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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 방송이 선정적? 보수적 性관념이 더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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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4호 ⁄ 2007.09.10 13:45:21

지난 8월 23일에, 이탈리아의 에로거장 틴토 브라스의 신작 <아모르>가 개봉했습니다. 틴토 브라스, 영화마니아라면 아는 이름일 것입니다. 어딘가 알프레드 히치콕의 냄새를 풍기는 ‘카메오’ 출연, 여성의 엉덩이에 대한 거의 강박에 가까운 관심과 클로즈업, 다 유명한 것들이죠. <아모르>에 대한 감상은 평소했던 틴토 브라스에 대한 생각을 굳히는 계기가 됐다. 그 유명한 <칼리굴라>(1980)를 비롯해 <올 레이디 두잇>(1992), <모넬라> 시리즈(1995~2000)까지만 해도 틴토 브라스는 분명히 존재 근거를 과시할 수 있는 감독이었습니다. 에로영화나 포르노도 아닌 정식개봉작에서 과감한 정사 장면과 무삭제 노출을 시도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었고, <올 레이디 두잇>에서 신혼부부의 정사를 건너편 건물에서 훔쳐보는 역할을 ‘카메오’로 맡았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가 묘사해왔던 ‘관음증’은 남성들의 알 수 없는 성 심리의 일부분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바야흐로 ‘야동’의 시대. P2P 사이트에 가면 거의 홍수에 가까운 ‘야동’들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일본 야동’의 최고의 70%를 공급했다는 ‘김본좌’가 구속됐다지만, 제2의, 제3의 ‘어둠 속의 김본좌’들은 여전히 ‘야동’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국적도 불문이고, ‘장르’도 불문이죠. 그런 시대에서는 틴토 브라스의 영화를 굳이 돈을 주고 극장까지 가서 봐야 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컴퓨터 앞에만 앉으면 그보다 더 강도 높고 자극적인 영상들이 널려 있습니다. 틴토 브라스는 이제 시대적 소명을 다했다고 판단합니다. ■<해부학 교실>로 부각된 ‘엄다혜’를 아십니까? 올드 관객들은 1980년대에 우리 극장가를 뒤덮었던 <애마부인>으로 대표되는 극장가의 에로티시즘 열풍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그 열풍도 1990년대에 다다르면서 서서히 저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에로영화 제작자들은 VTR 보급 열풍과 함께 비디오 시장을 주목합니다. 그 유명한 <젖소부인 바람났네>가 그 시절의 대표적인 작품이고, 그 작품으로 화제가 된 진도희는 심야토크쇼 <주병진 쇼>에까지 출연해 화제가 됐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비디오 에로 열풍’도 결국 오래 가진 못했습니다. <빨간 마후라>에 이은 ‘무슨 무슨 양 비디오’ 등 센세이션을 일으킨 이른바 ‘야동’의 시조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때마침 불었던 ‘인터넷 보급’과 맞물려 ‘비디오 에로영화’를 무지막지하게 흔들어댄 것입니다. “무슨 무슨 양들이 우리나라 인터넷과 광랜 보급의 1등 공신”이라는 농담이 아직까지 통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제작업자들은 ‘미소녀’들을 주된 대상으로 삼는 일본 AV의 경향을 민감하게 받아들입니다. 이때 등장한 에로스타들이 하소연(가수 하유선), 유리(가수 성은), 은빛, 이선영 등이고, 특히 ‘대학생 에로배우(였지만 아니라는 이야기도 있다)’라는 타이틀을 아주 확실하게 과시했던 이규영(갑작스런 ‘잠적’으로도 유명하다)이 절정의 인기를 누렸습니다. 얼마 전에 영화 <해부학 교실>의 포스터 모델로 등장해 언론의 관심 대상이 됐던 엄다혜도 이 열풍 속에서 부각된 에로스타입니다. 별명이 ‘흑진주’라죠. 얼마 전에 모 케이블 방송에, 동료 에로배우들과 출연했던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엄다혜는 단순히 ‘에로배우’ 활동만 한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유명화가들의 작품, 그리고 사진가들의 촬영 출사에도 단골 출연하는 ‘누드모델’이기도 하며, 인터넷 성인방송의 PJ(포르노자키) 활동을 했던 적도 있습니다. 엄다혜의 활동 궤적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제 ‘에로영화’의 시대도 한 물 간 지 오래입니다. 비디오 시장 자체의 궤멸과 맞물린 측면도 크지만, 소위 말하는 ‘노 모자이크’, ‘노 공사(에로영화 촬영에서 있어 성기를 가리는 작업)’와 ‘실제’를 강조하는 본격 ‘야동’에 밀릴 수밖에 없는 태생적인 환경을 갖고 있던 측면도 있습니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그 이름, ‘호국선열’ 홍수빈 2005년 초에, 검찰의 대대적인 수사로 해외(주로 캐나다) 서버를 기반으로 활동하던 성인방송 사이트들의 주축들이 전부 구속되거나 수배된 적이 있습니다. 이때, 수많은 남성 네티즌들은 ‘그녀’의 이름을 외치며 안타까움(?)을 표한 적이 있었죠. 누굴까요? ‘호국선열’이라는 별명까지 붙으며 ‘열사’ 대접을 받는 홍수빈입니다. 비교적 청순한 외모로 인터넷상에서 알게 모르게 높은 인기를 누리던 PJ였습니다. 사실, 홍수빈은 공중파 방송에서 ‘등장’해 화제가 됐던 적이 있었습니다. KBS2 <상상플러스>의 ‘세대공감 올드앤뉴’ 코너에서, ‘홍수빈’이라는 이름이 “‘홍’으로 시작하는 단어 중, 10대들이 가장 많이 검색한 단어 2위”로 등장했기 때문이죠. 