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역사는 단순한 사실(Fact)의 기술(記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가치판단이 전제된 반성문과 같은 것이어야 오늘과 내일의 일용할 양식이 되어야할 역사기록으로서의 존재가치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리고 역사를 배우는 것, 역사를 알고자 함은 결국 같은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생존의 방식이라고 필자는 인식하고 있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한 민족이 흥할 수 없다는 진부한 표현을 빌리지 않더라도 역사는 단순히 지적 유희를 위한 암기하기 위해서 기록하고 배워서는 안 되고 과거의 잘못을 오늘과 내일에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의지와 사고체계가 구체적으로 구현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강정구가 6.25에 대해 “통일전쟁이다”라고 했을 때 필자는 분기탱천하여 그를 극도로 혐오하고 구속영장신청을 막은 당시 천정배 법무부장관에 대해서도 같은 부류로 격렬한 비난을 퍼부었었다. 강정구의 “6·25는 통일전쟁이었다”라는 주장은 안병직,이영훈類의 “식민지 근대화론”처럼 사실(Fact)측면에서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당시 김일성은 대한민국을 무력으로 자신의 체제하에 두기 위해 동족을 향해 살육의 잔치를 벌였고, 이것은 “조선반도에서의 완전한 사회주의의 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분명 “통일전쟁”이 맞다. 따라서 강정구의 “6·25는 통일전쟁이었다”라는 주장은 안병직·이영훈 류(類)의 주장처럼 단순한 사실의 적시에서 보면 틀린 말이 아니다. 적어도 안병직·이영훈類의 주장과 그 주장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논리에 의하면 강정구가 우리 사회에서 비난 받아야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입장에서 보면 분명 6·25와 같은 방식의 “통일전쟁”은 결코 원하지 않은 통일의 방법이었고, 무엇보다 우리의 피해가 너무도 극심하였기 때문에 김일성의 범죄행위도 용서할 수 없으며, 그를 옹호하고 변호하는 강정구도 역시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적어도 강정구가 대한민국 국민이고 대한민국 체제를 부정하는 족속이 아니라면 6·25의 성격을 김일성의 입장에서 주장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자꾸 반복되는 것이지만 필자는 범죄행위를 옹호하고 변호하는 행위 역시 그 자체가 범죄로 인식하고 있다. “근대화(modernization)”라는 단어가 일반 대중들에게는 “발전” “진보”와 같은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쓰여지고 있다. 이 말은 구차한 변명을 동원한다고 해도 특정 시대에 근대화가 진행되었다라고 하면 일반 대중들에게 해당 시대를 긍정적인 면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안병직·이영훈類가 주장하고 있는 “식민지 근대화론”은 사실(史實)과 사실(事實)의 단순한 기술(記述)이 아니라 시대에 대한 가치판단을 하고 있다고 필자는 인식하고 있다. 앞에서 강정구의 “6·25는 통일전쟁이었다”라는 주장이 잘못된 이유를 설명했듯이 필자는 안병직·이영훈類의 “식민지 근대화론” 역시 같은 관점에서 바라보고 판단하고 있다. “6·25는 통일전쟁이었다”라는 강정구의 주장이 김일성을 옹호하고 변호하는 주장인 것처럼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안병직·이영훈類의 주장 역시 우리 민족 구성원의 입장이 아니라 일제와 일제시대를 옹호하는 패거리들의 입장에서 주장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일제시대에 조선의 민중과 땅에 행해진 소위 “근대화”는 오롯이 일제(日帝)와 일본인을 위한 것이었지 조선의 민중과 땅이 근대화의 목적이 아니었다. 당시의 근대화는 “조선민중을 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어떤 수치상의 성장이 있었다고 해도 긍정적인 의미부여를 할 수 없다. 살아가면서 뜻대로, 노력하는만큼 보답이 따르지 않는 삶에 실망하고 좌절하는 것보다 사람에 대해 실망하고 좌절하는 것이 더 힘들다는 것, 이번 논쟁을 통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이만 논쟁의 종지부를 찍고자 한다. 더 이상 초라해지는 인간관계를 맺고 싶지가 않다. <글·고순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