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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정성(精誠)·공경(恭敬)·재덕(才德) 겸비한 21세기 여성, 강정일당에 김옥순 할머니

성남문화원, 참된 여성 발굴 수상 ‘향토문화발전과 올곧게 모범적으로 살아온 삶’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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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3호 ⁄ 2007.11.21 13:04:10

최근 여성의 지위가 크게 높아지고 그들의 사회활동들이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는 가운데, 참다운 여성상을 보여주는 여성이 나타났다. 그가 바로 올해 성남문화원에서 발굴한 21세기 강정일당으로 선정된 ‘김옥순’할머니다. 환갑을 넘어 진갑의 아들을 둔, 올해 81세인 김옥순(분당구 수내동)할머니는 판교개발의 주역인 성남시의회 3선의원인 ‘김대진(62)’ 시의원의 모친이기도 하다. 김 할머니는 판교가 개발되면서 사라져가는 향토문화를 지켜낸 점과, 한 시대를 올곧게 모범적 삶을 살아온 여성으로도 인정받아 천금과도 바꿀 수 없는 상(賞)을 지난 10월 받았다. 그렇다면 강정일당(姜靜一堂)은 누구인가. 시문(詩文)·서화(書畵)에 능하고, 성리학(性理學)과 경술(經術:경서를 연구하는 학문)에 밝았으며, 글씨는 해서(楷書)를 잘 썼으며 본관은 진주, 윤광연의 아내로 도가풍의 시 40여 편이 <정일당유고>에 전하고 있다. 사후 행장(行狀)에 ‘정정단일(貞靜端一:정숙하고 단정함)하며, 천인(天人)에 가깝다’라고 하였으며, 몸을 닦고 마음을 바르게 가지는데 정성·공경(誠·敬)을 위주로 사셨던 재덕(才德)을 겸한 비범한 여성이라고 전해지고 있는 가운데, 지난 1987년 성남시 향토유적 제1호로 지정된 이 후, 2005년 7월 문화관광부 문화인물로 선정된 참다운 어머니상으로 칭하고 있다. 정일당은 가난한 양반 가문에서 태어나, 온갖 불행을 겪고 인고의 삶을 살면서도 학문을 닦고 자아를 실현한 여성이다. 때문에 현세에서 여자 군자로 불리는 조선의 여류문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러기에 성남문화원에서 선정된 김옥순 할머니는, 세상이 각박하고 불신풍조가 만연해 인심이 흉흉한 현실에서 어부들의 길잡이인 망망대해의 등대와도 같은 80평생의 모범상이라 볼 수 있다. “모두 7남매를 키웠어요. 하지만 하나를 키우듯 공평하게 대했고, 어느 누구하나 고생시킨 자식이 없다는 것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지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저 자식들이 건강하고 하는 일이 다 잘되기만을 기도하고 있답니다.” 팔순 노모의 주름진 얼굴 앞에서 예순을 넘긴 아들(김대진)의 손을 꼭 잡은 김 할머니는 “이렇게 아들이 건강하게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늘 즐겁다”고 말하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김 할머니는 동네혼인은 정승(政丞)하기보다도 어렵다는 대왕면 세곡리에서 이웃동네인 낙생면 판교리(당시)에 5남매의 장남에게 시집왔다. 그 당시 열여덟 나이. 시집온 김 할머니는 장애인인 시동생을 극진히 보살피고, 밤을 낮삼아 농사일로 신혼의 단맛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5남 2녀인 7남매를 낳아 훌륭히 키웠다. 이중 판교개발의 주역이자, 자유총연맹을 몇 십 년째 활동하면서 투철한 국가관은 물론, 지역봉사활동과 성남시의회에서 10년째 왕성한 의정활동을 벌이고 있는 성남시의회 3선중진의원인 김대진 전 도시건설위원장이 바로 김 할머니의 장남이다. 콩 심은데 콩이 나고 팥 심은데 팥이 난다는 속담이 이들 모자를 두고 생긴 말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어머니가 강정일당상 수상자로 선정되는 것도 몰랐습니다. 늘 어머니의 고마움을 알기만 했을 뿐, 자식인 제가 중책을 맡고 있다 보니 오히려 당신의 공로가 숨겨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저 죄송할 따름이었는데, 이번 수상 소식을 접하고 누구보다 제가 더 기뻐했습니다.” 김 의원은 함박웃음을 감추지 않는다.

