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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심장에 비수를 꽂다

파국으로 치달은 이랜드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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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7호 ⁄ 2007.07.23 14:03:31

20일 오전 9시 50분. 서울 홈에버 월드컵몰점과 뉴코아 강남점의 점거 농성은 끝내 정부의 경찰력 투입으로 끝이 났다. 각각 21일, 13일만이다. 비정규직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던 노무현 대통령은 끝내 비정규직 노동자의 심장에 비수를 꽂았다. ■경찰 7000명 투입된 ‘연행작전’ 정부가 이날 이랜드 매장 두 곳에 투입한 경찰 병력은 71개 중대 약 7000명이다. 약 1시간에 걸친 작전이 끝난 뒤 농성장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현장에서 이랜드 일반노조와 뉴코아노조 조합원 168명이 연행됐다. 오전 9시 30분께 매장 입구를 막고 있던 쇼핑카트를 치운 경찰은 뉴코아 강남점 정문과 지하를 통해 동시에 매장으로 진입했다. 조합원들은 연좌농성을 벌이며 “폭력경찰 물러가라” 등의 구호를 외쳤지만 속수무책이었다. 김경욱 이랜드일반노조 위원장은 이날 경찰 출두에 앞서 “우리 투쟁은 끝이 아니다. 또다시 농성투쟁 할 것이고 이번 농성장 공권력 투입은 사전에 짜여진 각본에 따른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생존권 문제가 있어 농성장을 없앤다고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 생존권이 보장될 때까지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찰 병력 투입으로 농성이 해산되고 조합원들이 무더기로 연행되자 노동계는 즉각 “경찰 투입이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키고 말았다”며 반발했다. 민주노총은 “노무현 정부는 ‘일하게 해달라’는 여성 비정규노동자들의 절박한 요구를 경찰의 방패로 짓밟으며, 자신들이 일하던 계산대에서 피울움 나는 고통을 참으면서 농성해 온 노동자들을 끝내 강제로 끌어내고야 말았다”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결국 노무현 정권은 비정규노동자의 눈물을 닦아준 것이 아니라 심장에 비수를 꽂은 것이다”며 “이는 노무현정부가 비정규보호법이 아닌 확산법을 만든 근본적 책임이 있음에도 오히려 비정규노동자의 생존권요구를 공권력으로 봉쇄하는 만행을 자행하여 자신들의 무능성을 은폐하려는 것이다”고 밝혔다. 한국노총도 “이번 이랜드 사태를 통해 이랜드 사용자가 임금체불, 임신 여성노동자에 대한 연장근로 강요 등 불법과 탈법, 편법의 대표적인 악덕 사용자인 점, 한해에 130억원의 헌금을 내는 그룹 회장이 수백명의 여성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길거리로 내 모는 것에 대해서는 눈하나 깜짝하지 않는 이중적 사용자임을 똑똑히 봤다”며 “이처럼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는 이랜드 사태에 대해 정부의 어설픈 공권력 투입은 사회적 갈등으로 야기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결국 교섭에 찬물 끼얹은 노동부 19일 이랜드 노사의 마지막 교섭은 앞서 이상수 노동부 장관의 공권력 투입 발언이라는 악재를 맞았다. 이랜드일반노조는 교착국면인 교섭의 진전을 위해 전향적으로 ‘3개월 이상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고용보장 요구’를 철회했다. 조합원의 고용과 관련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노동조합 안을 철회한 것이다. 대신 이랜드 사측에 2,000여명에 달하는 18개월 이하 비정규직에 대한 고용보장 방안을 제시해 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회사 쪽은 노조의 제안을 거절하고 기존 단협 내용에 포함된 18개월 이상의 조합원에 대한 고용보장만 반복했다. 조합원에 대한 고소고발 철회를 하지 않은 상황에서 무조건적인 농성해제만을 요구하며 교섭 자리를 떴다. 특히 이상수 장관이 ‘공권력 투입’을 기정사실화하고 회사 쪽은 ‘특단의 조치’를 발표하는 등 정부와 회사가 공조하여 공포분위기를 조성해 놓은 상황이었다. 사측엔 공권력 투입이라는 천군만마가 있었던 반면 노조는 무조건 백기를 들고 투항할 것을 강요당했다.

