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양(梁)나라는 멸망(557년)까지 4대 56년을 이었지만, 그 가운데 48년간이 무제(武帝)의 치세(治世)이다. 대략 180년에 이르는 남조 가운데 이만큼 오래 재위한 천자는 달리 찾아볼 수 없다. 무제는 유학·현학(老莊學字)·불교에 조예가 깊어 학문을 바탕으로 사회 안정을 이루며 줄기찬 번영으로 황금시대를 이루었는데, 이 무제의 두터운 신임을 얻은 인물로서 도개(到漑)가 있었다. 도개는 젊었을 때부터 총명해서 무제의 신임을 얻어, 그가 상동왕(湘東王)인 소역(蕭繹 : 나중에 元帝 가 됨)을 섬기고 있을 때 무제가 소역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도개는 너를 섬길 인물이 아니다. 네 스승으로도 부족한 인물이 아니다. 무슨 일이든지 그와 상담 하는 게 옳다』 그 뒤 도개의 아들 경(鏡)이 일찍 죽고 손자 신(藎)이 뒤를 이었는데 그 역시 총명해서 무제의 신임을 크게 얻었다. 어느 해 도개의 손자 신이 무제를 따라 강소성의 경구(京口)에 있는 북고루(北顧樓)에 올라 무제의 명을 받아 지은 시(詩)를 무제가 도개에게 보이며 『신은 재사다. 어쩌면 경의 문장은 신의 손을 빌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라고 말하고 『벼루는 먹을 갈아 글(文)을 전하고, 붓은 붓끝으로 신(信)을 적는데, 날아서 불에 뛰어드는 벌레처럼 불행을 막지 않으면 안 된다. 반드시 노년에 그런 일이 닥칠 것이니 신에게 모든 것을 물려주라』고 써서 도개에게 주었다. 아무리 마음을 다해 명문을 지어도 별 볼일 없다. 너는 늙었으니 젊은 손자 신(藎)에게 이름을 물려주라고 말한 것이다. 시쳇말로 너는 별 볼일 없으니 집에 가서 쉬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한비자(韓非子) 설림편(說林篇)에 나오는 노마지지(老馬之智)는 전술한 도개의 경우와는 상반된 이야기로 들린다. 관중(管仲)과 습붕(濕朋)이 환공(桓公)과 더불어 고죽국(孤竹國)을 정벌하고 돌아올 때 길을 잃게 되자 관중이 『이럴 때는 늙은 말의 지혜가 도움이 된다』며 늙은 말을 풀어 놓고 그 뒤를 따르니 갈 길이 열렸다는 것이다. 근래에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민주당이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DJ의 정치 현안에 대한 발언을 둘러싸고 촉발된 양 측의 갈등이 회복되기 어려운 수위로 치닫고 있다. DJ 측은 이례적으로 자신의 최근 발언들을 옹호하는 보도자료를 낸데 이어 박상천 민주당 대표는 그 주장을 거듭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DJ 측은 최경환 공보비서관 명의의 보도자료에서 『세계 어느 나라든 전직 대통령은 국가 중대사에 대해 발언할 법적·정치적 자격이 있다』며 DJ의 현안에 대한 언급을 시비하는 것은 잘못 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박상천 대표는 DJ의 발언이 국가원로로서 할 수 있는 말도 있지만 현실정치에 너무 깊이 개입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DJ 측 보도자료에 대해 『국가원로로서 적절치 못한 말을 계속 하고 있다』고 비판한데 이어 장일 부대변인은 『우리나라가 “전직 대통령 중심 제”인가』라며 『현실 정치에 대한 간섭이 못된 시어머니의 잔소리를 닮았다』고 까지 비꼬며 반박하고 나섰다. 『전직 대통령은 국가 중대사에 발언할 권리가 있다』는 DJ 보좌관 최경환 씨의 발언은 합당하다. 그러나 이런 경우 전직 대통령 뿐 아니라, 국가원로 뿐 아니라 국민 누구라도, 민간의 어떤 단체라도 가릴 것 없이 발언해야 옳다. 다만 전직 대통령은 『전 국민의』 전직 대통령으로서 어느 일정한 정당을 옹호 내지 간섭하는 것은 정당하게 보이지 않는다. 늙으면 『집으로 돌아가』 『늙은 말의 지혜』를 운용하여 길 잃은 군상의 길을 열어 주는게 국가원로의 정도가 아니겠는가. <박충식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