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이라는 작품의 이름을 들어본 사람들은 많다. 비록 그 작품을 ‘끝까지’ 읽지는 못하였더라도, ‘태백산맥’이라는 고유명사를 한국현대사의 비극적 서정이라는 ‘일반명사’로 만든 조정래라는 한 탁월한 작가의 노력 덕분이다. 그러나 그 책은 지금껏 ‘국가보안법’의 멍에를 쓰고 ‘관습헌법’의 후예들 앞에 서 있다. -아! 한반도 조정래. 우리 문단에서 그를 지칭하는 말은 매우 다양하다. ‘한국 현대문학사의 기념비적 존재’라는 극찬에서부터 ‘북에 이기영이 있다면, 남에는 조정래가 있다’는 말까지, 그의 이름마저도 이제는 민족문학을 상징하는 하나의 ‘보통명사’가 되어가고 있다. 사실 우리 것이든 남의 것이든 하나의 역사적 현상을 되짚으며 그것을 우리의 삶에 밀착한 언어로 풀어낸다는 것은, 문학적인 재능이 있고 없음을 떠나 매우 단조롭고도 고단한 작업이다. 마치 공장의 노동자들이 대개 그러하듯이, 하루의 대부분과 집필 기간의 상당부분을 자료의 수집과 분류 그리고 인물의 재배치에 투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장편소설은 곧잘 써내는 작가조차도 대하소설 특히 대하 역사소설은 쉽사리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문단의 김주영·황석영 등과 더불어 조정래의 가치는 더욱 소중하다. 더욱이 그가 집필해온 일련의 역사 이야기들은 교과서적인 식상함에 따분해진 독자들에게 윤기 있고, 사람 내음 그윽한 사랑방 이야기 같은, 그러나 결국에는 가슴 밑바닥에서 스며 나오는 하나의 ‘절절한 외침’을 만든다는 점에서 교과서 그 이상의 가치와 시선을 보여준다. -민족혼 그의 연작(개개의 작품으로 이루어졌지만, 사실은 연작에 가까운 작품으로 보아도 무방하다)들이 관통하고 있는 시간대는 크게 보아 일제강점기를 전후한 시기(아리랑)와 민족사적 비극인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태백산맥), 그리고 이승만 정권기부터 개발독재의 시기까지(한강)로 나눌 수 있다. 그 중, <아리랑>을 읽는다. 엄밀히 말해 이 작품을 다시 읽는 셈이다. 그러나 뭐 어쩌겠는가. 좋은 책은 아무리 여러 번 읽어도 지루하지 않은 법이다. 우리 문학사 혹은 출판사에서 ‘아리랑’이라는 제목을 가진 책(혹은 문학작품)은 두 개가 있다. 하나는 <중국의 붉은 별>로 유명한 미국의 언론인 에드가 스노의 부인이자 그 역시 저명한 저널리스트였던 님 웨일즈가 저술한 <아리랑>이다. 그 책은 아직까지도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못한 좌익 계열의 조선혁명가인 ‘김산(본명 장지락)’의 자전적인 이야기이다. 그 책(님 웨일즈의 <아리랑>)을 읽어가노라면, 동북항일연군과 중국화북지방의 항일투쟁의 근간이 바로 조선인혁명가들임을 알 수 있다. 김산이 증언하는 무수한 이야기들, 예컨데 광동코뮨 당시의 조선인 혁명가들의 삶과 죽음은 당대를 가로지르던 하나의 거대한 조류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던져볼 수 있다. 그리고 또 한 권의 <아리랑>이 있다. 바로 조정래의 <아리랑>이다. 우선 이 작품은 50여 년 간을 지나오는 거대한 시간의 흐름과 일일이 기억하기 힘들 정도로 무수한 등장인물들, 그리고 무엇보다 그동안 바깥에 놓여 있던 역사의 장면들을 하나의 서사적 구조로 환원시키는데 성공하고 있다. 예를 들자면, ‘조선혁명당군’의 총사령이었던 양세봉 장군의 경우, 남과 북 모두로부터 잊혀졌던 인물이다. 