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학번을 갖고, 글 꿈을 꾸었던 청년들은 곽재구나 정호승, 기형도 같은 몹쓸 선배 시인들을 빼놓고 이야기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특히, 강의 따위엔 애시당초 관심도 없어서 매번 학사경고를 달고 다니는 이 ‘놀새’에게, 그렇다고 시들시들 해진 학생 운동판을 기웃거리기는 일도 흥미를 잃기는 마찬가지여서 술 마시는 일 이외에 소일거리를 찾지 못한 나에게 ‘그들이 가진 세계’는 꽤 쓸모가 많은 놀이터였다. 비록 그해 4월, 명지대생 강경대가 시위도중 경찰의 무자비한 구타로 사망한 뒤 김귀정과 박승희 등으로 이어지는 죽음, 그때 대학가는 젊은 목숨들이 젊은 꽃넋을 바쳐 마지막 포악을 떨어내던 노태우군사정권에 대항하던 암담한 시절이었고, 문학판도 민족문학작가회의의 김지하 제명사건으로 벌집 쑤셔놓은 듯 하루도 잠잠할 날이 없었지만, 나는 그 독한 최루탄에 몇 방 얻어맞고는 이윽고 정신이 아득하고, 혼미해져 줄곧 극예술연구회인지 뭔 가 하는 동아리나 대포집을 전전하며, 은둔칩거생활을 거듭하고 있었다. 하여, 늘상 대낮부터 술 주전부리를 놓지 않았던 요 날라리 학생에게, 이 몹쓸 선배들은 두부김치나 해물파전보다 썩 괜찮은 안주감이었다. ‘슬픔이 기쁨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에 건배잔이 오갔고, 거나하게 술에 취해 ‘안개의 강’을 맨 발로 철벙철벙 건너가다, 대인동 가시내들과 블루스 한 판을 ‘땡기기’도 했다. 그러나 광주 대인동 여인네의 지분냄새가 진동하던 그 술자리에서 만나는 ‘그들의 존재’는 곧 쓰디쓴 곰 쓸개마냥 깊고 깊은 절망이자 면벽 3년을 끝마친 뒤에도 은산철벽처럼 도무지 깨지지 않는 화두였다. 장맛비 오는 날, 물이랑 들이치는 선술집 탁자에서는 텁텁한 막걸리 잔을 기울이면, 여전히 남도 들녘을 달리는 전라선이 ‘사평역’ 근처를 지나 울커덩 울커덩 거리며 몇 차례 오갔고, 햇사랑에 가슴 아픈 몇몇이 전라선을 타고 떠난 ‘빈집’엔 ‘가여운 사랑’들만이 그 ‘빈 집에 갇혀’ 떠나는 자들을 대신해 ‘눈물’을 흘리는 일이 매일 밤과 낮 동안 반복됐다. 동경과 질투, 절망이 뒤범벅된 뜨거운 국밥을 삼키는 것 같던 시절, 우리 패(?)들은 이 놈의 몹쓸 선배들을 회쳐 먹을까, 삼아 먹을까 그도 아니면, 그 마음을 ‘확’ 열고 들어가 그들이 가진 서정의 강물이 얼마나 깊고 맑은지, 그곳엔 어떤 생명들이 꿈틀대며 살고 있는지 ‘거짓말 좀 보태서’ 안달이 날 지경이었다. 그 중에도 이 놈의 곽재구란 양반이 맨 먼저 입방아에 오른 건 그가 우리 패와 같은 전라도 깽깽이 출신이라는 것도 한 몫 했겠지만, 詩 ‘沙平驛에서’가 보여주는 역사(驛舍) 안 풍경 때문이다. 물 흐름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잔잔한 서정과 수묵담백의 회화성, 무엇보다 이야기 줄기가 엮어가는 곳마다 그 시대에 짓밟히고, 버림 받은 사람들의 내밀한 슬픔을 엿보았던 게다. ■사평역, 암울한 시대 저편에‘오지 않는 희망’을 기다리는 사람들 곽재구의 처녀시집 ‘사평역에서’의 전반에 흐르는 감정줄기는 눈물과 슬픔, 서러움이 흔들리는 강이다. 첫 시집에 둥지를 튼 시들이 쓰여진 시대는 80년 초기. 광주에서 태어나 줄곧 그곳에서 성장한 곽재구에게 태생적 고향이자 시정신의 고향이기도 한 광주의 아픔은 곧 시인의 아픔과 다를 수 없는 일임은 당연하다. ‘정이 들어 이제는 한 발짝도 떠날 수 없는 이 땅’이 바로 광주였다. 시집 ‘사평역에서’의 무대는 대한민국 최강의 전투력을 자랑하는 특전사 군인들이 계엄군이라는 이름으로 겁간한 도시, ‘가진 것 쥐뿔도 없는 것들이 겁 대가리 상실하고’ 세상천지 무서울 것 없던 무소불위, 무자비한 군사정권을 상대로 총칼을 들고 싸우다‘폭도의 도시’로 낙인찍힌 채 철저히 버림받은 80년 광주다. 한바탕 피의 난장이 벌어지고 난 뒤, 이불 뒤집어쓴 채 “광주시민여러분, 계엄군이 쳐들어 오고 있습니다. 광주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날선 칼로 가슴을 후벼 파듯 들리는 젊은 처자의 외침을 끝내는 외면하고, 한 밤 어둠을 찢고 들리는 총성에 귀를 틀어막고 가슴을 쥐 뜯으며, 부끄럽게 살아남은 사람들의 도시다. 죄책감의 감옥 안에서 스스로는 벗어나지 못하던 도시, 이 땅 민주주의의 원죄를 묵묵히 떠안고 죄인들의 십자가를 진 채 절망의 나라에서 ‘입을 닫은 광주’다. 그리하여, 곽재구의 시음도 세상의 귀에 바투 입을 대고 속삭이는 낮은 음이다. 중얼거리는 목소리다. 그의 시속으로 좀 더 안으로 들어가면, 그곳은 말라리아나 결핵으로 죽어간 창녀들의 둥지였던 대인동 뒷골목이나, 천형의 고향땅, 희망이라고는 눈꼽만큼도 보이지 않는 공사판이고, 존재하지 않으나 이 땅 어느 곳에서든 존재하는 가난한 서민들의 쇠락한 驛舍다. 등장인물도 하나 같이 미장이나 배관공, 약장수, 창녀, 안내양, 지명수배자들이다. 그 시대와 타협할 수 있는 그 어떤 권리도 지니지 못한 사람들이 곽재구의 시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이다. 이는 80년 광주의 거리 곳곳을 지키며 시민공동체를 일구었던 양아치와 택시기사, 구두닦이에 다름 아니다. 