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유정난’ 이후 ‘중종반정’에 이르기까지의 조선 초기사가 드라마 소재로 자주 다뤄진 것, 다 이유가 있습니다. ‘사도세자 폐사 사건’과 마찬가지로 가장 드라마틱한 시절이라는 면도 있지만, 사랑과 권력에 대한 뒤틀린 욕망이 시대에 점철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왕실의 안정을 위한 것이었든지, 아니면 개인의 야욕을 위한 것이었든지 어쨌든 수양대군 역시 ‘욕심’에 의해 어린 조카를 몰아낸 것이었습니다. 숱하게 사극으로 다루었던 그 시절, 그래도 막상 지켜보면 흥미진진한 이유는 바로 그렇습니다. 그 시절의 이야기는 ‘욕망으로 인한 파멸’의 이야기입니다. 그 시절, 왕실의 중심에 있었던 사람들, 잘 살펴보면 모두들 ‘욕망’을 버리지 못하고 파멸한 사람들입니다. 왕실의 예법과 정치의 이해관계 속에서 숨겨진 개인의 욕망들, 흥미진진합니다. ■ 인수대비, 왜 아들에 ‘집착’했을까 < /b> 인수대비는 남편 의경세자를 20살 나이에 잃었습니다. 20살, 상상이 가십니까? 연애를 한창 해도 더 해도 될 나이에 ‘과부’가 된 것입니다. 재혼도 할 수 없는 시절이었던 것 다 아실 것입니다. 게다가, 남편이 죽으면서 왕위계승권도 시동생에게 돌아감에 따라 궁궐을 나와야만 했습니다. 하릴없이 시간만 죽일 수밖에 없는 나날들이죠. 이런 경우, 자식 가진 어머니라면 ‘희망’을 걸어야 할 부분은 딱 하나밖에 없습니다. ‘자식’입니다. 김성홍 감독의 영화 <올가미>를 보신 분이라면, 뭔가 느껴지는 부분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왕과 나>가 앞으로 그릴, 인수대비의 며느리 폐출 주도는 영화 <올가미>와 사실상 똑같은 이야기입니다. <왕과 나>에서 그린, 어린 시절의 성종이 소화를 연모하다가 정치논리로 인해 중전 삼기를 포기해야 했던 이야기는 놓쳐서는 안 될 부분이기도 합니다. 나중에 아들이, 단 한 번도 어겨본 적이 없었던 어머니의 명을 거역하기까지 하는 중대한 사태의 암시이기 때문입니다. 인수대비와 폐비 윤 씨의 갈등은, ‘성종’이라는 한 남자를 두고 벌였던 애정쟁탈전입니다. 인수대비는 아들 성종의 사랑이 폐비 윤 씨에게 집중되는 것에 대해 일종의 ‘질투’를 느꼈을 것입니다. 여기에 중전의 자리를 노리는 왕실의 후궁들이 끼어든 연쇄적인 다각관계 치정이야기인 것입니다. 폐비 윤 씨는, 남편을 향한 시어머니의 부담스러운 시선도 복잡한 마당에 원체 여자를 좋아했던 성종이 후궁들을 거느리는 것으로도 모자라 기생(어우동)까지 사랑하니 그것만 해도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감히 ‘용안’에 생채기를 내기까지, 이런 것들이 작용했을 소지는 충분합니다. 이 ‘생채기 사건’은 시어머니 인수대비의 ‘편집증’을 그야말로 폭발시킨 사건으로 자리 잡고 만 것입니다. 눈에 가시 같던 며느리를 쫓아내야 할 이유가 생긴 것이고, 성종과 인수대비의 총애를 얻기 위해 눈웃음을 흘리던 후궁들, 꽉 쥐고 흔들 수 있을 것 같은 후궁들 중에서 만만한 중전을 세워 아들을 다시 ‘내 말 잘 듣는 내 아들’로 회복시킬 수 있는 호재가 된 것입니다. 당대 최고의 모략가 한명회가 ‘중전 폐출’을 반대했다는 것을 보면, 잘 아실 것입니다. 대비답게 정치적인 감각이 있었다면 나중을 생각해서라도 저지를 일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한명회의 우려대로 폐비 윤 씨의 아들 연산군은 재위기간을 내내 피로 물들였고, 할머니 인수대비가 ‘원흉’임을 알게 되자 머리로 들이 받아버립니다. 한명회는 이런 사태를 예감하고 중전 폐출을 반대했을 테죠.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인수대비의 비참한 죽음은, 스스로 자초한 것이나 다름없는 격입니다. 어린 아이일수록 자신에 대한 시선이 사랑인지 미움인지에 대한 판단이 아주 비상합니다. 연산군은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가 자신을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미워하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느꼈을 것입니다. 