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에는 등록된 대부업체만 6만3,000여 개에 달한다. 그러나 이를 담당하는 공무원은 단 5명. 이런 탓인지 대부업체가 단속을 피해 활개치면서 한 꽃다운 대학생이 꽃을 다 피우기도 전에 죽음을 택했다. 이 대학생이 대부업체로부터 빌린 돈은 200만원. 그는 이 돈 때문에 살길을 포기하고 죽음의 길을 걸었다. 정부가 대부업을 양성화해 관리하겠다며 전세계에 일본을 제외하고는 유례가 없는 대부업법을 만들어 영업을 합법화했지만, 법 제정 5년이 지나도록 불법 채권추심과 이로 인한 비극적인 사태들은 날이 갈수록 횡행하고 있다. ■벌이 없는 대학생에 접근 사채놀이 오히려 대부 영업에 ‘합법화’라는 날개만 달아주었다. 대부업체들은 인터넷 영업과 각종 매체광고까지 동원하며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에게 손쉽게 접근하고 있다. 그러나 연이율이나 수수료 등 대부 조건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고 불법 채권추심을 일삼는 대부 행위에 대한 행정당국의 관리감독은 여전히 부실한 상황이다. 문제를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특단의 관리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당국의 대부업체 감독 허술은 이번에도 결국 한 대학생의 죽음을 불러왔다. 당국의 허술한 단속을 틈타 길거리 대부업 광고가 금융감독원과 시중은행, 상호저축은행의 명의를 도용하거나 연예인과 드라마 주인공의 이름, 유명상표를 앞세우는 등 갈수록 대범해지고 있다. 대부업체가 연예인·금감원 등을 광고에 내세우는 것은 유명인사들의 친숙함과 금융감독 당국의 공신력을 이용해 고리대에 대한 서민의 불안감을 없애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특히 금융감독기관·연예인을 사칭한 광고 등은 현행 표시광고법상의 허위·과장광고에 해당될 소지가 크며, 이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되어 있다. 대부업 광고는 관할 시도에 등록한 대부업자만이 할 수 있고, 최고 연49%의 고금리 대출을 하기 때문에, 현행 대부업법은 소비자에게 대출관련 정보를 올바로 제공하도록 광고요건을 정하고 있다. 즉 대부업법은 광고시 △대표자 또는 사업체 이름 △대부업을 등록한 시·도(군)의 명칭과 등록번호 △대부이자율 및 연체이자율 △이자 외에 추가비용이 있을 경우 그 내역 △영업소의 주소와 전화번호 등을 적어야 하며, 이를 어긴 사업자는 1,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이 중 ‘은행권 대출’ 또는 ‘상호저축은행 대출’이라고 표시한 광고는 대부분 이들 은행과 정식 대출모집 위탁계약을 하지 않은 것으로, 대부업체의 불법 허위·과장광고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특히 ‘상호저축은행’으로 광고한 부산의 한 업체는 민생지킴이단이 전화로 문의하자 H상호저축은행인 것처럼 답변했으나, H저축은행 본점에 확인한 결과 서울에서만 지점을 운영하고 있고, 부산지역에서 정식 중개계약을 맺은 업체도 아닌 것으로 밝혀져 사실상 불법업체인 것으로 보인다. H저축은행측은 명의도용 업체를 대상으로 고소·고발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은행명 도용, 길거리 영업 성행 ‘저축은행 대출센터’라고 광고한 업체도 저축은행과 관련 없는 대부업체로 밝혀졌다. 또 ‘은행권 스피드 신용대출’로 표시된 광고의 경우 관할 시·도에 등록하지 않은 무등록 대부업자의 광고였다. 은행연합회와 상호저축은행 중앙회에 따르면, 금융기관의 대출중개는 대출모집위탁계약을 체결한 대출모집인(대출상담사)만 할 수 있고, 대출모집인은 대출희망자가 아니라 금융기관에서만 중개수수료를 받을 수 있다. 금융권 대출중개가 아닌 대부업 대출중개의 경우에는 사금융을 업으로 하거나 어음할인·양도담보 등 금전수수의 중개를 하는 자도 대부업법에 따라 대부업체로 등록해야 한다. 이 경우도 중개업자가 대출희망자에게 중개수수료를 받으면 처벌된다. 얼마 전 국회에서 통과된 대부업법 개정안도 미흡하기는 현행법과 마찬가지이다. 이자율 상한을 70%에서 60%로 낮추긴 하였지만, 여전히 시중금리의 10배에 이르는 폭리를 인정하고 있으며, 대부업 광고규제에 대한 내용이 빠져 인터넷에서 범람하고 있는 대부업체의 허위·과장 광고 등을 규제할 근거가 미약하다. 개정안에서는 금감원이 대부업체를 관리감독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였으나, 금감원이 지난 10월 발표한 ‘금융감독 선진화 방안’에는 그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이 없어 실효성 있는 관리가 시행될 수 있을지 의심된다. 수많은 피해사례에도 불구하고 대부업에 대한 관리감독 강화는 아직도 요원해 보인다. 전국적으로도 전체 대부업체는 5만여 개에 달하고 있으나 담당하는 공무원은 20여 명이 전부인 것이 현실이다. 대부업체에 대한 관리감독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금감원과 지자체들의 관리 인원을 늘리고 구체적인 감독 방안을 세워야 한다. 또한 사법기관들도 불법을 일삼는 대부업체와 채권추심업자들에 대한 적극적이고 끈질긴 수사를 통해 서민경제를 파탄 내는 고리사채와 불법 채권추심을 근절해야 할 것이다. 서민 금융기관을 자처하는 상호저축은행의 고리대 횡포도 심각한 상황이다.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저축은행의 절반에 가까운 46개 업체가 대부업체의 전주 노릇을 하고 있다. 사실 저축은행은 사채업체의 돈줄 노릇을 할 뿐 아니라, 스스로도 이미 고리대업자로 전락한 상태다. 연6%대의 상대적 저금리(1년 정기예금 기준)로 서민 돈을 유치한 저축은행이 서민에 대한 신용대출로 최고 연39~48.5%의 폭리를 챙기고 있다. ■저축은행, 사채 ‘쩐주’에 고리대까지 겸업 지난 10월 중에 시행된 대부업법 시행령상의 최고금리가 연49%인 점을 감안하면, 상호저축은행은 압도적 자금력을 발판으로 대부업체를 무색케 하는 고금리 영업에 혈안이 되어 있다. 한마디로 저축은행이나 대부업체나 서민 피해를 유발하는 고리대업자라는 점에서 별 차이가 없는 형편이다. 그럼에도 서민 금융기관의 바람직한 위상 제고에 노력해야 할 금감원은 “저축은행 대출에서 대부업 대출이 차지하는 비율은 1%도 안 돼 우려할 상황은 아니다”라며 무책임한 태도만 보이고 있다. 고리대의 폐해를 최소화하고 서민과 중소기업의 금융편의를 도모해야 할 저축은행이 언제까지나 사채업자와 다름없는 행태를 보이도록 놔둘 수는 없다. 1998년 옛 이자제한법(금리상한 연25%)이 존재하던 당시, 사채시장 평균금리가 연24~36%에 그친 만큼, 금융감독 당국은 대부업법 금리상한의 대폭인하로 저축은행의 변질된 운영구조를 바꿔야 한다. 상호저축은행법 제1조에는 “이 법은 상호저축은행의 건전한 운영을 유도하여 서민과 중소기업의 금융편의를 도모하고 거래자를 보호하며 신용질서를 유지함으로써 국민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나와 있다. 금감원과 저축은행이 새삼 깨우쳐야 할 조문이다. <김진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