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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신정아 스캔들로 본 여인열전

권력과 여인 불가분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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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5호 ⁄ 2007.09.17 13:56:43

권력과 여인은 불가분의 관계인가. 최고권력기관인 청와대 전 정책실장마저 낙마시킨 신정아 스캔들이 온통 나라를 뒤집어놓고 있다. 신정아 파문을 계기로 시공간을 초월해 여성의 존재는 권력자의 마음을 사로잡아 여인들의 이름이 다시 거론되고 있다. 서양에선 클레오파트라, 동양에서는 양귀비가 있다면 국내에서는 장희빈·정난정·김수임·정인숙·린다김·에리카 김·신정아 등 권력자와 스캔들 주인공이다. 장희빈으로 유명한 조선 여인열전 시대 대표적 여인인 장옥정. 장옥정은 미모와 영리함으로 숙종의 총애를 받으며 아들 균(경종)을 낳으며 중전 인현왕후마저 폐비시킬 만큼 기세가 하늘을 찔렀다. 당시 정2품에 해당하는 소의(昭儀)였던 장 씨는 숙종과 가까워지며 왕자 윤(畇:景宗)을 낳아 오랫동안 아들을 낳지 못해 고민에 빠져있던 숙종의 고민을 해결해주며 총애를 한몸에 받았다. 숙종은 1689년(숙종 15) 1월 윤을 원자로 책봉했고 이에 따라 소의 장 씨는 희빈에 올라 세자책봉은 불가하다고 상소한 송시열은 유배되어 사사(賜死)됐으며 나머지 서인들도 유배시키며 권대운 등 남인(南人)이 정권을 잡도록 했다.이 해 5월 숙종이 인현왕후를 폐출하고 희빈 장 씨를 왕비로 올리자 서인 박태보(朴泰輔) 등 80여 명이 이를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참혹한 형벌을 받았다. 희빈 장 씨는 여인열전사에서 최고의 관심을 받아 방송사극에서 김혜수(한국방송.06), 이미숙(MBC.82), 전인화 ( 88), 정선경(서울방송·95) 등 4명이 각각 다른 캐릭터를 보였다. 장희빈 역을 열연했던 탤런트 김혜수는 장 씨를 “몸과 마음을 바친 남자의 사랑을 되찾고 아들의 보위를 위해 독해질 수밖에 없었던 여인, 장희빈은 요부가 아니라 열정을 가진 여인”이라고 평가했다. 김혜수는 “장옥정은 역관인 아버지 때문에 매우 부유하게 자랐어요. 그런데 어머니가 천민이기 때문에 12세가 되던 해에 노비문서가 나오는 바람에 갑자기 노비로 팔려갔으니, 계급에 대한 한이 얼마나 많았겠느냐”며 이해할 수 있다는 평가도 늘고 있다. 일명 한국판 마타하리로 불리는 여간첩 김수임. 신여성을 꿈꾸며 영어회화에 능통했던 김수임은 이화여전 영문과를 졸업한 인텔리 신여성이었다. 김수임은 세브란스병원에서 미국인의 통역을 맡고 있을 당시 공산주의 활동을 하던 이강국을 알게 되면서 동거를 시작했다. 그녀는 미국대사관의 통역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수사기관의 고문으로 있던 미국인과 외인주택에서 동거하면서 사교계의 여왕으로 부상했다. 그러던 중 이강국이 미군정에 대한 비판을 계기로 체포령이 내려지자 그를 미국인 고문관의 집에 숨겨두었다가 1947년 연인의 월북을 도왔다. 이강국은 조선인민공화국 서기장에 오르고 초대 외무부장으로까지 발탁된 뒤 대남공작에 나서자 이를 도우며 자기집을 남조선노동당의 거점으로 사용하며 각종 기밀을 빼돌려 남로당에 제공했다. 한편 육군특무대에 수감중이던 남로당의 빨치산책인 사형수 이중업을 빼내 의사로 가장시켜 월북시켰다. 1947년부터 1년여 동안 여러 차례 이강국의 연락원을 자기집에 숨겼으며, 같은 해 12월에는 조선은행권을 서울로 운반하는 데 도움을 주는 등 간첩활동을 계속하다 그러던 중 1950년 4월 초 수사당국에 체포됐다. 가택수색 결과 권총 3자루, 실탄 180발 및 북한으로 보내려던 많은 기밀물건들이 압수됐고 50년 6월 군법회의에서 사형이 확정됐다. 해방정국에서 금지된 사랑을 하다가 결국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제3공화국 최대의 스캔들로 권력의 부패상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 묘령의 여인인 정인숙(본명 정금자). 