김 의원이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는 수내동 아파트에는 커다란 가훈이 버티고 있다. ‘형제 간에 깊은 우애를 가지며 사치를 멀리하고 검소한 생활을 한다. 자손은 최선을 다해 가르치며 조상을 극진히 모신다. 지나친 욕심은 갖지 말며 부모님께 순종하고 항상 최선을 다하는 가정이 되자’라는 내용이다. 정든 고향이던 판교를 떠나 수내동으로 터전을 옮긴지 4년이 넘었어도 집안의 풍토는 변하지 않았다. 아침 일찍 어머니를 챙기는 아들과 며느리 내외, 그의 어머니는 동네를 돌며 나보다 남을 챙기며 하루를 보낸다. 심지어 동네에서는 “116동 할머니 집을 본받아라”고 할 정도다. “요즘 누가 부모를 모시고 살고 싶어 합니까. 부모 의견 무시하는 것은 다반사지요. 판교에서는 몇 푼 되지 않는 보상금 때문에 집안싸움까지 일어난 경우가 있었어요. 하지만 저희 집안은 많은 식구임에도 불구하고 큰소리 한번 나지 않았지요. 아이들에게 늘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 것과, 감정적인 말도 다시 한 번 생각하고 말하라고 가르칩니다.” 실제로 판교에서 생활할 때 김 할머니 집은 늘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가난한 사람이 찾아오면 밥 한 끼는 먹여서 보냈고, 명절을 앞두고는 동네 어려운 곳을 찾아 집집마다 밥 해먹을 쌀을 남몰래 전해주곤 했다. 가족이 먹을 것을 제외하곤 모두 베풀었다. 이런 부모의 가풍을 자식이 이어왔고, 지금은 손자·손녀에게 나눔을 강조하고 있다. 지금도 청소년 탈선을 막고자 가정이 어려워 학업을 포기하는 학생에게 남몰래 등록금을 지원하는 선행을 베풀었다. 김 할머니는 지금도 자신의 천직은 농사라고 생각하고 있다. 지금도 틈만 나면 가족에게 땅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해 텃밭으로 나가 참외·수박 등을 심고, 모내기를 하는 등 농촌체험을 전수하고 있다. 그리고 과거 백현동에서 살 때는 동네 어르신의 편안한 여가를 위해 장기판·윷놀이 등을 장려해 나갔고, 농번기에는 자식들이 일터에 나가 늦게 돌아오는 집을 찾아 거동이 불편한 어른의 식사도 챙겨주고, 욕창이 생겨 고생하는 노인의 대소변을 받아 주는 등 자식도 꺼려하는 궂은일을 직접 하기도 했다. 김 할머니의 가장 큰 업적은 대보름·오월단오·추석 등 우리의 전통 명절 때 판교지역에서 행해지던 민속놀이를 재현했다는 것이다. 점차 나이가 들면서 과거 즐기던 놀이에 대한 회상을 자주했고, 자식인 김대진 의원과 협의해 8년 전 ‘쌍용거줄다리기’ 재현에 성공했다. “단오 때 느티나무에 줄을 매어 그네를 타고, 널뛰기를 하던 생각들이 나더라고요. 그리고 동네 어른 모두가 모여 새끼줄을 꼬아 암술과 숫술을 만들어 마을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하던 줄다리기가 있었어요. 그 놀이를 만들어 보자고 아들에게 말했고, 과거 기억을 더듬어 만들었답니다. 지금은 판교 개발로 잠시 멈춰있지만, 다시 시작할 예정입니다.” 가정에서는 훌륭한 어머니이자 지역사회에서는 경로효친사상과 전통문화 계승을 위해 애써온 자랑스러운 여성이기에, 몸을 닦고 마음을 바르게 가지고 정성·공경(誠·敬)을 위주로 사셨던 재덕(才德)을 겸한 비범한 여성 강정일당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오익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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