앞서 17일 서울지방노동청 관악지청에서 열린 두번째 노사협상에서도 난항은 계속됐었다. 뉴코아 사측은 계산업무 외주화 방침을 철회하는 대신 이미 도급업체와 계약이 체결되어 있는 점을 감안해 1년의 유예기간을 두는 방안을 제시했다. 또한 사측은 4월 말 기준으로 해고된 비정규직 계산원 53명의 복직과 근로계약 만료를 앞둔 78명에 대한 고용보장을 제안했다. 하지만 사측은 파업과 농성으로 인한 회사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향후 2년동안 2~3%의 임금삭감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노조는 현재 용역업체 소속 계산원들이 1개월짜리 단기계약을 맺고 있는 상황에서 외주화 철회에 대한 유예기간을 둘 필요가 없다며 사측 제안을 거부했다. 한편, 홈에버 노사 협상에서 노조는 “2년 이상 근무자를 직무급제가 아닌 일반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3개월 이상 근무자에게 고용을 보장할 것”과 함께 사측의 노조에 대한 고소고발 철회를 요구했다. 하지만 사측은 “18개월 이상 연속 근무자에 대한 고용을 보장하고 18개월을 넘긴 계약직 해고자 가운데 부당해고 구제 판정을 받은 10명을 재계약하겠다”고 제안해 협상은 난항을 겪은 채 결렬됐다. ■‘중규직’이라 불리는 ‘직무급제 정규직’ 노조가 요구하는 ‘2년이상 근무자에 대한 정규직 전환’은 비정규직법의 핵심이지만, 사측은 직무급제 분리를 통한 정규직전환을 제안했다. 직군분리를 통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언뜻 사측의 부담을 감안한 현실적 대안으로 보이지만 비정규직법의 또 하나의 핵심인 차별시정제도를 무력화하는 치명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 차별시정제도는 비교대상 노동자를 사업 또는 사업장에 있는 ‘동종 또는 유사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로 국한하고 있다. 따라서 같은 회사 안에서 직군분리 등을 통해 ‘동종 또는 유사업무에 종사하는 정규직 노동자’를 없애면 이 제도의 적용을 손쉽게 회피할 수 있는 것이다. 노동부는 최근 발행한 ‘차별시정 안내서’ 27~28쪽에서 별도 직군으로 분리할 시에는 비교대상 노동자가 없으므로 차별시정제도 적용이 되지 않는다고 인정하고 있다. 민주노동당 비정규직철폐운동본부는 “직군분리제는 차별을 시정하는 제도가 아니라 차별을 고착화하는 제도인데 차별을 시정하겠다는 정부와 노동부가 이를 옹호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주장”이라며 “정부와 노동부의 분리직군제 주장은 비정규직노동자에 대한 차별해소를 안하겠다는 분명한 ‘차별 고착화’ 선언일 뿐이다”고 말했다. 한편, 이랜드그룹 홈에버 사측은 이번 협상에서 ‘18개월 이상 근무자에 한해 정규직으로 전환시켜주겠다’는 안을 제시하면서 전향적인 안을 내놓은 것이라고 자평했다. 하지만 18개월 이상 근무자의 정규직 전환은 이미 홈에버의 전신인 까루프 노사가 합의하고 이랜드가 보장키로 했던 단협에 확정된 내용이다. 오히려 단협에 명시된 모든 직원의 고용안정이라는 조항을 무시한 채 사측은 18개월 미만의 노동자에 대해서 고용을 보장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비정규직철폐운동본부는 “회사가 굳이 선심 쓰듯 내놓지 않아도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하면 해결될 일이다. 이미 법원은 이랜드의 해고는 부당하다고 판결한 바 있다”면서 “결국 그동안 어기고 있던 단협을 일정 정도 준수하겠다는 정도의 내용일 뿐 전향적인 안이 아니다”고 비판했다. ■공권력 투입으로 최악의 상황 자초 20일 이랜드 농성장에 대한 경찰 투입은 이미 예고됐었다. 앞서 17일 노동부는 “노조가 회사 안을 거부하고 농성을 계속한다면 정부로서는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성호 법무부장관도 “우리 사회에 고질적인 ‘법 경시 풍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른 엄정한 법집행을 통해 법치주의를 확립해야 한다”며 공권력 투입 가능성을 밝혔다. 하지만 공권력 투입은 이번 사태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고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키고 말았다. 특히 노동계는 물론 시민사회단체들까지 이미 이랜드상품 불매운동에 전면적으로 나선 만큼 20일 경찰 병력 투입은 향후 노동계는 물론 시민사회 진영의 거센 반발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오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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