일제시기 그의 별명이 ‘전신(戰神)’ 즉, 전쟁의 신이었던 것을 상기한다면 가히 어리둥절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조선혁명당군의 이야기가 남과 북의 교과서에 조그맣게나마 실리기 시작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하나의 문학작품에게 ‘대작(大作)’이라는 이름이 붙기 위해서는 그 작품의 양과 질 모두가 일정한 시선과 균형과 품질을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林巨正)>이 담아내고 있는 조선중기 이후의 사회상과 고유한 풍속도와 민중의 가슴 밑바닥에서 꿈틀대고 있던 ‘반역의 꿈’ 등은, 작가 자신이 발 딛고 살아가는 당대에 대한 무차별한 애정이 없이는 나올 수 없는 결과물이다. 또 황석영이나 김주영과 같은 타고난 이야기꾼들의 저작 역시 민중과 민족 그리고 역사에 대한 폭넓은 애정과 깊이 있는 탐구가 선행되어야만 가능한 작업이다. <아리랑>도 그 범주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둠의 산하 <아리랑>에 등장했다 사라져가는 인물의 숫자는 매우 많다. 그 중에서 의미 있는 인물들만 어림잡는다 해도 대략 50~60여 명에 이른다. 그렇다면 작가 조정래는 어떤 인물들을 ‘주인공화’ 시킴으로써 자신의 견해와 의도를 나타냈을까. 먼저 ‘송수익’을 들 수 있다. 구한말(舊韓末) 의병장 출신인 그는 당대의 역사를 껴안고 그 속으로 결연하게 뛰어드는 ‘실천적 지식인’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당대의 많은 양반 혹은 유생들이 독립전쟁의 전선으로 하방(下方)하기는 했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근원적으로 지니고 있는 ‘계급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으며, 심지어 평민 출신의 의병장을 토벌대에게 밀고하거나, 양반 의병장을 징치했다는 이유로 죽이기까지 했다. 하여 양반계급 혹은 지주계급의 독립전쟁은 대개의 경우 후일 ‘집안 자랑’거리로 전락하거나, 자신의 변절(일제로의 투항)을 장식하는 후일담 수준으로 내려앉고 말았다. 이러한 것에 비한다면, 송수익이라는 인물이 함유하고 있는 ‘소수자로서의 선구자’라는 입장은 이후 전개되는 다음 세대의 투쟁기에 하나의 조타수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송수익과 더불어 빛나는 존재인 승려 ‘공허’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존재이다. 공허라는 인물이 상징하는 것은 넓게는 지식인 계급에 들어가면서도 당대의 지식인들로부터 천대받았던 종교인들의 사회적 참여와 역사적 의무를 내보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사람은 ‘지삼출’이다. 마치 소설 <태백산맥>의 ‘하대치’를 연상시키는 이 인물은, 조정래가 <태백산맥>에서 하대치와 염상진과의 관계를 형상화할 때 묘사했던 ‘화공(畵工)과 화선지’의 비유를 연상하게 한다. 즉, ‘스스로 자각하는 민중’이라는 점에서 하대치와 지삼출은 서로 맞닿아 있다. 연대기적 흐름으로만 본다면 지삼출은 그 시대의 하대치이며, 하대치 역시 마찬가지다. 바로 이러한 ‘자각하는 민중’의 건강한 영혼이 당대의 역사를 더 이상 부끄럽지 않게 한다. 마치 1980년 5월의 광주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동트는 광야 그러나 세월의 힘을 이기는 사람은 없다. 소설 속에서도 송수익과 지삼출은 어쩔 수 없이 늙어갔으며, 그들의 삶은 충분히 치열했다. 그들이 소설 속에서 창조된 인물이라고, 따라서 그들의 삶은 ‘그려진 것’이 아니냐고 묻지 말라. 홍범도가 그러했고, 양세봉이 그러했으며 또 김산이 그러했고, 장준하가 그러했다. 