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 9일 저녁, 한국 민주주의사에 또 하나의 ‘사건’이 벌어졌다. 대통합민주신당의 ‘모바일 투표’가 바로 그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를 가리켜 “정보통신 혁명의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형태의 정치실험이 세계 최초로 이뤄진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하고, 또 다른 이들은 “UCC 정당과 블러그 정당 등이 기존의 선언적 구호에 그친 것에 비해 구체적이고도 현실적인 정당 정치 실험”이라고도 평한다. 교과서적으로 말한다면, 현재의 민주주의 정치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의 직접 민주정치이다. 그러나 그리스의 민주주의는 이른바 ‘시민계급’만이 참여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최소한의 기득권이라도 가진 자만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결국, 여성과 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 계층을 소외시키는 결과를 필연적으로 낳았고,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의 붕괴와 더불어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오랜 세월 동안 인류 역사에서 사라지게끔 만들었다. ■ 현장 투표율 19.6%를 뛰어넘는 경이적인 투표 참가율, 하지만… < /b> 현재의 한국 민주주의는 최소한의 법적 요건 즉, ‘만 18세 이상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우리 헌법이 보장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도 딜레마는 존재해왔다. ‘직접 투표에 의한 선거’라는 형식을 통해 완성되는 민주주의의 지속 가능한 발전 여부는 투표권을 지닌 유권자의 자발적 참여 여부에 달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투표율은 점진적으로 소폭 하락하는 추세였다. 이는 장기적으로 볼 때, ‘엘리트 정치’를 예견하게 하는 원인 중 하나였다. 하지만, 9일 저녁 대통합민주신당의 모바일 투표는 그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하나의 모범을 보여줬다. 비록 3만 명이라는 매우 제한된 선거인단을 대상으로 한 것이기는 하지만, 현장 투표율 19.6%를 넘어서는 70% 이상의 투표 참가율은 경이적인 수치다. 또한 이 수치는 지난 2004년의 17대 총선의 투표율 60.6%보다 10% 이상 높은 것이고, 그보다 전인 2002년 대선 당시의 투표율 70.8%에 육박하는 수치다. 때문에 정치권서는 벌써부터 신당의 모바일 투표를 ‘고대 그리스 직접민주주의로의 발전적 귀환’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대통합민주신당 스스로도 “휴대전화 선거는 미래 정치의 희망”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모바일 투표를 최초로 제안한 것으로 알려진 정창교 대통합민주신당 원내기획실장은 10일, “2002년 민주당 국민경선이 정치개혁의 브랜드였다면 모바일 투표는 민주주의를 확장하는 브랜드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 실장은 또 “신당 경선이 끝난 뒤 범여권 후보 단일화 과정은 물론 18대 총선 때 모바일 투표로 정당의 공천을 결정하면 유권자와 상호 소통하는 직접민주주의가 실현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 실장은 이어 “오는 11월 한국노총 조합원 선거에서도 모바일 투표 방식이 적용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유권자와의 상호 직접 소통’이라는 모바일 투표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 방식이 하나의 전례로 굳어지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먼저 ‘투표 내용이 주위 사람들에게 공개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비밀선거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있다. 또 휴대전화를 타인에게 맡길 경우 ‘대리투표 가능성’도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게다가 무선망 관리자에 의해 선거 결과가 왜곡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고, 무엇보다 큰 문제는 유권자의 투표 행위가 고스란히 정보 관리자에 의해 공개된다는 점이다. ‘유사 ARS를 통한 지지자 관리와 동원’과 같은 구태 정치의 수법이 모바일 투표에서도 재현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 참여만이 ‘1회용 정치실험’을 막는다< /b> 결국, 모바일 투표의 장점인 ‘유권자와의 직접 소통’과 ‘투표장에 갈 필요가 없이 엄지손가락 하나만으로도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치들이 필요하다. 먼저 ‘중복·대리접수’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중복·대리접수 된 휴대폰 번호의 투표 행위 금지가 그것이다. 아울러, 현재와 같이 각 대선 주자 진영에서 국민경선인단에 등록된 이들에게 마구잡이로 모바일 투표인단 참가를 권유하는 행위도 금지해야 한다.
