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이 최근 수원 사업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어떻게 했기에 하이닉스에 뒤졌느냐’고 부진을 보인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경영진을 질타한 것으로 지난달 30일 알려졌다. 이건희 회장이 삼성전자 경영진에 대해 강도 높게 질책을 한 것은 1993년 신경영선포를 준비하던 시점 이후 거의 처음이다. 그만큼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다. 이건희 회장은 지난 7월 29일 수원사업장에서 열린 2007년 선진제품 비교 전시회에 참석, 삼성전자를 비롯해 계열사 경영진들을 만났다. 선진제품 비교 전시회는 1993년 신경영 선포 이후 삼성 경영진들이 갖는 행사로 삼성에서 생산하는 모든 제품과 세계 초일류 제품, 경쟁 업체 제품을 비교전시해 삼성의 현주소를 확인하는 자리다. 올해 행사장에는 이학수 그룹 전략기획실장을 비롯해 윤종용·이윤우·이기태 부회장, 황창규 반도체 총괄 사장, 최지성 정보통신총괄사장, 김순택 삼성SDI 사장, 강호문 삼성전기 사장, 이재용 전무 등 그룹 수뇌부 20여 명이 참석했다. 삼성 관계자는 “반도체 D램 수율이 하이닉스에 일시적으로 뒤처졌다는 보고에 대해 이 회장이 경영진을 강하게 질책했다”며 “채권은행 공동 관리 상태인 하이닉스에 비해 뒤처졌다는 점에서 노여움까지 드러내며 경영진을 다그쳤다”고 전했다. 삼성은 반도체 가격 폭락 등으로 위기설이 끊이지 않는 등 힘든 한해를 보내고 있다. 최근 대졸 신입사원 공채 규모를 10년만에 대폭 줄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삼성은 현재 진행중인 계열사 구조조정 및 인력재배치 작업을 올해 안에 마무리할 방침으로 알려져 그에 따른 대대적 임원 인사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 관계자는 “별로 실적을 내지못하면서 오랫동안 자리를 지킨 CEO는 당연히 인사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인사 폭이 클 수 있다”고 했다. 원론적인 언급일 수도 있지만 예사롭지 않은 뉘앙스도 풍긴다. 이때문인지 초일류 삼성 내부가 크게 술렁이고 있다. 매년 1월에 단행하는 삼성그룹 임원인사가 12월로 앞당겨질 것이란 예상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인사의 핵심은 승진발령이 아닌 사장을 포함한 임원들의 교체다. 한마디로 피바람이 예상되는 ‘최악의 인사’가 될 것이라는 것이 재계의 분석이다. 이에 숙청리스트가 공공연히 사내에 돌고 있어 사기저하까지 불러일으킨다는 것이 삼성내부 인사의 귀띔이다.재계 일각에서는 삼성전자 윤종용 부회장과 이 회사 반도체총괄 황창규 사장의 움직임에 눈길을 보내는 이들이 적지않다. 윤 부회장은 1999년부터 자리를 지켜온 대표적인 장수 CEO이고, 황 사장은 반도체 시황악화로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라있기 때문이다. 이미 7월에 전자 계열의 인사를 통해 반도체 총괄과 메모리수석직을 겸직하던 황창규 사장은 메모리 사업장직을 조수인 부사장에게 넘겼고 모바일 디스플레이 사업부분을 2개부로 세분화 했다. 삼성 SDI도 기술총괄 제조기술담당인 김재욱 사장이 PDP유기발광다이오드까지 통합해 맡았다. 이 같은 조직개편은 인적구성과 조직 분위기 쇄신, 그리고 저조한 분야의 문책성 인사라는 것이 재계의 공통된 분석이다. 그러나 이 같은 인사 단행의 가장 큰 핵심은 이재용 전무시대의 개막을 위한 사전조율 1단계라는 것이다. 즉 이재용 시대의 개막과 함께 커나갈 ‘이재용맨’ 인사 발굴 및 육성과 라인업의 구축이다. 삼성은 지금 기존의 인물이 아닌 이 전무와 호흡을 맞출 새로운 인재를 찾기 위해 바쁘다. 최근 증권가를 중심으로 내년 2008년 이재용 전무가 황태자 딱지를 떼고 본격적인 황제경영에 들어간다는 설이 파다하게 돌고 있다. 이건희 회장도 1993년 신경영을 선언한 독일 프랑크푸르트 회의에서 “65세가 넘으면 젊은 경영자에게 넘겨야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또한 왕권 승계를 위한 이 전무의 글로벌 활동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은둔의 황태자라는 그가 올 초 전무로 승진하면서 CCO(글로벌 고객총괄책임자)를 맡아 경영 전면에 나선 것이다. 승진발령과 함께 10년 뒤 삼성의 성장 동력이 될 만한 먹거리를 찾는 글로벌 경영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세계시장 공략을 위한 전략을 세우는 것이 골격이다. 