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외국어고등학교의 입학시험 문제 유출 수사가 경기도 9개 외고로 확대되면서 특목고와 입시학원 간 검은 뒷거래 의혹이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있다. 전국적으로 불고 있는 특목고 열풍과 입시학원들의 치열한 경쟁을 고려할 때 외고의 시험문제 유출이 여러 학교에서 수년에 걸쳐 관행적으로 이뤄졌을 가능성이 속속 제기되고 있다. 12일 서울시내 학원가에서는 외고 등 특목고와 입시학원 간 유착관계에 관한 증언과 의혹들이 쏟아져나왔다. 학생들은 인터넷 사이트 등에 올린 글에서 “입시학원은 외고 합격률을 높이고, 외고는 지원자를 늘리기 위해 서로 문제지를 주고받는다. 외고 입학이 실력보다는 학원의 정보력으로 결정되는게 아니냐”며 불만을 터뜨렸다.
■ 외고-학원 간 커넥션 주장 잇따라 서울의 한 외고입시 학원에 다니는 박모(15)군은 “최근 학원 선생님으로부터 경기도의 한 외고에서 사람이 와서 우리 학원 문제지를 가져갔다는 말을 들었다”며 “서울쪽의 외고에서도 (입시문제에 대한) 정보를 줄테니 지원하라고 했다고 말씀하셔서 솔직히 많이 놀랐다”고 말했다. 한 입시학원 관계자는 “대형 학원들이 외고 관계자와 친밀한 관계를 맺으려 노력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당연한 일”이라며 “김포외고에서 문제를 빼낸 J학원과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학원들도 문제 빼내기를 시도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특정 학원이 매년 순수한 로비 자금으로만 수천만 원씩 쓰고 있다는 소문이 학원가에 돌고 있다고 전했다. 포털 사이트와 교육청 및 경기도 외고의 인터넷 홈페이지 등에는 자신이 시험을 본 외고에서도 문제가 유출됐다는 글이 줄을 이었다. 아이디 ‘ldeun92’는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 올린 글에서 “김포외고 유출 문제 중에 내가 시험친 외고의 문제와 똑같은 게 있다”며 “3년 동안 열심히 공부했는데 허무하기만 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경기도교육청 홈페이지에는 “H학원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여러 외고에서 나온 수학 문제들이 자기네들이 유사하나마 적중시킨 문제들과 함께 나열돼 있다” “K외고 특별전형에서는 같은 학원 아이들끼리 뭉쳐 있었는데 커닝을 해도 아무 말 안했다”는 등의 글이 올랐다. 특목고 입시 대비로 유명한 서울지역 모 학원 강사가 13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외고와 학원 간의 ‘검은 커넥션’은 가히 충격적이다. 이 강사는 외고와 학원이 상호 이해 관계가 맞다보니 인맥과 금전을 통한 사전 문제 유출과 금품수수의 유착 관계가 이미 수년 전에 형성돼 이어져 왔다고 증언했다. 특목고 입시철이 되면 학원은 학원생을 외고에 많이 합격시켜 ‘이름값’을 올리고 학교는 다른 외고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수한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해 학원이 내민 ‘검은손’을 잡는다는 것이다. 학원은 ‘이름값’을 올려 다른 학원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학원생들의 합격률을 높이는데 혈안이 돼 있기 때문에 인맥·학맥·지연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학교에 접근한다. 일단 시험문제 유출 가능성 여부를 따지지 않고 대부분의 외고에 로비를 시도하며 학교의 입시홍보 담당 교사나 부장급 교사에게 접근, 상호 신뢰관계를 쌓아간다고 이 강사는 전했다. 무턱대고 금전을 건넨다고 로비에 성공하지는 못하기 때문에 평소 신뢰관계를 쌓아가기 위해 학교 행사에 도움을 주거나 이해 관계가 있는 교사가 해외에 나갈 때 금전적 도움을 주는 형식이다. 