인터넷은 순식간에 뒤집혔습니다. “전 세계 남성들의 성욕을 채워주며 성범죄를 막은 호국선열 홍수빈은 언제 석방되느냐”는 웃지못할 질문들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었던 거죠. ‘10대들의 검색어 2위’라는 현실에서, ‘순결’ 위주의 학교 주도 성교육, 혹은 케이블 방송의 선정성을 문제 삼는 일부 지식인과 기성세대 시청자들이, 얼마나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지에 대해서도 살펴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른들이 모르는 사이에, 아이들은 ‘야동’을 폭넓게 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케이블 방송에서의 선정성 정도는 ‘홍수빈’을 보던 아이들에게는 별다른 흥밋거리도 못 되는 ‘애들 장난’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을 보면, 일부 기성세대는 “야동을 철저하게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겠지만, 그것도 어불성설입니다. ‘어떻게 막을지’의 문제도 있지만 (김본좌가 구속됐다고 야동이 사라진 건 아니거든요), 정작 문제가 되는 건 성에 대한 닫힌 관념이나 보수적 강박에서부터 비롯되는 한국인의 ‘성적 관음증 심리’가 어린 시절부터 비롯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미국의 성범죄자는 10대 때 포르노그래피에 접할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 중에 많다고 한다. 강간하는 사람은 대개 성을 금기시하는 가정에서 자랐으며, 그 중 18%는 에로틱한 물건을 소지하여 부모의 꾸지람을 들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미국의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결국, 일부 기성세대들의 “포르노와 야동이 성범죄자를 만든다”는 주장은 전부 받아들이긴 어렵습니다. “성범죄자들의 눈에 포르노가 눈에 띄었을 뿐”이라는 거나, “포르노 교육 부재가 진짜 원인”이라는 판단을 합니다. 본능을 금기시해도 본능 그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외려 ‘적정선에서’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밝힐 것은 밝힐 수 있는 사회가 건강할 수도 있는 사회라는 거죠. 물의 흐름을 둑으로 막아봐야 그 둑은 언젠가 물살에 견디지 못해 무너지게 마련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일부 지식인과 기성세대 시청자들이 비판하는 ‘케이블 방송의 선정성’이라는 것도, 그 ‘관음증 심리’를 역으로 이용한 상업성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렸죠. ‘홍수빈’을 보고 그 유명한 ‘야동’의 신화 C모 사이트와 친숙한 아이들은 그런 정도는 눈도 돌리지 않는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야기할 것은 이야기하면서, 성교육의 방향도 ‘야동 교육’, ‘포르노 교육’, ‘피임 교육’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보수적 강박관념’의 피해자들 홍수빈은 현행법대로라면 분명 법(음반 비디오물 및 게임물에 관한 법률 위반)을 어겼습니다. 그 법 자체가 옳은지 그른지는 아직 확실하게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일단 그는 법을 어긴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홍수빈은 언제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쳐다볼 때마다 모두 나를 알아보는 것 같아 무섭고 두려웠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과거 ‘일반인 행세 파문’을 일으킨 에로배우 이하얀 역시 “잊고 싶은 과거였으며, ‘개명 신청’까지 한 적이 있다”는 반응도 같이 생각해 봅시다. 그뿐이 아닙니다. 이른바 ‘비디오 파문’의 당사자들, 다 엄밀히 말하면 ‘피해자’인데 왜 ‘죄인’처럼 고개를 숙여야 했을까요? 그에 반해, 엄다혜는 당당한 자세가 돋보였습니다. 엄다혜는 모 성인연극에 출연중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하면서 “과거에는 남성 관람객이 많았는데 지금은 젊은 여성들도 많이 온다. 관객 호응도가 좋아서 뿌듯하다. 길거리에서 사인을 해달라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때마다 사인을 해준다. 사람들이 나를 알아봐 준다는 점이 기분이 좋다”는 반응을 보입니다. 이상하게 보실 분도 있겠지만, 저로서는 엄다혜의 ‘당당한 자세’가 깊이 와 닿습니다. 에로배우·누드모델 활동이 죄는 아닙니다. 홍수빈도 어쨌든 ‘법’을 어겼지만, 외려 일부 남성 네티즌들은 그를 열렬히 환호합니다. 그녀가 출연했던 ‘야동’이 오히려 긍정적인 역할(“야동으로써 성범죄를 막을 수도 있다”는 입장)을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왜 죄인이 되고, ‘싸구려’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정작 문제 되는 것은 누구보다 보수적인 성 관념을 받아들였으면서도, 성범죄 1위 국가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비디오 파문’ 당사자들을 싸잡아 비난한 사람들도 많았지만, 정작 그런 분들이 더 열심히 다운을 받아봤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쓸데없이 돌을 던질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전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앞서 이야기했듯이 엄다혜의 당당한 자세가 마음에 와 닿습니다. 그리고 그 당당한 자세에는 주변의 질시와 곁눈질을 긍정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있었다는 것, 그게 더 와 닿는 것 같고요. <박형준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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