정일권 전 총리는 물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이름까지 거론될 만큼 고관대작과 염문을 뿌린 정인숙은 고급접대부로 정치권의 총애를 받던 중 개통된 지 얼마되지 않은 마포구 합정동 강변도로에서 머리와 가슴에 두발의 총을 맞고 27세의 나이를 마지막으로 숨을 거뒀다. 당시 정 씨가 숨지기 전 마지막 부르스는 유명한 이야기로 전해져오고 있다. 1970년 3월 밤 10시 40분 경 남산의 한 호텔스카이라운지에서 “제발 나를 놓아주세요, 나를 떠나게 해줘요, 이제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요. 인생을 헛되이 보내면 죄악이에요. 제발…” 당시 정인숙은 영국가수 잉글버트 험퍼딩크가 부른 ‘릴리스 미(REAASE ME)’를 두번이나 신청해 들었다고 호텔 종업원은 전했다. 이로부터 20여 분 뒤 정 씨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마포경찰서는 철늦은 함박눈에 뒤덮인 코로나 승용차 뒷자석에 정 씨를 살아있는 여인처럼 앉혀놨다가 언론사 기자가 짓굿게 문을 여는 바람에 앞으로 고꾸라지는 웃지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 정 씨의 비밀수첩에는 26명의 고관대작들의 명단이 적혀 이들과 염문설이 파다했다. 권력과 성, 살인범죄같은 A급 주제들이 모두 버무려진 초대형 스캔들 사건이었지만 당시 관련자의 명단은 영원히 비밀에 부쳐진 채 정인숙 사건은 역사속의 이야기로 남아있다. 당시 정인숙 사건은 명함조심, 오빠조심이란 유행어와 함께 강변3로는 정조관념이 희박한 여자를 가리키는 시대적 단어를 낳으며 제3공화국의 부도덕성을 보여주는 대명사로 불린다. 미모의 로비스트로 국방장관과 깊은 관계였던 ‘검은 선글라스의 여인’ 린다 김. 린다 김은 지난 2000년 었던 재미교포 여성 로비스트인 린다 김(47·한국명 김귀옥)은 미국 방위산업체의 로비스트로 김영삼 정부시절 이양호 국방장관, 황명수 국회 국방위원장, 정종택 환경부 장관 등 당시 정관계 고위인사들과 접촉하며 국방부의 통신감청용 정찰기 도입사업(백두사업)에 직·간접 개입한 의혹을 받고 2000년 1심에서 징역1년을 선고받았다. 특히 린다 김은 이 전 장관과 1996년 두차례에 걸쳐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 린다 김은 또 이화수 공군대령과도 97년 7월 이스라엘 텔아비브의 자신이 투숙한 호텔에서, 같은 해 8월에는 서울의 A호텔에서 두 차례에 걸쳐 ‘부적절한 관계’`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김 씨는 자서전 ‘코코펠리는 쓸쓸하다’(서울문화사)를 내고 SBS 토크쇼 프로그램에 출연해 여고생 때 모 재벌 2세와의 동거, 서울명동의 한 미용실에서 정인숙을 알게 돼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을 만났던 일 등에 대해 이야기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당시 린다 김이 썼던 에스까다의 검은 선글라스는 한국에서 동이 났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모의 한국계 미국 여성변호사인 에리카 김은 현재 한나라당 대선후보로 뛰고 있는 이명박 후보와 투자활동을 할 만큼 절친한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져 이 후보의 스캔들이 되고 있다. 1995년 ‘나는 언제나 한국인’이라는 자전에세이를 출간하며 조명을 받기도 한 이혼녀 에리카 김과 이 후보와의 인연은 94년 초. 독실한 크리스천인 이 전 시장이 신앙간증 차 미국 한인교회를 찾았다가 지인의 소개로 처음 만난 것. 이 후보는 당시 에리카 김에게 상당한 호감을 표시했고 LA의 한 측근 집으로 초대받은 자리에서 당시 유부녀였던 에리카 김과 농도짙은 춤을 추다 이 후보의 부인이 뭐하는 짓이냐며 불쾌한 표시를 했던 것은 일화처럼 전해지고 있다. 묘하게도 에리카 김이 이 시기를 전후해 이혼한 뒤 두 사람이 동업 관계로 발전하자 특별한 관계(?)로 회자되고 있다. 이후 에리카 김은 국내에 수시로 드나들며 이 후보를 만났고 이 후보도 든든한 후원자로 나섰다. 서울시장으로 재직 당시인 2004년 5월 이 시장의 돈을 포함해 3600만 달러를 에리카 김의 동생 김경준 씨와 옵셔널 벤처스를 공동설립해 투자까지 하도록 했다. 