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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와 ‘386’ 정치인, 누가 더 옳을까

[서평] 최영미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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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3호 ⁄ 2007.09.03 11:30:59

최영미라는 시인이 있다. 흔히 말하는 ‘여류시인’이다. 왜 불과 천여 명밖에 안 되는 한국의 시인들을 ‘여류시인’과 ‘여류시인이 아닌 그냥 시인’으로 굳이 나누려 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 최영미, ‘선운사에서’ 전문 여하튼, 그 최영미가 그 언젠가 ‘창작과 비평’에서 시집을 냈었다. 이름은 <서른, 잔치는 끝났다>이다. 그 시집이 나온 후, 그녀는 ‘다구리’에 가까운 대접을 문단의 ‘민중문학론자’ 혹은 ‘문학운동론자’로 부터 받았다. ■최영미라는 화두 과연 최영미의 시들은 그러한 대접을 받기에 충분한 조건을 구비하고 있었는가. 천만에. 그녀의 시들은 시종일관 인간에 대한 애정과 주변에 대한 눈물겨운 시선을 유지하고 있다. 의심된다면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읽어 보시라. 자신이 부끄러워질 것이다. 그런데 왜 그녀에게 온갖 종류의 악다구니와 험담과 저주의 말들이 쏟아졌을까. 이유는 단 하나. 최영미를 비난했던 사람들은 그녀의 시집을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제목 하나에 흥분하여 시집 전체의 내용물들을 미리 재단해 버린 것이다. 마치 각종 정치웹진에 몰려드는 다종다양한 정파의 지지자들이 대개의 경우 그곳의 메인에 올려지는 글들을 제목만 보고 판단한 후, 찬양하거나 저주하듯이 말이다. 최영미의 시는 단단하다. 또한 충실한 기본기를 늘 유지하고 있다. 그녀가 “끝났다”고 한 ‘잔치’는 관념과 관성에 젖어 있던 80년대적 혹은 90년대 초중반적인 운동이었다. 그리고 그 ‘잔치’에 물들어 있던 이른바 ‘386’ 정치인들은 너나없이 범여권의 유력 대선 주자들에게 투항하고 있다. 결국 자신들은 지난한 세월을 온 몸으로 견디며 살고 있는 동료들을 팔아먹는 ‘국물족’에 불과하다는 것을 여지없이 과시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최영미는 이제 ‘인간’과 ‘소외’로 돌아가자고 말하고 있다. 나 역시 한때 그녀의 시집 제목에 흥분한 적이 있다.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사과드린다. 진심으로. ■김영환의 ‘지난날의 꿈’과 우리들의 꿈 시만 놓고 볼 때, 최영미와 대척점에 있는 사람이 김영환이다. 지난 2004년 ‘탄핵의 추억’ 때 본의 아니게 정치인으로서 유명해진 그는 최영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와 거의 동시에 ‘실천문학사’에서 시집 <지난날의 꿈이 나를 밀어간다>를 출간한 바 있다. 제목의 단순한 비교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두 시집은 한동안 나란히 비교되었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변절’의 상징으로, <지난날의 꿈이 나를 밀어간다>는 ‘늘 푸름’의 상징으로. 당대의 평가는 일견 옳은 듯이 보였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지난날의 꿈이 나를 밀어간다>에 실린 작품 중, ‘중환자실에서’는 작품을 읽으며 나는 눈물을 뚝뚝 흘려야 했다. 그리고 나도 역시 그런 시를 쓰리라 생각했다. 눈은 말똥말똥하게 뜨고 말 못하는 처지로 콩팥에 호스를 박고 지내던 그날 옆 병상 김씨 아저씨가 떠나던 날은 왠지 온몸이 쑤시고 눈물 났었지 강원도 삼척에서 산재로 이곳에 온 이래 온종일 눈빛으로 대화를 나누던 그이 밀린 입원비 낼 수 없어 산소 튜브 빼고 죽 밀어넣던 호스 빼고는 고향으로 죽음으로 내몰린 김씨 몽롱한 듯 눈물 속으로 나를 보던 창 밖에는 첫눈이 내리고 내 몸은 몹시도 아프고 열 오르고 그 퀭한 눈은 꿈속에서도 나를 찾고. - 김영환, ‘중환자실에서’ 전문 그러나 시인으로서의 김영환의 역할은 <지난날의 꿈이 나를 밀어간다>까지였다. 그는 이후 정치인으로 변모했다. 물론 시인이 정치를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오래 전, 김춘수와 양성우 역시 국회의원을 하지 않았던가. 문제는 김영환이라는 시인이 과연 문학적인 사고를 하는가이다. 그는 분명 사회과학적으로 사고했으며, 그의 시 역시 문학적 감성보다는 이성의 판단에 의지하려 했다는 혐의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국회의원이 되고 과학기술부 장관을 역임하고 새천년민주당의 대변인을 하는 동안 김영환의 시들은 점점 ‘지난날의 꿈’을 잃어가고 있었다는 것을 그 자신은 몰랐던 모양이다. (김영환은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의 대선 후보가 되겠다며, 얼마 전 대선출마 선언을 하기도 했다) 후일 그가 ‘탄핵의 주역’으로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났을 때,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젊은 작가 포럼’이 경악한 것은 아마도 당연한 결과일 것인지도 모른다. 