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1 경기도 안산시 중앙역과 상록수 역. 어스름 저녁에 찾은 이곳은 누구라 할 것 없이 하나 둘 네온사인 불빛이 들어온다. 겨울이라 일몰이 빨라져서 그런 지 저녁 7시쯤 되자 밤의 불빛은 낮과는 완전 딴판으로 불야성을 이룬다. 저녁시간이면 인근의 시화공단과 반월공단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이 이곳으로 밀려든다. 안산시의 유흥가는 상록수역과 중앙역 등 안산선을 따라 시흥시 정왕·오이도역까지 주점과 노래방 안마시술소 등이 성업을 이루는 가운데 유흥업소들이 빽빽이 이어져 있다. 경제가 어렵다고 하지만 이곳은 어둠이 내리기 시작할 때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흥청댄다. 안산에서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는 서경숙(43·가명)씨는 안산시 중앙동과 상록수 역 주변을 무대로 일을 한다. 서 씨는 “하루에 10만 원 정도까지 수입을 올릴 수 있다”며 “주부로서 하루에 그 정도 벌 수 있는 일이 어디 있느냐”고 말했다. 서 씨는 “한달동안 꼬박 일을 할 경우 300만 원 정도는 벌 수 있지만 300만 원은 계산상 가능할 뿐 실제는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쉬기 때문에 평균수입은 250만 원 정도가 된다”고 말했다. 서 씨와 함께 노래방 도우미 일을 시작했다는 나영은(38·가명)씨는 “도우미 일을 한 지가 채 한달이 안된다”고 하며 “하지만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힘이들어도 힘든 줄 모른다”고 말했다. 노래방이 가정주부들의 수입무대로 각광(?)을 받고 있다. 노래방은 성매매특별법 이후 매춘여성들이 노래방으로 몰려들고 있다는 사회적 인식으로 부정적 이미지를 받고 있다. 풍경 #2 도봉구 수유역 인근. 한 주부가 생활정보지 광고를 보고있다. 빼곡하게 채워진 광고문구 중 “노래방 도우미 구함, 20~40대, 당일결제, 자유복장, 퇴근가, 초보 주부 직장인 대학생 알바가능, 일 엄청많음, 월 300만원 이상”이라는 내용을 눈여겨보며 여기저기 전화를 하고 있다. 김은영(38·가명)씨는 광고를 낸 서너곳에 전화를 걸었다. 한 곳은 시간당 3만 원을 주겠다고 했고 나머지는 시간당 2만 원씩 주겠다고 했다. 김 씨는 시간당 3만 원을 주는 곳도 있지만 손님과의 접촉을 해야하는 곳이어서 돈을 생각하면 끌리지만 자녀를 생각해 2만 원을 주는 쪽으로 결정했다. 김 씨는 광고를 낸 사람과 전화통화만으로 이날 저녁부터 곧바로 일을 시작하기로 했다. 근무시간은 저녁 7시부터 다음날 새벽 3~4시까지로 했다. 시간당 2만 원씩 받고 출퇴근 시켜주기로 했다. 보도방 업주 김모(45)씨는 출퇴근도 시켜주기로 했다.
