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으로 예비군 훈련을 거부했다고 벌금을 냈는데 거부한 훈련이 내년으로 이월돼 또 받지 않았더니 다시 벌금을 내게되었다. 또 올해 최장 8년 동안 유지되는 예비군 훈련기간 중 이런 벌금을 매년 반복해서 내야하는 것이 불합리하다.” 양심적으로 현역복무를 하지 않고 대체 복무를 선택할 수 있게 됐지만 예비군에 대해서는 인정되지 않아 반복적인 처벌을 받아야 했던 양심적 예비군 훈련 거부자들이 헌법이 명시한 양심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희망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예비군 양심적 거부권 위헌제청과 관련, 헌법재판소에 예비군을 거부했다고 처벌하는 대신 대체복무를 도입하라는 의견서를 제출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결정은 지난 4월 울산지법 판사가 양심적 예비군 거부자에 대한 처벌과 관련, 위헌제청을 낸데 대해 그 필요성을 인정한 것이다. 앞서 울산지법 제5형사 단독 송승용 판사는 지난 4월 예비군 훈련을 정당한 사유 없이 받지 않은 사람에 대한 처벌 규정인 향토예비군설치법 제15조 제8항이 헌법이 보장한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적 조항이라며 헌법재판소에 위헌제청했다. 인권위원회는 “사회적 소수자인 양심적 예비군 거부자에게 대체복무를 인정하지 않고 병역의무 이행을 강제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과 양심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양심의 자유와 국방의 의무가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대체복무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권위는 앞서 2005년 12월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하고 국회의장과 국방부장관에게 대체복무제 도입을 권고한 바 있지만, 예비군에 대해 구체적으로 병역거부권을 지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인권위는 “양심을 이유로 계속되는 훈련 소집에 응하지 않겠다고 영구적으로 표명한 경우는 단일한 행위로 봐야 하기 때문에 국가가 반복적이고 계속적인 처벌을 통해 개인의 양심을 바꾸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현행 향토예비군설치법은 예비군 훈련을 정당한 사유 없이 받지 않은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20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양심적 예비군 거부자들이 훈련을 거부하면 약식 재판을 통해 보통 수십만원의 벌금이 선고되는데, 거부한 훈련이 다음 분기나 이듬해로 이월되면서 또다시 벌금이 선고되며 반복 처벌을 받고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 수형자가족 모임’에 따르면 예비군 제도 시행 이후 올해 5월31일까지 누적 거부자는 모두 1,359명으로 현재 71명의 거부자가 벌금형 등 처벌을 받았거나 고발을 당한 상태이다. 인권위 관계자는 “양심적 예비군 거부자들이 반복적인 처벌과 과중한 벌금으로 예비군 편성기간(최장 8년) 동안 양심의 자유 등을 침해받고 있다”며 ‘양심에 반하는 행동을 강제당하지 않을 자유(부작위에 의한 양심실현의 자유, 양심적 병역거부권)’를 강조했다. 한편 유엔인권위원회(현 유엔인권이사회)는 98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은 종교적, 도덕적, 윤리적, 인도주의적 또는 이와 유사한 동기에서 발생하는 심오한 신념 또는 양심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이미 복무를 하고 있는 사람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이 있다”는 내용의 결의안 77호를 의결한 바 있다. <김준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