죽어 ‘달맞이꽃이 된’ 창녀와 ‘쓰레기 덮인 세상’을 지우며 사는 청소부, ‘갈보와 별들이 서성이는 아름다운 거리’ 그 속에 사는 사람들. 가장 위태하고, 무너졌던 공간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세상의 위대한 주인임을 보여준 이들, 격랑을 겪고 다시 낡고 허물어진 집, 낮아진 곳으로 패잔병처럼 되돌아온 그들에게 곽재구는 오래도록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그런 시대와 사람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각은 슬픔이고, 눈물이고, 서러움이다. 눈물과 슬픔, 서러움이 항상 그림자처럼 따라 다닌다. 잔물결마저 없어 보이는 시가 그나마 한 줌의 햇볕이 드러나는 이유는 무너진 사람들이 ‘오지 않는 것들’일망정, 이 그리움을 놓지 않는데 있고, 곽재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언뜻 보이는 그 좁은 희망의 흔적을 읽어 낸다. 그래서 그의 시는 따뜻하다. 시집 ‘사평역에서’에는 그렇게 이름 없는 익명의 사람들의 삶과 감성과 생활의 모습이 자주 등장하는데 옆집 사는 이웃이면서 이름이 없는 사람들이 ‘모두’ 등장하는 곳이 바로 그가 문단에 첫 얼굴을 알린 시 ‘사평역에서’다. ■‘사평역’은 없다. 그러나 있다.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그믐처럼 몇은 졸고/몇은 감기에 쿨럭이고/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침묵해야 한다는 것을/모두들 알고 있었다/오래 앓은 기침소리와/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그래 지금은 모두들/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자정 넘으면/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詩 ‘사평역에서’ 전문 눈 오는 겨울 새벽, 지금은 없어진 옛 남광주역을 가본 사람들은 안다. 남광주시장 인근, 목포행 기차를 기다려본 사람들은 안다. 동트기 전 무렵이면, 채 몇 평이 되지 않는 역사, 기차를 기다리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졸기 마련이다. 개찰구를 지키는 사람도 깜박깜박 졸기는 마찬가지다. 이들은 대개 흰 머리카락이 막 나기 시작한 50대 중후반의 여인들이고, 중절모와 모자가 잘 어울리는 노인과 하염없이 유리창 넘어 눈발을 바라보는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학생도 있다. 그 한 가운데는 여지없이 장작 불꽃을 일으키는 난로가 벌겋게 달아올라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 사람들을 감싸 안는다. 기차역 밖에는 건설 일용직 노동자로 보이는 몇몇이 빈 페인트 통에 장작불을 피운 채 담배를 태우거나 입김을 호호 불며, 현장으로 자신들을 싣고 갈 낡은 승합차를 기다린다. 유리창에 매달려 정물화 같은 세상을 보고 있으면 아주 가끔 눈물이 나기도 한다. 사평역의 풍경은 이 남광주역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시골의 작은 역이다. 그러나 화순 땅 사평에는 역이 없다. 그러니까 사평역은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기차역이다(나는 이 사실을 어리숙하게도 화순군 사평리를 직접 가 보고야 알았다). 그러나 사평역은 이 땅 어디서든 존재하는 역이다. 비재하되, 실재하는 역이다. 그런데 사평역은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역이다. 사평역 안에는 감기에 쿨럭이는 사람과 담배 피우는 사람, 한 두릅의 굴비를 옆에 둔 사람과 한 광주리의 사과를 안고 있는 사람이 등장한다. 몇몇은 졸고 있다. 할 말들이 가득하지만 무엇 때문인지 침묵하는 사람들이다. 아니면, 침묵을 강요당했거나, 외치다 짓밟혀 본 아픈 기억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모두 막차를 기다린다. 좀처럼 오지 않는 막차다. 움직임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이 사평역에서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불빛에 시린 손을 녹이거나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는 것 밖에 없다. 그런 탓에 사평역은 외롭다. 역 안에 막차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외롭다. 그렇다. 사평역의 또 다른 이름은 다름 아닌 광주다. 고립된 채 짓밟히고, 피멍 든 기억을 고스란히 안은 채 침묵에 휩싸인 80년 광주의 또 다른 세계다. 이렇듯 시집‘사평역에서’는 무너져 본 사람들이 눈꽃의 화음을 듣고, 막차를 기다리며, 큰 함성은 아니지만 자그마한 목소리로 광주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장봉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