이처럼 신뢰 관계가 쌓이다보면 결국 시험 문제 유출이 가능해진다며 이 강사는 “학원 중에는 시험 문제를 왕창 사오기도 한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학교가 학원이 내민 ‘검은손’을 잡는 것은 우수한 학생들이 자신의 학교에 대거 지원하도록 유도, 학교의 지원 경쟁률을 높이고 이를 학교의 대외 이미지 향상에 활용하기 위해서라는 게 이 강사의 설명이다. 일부 학교가 종종 의도적으로 문제를 유출해 좋은 학생을 유치하다 보니까 다른 학교들도 그저 손놓고 바라볼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되고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비슷한 수법(문제 유출)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신생 학교나 전반적으로 다른 학교보다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소문이 나는 학교는 학교 이름을 빠른 시간 내에 알리고 홍보하기 위해 이런 유혹에 더 쉽게 빠질 수밖에 없다. 학교와 학원 간 유착 관계가 이같이 실타래처럼 얽히면서 시험문제 유출 자체가 고착화되고 학교나 학원이나 ‘깊은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는 게 이 강사의 설명이다. 서로의 이해가 맞아 떨어져 문제를 유출하더라도 이번 김포외고 사태처럼 직접 문제를 건네는 것은 ‘하수’의 수법이라고 이 강사는 평가했다. 학교에서 시험문제를 유출하더라도 문제 자체를 그대로 제공하지 않고 비슷한 유형의 문제를 숫자만 약간 바꾸는 방식으로 사실상 문제를 학원 측에 건네는 식이다. 또 여러 문제를 건네주면서 거의 똑같은 문제를 한두 문제 끼워주거나 시험을 앞둔 시점에서 시험에 출제되는 것과 비슷한 유형의 문제를 재차 강조하는 식으로 암시를 준다는 것이다. 일부 학원들은 시험이 끝난 뒤 평소 강조한 문제와 실제 시험에 출제된 문제를 비교해 가며 ‘높은 적중률’을 강조하곤 한다. 문제를 이메일로 보낼 때도 자신의 이메일로 보내지 않고 다른 사람의 이메일을 사용해 문제가 불거져도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다’는 식으로 넘어가도록 ‘안전장치’를 두기도 한다고 이 강사는 덧붙였다. ■ 교육부, “김포외고 지정 취소 검토” 교육부는 이날 서남수 차관 주재로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김포외고 사태는 고교 입시 전형의 근간을 흔드는 매우 심각한 사안”이라며 엄정 대처키로 했다. 교육부는 입장발표문을 통해 “도교육청이 학교 관계자 문책, 김포외고의 특목고 지정 취소 등 다각적인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교육청 조치를 지켜본 뒤 미진할 경우 교육부가 특별감사를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교육부는 지난달 29일 발표한 특목고 개선 대책의 연장선상에서 외고 입시 및 입시 관리체제에 대한 현황 및 문제점을 면밀히 검토할 방침이다. ■ 교육청-교육부 ‘폭탄 돌리기’의혹 확산 불구 대책 서로 떠넘기기 급급. “경찰청 조사 결과에 따라 새로운 상황이 나온다면 대책은 바뀔 수 있다”(경기도교육청) “경기교육청에서 대책을 내놓기 전까지는 어떤 움직임도 없을 것이다”(교육인적자원부) 김포외고 입시문제 유출사건이 다른 외고에까지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주무부처인 경기교육청·교육부는 ‘폭탄 돌리기’에 여념이 없다. 교육청은 경찰청 조사 결과에 따라, 교육부는 교육청 대책 발표 이후 행동에 나서겠다며 대응을 미뤘다. 의혹은 점점 커지고 있는데, 뚜렷한 대응책이 나오지 않아 학생·학부모의 불안만 커지고 있다. 14일 경기교육청 관계자는 “일반계고 입학전형에 차질이 없도록 일반고 원서 마감일인 오는 20일 이전에 대책을 내놓겠다”면서도 “경찰청 조사로 새로운 상황이 나타난다면 대책을 보강, 보완해야할 것”이라며 유동적인 입장을 밝혔다. 교육부 관계자 역시 “외고·학원 문제는 경찰 수사에서 다뤄져야 할 부분”이라면서 “관할청인 경기교육청이 외고 입시를 어떻게 하겠다는 것을 결정해줘야 하는데 아직 아무 조치도 안 했기 때문에 (교육부가) 지금 당장 나설 수는 없다”고 한발 뺐다. 