그 해 봄, 탄핵에 대한 공방이 뜨거울 때, 그는 자신의 지역구 사무실에서 어리숙하기 그지없는 성명서를 발표한다. “탄핵은 정당한 역사발전의 결과물이며, 자신은 조금도 후회하지 않노라”고. 그 성명서를 발표하는 김영환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말은 점점 꼬여 갔다. 혹자는 술을 마셨다 했지만, 나의 눈에는 그가 엄청난 존재론적인 고민 속에 놓여있는 것으로 보였다. 김영환에게는 분명 이루고 싶은 아주 소중한 ‘꿈’이 있었다. 작가회의 탈퇴문에서 스스로 밝혔듯이 그는 ‘좋은 시를 쓰는 시인’이 되고 싶었을 것이다. 허나 동시에 그는 모르고 있었다. 시인이란, 남들이 모르고 있는 것을 말하는 예언자적인 존재가 아닌, 남들이 다 알고 있지만,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 것을 노래하는 순교자적인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 ■시를 쓴다는 것의 의미 故 김남주 선생은 시인이라는 존재에 대해 이런 규정을 했다. ‘잠든 마을을 둘러 깨우는 북소리’라고. 루마니아의 작가 게오르그는 작가와 당대의 사회와의 관계를 ‘잠수함 속의 토끼’라는 탁월한 비유를 들어 말하고자 했다. 김영환이 알면서도 소홀히 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시라는 것은 때론 무기가 될 수 있지만 결코 무기 그 자체여서는 안 된다. 민족문학 혹은 민중문학을 하는 이들이 여간해서는 행(行)하려 하지 않는 것이, 문학(혹은 시)이 왜 ‘무기일 수는 있으나 무기 그 자체여서는 안 되는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다. 최영미는 그녀 자신이 시라는 것이 미치도록 좋아서 시를 썼지만, 김영환은 다분히 목적의식적으로 시를 썼다. 아니라고 부인하지는 말자. 시라는 것을 왜 쓰는지 우리나라 시인들은 솔직히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한국문학의 질을 낮추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는 이른바 ‘별과 꽃과 이슬만을 노래하는 시인들’은 자신들의 시가 매우 아름다우며 솔직하고 심지어 뛰어나다는 착각들을 많이 한다. 그리고는 곧잘 ‘순수’와 ‘참여’를 나눈다. 무엇이 참여이고 무엇이 순수인가. 우리들은 모두 매일 밥을 먹고 똥을 누며 나름의 일을 하고 자기만의 고민을 한다.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진 날에는 길가의 풀꽃들마저 짐승처럼 보일지도 모르며, 새로운 사랑에 빠진 날에는 발끝에 부딪치는 개똥마저 아름다워 보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의 차이를 일제히 부인하며 오로지 ‘별과 꽃과 이슬’만을 노래할 수 있을까. 파쇼라는 것은 다만 정치의 영역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마주치게 되는 모든 부분에 일정하게 존재하며, 또 존재할 것이다. 문학을 빙자해, 예술이라는 거창할 것 하나 없는 것의 허명(虛名)에 기대어 하나의 기준만을 강요하는 것. 그것 역시 파쇼의 또 다른 이름이다. ■문학 - 그 목매어도 좋을 나무 길을 가다가 이따금씩 하늘을 본다. 때로는 회색의 우울한 빛깔로, 또 때로는 해맑은 아이의 망막 같은 한국의 하늘을. 시를 쓴다고 건들거리면서 살아오는 동안 결국 내가 한 일이라고는 ‘등단’이라는 지극히 형식적인 것 뿐이다. 내가 쓰는 허접한 시 하나가 내 이웃들에게 희망을 던져준 것도 아니고, 내 시가 아주 흥행이 잘되어서 그 원고료로 어떤 성금을 내 본 적도 없다. 내 시는 결국 한 끼 밥값 그 이상의 의미는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시라는 것을 지속적으로 쓴다. 왜일까. 시라는 것은, 문학이라는 것은 이 세상에서 내 스스로 선택한 첫 번째 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길에 대한 짝사랑은 아직도 유효하기 때문이다. 마치 내가 이 어줍잖은 지식과 행동력으로도 여전히 이 세상을 사랑하겠노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 길은 지금껏 단 한 번도 사람을 억압하거나 미워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문학의 길을 가고 있거나, 한때지만 그 길을 가려 했던 분들께 꼭 드리고픈 말이 하나 있다. 물론 이제 막 문학 혹은 시라는 것을 접하고 가슴 설레는 내 후배들에게도 들려주고픈 말이 있다. 시를 쓰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시처럼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유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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