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이라크 자이툰 부대 파병 연장을 하기로 해 대국민 약속인 연내철군 약속을 또다시 깨뜨렸다. 노 대통령은 대국민담화를 통해 “정부가 지난해 한 약속과 다른 제안을 드리게 된 점에 관해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지금은 6자회담이 성공적 결실을 맺어가는 국면에 있으며 남북관계가 새로운 단계에 들어서고, 북미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이 진행중이다. 한반도 평화체제와 동북아 다자안보협력도 논의되고 있다. 이 모두가 미국의 참여와 협력 없이는 좋은 결과를 얻기 어려운 일들”이라면서 “그 어느 때보다 한미 간의 긴밀한 공조가 절실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파병연장 반대여론이 거센 상황에서 항상 국민여론을 우선해온 노 대통령이 스스로 했던 대 국민약속을 깨고 사과하면서까지 명분없는 파병연장을 결정한 것은 남북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과의 관계를 지나치게 의식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참여정부 내내 북핵문제 해결과 국익을 빌미로 잇따른 파병 강행과 증파를 해온 데 이어 이번 역시 철군 약속 파기의 배경에 한미공조를 내세워 한반도 문제에서 미국에 너무 끌려다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적지않다. 한국이 대미관계에서 자주적이고 대등한 관계를 통해 북한문제를 돌파하기 보다는 저자세 외교태도를 보여 미국이 대북문제를 이용해 한국을 이용할 여지를 열어놓아 차기 정부마저도 이런 ‘저자세’외교에서 벗어나기 어렵도록 고착화시켰다는 평가다. 노 대통령은 임기 중 북한의 핵보유 선언과 핵실험으로 이어지며 악화일로를 걷다가 2·13합의 등으로 평화적·외교적 해결과 한반도 냉전종식을 위한 국제사회의 공감대가 무르익고 있는 한반도 주변 상황에서 미국이 가장 핵심적인 상수로 자리잡고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북핵문제가 한반도 안전의 직접 변수이지만 그 본질은 북미 간 문제라는 점에서 미국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판단 아래 대미관계를 최우선 고려한 것이다. 노 대통령이 한미공조를 강조한 것은 남북정상 회담 합의 실현을 위해 제2개성공단 개발이나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등 남북경제공동체 구상 실현을 위해서는 대북 전략물자 반입에서 북미관계 정상화까지 이르기 위해서는 미국의 도움이 절실하고 이라크 파병을 지렛대 삼겠다는 것. 사실 주한미군 재배치, 용산기지 이전,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등은 모두 미국의 이라크 파병이 중요한 지렛대 역할을 했다. 하지만 파병연장 추진은 무엇보다 대 국민 약속을 어긴 것이어서 연말 대선에도 크든 작든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노 대통령은 취임 초 이라크 파병을 강god할 당시 상당한 지지층 이탈을 경험한 바 있다. 당장 국회 동의를 얻는 과정에서 통합신당과 민노당 등이 당론으로 반대입장을 정한 상태여서 동의안 처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만큼 청와대 내에서도 국내 정치여건을 고려해 파병연장 반대 의견이 적지않았고 노 대통령도 적지않은 고심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 대통령 스스로 ‘죄송하다’고 인정해야할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병력을 반으로 줄일 경우 작전 효과가 떨어진다는 군 내부의 의견에도 불구하고 병력을 절반으로 줄이는 노력도 보인 것이다. 노 대통령으로서는 겉으로는 대국민 약속인 연내철군을 이행하는 모습도 취하면서 한편으로는 미국 측의 요구에 부응하는 모습도 취하는 효과를 노린 측면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회에서 파병동의안 처리가 부결되더라도 부시행정부의 파병요청에 최선을 다한 것으로 비쳐지고 국민과 국회설득 노력 자체 역시 미국에 보여주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미국은 북핵 카드로 한국 이용 = 노 대통령은 미국정부가 참여정부의 대미관에 의심을 하고 미국내 강경파를 중심으로 한 북한폭격설이 나돌 때 대북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지향하는 현 정부로부터 파병결정을 끌어내기 위한 사실상 조건으로 내걸어 국익을 챙겨왔다. 노 대통령은 제2의 북핵위기로 미국 조야에서 북폭설이 나돌 즈음인 2003년 5월 조지 부시 미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의 요청대로 이라크에 서희·제마 부대 파병을 결정했다. 당시 노 대통령은 “명분을 앞세워 한미관계를 갈등으로 몰아가는 것보다 우호관계와 동맹의 도리를 존중, 어려울 때 미국을 도와주고 한미관계를 돈독히 하는 게 북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고 부시 대통령은 “평화적 수단으로 북핵을 해결하겠다”고 대답했다. 노 대통령은 또 그 해 10월 두번째 한미정상회담을 불과 이틀 앞두고 국내 반발여론에도 불구하고 역시 미국의 추가 파병요청에 화답하는 대가로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미국은 북한을 침공할 의사가 없다”는 중대 발언을 이끌어냈다. <이철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