경기교육청이 오늘 20일 김포외고 등 경기지역 외고 재시험 관련 대책을 발표한다 해도 사실상 시간적 여유가 없다. 교육청은 “일반고 마감과 재시험 일정이 겹치는 문제에 대한 해법은 궁리 중”이라면서 확답을 피했다. 이런 가운데 외고·학원 간 검은 커넥션은 시간이 지날수록 의혹만 부풀고 있다. 김포외고에 합격한 서울 목동종로M학원 학생이 47명을 넘는다는 주장과 서울·경기권 다른 외고가 학원과 결탁해 문제를 관행적으로 유출해 왔다는 증언이 나왔다. 김포외고 일반전형 응시생의 학부모라고 밝힌 한 네티즌(ID ra********)은 “교육부는 부정을 저지른 학원과 김포외고, 그리고 사실로 드러날 경우를 가정한 것이지만 여타의 외고에 대해 어떻게 책임을 물을 것인지 밝혀달라”고 미온적인 대처를 성토했다. ■ 외국어고 열풍의 그늘…외고와 학원의 부적절한 ‘공생’ 파행 운영을 둘러싼 여러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특수목적고 열풍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오히려 전환기에 접어든 사교육 시장을 이끄는 게 바로 특목고 전문학원들이라는 분석까지 나온다. 일부 외국어고와 전문학원의 유착, 외고 입시경쟁 과열 등 왜곡된 행태도 여전하다. 교육부가 올해 초 외고 실태조사와 입시개선안 발표 등을 통해 특목고의 문제점을 해소하겠다고 밝혔지만 현장의 반응은 차갑다. 지난 1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그랜드볼룸에서는 특목고 전문학원으로 유명한 ㅍ 학원의 2008학년도 외국어고등학교 입시 설명회가 열리고 있었다. 요즘 가장 잘나가는 특목고 전문학원답게 청중석 500여 석이 중학생 학부모들로 가득 찼다. 이날 설명회에 연사로 등장한 사람은 지난해 최고의 입시경쟁률을 자랑했던 경기지역 ㅁ 외고의 현직 수학교사이자 교무부장인 전아무개 씨였다. 전 씨는 “외고 입시는 결국 영어와 창의·사고력에서 결판난다” “평준화 교육 실패로 특목고가 뜨고 있는 거 아니냐” “올해 교육부에서 수리력 문제를 금지했으니까 추론적 문제가 나올 것이다”는 등의 내용으로 40여 분 동안 열성적인 강의를 펼쳤다. 학부모들은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부지런히 받아적었다. 현직 교사의 학원 주최 입시설명회 참석은 교육부에서 금지하는 사항이다. 교육부는 지난달 7일 외국어고 운영실태 점검(지난해 11~12월 실시) 결과를 발표하면서 ‘부적정 사례’의 하나로 이를 꼽고 앞으로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교육부의 지침이 휴짓조각이 되고 있는 것이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특목고 시장 특목고 준비생이 늘어나면서 특목고 시장은 최근 학원업계의 ‘블루오션’으로 떠오르고 있다. 전국적으로 ‘특목고 전문’을 표방하는 학원은 40여 개가 넘는다. 이런 학원들 중에는 프랜차이즈 형태로 전국에 지점을 개설한 학원들도 있다. 중학생 대상 일반 학원들도 앞다퉈 ‘특목반’을 개설하고 있다. 두달 전 수도권에서 특목고 전문학원을 개원한 한아무개(47)씨는 “평준화가 없어지지 않는 한 특목고 시장은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역설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서울 대치동에서 소규모 어학원을 운영하는 임아무개 씨는 “특목고 전문을 표방해야 학원도 더 클 것 같고 돈도 더 벌 것 같은데 입시 영어를 가르치기 싫어 아직 전환하지 않고 있다”며 “학원들로서는 특목고반이 없으면 웬지 실력이 없는 것처럼 보여 개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교육 관련 중견기업들도 속속 뛰어들고 있다. 대교는 지난해 6월 특목고 전문학원인 페르마를 인수한 뒤 ‘공부와락’이라는 특목고 전문 인터넷강의 사이트를 개설했다. 유웨이중앙교육도 지난 7일 특목고 전문 사이트인 유웨이엠(M)을 만들었다. 