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이 기자실을 폐쇄할 때 있었던 일이다. 11시 50분 쯤 혹시 모를 ‘불상사’에 대비해 기자실을 지키고 있던 ‘당직’ 기자에게 공보담당관이 “내 사무실에 가서 맥주나 한 잔 하자”고 말을 걸었다. “기자실은 잠그지 않을 테니”라는 약속도 잊지 않았다. 이 말에 속아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경찰은 전의경과 직원들을 동원해 기자실의 문을 잠갔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일이 이명박 당선자가 선출된 12월 19일 한나라당사에서도 벌어졌다. 19일 저녁 6시, 한나라당의 개표 종합상황실은 압도적으로 앞서가는 출구조사 발표로 축제 분위기였고, 취재경쟁은 갈수록 더욱 치열졌다. 방송사들의 결과예측 발표가 끝나고 의원들이 식사를 하러 나가면서 자리는 잠시 한산해졌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7시 10분쯤 “잠시 한가해졌으니 저녁식사나 하고 오라”며 기자들을 상황실 밖으로 유인했다. 그리고 기자들이 빠져나간 틈을 타 경호원과 경찰병력을 이용, 상황실 출입구를 막아섰다. 장소확보를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이다. 많은 기자들이 당의 취재봉쇄에 항의하며 문을 열 것을 요구했으나, ‘쇠귀에 경 읽기’였다. 닫혔던 문은 8시 쯤에 다시 열렸고, 약 한 시간의 취재공백이 불가피해졌다. 당시는 선거개표가 계속 진행되고 있어 기자들은 콩 볶듯 몸과 마음이 달아 있었다. 정권이 교체되면 취재 선진화 지원방안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던 한나라당의 당사에서 대통령과 후보자가 당선되던 그날 벌어진 사건이다. ■취재진 북새통 속 기자들에게 ‘나가라’ 2층에 자리 잡은 개표상황실은 수많은 취재인원들을 수용하기에 턱없이 비좁았다. 전면에 배치한 30여개의 주요당직자 참관석 앞으로는 KBS와 MBC·YTN 등의 방송사, 각종 일간지, 외신, 인터넷 언론사들의 카메라 트라이포트가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하게 서 있었다. 그 뒤로는 각종 방송사 보도국의 데스크가 바투 자리 잡아 통행에 불편을 주고 있었다. 한 인터넷 언론사의 카메라 기자는 “당사가 아닌 넓은 장소에서 방송을 하게 배려해줬다면 이렇게 불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라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투표 마감시간이 가까워지면서 이명박 후보의 당선을 예측한 언론사의 기자들이 속속 한나라당사로 몰려들었다. 개표상황실운 수많은 카메라와 취재진으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카메라 기자들은 좁은 자리 탓에 참관석 좌우로 마련된 포토라인을 침범할 수밖에 없었고, 이에 한나라당 관계자들은 주요 당직자들이 입장할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교통정리’에 돌입했다. 상황실 관계자들은 주요당직자석 주변에 위치한 취재진에게 의원들이 입장할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며 참관석 전면 모니터 뒤로 물러날 것을 권고하였다. 뒤에서는 밀려들어오고 앞에서는 못 나오도록 막아서니 중간에 끼인 취재진들은 난감한 상황이었다. 한 관계자는 “경호원이 오면 장비를 다 치워버릴 테니 뒤로 물러가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하고 “어느 언론사에서 왔느냐”며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상황실 한편에서는 항의하는 기자와 관계자 간의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나라당식 취재선진화인가 오후 6시 개표가 시작되면서 종합상황실 안의 취재진과 한나라당 관계자간의 신경전은 절정에 이르렀다. 모든 취재진을 수용하기에 상황실이 협소하여 관계자들은 출입증 검사를 시작했으며, 몇몇 기자들은 당 관계자에 의해 밖으로 내몰리기도 했다. KBS의 카메라 촬영기자는 “선거일 며칠 전부터 장비를 갖다 놓고 대기했는데, 출입증 하나 없다고 나가라니 이럴 수 있느냐”며 거세게 항의했다. 국회 출입증을 가지고서도 상황실 밖으로 내몰린 한 기자는 “선거 전까지 상냥하던 사람들이 (선거가) 끝나고 나니까 아주 무례해지는 것 같다”며 볼멘소리를 하기도 했다. 아무튼 수많은 취재진을 예상했는데도 그에 대한 행정적인 준비가 미진했던 것으로 보인다. 19일은 선거 당일이라 새벽부터 많은 취재인원이 한나라당사로 모여들었고, 당 사무실에서는 기자들 개인마다 출입증을 나누어 주었으나 물량이 턱없이 부족했다. 때문에 낮 12시부터 방문했던 기자들은 국회 기자증만 있으면 출입을 허용해주기로 했다. 그러나 취재인원이 한꺼번에 몰리자 출입증 검사를 한 것이고, 당 사무실은 출입증을 요구하려고 밀려드는 기자들로 극심한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사무실에 출입증을 받으러 갔다가 거절당한 한 기자는 “국회 기자증만 있으면 들여보내준다고 하더니, 이제 와서 출입증을 줄 수 없다고 하니 어이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밤 11시 경 당선이 확정된 이명박 당선자는 4충 기자회견장에 이르러 기자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이 당선자는 연설 중 “이 자리에 계신 많은 언론인들, 특히 무거운 카메라 들고 다니시는 분들, 사진기자, 방송기자 여러분들, 모두 힘들면서도 더운 경선과정, 장마철 거치면서 추운 겨울에 이르기까지 함께 해주신 기자분들께 감사하다”고 사례했다. 말로 하는 감사보다 언론이 마음 놓고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줬으면 하는 것이 언론인들의 차기 정권에 대한 바람이다. <박성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