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朝鮮) 성종(成宗) 때에 영의정에 이르러 부원군에 피봉 된 이극배(李克培)는 마음이 깊고 의지가 굳어서 오조(五曹)를 두루 역사한 고귀한 직분이면서도 문을 닫고 손님을 맞지 않을 만큼 청백리였다. 그의 아우 이극돈(李克燉)도 재상의 반열에 있었는데, 부질없이 재산을 탐낸다고 형으로부터 간단없이 꾸지람을 받아왔다. 하루는 아우 이극돈이 형에게 『아무 날이 저의 생일이온데 집사람이 간단한 술자리를 베풀고자하니 잠깐 다녀가 주십시오』라고 하니, 형도 동생의 생일을 기억하고 있으면서 축하해 줘야지 하던 터라 『그럼세』하고 승낙하였다. 그 날이 되어 형 이극배는 조정에서 퇴청하는 길에 바로 아우의 집으로 갔다. 바깥 문간에 들어서다가 처음 보는 숙마(熟麻 : 누인삼 껍질) 새끼줄이 처마 밑에서 담 위에까지 걸려 있는 것을 본 형이 『이 새끼줄은 어디에서 나왔으며 누구에게서 얻은 것인가』고 물으니 동생이 숨기지 못하고 『사복시(司僕寺) 관원 중에 아는 사람이 있는데 빨래 너는데 쓰라고 보내온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자 형은 『사복시의 새끼는 말을 매는 것이 당연한데, 어째서 너의 집 뜰에 걸려 있느냐』고 안면을 바꾸고 그냥 돌아가 버렸다. 이극배는 이렇듯 공(公) 사(私)를 칼로 물 베듯이 뚜렷이 하였다. 작은 행실을 보고 큰일을 본다(以小行 見大事)라 더니 형 극배는 명재상으로 상감의 사랑과 백성의 칭송을 받은 반면 동생 극돈은 출중(出衆)한 두뇌와 민첩한 재간(才幹)으로 많은 치적을 남겼으나 종당에는 무오사화의 원흉이라는 오명을 남겼다. 지난 5년 동안 부강한 인도를 만들기 위해 혼신의 힘을 쏟았던 A P T 압둘 칼람(76) 인도 대통령이 퇴임을 앞두고 수도 뉴델리의 이슬람문화센터에서 가진 고별 강연에서 『목적이 있는 선물은 받지 마십시오. 그리고 훌륭한 도덕적 가치를 가진 가정을 꾸려 나가십시오』라는, 관리와 국민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남겼다. 칼람 대통령은 재임 기간 스스로 채찍질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강연에서 『어제 유명인사 한분이 저에게 펜 두 자루를 선물했는데 저는 유쾌하지 못한 마음으로 이를 돌려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고 고백했다. 무소유와 청렴한 공직생활을 하다 보니 떠날 때도 그는 빈손이다. 인도 유력지 더 타임스 오브 인디아는 대통령궁을 떠나는 칼람 대통령의 짐은 옷가방 2개와 책 꾸러미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5년 전 옷가방 2개를 들고 대통령궁으로 들어왔고, 이제 그것을 들고 떠납니다. 내게 남은 소망은 2020년까지 인도가 선진국 대열에 들어가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 그의 연설 마지막 부분이다. 몇 년 전 경기도 어느 시장이 후임 시장에게 관사를 비어 줄 때 시(市)에서 마련해 놓은 가장집물(家藏什物)까지 자기 사가로 가져간 것이 발견되어 이를 돌려달라고 하여도 듣지 않자 반환소송에까지 가다가 그만둔 일이 기억난다. 이런 작은 일들에서 그 사람의 인품이 들통 나며 그 사람의 시정 4년이 어떠했는지 짐작이 간다. 그리고 소문이 안 나서 그럭저럭 넘어가기 때문에 공물을 사물인 양 챙기는 높은 사람들의 숫자를 우리는 모른다. 옷가방 2개를 들고 들어와 옷가방 2개만 챙겨 대통령궁을 떠나는 인도 칼람 대통령을 우리는 부러운 눈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임기 만료가 되는 대통령과 여기 따라 공관을 떠나는 높은 사람들의 행태에 경고를 보낸다. 가장집물을 지적하는 게 아니다. 임기동안 모여진 금품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이 듯 가지고 온 것만 가지고 떠나는 고고한 자세를 우리는 바란다. <박충식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