시장이 커지는 데는 특목고 준비 연령이 낮아지고 있는 것도 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른바 ‘영재교육’을 표방하고 있는 초등학생 대상 학원들은 실제로는 특목고 입시의 ‘예비반’ 구실을 하고 있다. ‘영재교육 학원 → 교육청이나 대학에서 부설한 영재교육원 → 특목고 전문학원 → 외고나 과학고’가 일종의 ‘코스’로 굳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임미자 부장은 “지난해 10월 외고 입시가 끝난 뒤에도 12월에 보는 영재교육원 시험 때문에 학부모들의 질문이 끊이지 않았다”며 “스터디매니아 회원도 중학생보다 오히려 초등학생 부모가 더 많다”고 말했다.
■‘어학영재’ 어불성설…외고 존폐 근본검토 필요 외국어고 정책의 난맥상 김진표 전 교육부총리는 지난해 6월 사의를 표명하는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외국어고 정책은 이미 10년 전에 정책 전환이 이뤄졌어야 하는 잘못된 정책”이라고 밝혔다. 교육부가 최근 벌인 외국어고 실태 조사와 입시 개선안 발표 등도 이런 인식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러나 외국어고가 ‘명문대로 가는 징검다리’로 굳게 자리잡은 마당에 교육부의 대책은 ‘사후 약방문’일 수 밖에 없으며, 이참에 외국어고가 더이상 존재할 필요가 있는지를 포함해 좀더 근본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용일 한국해양대 교수(교육학)는 “외국어고는 애초부터 교육을 통해 특권적인 지위를 보장받으려는 사람들의 요구를 잘못 수용해 만들어진 학교”라며 “과학이나 예술 분야라면 모를까 외국어 영재라는 게 가당키나 한 말이냐”고 꼬집었다. 외국어고는 1992년 교육부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상의 특수목적고 범주에 ‘어학영재 양성을 위한 외국어계열 학교’를 추가하면서 탄생했다. 이에 따라 기존의 외국어학교가 특목고로 전환하거나 새로운 외국어고들이 설립되기 시작했다. 예술고와 체육고도 함께 특목고로 지정됐다. 과학고는 87년부터 특목고로 지정돼왔고, 공업·농업·수산업·해양계열 학교들은 그 이전부터 특목고로 존재해 왔다. 현재 특목고는 130여 곳에 이른다. 특목고 가운데 유독 외국어고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특수분야의 전문적인 교육’이라는 본래 설립 취지와는 달리 ‘대학입시 수월성 교육’을 하는 학교로 변질됐기 때문이다. 외국어고는 특목고로 지정되기 시작하면서 자체 선발고사를 실시해 성적 우수학생을 뽑는데다, 대학들이 ‘비교내신제’를 적용해 특목고를 우대하면서 단박에 입시 명문고로 떠올랐다. 졸업생들의 입시 성과가 드러나기 시작한 90년대 중반부터 외국어고의 인기가 크게 올라가고 입학 경쟁도 치열해졌다. 인기가 치솟으면서 설립도 늘어, 92년 11곳이던 외국어고가 현재는 29곳(국제고 2곳 제외)에 이른다. 설립을 추진 중인 곳도 외국어고 8개, 국제고 4개나 된다. 외국어고에 재학 중인 학생수는 2만1687명(2006년 교육통계연보)으로, 전체 일반계고교 재학생수의 1.7%를 차지한다. 입학정원이 8500여 명으로 서울대·연세대·고려대의 입학정원을 합친 수와 거의 맞먹는다. 국정감사 등에서 외국어고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해 온 정봉주 열린우리당 의원은 “해당 분야의 ‘영재교육’ 및 ‘특수재능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설립된 특목고에 외국어고가 포함되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사교육을 유발하는 외국어고 입시 문제를 해결하려면 지난 99년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 때 삭제된 ‘특목고에서는 학교별 필기시험에 의한 입학전형을 실시해서는 안된다’는 82조의 단서 조항을 부활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조창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