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삼성은 젊은이들에게 매력을 주는 기업, 국민에게 긍지를 주는 기업이라는 위상을 갖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도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러나 과연 삼성이 그 명성에 걸 맞는 역할을 하고 있는지, 삼성은 깊이 반성해야 합니다.” “삼성이라는 기업과 삼성그룹의 운영권을 쥐고 있는 소수의 지배자들을 우리는 구분해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삼성의 소수 지배자들은 기업의 이익을 사유화하고 기업의 운영을 장악하기 위하여 불법·편법·탈법적 방법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 삼성공화국 실체 드러나나< /b> 삼성 비자금 의혹이 김용철 삼성 전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변호사)의 양심선언을 통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지난달 29일 1차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내용은 불법 비자금 계좌의 존재에 그치지만, 5일 열리는 기자회견에서는 이건희 회장을 비롯한 삼성 고위간부들의 개입과 지시 여부도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삼성-정치권력-사법권력-언론권력’이 삼성의 비자금으로 단단하게 묶인 ‘삼성공화국’의 실체가 세상에 드러나올 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지난달 29일 서울 제기동 성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용철 삼성 전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이 자신도 모르게 개설된 우리은행의 계좌에 50억 원대로 추정되는 현금과 주식이 들어 있었다”며 “이는 삼성이 불법으로 조성한 비자금이라는 양심선언을 했다”고 밝혔다. 사제단은 “김용철 변호사의 2006년 금융소득 종합과세 납부실적에 따르면 1억8천여 만 원의 이자 소득이 발생했는데, 연이율 4.5%로 계산하면 예금액은 50억원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삼성이 김용철 변호사의 개인 계좌를 이용해 50억 원대 불법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것이다. 사제단은 “해당계좌는 김 변호사가 지난 19일 모 은행에 확인해보면서 존재가 드러났지만 ‘보안계좌’로 분류돼 계좌번호 조회가 불가능했다”며 “같은 달 24일 다시 조회해 봤지만 이때는 계좌 존재 여부도 확인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김인국 신부는 ‘김용철 변호사 명의의 개인계좌를 조회하는 것이 불가능했다고 하는데 이런 것이 가능한가’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공개 가능성을 차단한 삼성에 의도를 물어야 한다. 이것이 삼성의 힘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사제단은 “올해는 민주항쟁 20주년이 되는 해로, 20년 전 박종철군의 죽음을 알렸던 사제단은 오늘 하느님의 명으로 대한민국의 경제 민주주의가 진전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심정”이라며 “삼성과 검찰, 국세청이 저마다 본분을 다하도록 쇄신과 변화를 일으키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 언론, 꼬리 내린 강아지 꼴< /b> 삼성과 권력의 관계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주어졌지만, 검찰과 언론의 태도는 여전히 소극적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기자협회는 “정부의 브리핑룸 통폐합에 ‘언론자유 침해’라고 목소리를 높였던 몇몇 언론사들이 경제권력 앞에서는 꼬리 내린 강아지 꼴을 보이고 있다”며 “해도 해도 너무 한다”고 밝혔다. 기자협회는 이어 “이번 사건은 ‘세게’ 취재하고 ‘크게’ 보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언론노조도 ‘언론은 삼성 가족을 자처하는가’라는 성명에서 “대부분의 언론사는 이번 사건을 축소 보도하기에 급급했고, 김 변호사-삼성 간의 공방 수준으로 보도하며 본질을 호도했다”고 비판했다. 언론노조는 “정치권력에는 막말까지 쏟아내던 언론이 삼성을 향해서는 입을 쏙 닫은 처사를 국민은 이해하지 못 한다”고 꼬집었다. 한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회장 백승헌)은 1일 논평을 통해, “누구보다 앞서 이 사건의 실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즉각 실시하여 밝혀야 할 검찰과 금융감독기관이 아직까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에 격노할 수밖에 없다”며 검찰의 소극적인 태도를 비판했다. 이에 민변은 “스스로 신뢰의 위기를 자초한 검찰에 수사를 맡기기 보다 특검을 통해 진상을 밝힐 것을 요구한다”며 국회 등 관련기관의 즉각적인 논의를 요구했다. 민변은 또 “검찰은 물론 금융실명제법 위반을 조사해야 마땅할 금융감독기관은 신중론을 핑계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고, 상당수 언론은 때 아닌 ‘기업 경쟁력’을 들먹이며 이 문제를 덮으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민변은 “이미 당사자의 구체적인 진술과 계좌의 존재가 밝혀진 이상, 그 자체로 금융관계법이나 형법의 제 규정 등을 위반한 것임이 확실하며, 구체적 조사가 시작되어야 하는 단서가 된다”고 강조했다. 민변은 “우리는 이러한 수사·금융 감독기관의 소극적 태도가, 그동안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 발행사건, 소위 X-파일 사건 등에서 이들 기관이 보여 온 소극적 태도의 연장선에 있다”고 지적하며 “국민들은 이러한 행태를 더 이상 두고 보지 않을 것임을 엄중히 경고한다”고 덧붙였다. 정상명 검찰총장은 31일 국회 법사위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의 삼성비자금 관련 질문에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서울중앙지검과 함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관련 자료의 신빙성 유무를 철저히 검토해 수사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삼성공화국의 ‘실체적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김인국 신부 일문일답< /b> -김 변호사는 왜 참석하지 않았나? “사제단의 기자회견이라서 굳이 (김 변호사가) 올 이유가 없었다” -김 변호사가 다른 문건도 제시했나? “양심선언문을 작성했지만, 본인의 의지에 따라서 이 사태를 수용해 나가는 삼성의 태도와 검찰의 쇄신 노력을 지켜보면서 발표의 필요가 정해질 것이다. (이후 사제단은 5일 2차 기자회견 열 것이라고 발표했다)” -은행계좌를 김 변호사가 제출했나? “그렇다” -추가로 좀 더 나올 얘기가 더 있나? “그렇다” -김 변호사가 삼성을 퇴직한 지 3년이 지났는데, 비자금 관리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유지된 이유는? “그 점에서는 본인(김 변호사)도 놀랐다. 자신도 모르게 이런 일이 벌어져서 놀랐다” -그 돈이 제3자 개인의 돈인지 회사의 돈인지 어떻게 아는가? “개인이 회사의 임직원이었던 사람의 명의를 빌려 그런 일을 벌인다고 상상하기 어렵다. 액수를 비추어 볼 때도 개인의 것이라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다” -개인계좌 조회 불가라는데 방법이 없는가? “공개가능성을 차단한 삼성에 의도를 물어야 한다” -개인 명의를 제3자가 차단할 수 있나? “그것이 삼성의 힘이다” -삼성 주식이 26억이라는데, 시가인가? “계좌의 자세한 내용은 여러분이 해석하기 바란다” -검찰에 고소고발은 하는가? ‘범국민대책위원회 구성에 따라 이루어질 것이다. 삼성과 검찰의 태도에 따라 고소고발이 결정될 것이다” -태도 여하에 따라 고소고발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인가? “그렇다” <오재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