이 전무 중심으로 삼성의 중요한 핵심인사들이 재편됐고 이들은 국내보다는 해외에 머무는 일이 더 많아졌다. 또한 해외경제인들 및 언론과 접촉을 통해 이 전무가 삼성의 확실한 후계자임을 공공연히 알리고 있다. 이 전무는 지난 달 30일 프랑스 파리의 유럽현지법인을 방문하고, 유럽 최대 멀티미디어/AV 전시회인 ‘IFA 2007’을 둘러봤다. 이 같은 그의 행보에 대해 적잖은 관심이 모아진 건 당연했다. 글로벌고객총괄책임자(CCO)에 오른 뒤 공식적인 대규모 이벤트에 등장하는 것이 처음이었으며 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가전전시회 CES(Consumer electronics Show)에서 활발한 대외행보를 보인 바 있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본격적인 후계자경영수업의 마침표를 찍고 독자적인 글로벌 경영의 활로를 펼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시각이 대두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성가는 지나친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의례적인 해외활동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아직 후계구도의 완벽한 밑그림을 그리기도 전에 집중 포화되는 여론의 시선이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또 삼성위기론이 이 전무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삼성내부에서 유출된 설이라는 주장이 재계와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 파다하게 일고 있다. 결국 ‘삼성 흔들기’로 이 전무의 경영권 승계에 대한 당위성을 확보하자는 계산도 깔려있다는 것이다. 결국 삼성 위기론이 지나치게 부풀려져 있으며 삼성이 스스로 오욕을 뒤집어쓰고 희생정신까지 발휘해 이 전무의 앞길을 터주고 있다는 것이다. 2008년은 이건희 회장이 “65세면 물러난다”고 스스로 공언한 해이다. ■ <현대기아차 그룹>후계승계 작업 차질 정중동 다음행보 관심< /b> 외동아들에 대한 아버지 정몽구 회장의 극진한 사랑< /b> 정의선 기아차 사장은 2005년 대표이사로 부임한 이후 기아차 실적이 극도로 저조함에 따라 CEO 검증 논란에 휩싸여 있다. 기아차는 유동성 위기설까지 나돌 정도로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현대차그룹 후계자로서 정 사장의 경영능력에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그로서는 실적악화란 엄청난 부담감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정 사장을 더욱 곤혹스럽게 하는 것은 글로비스 주식 처리문제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4월 19일 비자금조성 혐의로 정 회장 부자가 구속 위기에 빠지자 글로비스 주식 1조 원 어치의 사회환원을 공언했다. 문제는 1조 원을 현재 정 회장 부자가 전체의 60%선을 보유하고 있는 글로비스주식으로 다 내놓았을 때 과연 정 사장의 후계승계가 무난하겠냐는 것이다. 정 회장은 외동아들 정 사장에 대한 사랑은 지극하다고 한다. 정 사장이 언론 등에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도 정 회장의 의도라고 알려지고 있다. 한 때 증권가에서는 정 사장이 우량한 다른 계열사 CEO로 갈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실적이 악화되고 있는 기아차에 계속 있다가는 후계 승계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기에 정 회장이 `’정의선 구하기’에 나설 것이라는 얘기다. 아직까지 이런 움직임은 없지만,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정 사장이 침묵을 깨고 언제 어떤식으로 다시 언론에 모습을 드러낼지 주목된다. ■ <신세계>정용진 부회장, 아직 검증되지 않은 경영권 이양< /b> 편법승계 고발사건 아직 마무리 덜 돼< /b> 신세계 편법 경영권 승계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1부(강찬우 부장검사)는 지난 6월18일 신세계 구학서 부회장을 지난달 중순 께 참고인 자격으로 불러 조사했었다. 검찰은 신세계와 참여연대 맞고소 사건과 관련해 신세계 구 부회장을 불러 1998년 광주신세계 유상증자 과정에서의 탈법 여부 등을 물었으며 비슷한 시기에 지창렬 전 신세계 대표 및 권국주 전 광주신세계 대표도 피고발인 신분으로 조사했었다. 