현대 민주주의의 근간은 ‘자발적 참여’다. 그러나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 등 한나라당 소속 의원들에게까지 투표 참여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자발적 참여 촉구라기보다는 ‘무분별한 강제 동원’에 가까운 치졸한 행위로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또한 ‘노무현 대통령 명의도용 사건’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명백한 범죄행위에 대해 ‘정치적 지지에 의한 우발적 행동’이라는 주장이 존재하는 한, 모바일 투표는 대통합민주신당 만의 ‘1회용 정치 실험’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문제다. 따라서 2007년 대선에서 진보·개혁 진영이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발적 참여’ 외에는 없다. 정동영·손학규·이해찬 후보 중, 모바일 투표에서 1차적으로 승리한 이는 의외로 손학규 후보였다. 이는 그동안 정동영·이해찬 후보 측이 ‘갈 데까지 간’ 전쟁을 벌이는 동안, 손 후보 측은 그야말로 ‘발로 뛰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 후보 측 역시 ‘선전’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후보 측은 결과적으로 인터넷 게시판에서 자화자찬의 목소리만 높았을 뿐, 현장의 땀 냄새가 묻어나지 않았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이 후보 측이 그토록 자신했던 부산·경남의 지역 경선 결과를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1차 모바일 투표에서는 ‘무조건 1등’을 자신했던 것은 진영논리에 함몰됐었던 결과라는 지적이 뼈아프게 들리는 이유다. 특히 이 후보 측은 “우리가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다니는 그 시간에 그들은 인터넷에서 글만 올리면서 추천 점수나 주고 있다”는 정 후보 측 핵심 관계자의 지적을 경청해야 한다. 2000만이 넘어가는 네티즌 중, 모두 합쳐 10만 명 안팎이 오가는 몇몇 사이트에서 나오는 환호에만 취한다면, 결과는 ‘무난한 패배’ 외에는 없다는 게 여의도 정가의 공통된 의견이기도 하다.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 실험을 온 몸으로 경험하고 싶은 이들은 아직 많다. 하지만, 이들의 굽은 엄지를 곧게 펴게 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진보 혹은 개혁을 원하는 세력의 몫이다. ■ 모바일 폴더 열어보니 손학규 1위, “정확한 여론 반영된 것”< /b> 손학규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예비 후보가 대통합민주신당 경선 모바일 투표에서 기분 좋은 2연승을 내달리면서, 신당 경선은 ‘막판 대혼전’ 양상으로 접어들었다. 손 후보는 11일 실시된 2차 모바일투표에서 7만 5000명 중 5만 6211명(무효 529명 포함)이 투표에 참여한 가운데 2만 1359표(38.4%)를 얻어 1만 9288표(34.6%)에 그친 정동영 후보를 2071표 차이로 제쳤다. 이해찬 후보는 1만 5034표(27.0%)를 획득해, 3위에 그쳤다. 지역경선과 모바일 투표 결과를 합산한 누적득표수에서는 정 후보가 7만 7417표(39.7%)로 여전히 1위를 달렸다. 이어 손 후보가 1만여 표 뒤진 6만 6859표(34.2%)로 2위, 이 후보는 5만 961표(26.1%)로 3위를 기록했다. 손 후보는 지난 9일 1차 모바일 투표 1위에 이은 2연승으로 내심 ‘극적인 역전 드라마’를 기대하고 있다. 반면 모바일 투표 이전만 해도 슈퍼 4연전(광주·전남·부산·경남)을 포함 8번의 오프라인 지역경선을 싹쓸이해온 ‘정동영 대세론’은 일단 주춤한 상태다.
