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 논란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지난 달 13일부터 롯데마트 등 대형할인점을 시작으로 재개됐다.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와 ‘광우병위험 미국산 쇠고기 국민감시단’ 등 시민사회단체가 미국산 쇠고기를 판매하는 대형할인점을 직접 찾아가 항의했지만, 주요 유력 언론들의 보도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홍보하기에 바빴다.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아래 민언련)이 최근 발표한 ‘미국산 쇠고기 국내 유통판매 관련 신문방송 모니터 보고서’를 보면, 언론은 광우병의 위험성을 알리고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데 소홀했다. ■신문이 미 쇠고기 홍보 전단인가? 미국산 쇠고기 판매가 시작된 지난 달 7월 13일부터 대부분 신문들은 대형할인점에서 판매하는 미국산 쇠고기에 큰 관심을 보였다. 이 가운데 <중앙일보>는 롯데마트의 미 쇠고기 판매를 미국산 쇠고기 판매 관련 전체 기사의 절반 가까이를 채워 보도했다. <동아일보>도 7월 13일자 면에서 미국산 쇠고기 판매를 컬러사진으로 크게 보도했는데, 사진으로 쇠고기 판매를 시작한 롯데마트의 진열대와 호기심으로 둘러보는 소비자의 모습을 담기에 바빴다. 또한 이른바 조중동은 13~14일자 미국산 쇠고기 판매와 관련한 기사에서 구입할 뜻이 있다는 소비자들의 인터뷰는 신문에 실었지만 거부하는 발언은 거의 담지 않았다. 쇠고기를 판매하고 있는 업자의 발언은 있었지만 판매를 보류하거나 관망하고 있는 업자들의 발언도 찾아볼 수 없었다. 특히 수입에 찬성하는 전문가 의견이 실린 반면 반대하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없었다. 결국 조중동이 앞장 서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미국산 쇠고기의 홍보에만 열을 올렸다는 것이다. 민언련은 “기사 제목과 내용도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이나 부정적인 소비자의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은 채, 미국산 쇠고기가 처음 판매된다는 내용만을 강조했다”고 지적했다. ■광우병 위험성 말하면 반미? 지난 14일 광주 롯데마트 상무대점에서 벌어진 ‘쇠똥 투척사건’에 대한 조중동의 반감은 극도에 달했다. 중앙일보 7개, 동아일보 6개, 조선일보 4개 등 다양한 의견기사를 통해 이 사건을 소비자선택권을 무시한 ‘반미행위’로 몰아가기에 바빴다. 민언련은 “전통적으로 먹을거리를 귀하게 여기고 존중하는 우리 사회 관습에 비추어보면, 광주 상무대의 시위 방법은 시위에 대한 공감보다는 반감을 자아낼 가능성이 높았다”고 일단 시위 방식에 대해서는 회의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도를 넘는 심한 표현까지 사용해 비난하고 나아가 미국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목소리 자체를 왜곡시킨 것은 더 심각한 문제라는 것이 민언련의 지적이다. 실제로 16일자 <조선일보>는 “좌판을 뒤엎으며 시장 상인들에게 행패를 부리는 조직폭력배들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고 표현했고, <중앙일보>도 “문명사회에서 용납될 수 없는 행패며 불법 행위”라고 비난했다. <동아일보>는 한발 나아가 “관공서 난입까지 하는 불법 폭력시위 단체이긴 하지만 이들이 멋대로 판치는 나라는 무법천지일 뿐”이라는 극단적인 표현으로 맹비난했다. 특히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범국본은 이미 국내 수입육 시장을 장악한 호주산 쇠고기 , 한중 및 한유럽연합 FTA 추진 등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들 세력도 한국인이라면 한미안보동맹과 대규모 대미 수출의 덕을 직간접적으로 봤을 것이다. 이들의 반미사업, 그 뿌리가 궁금하다”고 밝혔다. 민언련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를 한미FTA 반대로 보고 이를 또 반미로 동일화하는 단순한 논리에 어이가 없다”고 말했다. 민언련은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미국산 식품을 검증해서 먹자는 것이 반미라면, 우리 국민은 반미를 하지 않기 위해 미국산 식품이라면 무엇이라도 검증 없이 먹어야 하는 건지 되묻고 싶다”고 말했다.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위험성을 숨겨라? 지난 7월 31일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은 수입된 미 쇠고기 검역과정에서 척추뼈가 들어 있는 쇠고기를 발견했고 이 내용은 1일과 2일 신문과 방송을 통해 보도됐다. 하지만 방송사들은 농림부가 공개한 화면이 없다는 이유로 과거 아주 작은 뼛조각이 발견됐을 당시 자료화면만을 내보냈다. 민언련은 “아무리 농림부 공식 발표가 있기 전이라 하더라도 이처럼 참고자료라는 공지도 하지 않고 작은 뼛조각을 보여주는 것은 괜한 기우가 아닌가라는 오해의 여지만 남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산 쇠고기가 광우병 위험성에서 안전하지 않다는 주장이 여전하지만 조중동은 ‘광우병’이라는 단어를 기사에 싣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조선일보는 2일자 기사에서 ‘미국산 쇠고기서 등뼈 추정물질 발견’, ‘미국산 쇠고기서 수입금지 등뼈 발견(중앙일보)’, ‘최근 수입 미 쇠고기서 척추뼈 발견(동아일보)’ 등 광우병위험물질이 의미를 축소하는 인상을 주는 제목을 실었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이 각각 기사 제목에서 광우병 위험물질 등뼈 발견이라고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과 대조되는 대목이다. 한편 3일자 <동아일보>는 ‘유통업체 미 쇠고기 특수 사라질라 걱정’이란 제목의 기사를 통해 검역중단 파장으로 긴장하는 유통업체와 관련한 내용을 보도했다. 이 신문은 4일에도 ‘미국산 쇠고기 뼈 때문에’이라는 제목 아래 소제목으로 ‘판매 줄고 수입중단 목소리도…정부 FTA 비준 앞두고 속앓이’라고 적었다. ■유통업체 걱정보다 국민 건강을 걱정해야 이런 가운데 <중앙일보>는 3일 사설 ‘미 쇠고기 검역 제대로 하고 개방 요구해야’에서 “미국의 수출 검역이 이토록 허술해서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확대하자고 우리 국민을 설득하기 어렵다. 미국은 수입위생조건을 성실하게 이행하려는 자세를 보인 후에 개방 확대를 요구하는 게 순리다”라고 주장했다. 민언련은 “광우병의 위험성은 전혀 부각시키지도 않은 채 유통업체와 정부의 FTA비준 걱정만을 앞세웠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같은 날 칼럼 ‘시시각각 참으로 편리한 미제’에서는 “광우병 파동 전 국내 쇠고기 시장의 44%를 차지하던 미국산 쇠고기가 파동이 마무리돼 다시 들어오려 하자 할인점 매장에 쇠똥을 뿌리는 일이 빚어졌다”며 “그러나 코 막고 쇠똥을 모으던 사람들이 우리 식탁에 넘쳐나는 벨기에·스페인산 돼지고기나 호주산 쇠고기에는 아무런 말이 없다”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미로 몰기에 여념이 없었다. 민언련은 “언론은 서민을 위한 값싸고 맛있는 쇠고기를 원하는 소비자의 권리만 부각시켜는 안 된다”며 “미국산 쇠고기의 안정성과 관련한 정보를 제대로 제공하는 것이 더 근본적인 문제”라고 강조했다. <오재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