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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름마치뎐’전통춤의 피날레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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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1호 ⁄ 2007.08.20 12:19:49

지난 7일 오후, 국립국악원으로 ‘노름마치뎐’을 보러 갔다. 노름을 마친다는 것은, 절대고수의 등장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제 판이 끝나는 것이다. 마치, 조용필이 나오면 그날의 판은 접게 되는 것과 같은 의미로 남사당패가 쓰던 말이라고 한다. 그러나 남사당패도 잔당(?)처럼 남아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는 오늘, 장터 어귀에서 흐드러지게 벌어지던 놀이판은 없다. 이제 그 노름마치꾼들에게 다시 올 꽃시절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 쓰고 나니 너무 냉혹하다. 그러나 어쩌랴, 멍석 깔아놓고 기다려 줄 마당이란 이제 없는 것이 사실 아닌가. 이런 그들에게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무대가 마련되었다. 그것도 단 하루, 단 한 차례. 어쩌면 이 무대에서 일생의 마지막 놀이를 선보이고, 그것으로 그들의 노름은 끝마치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정황은 그들에게도 관객에게도 마음이 무거운 일이다. ■ 두려운 것은 스스로의 편견과 무지 공연예매를 위해 인터넷을 검색하고, 국립국악원에 직접 연락도 해보았지만 현장 판매분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마지막일 수도 있는 무대에 대한 제자들과 지인, 예술계의 존경심이 예매분량의 매진으로 이어진 것인가? 그럴 수 있다. 예술인들이 그들의 스승에게 드리는 최고의 예의와 배려일 수 있다. 우면산 자락의 짙푸른 공기가 비에 젖은 산내음을 품고 흘러내리던 8월의 초저녁. 무더위는 잠시 잊어도 좋았고, 노쇠한 예인들에겐 놀아 보기에 좋을 날씨였다. 전통춤을 이제껏 온몸으로 공감해 본 적이 없는 나는 국립국악원을 향해 걸으면서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기대하지 말자. 아무것도 모른다. 그냥 보고 그냥 느끼자. 공연장인 예악당에는 예상대로 적지 않은 인파가 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예술의 전당에 언젠가 들러본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국악원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예술냄새가 가득한 분위기만으로도 기분은 좋아졌다. 그러나 입장을 하는 순간, 되찾아온 공연테마 ‘노름마치’의 무게만은 어쩔 수 없었다. 공연 프로그램은 채상묵의 ‘승무’, 양성옥의 ‘태평무’, 장금도의 ‘민살풀이춤’, 유금선의 구음과 ‘동래학춤’을 1부로 묶었고, 이윤석의 ‘덧배기춤’, 하용부의 ‘북춤’, 그리고 오늘 공연의 하이라이트인 노름마치 문장원의 ‘한량춤’으로 정점을 찍고, 김운태의 ‘채상소고춤’으로 뒤풀이를 장식하는 것이 2부 구성이었다. 자, 막은 올랐고, 무대에 몸을 뉘인 한 춤꾼이 장단에 따라 몸을 일으킨다. 솔직히 조금 두려웠다. 노쇠한 예인이라 해도 몸에 밴 자신의 삶 자체를 실수하거나 틀리거나 부실하게 보여줄 일은 없을 것이라고 믿으면서도, 전통춤을 잘 모르는 내가 혹시라도 이번 관람으로 인하여 역시 전통춤은 지루하고 재미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굳혀버릴 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결국 두려운 것은 스스로의 편견과 무지였던 것이다. 장단이 어떻게 맺었다 풀려가는지, 가락이 어떻게 오르내리며 흘러가는지, 춤사위와 춤판의 크기와 의미, 동작과 지향은 무엇인지, 그 모든 것들이 어떻게 어우러져 공감각적으로 수용되어야 하는지…. 난감하고 안타까운 순간들이 눈을 흐리게 했고, 귀를 울렁이게 했다. 한동안 눈앞의 퍼포먼스는 각각의 요소들이 따로 노는 듯 눈과 귀와 머릿속이 그렇게 혼란스럽기만 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춤과 장단과 가락이 기막히게 어울리는 한 순간을 포착할 수 있었다. 장단은 중모리였던 것 같고, 춤사위는 절도 있고 유연하게 장단에 맞아떨어지며 좌우사방을 휘저었으며, 가락은 그 끊고 잇는 춤의 흐름을 따라 홀 전체를 뒤흔들고 있었다. 그렇구나, 이 순간을 보기 위해 여기에 온 것이구나! 