<인터뷰> 보도방 업주 차영필 씨 “은행에서 짤린 뒤 주식, 치킨집 운영했었는데…”< /b> “도우미를 노래방에 공급해주는 보도방 업주 차영필(48.가명)씨와 인터뷰를 만났다. 차 씨는 97년 전 후 은행구조조정에 따라 다니던 은행이 합병되면서 직장을 잃었다. 적지않게 명예퇴직금을 받았지만 주식에 투자를 하다가 돈을 까먹었다. 남은 돈으로 체인점으로 치킨점을 냈다. 밤늦게까지 손님을 받고 주문이 오면 스쿠터 오토바이를 타고 신속하게 배달도 했다. 하지만 조류독감이 발생하면서 직격탄을 맞고 가게 임대료만 밀린 채 사업을 접어야 했다. 무엇을 해야할 지 막막하던 차에 우연히 스트레스가 쌓일 때마다 찾던 동네 노래방 주인으로부터 보도방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보도방은 직업분류표에도 없어 보도방이 무엇을 하는 지 몰랐다. 다시 노래방 주인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손님이 도우미를 찾을 때 김 씨를 찾겠다는 지원의사도 받았다. 결국 고민끝에 보도방을 하기로 결정했다. 보도방은 사무실이 따로 필요없고 신속성이 생명이다. 김 씨는 “중고 승합차를 한대 구입하고 생활정보지에 도우미 모집광고를 내고 도우미 지원자들을 간단한 면접을 거쳐 함께 일할 파트너를 맞았다”고 한다. 김 씨는 “도우미들은 대개 가정주부로 이혼한 여성들이 많다”고 말했다. 남편이 있는 경우도 수입이 적어 맞벌이 차원에서 도우미를 한다고 설명했다. 물론 집에는 도우미로 일하는 것은 일급비밀이며 출근할 때 음식점 서빙일하러 간다고 하고 나온다고 말했다. 김 씨는 자신의 광고를 보고 찾아온 도우미 10여 명을 관리하고 있다. 거래하는 노래방도 제법 수가 늘어 연락이 오면 신속하게 이동해 도우미를 내려주곤 다른 노래방에서 타임이 끝난 도우미를 태우러 이동한다. 이렇게 김 씨의 하루하루는 흘러가며 지금은 도우미들과 팀웍도 제법 강해져 서로 한식구처럼 지내고 있다. 도우미 퇴직자 노은영 씨 “이혼 뒤 안해본 일 없어요, 이제는 서울생활 접을 계획”< /b> 노은영(39·가명)씨는 5년 전 남편과 이혼하고 서울의 한 임대 아파트에 살고 있다. 노 씨는 “외환위기로 실직한 뒤 도박장 출입을 하더니 낮과 밤이 뒤바뀐 생활에 빠졌다. 밤이면 도박장에 나가고 새벽이면 집에 들어와 온종일 잠을 자다가 저녁이면 깨어나 다시 집을 나갔다”고 말했다. 딸은 중학교 진학하고 자꾸 커가는 데 남편의 생활은 바뀌지 않았다. 서울 명동의 한 백화점에서 판매사원일을 하며 가사를 꾸려오는 것도 한계에 다달아 결국 이혼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는 종일 일을 해도 수입이 적어 아이들 교육비 대기에도 턱이 없었다고 한다. 큰 딸이 고등학교 3학년에 올라 음악과를 가고 싶어했지만 학원은 고사하고 교복과 등록금 대기도 쉽지 않았다. 큰 딸은 희망과는 달리 운좋게 간호조무사로 대학병원에 취업해 간호학원을 다녔다. 동생도 현재 고등학교 2학년이지만 참고서나 학원을 보내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그는 주변의 권유로 도우미 생활을 했다. 하지만 낮과 밤이 바뀐 생활과 딸에게는 서빙일을 한다고 저녁에 나가는 것도 못할 짓이라며 그만뒀다고 한다. 노 씨는 이후 충무로의 모 회사 지하 구내식당에서 식권 수거를 하는 일을 했지만 한달 수입이 이것 저것 떼고나면 65만 원 정도라고 한다. 노 씨는 “서울생활에 이 돈으로는 도저히 생활할 수 없고 아이들 대학진학 꿈을 들어줄 수 없다는 것에 마음이 찢어진다”고 말했다. 노 씨는 “주변의 권유로 동사무소에서 차상위계층 정부지원을 알아보았으나 이것 저것 절차가 너무 까다롭고 물어보는 데 자존심이 상해 포기했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는 결혼하면서 서울로 올라왔지만 이제 서울을 떠날 때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시 도시개발공사를 방문, 임대계약을 해지하고 딸의 학교를 방문해 전학절차를 밟았다고 한다. 제2의 고향인 서울생활을 더이상 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라며 눈물을 훔쳤다. 그는 “언론에 가정주부가 호기심에 도우미로 나서 가정이 파탄났다는 보도가 나오는 데 이는 극히 일부분으로 도우미를 범죄시하는 사회적 편견때문이다”고 지적했다. 그는 성매매단속으로 여성들이 도우미로 전업했다고 하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전했다. 1종인 단란주점들이 단속을 피하고 손님을 끌기위해 노래주점 또는 노래방으로 간판을 바꿔달아 영업을 하는 통에 노래방 도우미가 성매매 여성으로 비쳐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철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