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의 시는 많이 읽히고 인용된다.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지 ‘쉽기 때문에’ 그의 시편들이 우리 민족의 감성의 근저에 머무르는 것일까. 오히려 ‘윤동주’라는 식민지 시기 청년이 지니고 있던 그 무엇인가가 우리들의 목구멍을 울컥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 ‘울컥임’의 정체는 무엇인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지난 1965년 6월 22일은 ‘한일협정’이 조인된 날이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2005년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그 문서의 일부를 접할 수 있었다. 굴욕·치욕·능멸·비굴·정신적 매춘…. 그 어떤 말을 가져다 붙인다 해도 그 문서가 담고 있는 ‘분노’와 ‘슬픔’을 감당하기에는 모자란다. 왜 우리는 그 문서를 보면서 이리도 머리칼이 곤두서는가. 협정이 조인되기 20년 전의 2월 어느 날, 후쿠오카의 감옥에서 한 젊은 조선인 죄수가 죽었다. 그의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것은 영양실조라고도 하고, 인체실험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그 죽음의 원인이 무엇이건 간에, 그의 육신과 영혼은 완전하고도 즉각적으로 사라졌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6)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 ‘쉽게 쓰여진 시’ 中에서 그의 이름을 불러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부끄러워진다. 그의 시를 읽을 때마다 우리는 먹먹한 시대를 돌아본다. 그의 무덤이 있다는 연변자치주 조선혁명열사 묘역을 가 보았건 그렇지 못했건, 우리는 그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그리고 한 장의 사진으로 남은 그의 선한 눈빛은 보잘 것 없는 눈높음과 영욕에 매달려 하루하루를 거짓의 말과 행동으로 살아온 우리의 역사에게 묻는다. 후쿠오카 감옥 터에는 봄이 오는데, 내가 사랑한 조선반도에는 봄이 오고 있느냐고.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한 사람의 삶을 말할 때,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일까. 그가 태어난 계층일까, 아니면 그가 남긴 몇 푼의 재산일까. 우리가 누군가를 일러 말할 때, 우리는 그가 무엇을 하였느냐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도 그러하다. 진실로 한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만이 모두를 껴안을 수 있듯이, 별이 초롱한 겨울밤과 그 별들이 담겨 있는 우리땅의 하늘과 그 하늘을 스치며 신음하는 바람의 언어를 알지 못하는 지식인은 모두 우리를 배반하고 떠나갔다. 풀 한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 ‘길’, 中에서 길가에 호젓하게 핀 한 송이 들꽃을 보며 그 외로움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다. 고학으로 유학생활을 하면서도 몸 편하고 풍족한 굴종을 선택하기 보다는, 식민의 땅 북간도의 어머니를 생각하며 쉽게 쓰여진 시를 부끄러워하던 아름다운 청년이 있었다. 누구는 학병으로 끌려가고 누구는 보잘 것 없는 눈높음에 양심과 학문을 팔아넘길 때, 낡은 다다미가 깔린 육첩방에서 영혼의 잉크로 시를 쓰던 한 남루한 차림의 청년이 있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가 후쿠오카 감옥에서 외롭게 죽어갈 때, ‘구세주 예수님’을 믿던 그의 불알친구 문익환은 학병을 거부하고 민족의 독립이야말로 참다운 구세주임을 깨달았다. 미당이, 월탄이, 춘원이, 육당이, 조선 문단을 대표하고 조선의 지성을 상징한다는 자들이 하나같이 비루한 붓을 들어 ‘텐노헤이카(天皇陛下)’를 칭송하고 ‘무적 황군(皇軍)’을 위해 악다구니를 쓸 때, 윤동주는 고요히 자신의 영혼에서 흘러나온 잉크로 조선 선비의 붓마루를 적셨다. 아무도 알지 못하던 그의 시는 몇 권의 자필 원고로 남았다. 그것을 목사가 된 ‘예수쟁이 친구’ 문익환이 묶어서 시집으로 펴냈다. 후일 그도 시인이 되었다. 먼저 떠난 벗을 대신해 갈라진 땅의 가시쇠줄을 노래하며, 평생 그 가시철망으로 면류관을 만들어 쓴 참시인이 되었다.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왔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 ‘십자가’, 전문 그리고 심성 고운 우리 민족은 윤동주를 가장 아름다운 시인으로 뽑아 주었다. 이 책은 윤동주의 자필 원고들을 따로 엮은 것이다. 원고지 위에 정갈하게 써내려간 식민지 청년에게 버틸 수 있는 힘을 준 ‘희망’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어느 시대에나 ‘진실’을 두려워하고, ‘진리’를 귀찮아하는 ‘이대로족(族)’이 있기 마련이다. 현재의 대한민국에는 그러한 부류들이 좀 더 많을 뿐이다. 그들의 정신적 교잡의 파트너는 명(明)에서 청(靑)으로, 청에서 일본으로, 일본에서 미국으로 변해왔다. 참으로 놀라운 정력이 아닐 수 없다. 그러는 동안, 도처에서 민중들이 죽었다. 남원성에서, 삼전도에서, 공주 우금치에서, 노근리에서, 그리고 광주와 매향리에서. 물론 저들은 죽지 않았다. 그들의 카테고리는 더욱 강화되고 끈끈해졌고, 우리는 아무 것도 몰랐다. 만주군 장교와 가짜 광복군과 남로당 군사총책을 두루 거친 자가 우리의 대통령이 되고, 우리에게 거짓 복음을 선사하는 동안에도, 우리는 그 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모두 진짜인 줄 알았다. 그래서 서정주도 김동환도 이광수도 모두 민족작가였다. 윤동주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은 취급을 받았다. 그의 시를 일러 ‘여성적 감수성이 풍부’하고 ‘식민지 지식인의 나약함이 묻어난다’고도 가르쳤다. 지금도 그렇게 가르칠 것이다. 교과서의 굴레를 벗어나기란 결코 쉽지 않으므로 말이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우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우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 ‘별 헤는 밤’, 마지막 연 그러나 그의 시집을 찬찬히 읽어보라. 윤동주는 나약하지도 않으며, ‘감성적’이지만 감정적이지 않다. 윤동주의 내면을 관통하는 것은 ‘얼음빛 감수성’이다. 그래서 그는 투명하고 더 아프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이제 판도라의 상자는 하나 둘씩 열릴 것이다. ‘한일협정’ 문서는 한국현대사의 정체 중, 단 1%로도 되지 않는 것이다. 학계에서 이미 오래 전에 알고 있던 것을 왜 우리는 이제야 아는가. 문제는 ‘정보독점’이다. 그 어떤 사실이든, 혼자 알고 있는 자가 유리한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정보라는 것은 하나의 ‘비수’이기 때문이다. 친일민족반역자들이 ‘민족지사’로 우리의 뇌세포에 각인된 것도 결국은 우리가 그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해방 50년을 말한 때가 바로 어제 같은데, 해방 60주년이 훌쩍 지났다. 아직도 맹위를 떨치고 있는 ‘일본의 한국근대화 기여론자’나, ‘박정희진리교’의 ‘묻지마 신도’들에게 영혼의 피로 쓴 이 책을 권한다. 윤동주가 배고픔을 견디며 그리고 감시의 눈초리에 둘러싸여 여기 이 시편들을 건져 올릴 때, 너희들이 ‘진리’라 믿는 ‘다카키 마사오’는 무얼 하고 있었는가. 이 독사의 자식들아. <유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