그동안 정 후보 측은 ‘조직동원’ 논란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지역경선·모바일투표·여론조사에서 3관왕을 차지해, 명실상부한 ‘이명박 대항마’로 우뚝 서겠다는 전략을 가져왔지만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정 후보는 누적득표에서는 여전히 1위를 기록하고 있지만 팽팽한 긴장감이 캠프 전체를 감싸고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아울러 1, 2차 모바일투표에서 3위를 기록, 선두권에서 다소 멀어진 이해찬 후보는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됐다. 결국 신당 경선의 향방은 마지막까지 가봐야 결과를 알 수 있는 예측불허의 상황으로 접어들었다. 연이은 모바일 투표에서 승기를 잡은 손 후보가 14일 ‘원샷경선’에서 대역전극의 드라마를 연출할지, 아니면 정 후보가 오프라인 지역경선의 우위를 바탕으로 수성에 성공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손 후보 측은 모바일 투표 연승으로 3차 모바일투표와 14일 원샷경선 그리고 여론조사 등에서 상당히 유리한 고지에 올라섰다고 자평하고 있다. 특히 3차 모바일 투표의 선거인단은 14만여 명 수준으로 1, 2차를 합친 규모보다 크다는 점에서 손 후보 진영은 한껏 고무돼 있는 상태다. 또한 오는 14일 원샷경선에서도 전체 선거인단 106만여 명 중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 유권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을 넘어, 경기지사 경력을 갖춘 손 후보가 강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전체 경선결과의 10%를 반영하는 여론조사에서도 ‘손풍’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는 게 손 후보 캠프의 현재 분위기다. 손 후보는 모바일 투표 결과 발표 이후 “진흙 속에 핀 연꽃을 국민 여러분께서 선사해 주셨다”며 고무된 표정이었다. 손 후보 측 우상호 대변인 역시 “(모바일 투표는) ‘조직동원’이 아닌 민심이 반영된 선거고, 역전이 거의 확실시되는 결과”라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경선파행 사태에 실망했던 수도권의 30~40대층이 적극적으로 움직이는데다가, 3위로 처진 이 후보 측 지지층의 ‘반(反)정동영’ 정서와 사표방지 심리가 손 후보의 막판 역전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는 게 우 대변인의 설명이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모바일 투표 2연패에 다소 충격을 받은 정 후보 측은 “대세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모바일 투표 패배에 위기감을 느낀 지지층이 14일 원샷경선에서 대거 결집하는 것은 물론 강세지역인 전북경선에서 압승할 것”이라는 게 그 이유다. 또한 1, 2차 투표 결과는 3% 격차의 오차범위 내 접전인 데다 누적득표에서 1만여 표 차이로 여전히 선두를 달리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덧붙인다. 이제 남은 것은 14일까지 한 차례 더 치러질 3차 모바일 투표와 14일 전국 8개 지역 동시 현장 투표다. 사실, 모바일 투표 이전만 해도 손 후보는 ‘정동영 대세론’의 거센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소 다르다. 바둑의 격언에 ‘대마불사’라는 말이 있다. ‘아생연후살타’라는 말도 있다. 전자는 현재의 정동영 후보 측에서 주장하는 내용과 흡사하고, 후자는 손학규 후보 측의 형세와 닮았다. 대마는 여간해서는 잘 잡히지 않지만, 그것이 잡히는 날에는 말 그대로 ‘돌을 던져야’ 한다. 하지만, 자신의 돌이 살아있지 않은 상황에서 상대방의 돌을 잡으러 가는 것은 자살행위일 뿐이다. ‘원조 대세론’ 손학규 후보와 ‘신 대세론’ 정동영 후보가 벌이는 반상 승부는 이제 끝내기 단계에 접어들었다. 반면 열 집 정도 정 후보가 앞서고는 있지만, ‘국보기사’ 이창호 9단은 그 정도의 차이를 끝내기로 극복하고 역전하는 모습을 바둑팬들에게 수도 없이 보여줬다. 지금은 또한 ‘초읽기’에 시달리는 형국이라는 점도 두 후보에게는 풀어야 할 과제다. 초읽기의 소리가 들리면 기사들은 누구나 착수점을 찾기가 어려워진다고 한다. 그래서 초읽기 속에서의 끝내기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바둑의 묘미를 느끼게 한다. 반면 열 집을 앞서는 정 후보가 초읽기를 견디고 현재의 상황으로 바둑을 종료할지, 아니면 침착하고 날카로운 끝내기로 손 후보가 역전에 성공할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아직 승부는 끝나지 않았다. <유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