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트가 자체 브랜드 상품인 ‘PL(Private Label)’ 제품들을 대대적으로 강화해 업계 전체에 가격 인하를 유도하겠다고 선언하기 전에 지난달 ‘가격할인 경쟁’을 지양하겠다는 연막을 피워 의혹을 사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런 신세계의 이중적 태도에 대해 경쟁업체들과 제조업체들을 주도해 확실한 1위를 굳히겠다는 전략으로 보고 있다. 이마트는 지난 16일 기존 ‘NB(National Brand·제조업체 브랜드)’ 중심의 상품 운영에서 PL 중심의 상품 운영으로 전략을 변경하겠다고 선언했다. 동급 품질의 기존 제품에 비해 20~40% 싼 상품을 자체 개발해 판매하겠다는 게 핵심. 이마트는 지난해 전체 매출액의 9.7%에 해당하는 9200억 원 어치의 PL상품을 판매했지만 2010년에는 23%인 2조4000억 원까지 늘리고 2017년에는 30%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PL상품을 NB 1위 브랜드 상품과 나란히 진열해 NB상품의 가격 인하를 유도한다는 구상도 밝혔다. 최근 정재은 신세계 명예회장이 “국내 물가가 뉴욕·도쿄 등에 비해 너무 높기 때문에 유통업계가 주도적으로 가격혁명을 이뤄야 한다”고 밝힌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나왔다. ■ 이마트의 PL 제품 공세의 배경 < /b> 이마트가 PL 제품을 앞세워 공세를 펴는 배경에는 국내 유통업계가 포화 상태에 근접했다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최근 몇년간 매출액 증가세가 크게 둔화되자 대형 할인점 업계는 PL상품 강화와 외국 브랜드 직수입, 해외 구매 대행 서비스 등으로 활로를 모색해왔다. PL제품은 중간 유통 과정을 줄이거나 없애 가격을 낮추는 동시에 시장 지배력을 높이겠다는 의도가 담겨져 있다. 이왕 PL제품을 내놓을 바에는 타사와의 경쟁에서 뒤지지 않는데서 만족하지 않고 오히려 선도하겠다는 게 이마트의 구상이다. 시장의 가격 결정 주도권을 제조업체가 아닌 유통업계가 틀어쥐겠다는 의도도 깔려 있다. 월마트 등 대형 할인점이 가격 결정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의 상황이 한국에서도 현실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한편 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은 이마트의 가격파괴 선포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가격인하 부담의 전가나 중소 유통업체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예의주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은 18일 오전 평화방송 라디오 프로그램과 가진 인터뷰에서 “제품을 싸게 공급하는 것은 소비자에게 좋지만 그 부담이 제조업체에 전가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있고 경쟁관계에 있는 중소 유통업체가 살아남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면서 “이런 파생적인 우려 사항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지 예의주시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대형유통업 분야 전체의 공정거래질서 확립에 관한 연구를 진행중인데 대형유통업체와 제조업체 간 관계의 연구는 거의 끝났고 중소유통업체와 관계 부분을 보완해서 대형유통업체의 경쟁력 제고방안을 조만간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권 위원장은 또 최근 가격남용 규제를 둘러싼 재계의 우려에 대해 “독과점 사업자의 가격남용을 감시하겠다는 것이며 기업의 가격책정을 규제할 생각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권 위원장은 “가격은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되 독점이 고착된 폐해 중 가격이 국제가격이나 경쟁이 있을 때보다 너무 높으면 이를 시정하겠다는 것”이라면서 “시장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면 손 댈 생각이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 할인점 업계와 제조업체의 반응 < /b> 할인점 업계의 시선은 복잡하다. 당장 큰 파장을 몰고올 것으로는 보지 않고 있지만 외면할 수도 없는 것이 사실. 향후 시장 반응을 살펴보면서 대응책을 마련하겠다는 조심스런 반응이다. 제조업체들도 이마트의 가격 공세를 주시하겠지만 즉각적인 가격 혁명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삼성테스코 윤수한 대리는 “PL제품 확대는 이미 업체들이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홈플러스는 지난해 PL제품 매출이 전체 매출액의 18%에 달했고 올해는 2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품목도 4300여개에 달한다”면서 “상황을 보고 대처 방안을 마련하겠으나 즉각적인 대응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GS리테일 서일호 대리는 “GS리테일의 경우 90년대 후반부터 ‘함박웃음’ 등 자체 브랜드로 PL제품을 내놓았다. PL 제품의 매출액 비중이 아직 10%를 밑돌고 있지만 2010년에는 20%까지 오를 것”이라면서 “그러나 싸다고 반드시 좋은 것도 아니다. 업체들은 가격으로 소구할지 품질로 승부할지에 대해 제품군 별로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며 가격에만 초점을 맞추는 데에는 회의적인 시각을 보였다.