절친했던 사이가 결국 돈문제로 사이가 벌어졌지만 이 후보의 사생활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여인이 됐다. 해외에서도 여인과 권력과의 스캔들은 많이 있다. 95년 인턴직원으로 백악관에 들어가 클린턴 전 미국대통령의 혼을 빼놓았던 모니카 르윈스키. 르윈스키는 다른 곳도 아닌 백악관 안에서 클린턴과 성관계를 가졌다. 1998년 케네스 스타 검사의 르윈스키 보고서는 르윈스키가 클린턴의 그것을 빨아주었다며 클린턴과 르윈스키의 섹스내용을 너무 적나라하게 묘사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98년 9월 CNN방송이 설치한 사이트에는 스타보고서를 보기위해 분당 최고 34만 건의 접속이 폭주하며 미국 전체 성인인구의 2%, 2천만 명이 스타보고서를 보기위해 인터넷에 접속할 정도로 파문을 일으켰다. 당시 클린턴은 91년 아칸소 주지사 시절인 91년 5월 부하직원이었던 폴라 존스를 호텔로 불러 허벅지를 만지고 바지를 내려보이며 성관계를 요구했다고 피소된 상태여서 엎친데 덮친 격으로 곤경에 빠졌었다. ■제2의 르윈스키로 불리는 제시카 커틀러 2004년 미 상원의원 보좌관을 지낸 이 여성은 부시 행정부의 고위간부 6명과 돈을 받고 섹스를 했다며 ‘워싱턴 아가씨(Washigtonienne)’라는 제목의 섹스일기를 인터넷에 공개했다. 그녀는 6명의 이름을 알파벳 순으로 이니셜을 표기하고 인물별 특징과 받은 돈의 액수 및 섹스과정을 상세하게 묘사했다. 당시 커틀러는 “F라는 유부남 고위관리와 오랜 시간 함께 점심을 먹고 4백달러를 받고 관계를 했다”며 성매매 사실을 공개, 당시 11월 대선을 앞둔 부시 행정부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여인천하는 시간을 거슬러 고대로 가면 그 정도는 더욱 심하다. 고대 이집트에서 절세의 미녀로 유명했던 클레오파트라. 그녀는 줄리어스 시저에 접근해 자신을 죽이려던 동생이자 이집트 왕인 프톨레마이어스 왕을 제거하고 이집트의 왕으로 복귀했다. 그녀는 카펫으로 둘둘 자신을 말아 시저에게 선물로 보내지도록 하는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로 시저와 만났다. 그녀는 시저의 마음을 빼앗았고 아들 시저리온까지 낳았다. 클레오파트라는 성대하게 로마에 입성하며 안토니우스의 마음마저 빼앗았다. 클레오파트라는 시저가 왕위찬탈을 경계하는 부르터스에게 암살된 뒤 다시 이집트로 돌아오자 안토니우스는 그녀를 찾았지만 그녀는 이집트를 벗어나서는 만나지 않겠다고 거절하면서도 그는 로마 최고권력자로 부상한 안토니우스의 마음마저 빼앗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안토니우스의 마음을 빼앗아 알렉산드리아에서 돌아가지 못하도록 몸과 마음은 물론 로마제국의 1/3을 손에 넣고 옥타비아누스의 여동생 옥타비아와 결혼까지 했지만 이혼하게 하고 안토전장에 나섰던 안토니우스가 전장을 빠져나오도록 할 만큼 그의 마음을 녹였다. ■중국에서 대표적인 경국지색으로 유명한 양귀비 본명이 양옥환인 양귀비는 17세에 그 아름다움으로 황제 현종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가장 총애를 받았다. 무혜비를 잃고 낙담에 빠져있던 현종이 자신의 아들인 수왕의 비로 자신의 며느리였던 양옥환을 얻기위해 비구니로 만들어 이별토록 한 뒤 태진궁으로 불러들일 만큼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현종은 태진궁에만 머문 채 아침이 되어도 조정에 나서지 않는 날이 허다했다. 56세의 현종이 22세의 며느리 품에 안겨 있었던 것이다. 양귀비는 현종의 마음을 빼앗은 지 5년만에 왕비 다음 칭호인 귀비에 봉해졌고 이 당시 왕후가 없었기에 양귀비는 사실상 왕비나 다름없었다. 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을 잡는 것은 남자이지만 남자를 잡는 것은 여자라는 말”이 사라지지 않음은 이말이 진리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분별력없는 남성들의 욕구때문일까. 여색을 멀리하고 도리를 지키는 것이 12월 대선을 앞둔 우리 상황에서 지도자를 뽑는 데 더욱 신중함이 절실한 때이다. <이철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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