그런 마당에, 어머니가 그 ‘할머니’ 때문에 비참하게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는 ‘패륜’이고 뭐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분노로 이성을 잃은 거죠. 인수대비는 일종의 후천적 편집증 환자였던 셈입니다. ■ 성종, 그는 왜 ‘바람둥이’였을까 < /b>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가 어떻게 구성되느냐에 따라 인간의 성격이 완성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많은 후궁과 기생까지 자신의 여자로 만들었던 성종, 제 판단으로는 어머니의 부담스러운 사랑에 대한 일종의 ‘탈출구’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수대비는 엄격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애정도 ‘엄격하게’ 적용시킨 사람이었죠. 아들이 자신이 추구하는 이미지에서 한 치도 어긋나지 않길 바랐던 사람입니다. 인수대비는 아마도 그게 ‘사랑’이라고 믿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어머니 슬하에서 자라게 되면, 아들도 자신의 생각과 개성이 존재하는 인격체인 이상 세상살이 자체가 답답하게 여겨질 것입니다. 그에 대한 ‘탈출구’가 결국에는 ‘바람기’였던 셈입니다. 후궁들은 왕의 총애를 받아야 하는 만큼 자신을 압박하는 여자란 있을 수 없습니다. 성종은 이 맛에 취한 것입니다. 생각해보세요. 비단 여자뿐만 아니라, 왕이 가질 수 있는 권력이라는 게 그런 거잖습니까? 자신의 말 한 마디에 누구든 고개를 숙이고 거역할 수 없다는 것. 그런 자신을 유일하게 구속하는 ‘어머니’로부터 벗어나면 이런 맛이 있을 테니 ‘여인들’에게 빠지게 된 것일 테죠. ‘생채기 사건’에 성종이 분노한 또 다른 이유는, 아마도 ‘어머니’ 외에도 자신을 답답하게 구속하려는 여자가 또 있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어머니는 저버릴 수 없지만, 중전은 자신이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쫓아낼 수 있습니다. 차마 어머니에게 반항하지 못하면서 억눌렀던 것까지 한꺼번에 중전에게 퍼부어진 것일지도 모릅니다. <왕과 나>에서 김처선의 나이를 30년 이상 끌어내리면서 성종과 폐비 윤 씨, 김처선의 관계를 삼각관계로 처리한 것에서, 또 다른 심리학적 근거가 느껴질 것입니다. <왕과 나>에서는 나중에 후궁 시절의 윤 씨가 김처선과의 사랑을 생각하면서 성종과의 첫날밤을 거부하는 장면이 나올 것입니다. 생각해보세요. 그렇게도 사랑하던 여자와 드디어 밤을 지새울 수 있게 됐고, 그 여자 역시 자신을 애틋하게 사랑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신과의 잠자리를 거부하니 열이 받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 장면 이후로는 성종 스스로가 그리도 부담스러워 했음에도 어쩔 수 없이 닮게 된 ‘어머니의 편집증’을 자신도 모르게 드러내는 상황이 드러날 것입니다. ‘내 것’에 대한 강한 소유욕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혹시 하병무 소설 <남자의 향기>의 ‘철민’을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기어이 자신의 여자로 만든 ‘은혜’가, 자신은 그저 ‘오빠’인 줄로만 알았던 ‘혁수’와 애틋한 사이라는 것을 알고 소유욕을 넘다 못해 ‘집착’에 가까워진 캐릭터죠. ‘성종’에게서도 이런 느낌이 날 것입니다. ■ 조치겸, 김처선을 양자로 삼은 이유는?< /b> 조치겸은, 어린 나이부터 권력욕을 드러내는 양반 출신 내시 ‘정한수’를 양자로 삼으라는 아버지 노 내시의 명을 거부해버립니다. “우리 가문은 충분히 권세를 누리고 있으니 만고에 빛날 조선 최고의 내시를 배출할 때도 되지 않았느냐”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와 관련된 사례는 <삼국지연의>에 잘 보일 것입니다.
