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이어 올해도 고은 시인의 수상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던 노벨문학상은 결국 영국의 소설가 도리스 레싱에게로 돌아갔다. 스웨덴 한림원은 지난 11일 레싱의 수상 사실을 발표하며 그녀가 “분열된 문명을 비판적으로 다루면서 여성으로서의 자아를 작품에 담아낸 서사성이 뛰어난 작가”라고 수상 이유를 밝혔다. 한림원은 또 레싱의 작품 가운데 특히 1962년에 발표된 <황금 노트북>이 가장 두드러졌다고 밝혔다. 1919년 이란에서 영국인 부모 아래 태어나 영국의 식민지였던 남부 로디지아(지금의 짐바브웨)에서 성장한 레싱은 열세 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독학으로 문학을 공부했다. 열다섯 살 때 집을 떠나 타이피스트·전화 교환원 등으로 일한 그녀는 두 번의 이혼 뒤 1949년 영국에서 작품생활을 시작했다. 레싱의 작품세계는 그의 특이한 이력만큼이나 폭넓고 다양하다. 우리 문단에서는 그녀의 서술기법이나 소설 형태에 대해,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성장 소설, 모더니스트적 수법으로부터 우화, 설화, 로맨스, 공상과학 소설 등을 망라한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 “그녀의 관심사는 수피즘 같은 신비주의뿐만 아니라 정신분석학, 마르크시즘, 실존주의, 사회생물학 등과 같은 20세기의 주요한 지적 문제를 모두 포함한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녀에게는 “20세기에 영어로 소설을 쓰도록 선택받은 몇 안 되는 가장 흥미진진한 지성인 중 하나”라는 찬사를 받는 작가이기도 하다. ■ 한국의 고은 시인, 3년 연속 고배< /b> 올해 노벨문학상이 발표되기 직전까지도 우리 문단은 고은 시인으로 함축되는 한국문학이 노벨문학상이라는 ‘월계관’을 쓸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논란으로 뜨거웠다. 특히 지난 7일 영국의 베팅 전문사이트 ‘래드브록스(Ladbrokes.com)’는, “‘올해의 노벨문학상’ 베팅 결과 고은 시인이 이스라엘 소설가 아모스 오즈,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미국 소설가 조이스 캐럴 오츠, 벨기에 시인 위고 클로스 등과 함께 11 대 1의 배당률(수상 확률)로 공동 6위를 기록했다”고 공개하면서 이 논란은 더 가열됐다.
이 업체는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터키의 작가 오르한 파묵의 수상을 정확히 예측한 바 있다. 당시 고영일 한국문학번역원 사업본부장은 “작년보다 수상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본다”며 스웨덴에서 가속화되는 고은 시인의 작품 번역 움직임을 근거로 꼽았다. 현재 스웨덴에 번역돼 있는 시인의 작품은 4편(‘선시집’ ‘만인보’ ‘순간의 꽃’ ‘화엄경’)으로, 이 중 ‘순간의 꽃’과 ‘화엄경’은 지난해 노벨상 발표 이후 번역됐다. 고 본부장은 “노벨재단은 스웨덴 독자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은 작가에게 상을 주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면서 “작년보다 두 작품이나 더 번역된 지금이 어느 때보다 수상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었다. 반면 곽효환 대산문화재단 사무국장은 “작년 수상자로 터키의 오르한 파묵을 선정했다는 점에서 정치적 고려와 대륙 안배에 민감한 노벨재단이 2∼3년 내에 한국 작가를 수상자로 결정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 “분위기상 올해 수상은 어려워 보인다”고 전망했다. ■ “단편에 치중한 문단의 허약한 체질도 개선돼야” < /b> 우리 문단에는 시인 고은 씨나, 소설가 황석영·조정래·박경리 씨 등 그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할 만한 작가들이 많다. 이는 최근 일본 문학이 ‘고령화’와 ‘대작 발굴 실패’ 등으로 인해 사실상 재일한국인·조선인 작가들에게 그 중심적 지위를 내준 것과 비교해볼 때, 한국 문학이 가지는 경쟁력은 일본 문학에 비해 우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우리 문학을 세계 각지에 알리는 것은 비단 우수한 작가의 보유 여부에만 있지 않다. 우리 정부가 ‘번역 지원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지난 2001년 ‘한국문학번역원’을 설립하면서부터다. 반면 이웃나라 일본은 지난 1990년대 초부터 오에 겐자부로(노벨문학상 수상) 등의 작가의 작품에 대한 번역과 출판 등에 주력해온 것에 비해 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다. 2006년 11월을 기준으로, 해외에 번역·출간된 작품 20권을 넘긴 생존 문인은 5명에 불과하다. 소설가 이문열이 33권으로 가장 많고, 이청준(27권), 고은(25권), 황석영(23권), 박완서(20권) 순이다. 한림원이 있는 스웨덴에서 가장 많이 소개된 작가는 고은으로, 4권이 출판됐다. 2002년 <고은 시선>이 나왔고, <만인보(2005년)>, <순간의 꽃(2006년)>, <화엄경(2007년)>이 연달아 출간됐다. 이 중, <고은 시선>을 제외한 나머지 세 작품은 스웨덴 유력 출판사 ‘아틀란티스’사에서 펴냈다. <순간의 꽃>은 스웨덴 최대 일간지인 ‘다겐스 니헤테르’를 비롯한 7개 매체로부터 호평을 받기도 했다. 반면 스웨덴 출판 시장에서 이문열은 2권, 황석영은 1권만 번역됐을 뿐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국민일보>는 이러한 국가적 차원의 번역 작업에 대한 비판적 기사를 실었다. 기사는 먼저 “번역원은 그동안 정부 예산을 지원해 줄 번역 작품에 제한을 두지 않았으나 올해부터는 지정공모제를 부분적으로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고 소개하고 “이는 특정 작가의 특정 작품을 미리 정해두고 번역자를 공모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노벨상 후보 키우기 차원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번역원의 홍보담당 정진권 씨는 “해외 독자들의 관심이 젊은 작가층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면서 “원로작가를 포함해 한국문학사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작품을 반드시 소개하기 위해 지정공모제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기사는 또 “번역 작업의 비효율성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면서 “번역·출간되는 지역이 유럽에 편중돼 있었고 상대적으로 입김이 센 미국출판시장에서 인지도를 높일 경우 한국 작가의 브랜드파워를 높이는 데 효과적일 것”이라는 장은수 민음사 대표의 지적을 전하고 있다.