검찰은 또 당시 주주들의 실권을 통해 광주신세계의 주식을 인수했던 정용진 부회장의 조사 시기와 방법에 대해서는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참여연대는 지난해 4월 “광주신세계가 1998년 유상증자를 하면서 적정주가를 산정하지 않고 신세계 이사였던 정용진 씨가 싼값에 주식을 인수하도록 해 회사에 420억 원의 손해를 끼쳤다”며 정 부회장과 신세계·광주신세계 전 대표를 배임 혐의로 고발했다. 이에 대해 신세계 측은 “광주 신세계는 유상증자 당시 부실기업이었던 데다 신세계 역시 구조조정으로 경영상 어려웠다. 신세계 법인을 대신해 정 부사장이 유상증자에 참여한 과정은 부실기업을 살리기 위한 것이었는데도 참여연대는 명백한 사실 왜곡으로 회사 명예를 훼손했다”라며 맞고발장을 냈었다. 정 부사장은 1998년 3월 광주신세계가 주당 5000원에 유상 증자를 결의하고 신세계 이사회가 신주 인수를 포기하자 같은해 4월 24일 25억원을 납입, 광주신세계 주식의 83.33%에 해당하는 50만주를 취득했었다. 이같이 편법승계 의혹을 다 떨쳐버리지 못한 신셰계의 경영권 승계작업은 정용진 부회장이 아직 직접 결재권을 갖지 못한 상태가 길면 올해 안에 끝날 것 같다. 내년이면 너무 늦어 더욱 후계작업이 늦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 <현대그룹>대기업 역사상 최초 경영권 모녀승계 이루어질까< /b> 현정은 회장, 장녀 정지이 전무 외엔 대안없어< /b>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남편인 정몽헌 회장의 죽음으로 황망 간에 전업주부에서 대그룹의 회장 자리에 올랐다. 그녀에게는 아들 1명, 딸 2명이 있는데, 외동아들 영선 씨는 현재 공부를 하고 있는데다, 정 전무가 워낙 똑똑해 그룹 안팎에서는 후계자로 정 전무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즉, 모녀 간 후계승계인 셈이다 현 회장은 항상 정 전무를 데리고 다닌다. 그녀가 안보일 경우 불안한지 찾느라 허둥댈 정도라고 한다. 출장가서도 같은 방을 쓸 정도로 모녀 간 정은 남다르다. 현 회장의 정 전무에 대한 경영수업도 각별하다. 현대유엔아이 이사로 지난 3월 16일 현 회장이 추가됐다. 재계에서는 이를 바로 지근거리에서 정 전무에 대한 경영수업을 시키기 위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정 전무는 2005년 7월 등기이사로 등재됐으나, 이 때 현 회장은 무슨 이유인지 이사로 등재되지 않았다. 현 회장과 정 전무가 지분 77.3%를 갖고 있어 사실상 모녀의 개인회사나 마찬가지인 현대유엔아이는 현대그룹의 SI(시스템통합) 사업을 하는 곳으로 2005년 법인이 설립돼 매년 수십 억 원의 흑자를 내고 있다. 그룹내 하청물량을 받아 실적부담이 없는 현대유엔아이에서 정 전무의 경영수업이 이뤄지고 있는 것. 정 전무의 후계승계에 걸림돌이 없게 하겠다는 현 회장의 치밀한 계산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현 회장 모녀가 과연 경영승계를 이뤄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2004년에 현대그룹을 접수하려던 정상영 KCC 명예회장의 의지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할 수 없는데다 현 회장의 시동생인 정몽준 의원이 오너로 있는 현대중공업그룹에서 역시 현대그룹에 탐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정상영 명예회장 등 범현대가에서 현대그룹을 인수하려는 단 하나 이유는 `정씨가 경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적통성을 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현재 범현대가에서는 현대그룹을 현정은 회장, 현 회장의 어머니인 김문희 여사 등 `현씨 일가가 이끌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한 현 회장이 물러나고, 창업 3세인 정 전무에게 그룹 경영권이 넘어간다고 하더라도 정 전무가 결혼해서 4세에게 현대그룹의 경영권을 승계할 경우, 역시 `정씨가 아닌 인물에게 넘어가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현대그룹의 관전포인트는 `현정은 회장-정지이 전무의 대물림이 이뤄질 것이냐로 모아진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한국 기업사에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된다. <조창용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