상당수 제조업체들도 당장 큰 타격을 받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롯데제과 홍보팀 문영태 차장은 “PL제품의 품질이 일반 제품에 비해 떨어지는 것 같다. 싼 만큼 품질이 떨어진다. 유통업체가 PL 제품을 내놓는다고 해서 모든 제조업체들이 따라서 가격을 인하하지는 않을 것이다. 유통업계가 NB제품을 판매대에서 없앨 경우 소비자들에게 구색이 다양하지 않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유통업계의 PL제품 양산으로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가공식품업체나 생활용품업체들의 경우 향후 유통업계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는 구도가 심화되고 가격인하 압박을 받게 될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 유통업계를 삼키는 이마트< /b> 동네 구멍가게가 사라지고 있다. 그 이유는 이마트 같은 대형 유통업체들 때문이다. 이 실태를 잘 설명해 준 글이 있어 여기에 소개하면서 기사의 말미를 대신 하고자 한다. CNB뉴스의 네티즌 광장에 올라온 O님의 글을 옮겨본다. 다음은 전문. “제가 알고 있는 한 구멍가게 주인은 요즘 울상을 짓고 있습니다. 가게의 매상이 너무 형편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성실하고 착하게 사시는 부부인데 장사와 성품과는 상관이 없으니 어려울 수밖에 없는 형편입니다. 그 가게 옆에는 산부인과 하나와 정형외과가 있었고 그 덕분에 그나마 숨을 쉴 수 있었는데 최근엔 병원들조차 손님들이 없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버티다 못한 가게 주인은 마침내 가게를 내놓을 생각을 하게 되었고 처음 들어올 때 냈던 권리금을 대폭 줄여서 벼룩시장 등에 광고를 냈건만 찾아오는 사람들도 거의 없고, 간혹 찾아오는 사람들마저 그냥 발걸음을 돌린다고 하소연을 합니다. 장사가 안 되다 보니 월세를 제대로 내지 못하고 그 덕분에 보증금마저 사라져가고 있다며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그 구멍가게가 그렇게 어려워진 데는 양 옆의 병원이 어려워진 탓도 있지만 그 이상의 요인도 있습니다. 바로 대형 매장들의 등장입니다. 요즘 웬만한 사람들은 차를 가지고 있고 그 차를 몰아 대형매장에 가서 한꺼번에 많은 물건들을 구입해오다 보니 점점 구멍가게에는 발을 들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밤중에 아주 급할 때가 아니면 구멍가게보다 물건값이 싼 대형매장을 활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그 구멍가게에서 차를 몰고 나가면 10분 내 거리에 대형 매장들이 여러 개 나타납니다. 시흥 대로변에 있는 홈플러스, 시흥대로변에서 옆으로 조금 꺾어 들어가면 나오는 롯데마트, 그리고 늘 사람들이 가득한 이마트까지 자리 잡고 있는 것입니다. 제 아내만 해도 생필품들을 살 때 이마트를 주로 활용하는데 그곳은 사람이 비어있을 때가 거의 없을 만큼 장사가 잘 됩니다. 최근 이마트에서는 가격혁명을 이룬다고 합니다. 그 동안은 기존 제조회사 브랜드 중심의 상품을 중심으로 운영했는데 이제 자사 브랜드 중심의 상품을 중심으로 운영하면서 상품 가격을 20%에서 최대 40%까지 저렴하게 판매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실 지금도 이마트 자체에서 만든 제품들이 종종 눈에 보이는데 이제는 그런 제품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새로 출시하는 자사 브랜드 상품(PL상품)은 청과·야채부터 가전·생활용품에 이르는 총 6개 브랜드로, fresh(프레쉬), BESTSELECT(베스트셀렉트), E·MART(이마트), happy choice(해피쵸이스), loving home(러빙홈), Plusmate(플러스메이트) 등 약 3천여 품목이라고 하는데 그 규모가 참으로 어마어마합니다. 유통업을 장악하고 있는 이마트이니 만큼 그 파급효과가 대단할 것입니다. 사실 소비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마트의 그런 정책은 환영할만 합니다. 중간 마진 등이 많이 줄어들어 적은 돈으로 동일한 품질의 제품을 살 수 있으니 이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단 돈 몇 백 원이나 몇 십 원 차이가 나도 그 만큼의 돈을 아끼기 위해 움직이는 소비자들에게 더 많은 돈을 절약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니 반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그런 이마트의 정책을 환영할 수는 없습니다. 먼저 기존 브랜드의 상품을 만드는 회사들이 타격을 입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어차피 이마트에 납품하면서부터 초대형 유통구조를 자랑하는 이마트에 허리를 숙일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이제는 허리를 숙여도 매장 자리를 얻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입니다. 설혹 자리를 얻는다고 해도 가격 면에서 경쟁력을 잃기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가장 많이 신경 쓰는 부분은 이마트의 영향력권 안에 있는 소규모의 가게들입니다. 이미 받은 피해에다 더 많은 피해가 발생할 것이 뻔한데 가게를 접을 수도 없는 상황에 놓일 때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은 제가 알고 있는 구멍가게 주인의 한탄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닙니다. 이전부터 대형매장에 의한 소형 상점의 황폐화는 있어왔고 이제 그 범위가 더 커진 것이니까요. 우리나라는 분명 자본주의 사회입니다. 자유 경쟁을 막을 수 없고 막아서도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영세업자들도 살아남을 수 있는 방안이 준비되지 않는다면 대형매장에 잡아먹힌 자영업자들은 졸지에 실업자들이 될 수밖에 없고 빈익빈부익부라는 사회병리현상은 점점 가속화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작은 상점이나 재래시장 등을 활용하는 모습들도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떤 지방에서는 시장을 비롯한 공무원들이 일부러 재래시장을 이용한다고 합니다. 시청의 직원들이 꽤 많은데다가 그들의 가족이나 연결된 사람들이 함께 참여한다는 말도 들었는데 재래시장의 활성화에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떤 도시에서도 구멍가게 활성화를 위해 움직이는 곳은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씩 둘씩 사라져가는 구멍가게들의 현실을 보면서 서민들의 운명을 보는듯해 마음이 서글퍼집니다” <조창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