를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었는데 올 해 처음으로 여름휴가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IT 강국 대한민국’이라는 명칭의 그늘은 이러했다. 그러나 더욱 절망스러운 것은 그 명칭과 그늘만이 아니다. 소위 IT강국이라는 것의 속내는 부실에 다름이 아니다. 부가가치가 아닌 노동 가격의 단가를 낮추어서 생기는 경쟁력, 기획 능력 없는 아니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매니저들, 그리고 개발자의 야근과 초과 노동이 당연시 되는 문화다. IT 강국을 유지하는 힘은 창의적인 개발 기획에서 나온다. 이 힘은 결국 개발자들과 기획자들의 몫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개발자는 그저 부속품에 다름이 없다. 이 IT 강국이 언제까지 유지될 것인지 안타까움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을까. 네 차례에 걸쳐 개발자 중심으로 인터뷰 하는 동안 동종업계의 하도급 오너들 역시 깊은 한숨을 쉰다. 이 문제는 어쩌면 중소기업 사장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유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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