장 대표는 또 “단편에 치중한 문단의 허약한 체질도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외국에서는 단편을 ‘습작’으로 치부하지 문학작품으로 보지 않는다”면서 “젊은 작가들이 단편 쓰기에만 몰두한다면 한국문학은 점점 경쟁력을 잃어갈 것”이라고 최근 문단 내의 경향을 비판했다. ■ “문화예술은 1등 여부로 가치 판단할 문제 아니다” < /b> 여기에 더해 ‘노벨문학상 수상’을 향한 우리 문단과 사회의 과잉 기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문화평론가 김헌식 씨는 노벨문학상 발표 전인 지난 10월 7일 몇몇 매체에 기고한 글 “노벨문학상을 받으면 뭐가 달라질까”에서 “한국인이 지닌 ‘특유의 올림픽 정신(?)’은 문화예술계에도 어김없이 발휘되는 경향이 있다”며 “예컨대 해외에서 상을 받으면 한국인들은 1등만이 의미가 있고 2등 3등은 별로 의미가 없다고 여긴다”고 비판했다. 요 몇 년 간 노벨문학상 시즌이 돌아올 때마다 주목되는 고은 시인을 비롯한 한국인 작가의 수상 여부에 대한 사회적 관심에 대해서도 김헌식 씨는, “(한국인 작가의 수상 여부에 대한) 흥청거림의 이유야 백번 이해하지만, 한국의 노벨문학상에 대한 국가적 흥분은 타당하게만 보이지는 않는다”고 주장했다. “노벨문학상의 세계적 권위성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 뒷면으로 노벨 문학상 선정이 객관적인가에 대한 의문은 끊임없고, 수십 년 간 서구 작가에 치중해온 것이 대체적이다. 그러한 비판을 많이 받다보니 비판을 면하기 위해 대륙별로 안배하는 경향도 보인다”는 게 그 이유다. 그는 이어 “이는 노벨문학상 선정이 작품 그 자체가 아니라 다른 정치, 외교적 역학 관계도 작용한다는 의미”라며 “이러한 점 때문에 그간 많은 작가들이 작품성에 관계없이 배제되거나 뜻밖의 수혜를 입기도 했다”고 노벨문학상의 정치적 편향성을 비판했다. 김헌식 씨는, “서구 중심주의의 정치적인 안배는 노벨문학상의 한계를 그대로 드러냄에도 마치 한국에서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문학적 역량이 떨어진다고 여긴다”며 “거꾸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다고 한국의 문학적 역량이 높아진다고 볼 수는 없다. 노벨문학상을 받지 않은 것은 수치가 아니다. 흰소리로 한국은 아직 서구적 가치관에 합치하는 작품이 많지 않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노벨문학상은 상금이 엄청나게 많은 상일 뿐이며 상은 받을만한 작품이 받는다”며 “그렇기 때문에 역으로 시대적 진보성이나 새로운 창조성은 보여주지 못하고, 노벨문학상도 과거성의 작품에 대한 시상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전위적인 작가들에게는 시상이 이루어지지 않아 비판 정신이 첨예한 작가는 배제된다”는 비판이 있어온 것도 사실이다. 김헌식 씨는 “이런 탓인지 노벨문학상의 권위가 예전만 못하고 그 작품집도 판매율이 떨어진다고 한다”면서 “하지만 거꾸로 한국인들의 노벨상에 대한 집착은 국가적 민족적으로 더욱 강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노벨문학상 집착은 일본은 두 차례나 받았는데 왜 우리는 받지 못하느냐는 경쟁과 패배의식이 작용하고 있기도 하다”고 주장하고, “이번에도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하면 많은 언론들은 수많은 질타를 내놓을 것이고 국가적 차원에서 번역과 홍보, 그리고 행정체계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할 것”이라면서 “그 비판이 전적으로 틀린 것은 아니지만, 문화예술은 올림픽 경기도 아닐 뿐만 아니라 1등 여부로 가치를 부여할 문제도 아니다”고 말했다. <유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