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남녀노소가 즐겨 마시는 술은 과연 언제부터 만들어졌을까? 희랍 신화에 박카스신이 술을 다스렸다고 하니, 적어도 5000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지구상의 생물의 진화경로를 살펴보면, 먼저 미생물이 출현하고 식물·동물·인간의 순으로 지구상에 출현하였으며, 미생물의 작용에 의해서 만들어진 술을 동물이 먼저 마시기 시작하였고, 그 후에 사람들이 이용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원숭이술이라는 말이 있다. 즉, 사람들이 사냥을 위해 산중을 헤메다가 무리 지어 흥에 겨워 뛰노는 원숭이들을 구경하고 있노라니, 한창 놀다가 차례로 어디를 갔다 와서는 다시 흥겹게 놀고 있었다. 어디를 갔다 오는지 궁금해서 뒤쫓아가 보니, 나무 그루터기에 썩은 과일이 놓여 있고 그 과일을 먹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맛을 보았더니, 들척지근하면서도 술 냄새가 물씬 풍기며 얼큰하게 취기가 도는 느낌을 알게 되었다. 원숭이는 떨어진 과일이 썩는 과정에서 술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과일을 한데 모아 술을 만들어 이용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도 원숭이가 술 만드는 법을 흉내 내어 술을 만들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확실한 증거자료가 있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럴싸한 추측이다.
■ 인류최초의 술은 과실주 과일에는 당분이 들어 있고, 이 당분은 효모라고 하는 미생물에 의해서 이용되는데, 이때 만들어지는 부산물이 알코올이다. 알코올 뿐만 아니라 과일에 들어 있는 산이나 향, 그리고 당분이 한데 어우러져 맛 좋은 과실주가 만들어졌고, 따라서 과실주가 먼저 탄생했을 것이다.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곡식으로 술을 만들었는데, 이 곡식에는 당분 대신에 전분이 들어 있다. 전분은 일단 당분으로 바뀐 다음에라야 효모에 이용되어 술이 되므로 한 단계를 더 거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마시는 탁주나 약주·청주가 농경시대에 들어와 만들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술은 갈증을 해소해주며 신경을 자극해서 흥을 돋구고 스트레스를 해소시켜 주는 작용을 하여 세계인이 즐기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곡류나 과실 이외에 각종 한약재나 향기를 내는 재료들의 성분을 가미하여 건강음료로도 이용하는데, 그 종류는 수백 가지가 된다. 그러나 사람의 욕구는 끝이 없어 20도가 안 되는 알코올 도수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더 독한 술을 원하였다. 그래서 증류기술을 이용하여 위스키나 소주를 개발하게 된 것이다. 즉, 이미 만들어진 과실주나 맥주·탁주를 끓여 여러 가지 향기성분과 함께 증발하는 알코올을 따로 모아 숙성시키면 알코올 도수가 높은 술이 된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지는 술들의 재료나 만드는 방법에 따라 맛과 향이 독특하여 여러 가지 술이 탄생하고 많은 사람들의 구미에 맞는 명주가 탄생한 것이다. ■ 쌀밥에 김치 먹으며 마시는 술은 약주·탁주 요즈음 우리나라에서는 와인 열풍이 불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포도주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 술은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 나라의 전통주이다. 포도가 재배하기 쉽고 향이 좋기 때문에 세계 여러 나라에서 많이 이용하고 있다. 더구나 근래에 건강에 유익한 성분이 들어 있다 하여 더 이용되는 듯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복분자주가 인기를 끌고 있는데, 이것도 포도주와 다를 바 없고, 약주 또한 맛과 향이 다를 뿐 포도주와 다를 바 없다. 우리 식생활 문화에는 우리 술이 어울릴 텐데, 우리 술은 외면하고 외래주를 찾고 있다. 쌀밥에 김치를 먹으면서 마시는 술로 와인보다 약주나 탁주가 어울리는 것은 우리 민족이 먹어온 경험으로 입증되고 있다. 이러한 전통주는 소주나 맥주에 안방을 물려주고, 이제는 포도주까지 전통주 자리를 넘보고 있다. 소주는 고려 이후 마셔온 우리의 전통주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이용하고 있는 소주는 알코올을 물에 타서 인공적으로 조제한 희석식 소주이다. 전통주가 아니고 합성한 술이다. 우리 고유의 전통 소주가 있음에도 여러 가지 이유로 널리 보급되지 못하고 있다. 개선된 발효기술로 오래 숙성시킨 소주가 만들어진다면, 외국의 어느 술 못지 않은 명주가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조상들이 개발한 술을 계승 발전시켜 찬란했던 우리의 술과 술문화가 복원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조재선·경희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