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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책을 읽을까

[서평] 책을 소개하는 책, <길을 찾는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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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1호 ⁄ 2007.08.20 12:18:43

우리가 한 권의 책을 읽을 때, 대개의 경우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읽기 십상이다. 책은 우리에게 ‘뭔가 색다른’ 정보를 준다는 일정한 의도를 가지고 집필되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처럼 하루에도 수백 권씩의 새로운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지경에 이르면 도대체 어떤 것을 읽어야 하는지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사실 근래 들어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사람을 만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런데 만약 자신이 읽은 좋은 책들을 조리 있게 설명해주는 책이 있다면 어떨까? 당연히 ‘무엇을 읽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다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좋은 책에 대한 저자의 구수한 설명이 곁들여진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문화적 상상력 벼리기 <길을 찾는 책읽기>는 한길사 편집장을 거쳐 학민사의 대표를 맡고 있는 출판인인 김학민 본인이 먼저 읽고, 청소년에게 권하는 100권의 책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 자신이 읽고 느낌이 오고 생각의 갈피를 잡는데 자극을 받은 책의 독서록으로 고전으로 가기 위한 길을 만들어 줄 만한 책들이며, 고전의 쉬운 해설서와 축약본을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까지 책을 소개하는 책은 종종 나왔다. 그러나 저자 자신의 의견 혹은 감상을 잘 비벼 넣어서 나온 책은 이 책 <길을 찾는 책읽기>와 <장정일의 독서일기(범우사 펴냄)> 두 권을 들 수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대부분의 매체의 책 소개 기사는 해당 출판사에서 보내준 ‘보도자료’를 거의 그대로 인용한 기사들이다. 요즘 출판사들의 상술이라는 게 영악하기 그지없어서, 보도자료 자체를 아예 기사의 형식으로 만들어서 보내준다. 그리고 출판이나 문학 담당 기자들은 그 중에서 ‘의미’있다고 판단되는 것들을 약간 손 본 후 기사로 올린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기자의 시각이 아닌, 출판사의 시각이 매체의 시각으로 변질될 수밖에. 그런 의미에서 그 숫자가 열 권이든, 백 권이든 책을 꼼꼼하게 읽은 후에 소개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여 그 책들을 소개해주는 김학민 같은 출판인은 매우 소중한 존재이다. 무엇보다도, 그의 시각은 매우 공평하다. 그가 이 책 <길을 찾는 책읽기>에 소개하고 있는 책들은 두고두고 읽을 수 있는 스테디셀러와 양질의 교양서이다. 예를 들어,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조세희 지음, 이성과 힘 펴냄)>은 70년대 개발독재 시절의 우울한 현실을 시적인 언어로 그려낸 작품이다. 그리고 그가 소개하는 책의 목차를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우리의 출판인들이 당대의 어떠한 고민과 마주하며 살아왔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상업주의적인 출판인들이야 그저 자신들이 펴 낸 책이 무조건 많이 팔리는 것만을 원하겠지만, 양심적인 출판인들은 시대의 고민과 함께 하는 책들을 출판하려고 한다. 물론 그러한 책들은 당연하게도 ‘돈이 되지 않는’ 것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학민과 같은 출판인들에게 있어서 시대정신은 일종의 ‘부채의식’이다. 자신이 속해 있는 시대와 불화하지 않는 사람은 이미 저항을 포기한 사람이다. 반면에 당대의 어둠과 질곡에 굴하지 않는 사람들의 영혼을 지배하는 것은, 바로 ‘시대와의 불화’다. ■어떻게 살 것인가 “미국이 전 세계를 휘어잡고 있다는 것은, 기분은 나쁘지만 사실입니다, 자유와 평화를 외치는 미국이 인디언을 어떻게 멸망시켰는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디 브라운은 수 년 간에 걸쳐 인디언들의 구술을 토대로 ‘미국 인디언 멸망사’를 집필했습니다. 그 책이 바로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입니다.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는 발간되자마자 미국에서 수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이것도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지요. 그러나 미국 국민 개개인에게 무슨 죄가 있는 것은 아니니 이걸 문제 삼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 본문 중에서 이 세상의 질서를 규정하는 무수한 이론의 틀보다도 잘 쓰여진 한 권의 책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화두(話頭)는 더 간결하면서도, 더 명확할 수 있다. 마치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를 통해 백인들에 의한 인디언 멸망사의 추악하고도 더러운 뒷이야기 즉, 숨겨진 진실에 접근할 수 있듯이 말이다. 이 책, <길을 찾는 책읽기>에 소개되어 있는 책들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양식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광범위하고도 진지한 접근이다. 살아가면서 막상 우리가 저와 같은 질문에 처했을 때, 우리의 입술은 달싹거리기만 할 뿐, 우리 자신이 원하는 대답이 나오지 않는 ‘고문 아닌 고문’을 당하기 마련인데, 김학민이 소개해주는 책들 중에는 분명 우리가 찾던 대답을 함유한 책들이 있다. ■역사‘지식’보다 역사‘의식’ 책 속에는 새로운 정보도 있지만, 김학민이 소개하는 일련의 책들은 오히려 역사에 대한 진지하고도 진기한 접근으로 가득 차 있다. 네루의 책, <세계사 편력>과 김경일의 책 <나는 오랑캐가 그립다>가 그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김학민은 이러한 책들을 소개하는데 있어서 조금의 망설임도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태도는 ‘왜 이러한 책들이 양산되지 않는가’에 가깝다. 그것은 철저한 상업주의에 찌든 한국의 출판문화 지형을 향한 외로운 돌 던지기이다. 그리고 그 행위는 아직 대한민국의 출판시장의 고질병인 ‘베스트셀러 증후군’에 비해 너무나 미약하다. 비록 저자 김학민이 ‘학민사’라는 진지하고도 품위 있는 출판사의 발행인으로 있다 해도, 그의 출판사는 ‘변방’에 불과하다. 어쩌면 그는 ‘중심의 괴로움’을 갈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원래 변방이라는 것이 일상적으로 중심을 바라보는 법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 <길을 찾는 책읽기>는 우리 모두가 한 권씩은 소유할 가치가 있는 책이다. 단지 이 책에 소개된 책들의 제목만을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이 시대의 정신 즉, ‘시대적 화두’를 품고 이글거리는 책들이 무엇인가를 한 눈에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톨스토이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두 번 이상 읽지 않을 책은 사지 말라”고. 상품광고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여성잡지 류의 책들과 책을 쓴 사람과 시대의 고민과 희망이 진지하게, 그리고 ‘재미있게’ 담겨 있는 책들 중에 우리는 과연 어느 것을 집어들 것인가. <유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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