저들이 벌이는 어쩌면 마지막 놀이판에서 나는 저것을 볼 수 있게 되는구나! ■ 잠든 영혼을 깨우는 소리, 소리들 승무,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의 섬세한 날갯짓과 떨림까지 포착하기엔 3층 한 구석의 특별한(?) 관람석은 너무나 멀고 아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춤의 역동성과 부드러움, 가락과 장단이 함께 어울리는 순간은 짜릿한 전율로 다가왔다. 이어, 스님, 아니 춤꾼은 법고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어쩌다 방송에서 몇 초 간 들어보았을 뿐이지만 참 듣기 좋았던 그 소리. 승무의 법고 소리는 끊임없이 강약과 탁명과 놀림과 두드림을 반복한다. 그 어느 사이에도 빈틈은 없다. 망설임도 없고, 동시에 서두름도 늦춤도 없다. 그냥 흐른다. 리듬이 흐른다. 이 소리, 제대로 들어보기는 처음이다. 아아 그런데, 이 소리,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만 같다. 끊임없이 두들겨 오는, 꿈결 너머에서 들려오는 듯한 소리, 나는 이 소리에 시간이 멈추고 세상고통은 사라져 버린 채 영원이 찾아올 것만 같은 착각, 어쩌면 황홀경에 빠져들고 말았다. 북소리가 멈추는 순간, 나의 환상은 거품처럼 터져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그렇게 ‘노름마치뎐’의 첫무대가 지나고 나서, 나는 스스로에게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전통춤을 몰라도 이젠 지루하거나 재미없다는 편견은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눈과 귀를 동시에 놀이판에 맡겨두어도 이젠 따로 놀까 걱정하지 않게 될 거라고. 태평무가 이어졌다. 이 춤, 이렇게 섹시한 춤인지 몰랐다. 궁중무용의 스탠더드라고 하는데 화려함과 절제미 뿐 아니라, 하얀 버선발을 드러내고 현란하게 놀리는 여인의 발은 한마디로 섹시함 그 자체. 순전히 개인적인 느낌인데 어디선가 돌 날아오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승무로 열린 마음은 모든 춤에 대해 보고 듣는 눈과 귀를 조금이나마 열어준 듯하다. 이후의 모든 춤에서 춤사위의 섬세한 기품을 발견하며, 비록 노쇠한 예인들이라고는 하지만 폭발하는 역동성을 보여주는 저마다의 몸짓에 나의 몸도 공감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었다. 군무로 추어진 동래학춤의 유쾌한 활개짓, 진짜 농사꾼 춤꾼이라는 이윤석의 덧배기춤에서 느낀 흙냄새와 농사꾼다운 굵직하고 힘이 넘치는 춤사위도 전통춤의 맛이 무엇인지를 혀끝으로나마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 쉽게 만들어내기 어려운 ‘마당’ 그러나 역시 풍물장단에 익숙한 탓인지 내게 오늘 공연의 백미는 하용부의 ‘북춤’이었다. 학생시절 풍물패 아이들이 대충 두들기는 듯하면서도 군무로 춰주면 가슴이 울렁거릴 수밖에 없던 북소리. 북소리는 심장의 고동소리와 비슷한 음파를 가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피를 끓어오르게 하는 그 소리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용부의 북춤은 무대를 압도한다. 흔히 보는 풍물북보다 약간 커 보이고 울림도 더 크고 쟁쟁한 북을 왼팔에 걸고 나선 하용부는 날라리가 허공을 휘젓는 시나위가락을 무대 위에서 되저으며 놀이판 전체를 3차원으로 휘젓는다. 특히나, 북의 강폭하고 쟁쟁한 타격은 천지를 뒤엎을 듯한 기세다. 그 음파를 쏘인 적들은 모두 심장이 멎어버리지 않을까 싶을 만큼! 그러면서도 강약이 조화를 이뤄, 종종걸음으로 관객을 향해 진격해 올 때는 오히려 낮고 약한 울림만으로도 그 드센 기운을 재삼재사 각인시킨다. 적들은 분명 다시 한 번 간담이 서늘해지고 말 것이다! 공연의 하이라이트 노름마치 문장원의 ‘한량춤’은 지팡이를 들고 등장하여 한량으로 지내온 젊은 시절의 ‘놀던 가락’을 보여주는데, 연륜과 품격이 느껴지는 매력적인 춤이었다. 이 멋드러진 한판으로 정점은 지났다. 그것으로 ‘노름마치뎐’은 끝나는가 싶었는데, 김운태의 ‘채상소고춤’이 내리막길을 장식했다. 춤 이름은 좀 생소한데, 상모 쓰고 소고를 치며 추는 춤이다. 감흥을 식혀야 하는 자리에 나선 춤이었지만, 그 몸짓과 두 발 상모의 화려함은 동영상처럼 눈앞에 선할 만큼 발랄하고 신명났다. 무대와 객석으로 분리되어 있지 않았다면 함께 뱅글뱅글 공중제비를 돌며 마지막 뒤풀이를 나눌 수도 있었으리라. 마지막 순서로 참 적합한 춤이었는데, 쉽게 만들어내기 어려운 ‘마당’이 아쉬울 뿐이다. 이로써 ‘노름마치’라는 피날레의 새로운 시작을 만나고 돌아왔다. 이제나마 전통춤에 대한 편견과 무지에서 조금은 벗어난 것 같다. 다만, 이런 서투른 글이 진짜 예인들의 삶과 예술에 누가 되지는 않을지 조금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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