그들의 세월이 지난 뒤, 당연하게도 그들의 뒤를 잇는 세대가 등장한다. 그 중 세 사람의 예를 들어보자. 전동걸·방대근·방영근이 그들이다. 이들 중 방대근과 방영근은 소설 중에서 형제로 설정되어 있다. 이들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송수익과 더불어 무장투쟁을 이끌었던 공허의 아들인 전동걸은 아비의 당당함과 어미의 섬세함을 고루 지닌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전동걸의 삶의 궤적은 얼핏 보면 장준하의 그것과 흡사하다. 일본 유학중 학병으로 끌려나갈 위기에 처하자, 중국 본토를 가로지르는 ‘고난의 행군’을 통해 조선의용군(좌익계열)으로 투항하는 모습은 그 시절 장준하가 몇 달을 허비하며 광복군을 찾아가던 ‘엑소더스’와 닮아 있다. 물론 그들 말고도 학병으로 끌려 나갔거나 제 발로 기어들어간 이들도 있다. 하지만, 문학작품이라는 것이 여럿의 현상 중에서 의미 있는 하나의 현상을 통해 ‘전형성’을 창조하는 작업이라고 할 때, 전동걸은 분명 하나의 ‘민족적 전형성’을 획득하고 있다. 그렇다면 방대근·방영근 형제의 경우는 어떠한가. 먼저 방대근의 경우, 신흥무관학교와 북로군정서와 의열단, 그리고 동북항일연군을 거쳐 최종적으로 중경임시정부의 광복군 간부까지 일생의 모든 순간을 독립전쟁의 최전선에서 살아온 인물이다. 그의 이력을 보노라면, 마치 김두봉이나 지청천을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여럿의 삶이 총합적으로 녹아들어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또한 방영근은, 이른바 ‘애니껭’으로 표현되는 한인 해외 이민사를 온 몸으로 증거하는 인물이다. 하와이에서 그가 겪는 그 무수한 차별과 멸시는 ‘나라 없는 백성’의 초라하고 병든 심성을 잘 드러낸다. 또 열악하기 짝이 없는 해외 이주민들을 등쳐먹고는 마침내 해방된 조국의 권좌를 차지하기까지 한 어느 정치 지도자의 추악한 본질을 여지없이 폭로한다. 만약 방영근이 실존인물이라면, 해방 후의 조국을 점령한 부일민족반역자와 그들을 꼭두각시로 부려먹은 한 노회한 정치인의 말로를 어떻게 보았을 것인가. -많은 별들이 한 곳으로 흘러갔다 지난 2005년, 몽양 여운형 선생에 대한 대한민국 건국훈장 추서가 있었다. 당연하게도 수구민족반역세력의 후예들은 그들이 늘상 써먹는 ‘빨갱이 타령’을 들고 나왔다. 당시 한나라당의 어떤 국회의원은 ‘독립군이 세운 북한은 왜 그리 못 사는가’라는 해괴하기 짝이 없는 학설(이라기보다는 술주정에 가까운)을 들고 나왔다. 그들이 자주 쓰는 말, ‘경제도 어려운데 웬 과거사 청산인가’의 새로운 버전인 셈이다. 우리말에 ‘염병을 한다’는 말이 있다. ‘염병에 땀 못 낼 놈, 염병에 땀을 못 내면 한층 괴로워하다가 죽을 것이니, 죽일 놈’이라는 뜻으로 저주하는 말이다. 이 말은, 해방 후 60년 동안 단 한 번도 변하지 않는 수구민족반역세력들의 패악질에 썩 잘 어울리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조선독립군이 부르던 노래를 북한의 행진곡이라 우겼던 것은 무지의 소치에 불과하므로 거론치 않겠다. 무식한 것은 죄가 아니니까. 그러나, 역사를 좀 제대로 가르치자는 것에 대해 아무런 상관도 없는 논리를 들고 나오는 그들의 생물학적 정체성에 이르면, ‘입과 항문이 하나로 붙은 생물들’이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감추어야 할 역사가 있는 나라는 제대로 된 나라가 아니며, 그들이 그토록 염원한다는 ‘선진한국’은 더더욱 아니다. <유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