<삼국지연의> 후반에서 촉한의 제갈공명과 치열한 지략대결을 벌이는 사마의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최고의 전략가 중 1명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뛰어난 사마의를 조조는 결코 중용하지 않았습니다. ‘고개를 뒤로도 돌릴 수 있는 낭고의 상’이라는 것은 순전히 핑계였을 것입니다. 조조의 진심 중 중요했던 것은 “그를 보면 어딘가 젊은 시절의 내 모습이 느껴진다”는 부분입니다. 조조의 젊은 시절은 번뜩이는 지략으로 군웅들을 제압하고 자신에게 도전했다는 이유로 황실을 피로 물들였던 야망의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조조는 위왕에 즉위하면서 자신이 그런 피해를 당할 수도 있는 입장이 됩니다. ‘내 젊은 시절이 느껴지는’ 사마의가 중용돼 자신만은 못한 아들들에게 물려준다면? 그래서 위 황실은 조조가 무력하게 만들었던 과거의 한 황실과 비슷한 모습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그 사마의에 의해, 그리고 사마의의 아들과 손자에 의해서요. 조조는 바로 이런 미래를 직감했을 것입니다. 조치겸도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정한수의 야심과 음흉함의 크기가 자신의 어리고 젊은 시절과 너무 닮아 자신마저 파멸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젊은 시절을 안고 있는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자신이 지친다는 것을 느끼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비슷한 젊은 시절’을 보면 부담이 느껴지는 겁니다. “나는 이제 권력도 충분히 쥐게 됐는데, 나이 들어서까지 저런 걸 지켜봐야 되느냐”는 부담이죠. 그래서 자신과 전혀 다른 성격의 김처선을 욕심냈을 것입니다. 거기에는 자신이 죽인 것이나 다름없는 친구에 대한 미안함과 자신이 사모하는 여인이 낳은 아들이라는 인간적인 배경이 스며들었을지도 모르죠. 인간은 가끔씩 거울을 통해 자신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변화에 놀라는 경우가 있습니다. 정한수는 조치겸의 거울이었습니다. ‘내’가 아닌 ‘남’의 입장에서 지켜본 자신의 젊은 시절, 결코 떳떳하지 않기에 외려 미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김처선’은 자신이 추구하지 못했던 정직한 삶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더 큰 욕심을 내는 겁니다. ■ ‘왕실’도 인간이 사는 곳이었다< /b> 왕이든 대비든 구중궁궐 속의 까마득한 존재들입니다. 하지만 그들도 ‘인간’입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희로애락을 느끼고 그 자신의 배경에 따른 심리를 유감없이 드러냅니다. ‘장희빈 사건’도 정치적 배경과 함께 그런 본연의 심리 변화로 인해 일어난 사건입니다. <장희빈>에서 늘상 나오는 숙종의 대사는 바로 “한 사발 더 부우라”, 얼마나 지독한 증오입니까? 숙종과 인현왕후, 그리고 희빈 장 씨의 삼각관계에도 그네들만이 느꼈던 사랑과 증오가 한껏 배어있을 것입니다. 사랑과 증오, 인간이기 때문에 느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랑과 증오가 역사를 움직이고, 때로는 피비린내 나는 비극을 이끌어낼 수도 있습니다. 하물며 세상의 중심이었던 ‘왕’의 주변에서는 더 심한 일이겠죠. 역사를 보면, 그렇듯 인간 심리의 변화무쌍함도 느끼게 됩니다. 역사적인 캐릭터들, 그래서 흥미진진한 측면도 있는 것입니다. <박형준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