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제는요, 간고등어 만드는 것도 특별한 기술 없인 안 됩니더. 점점 까다로워지는 소비자들 입맛 맞출라믄요, 옛날 식으론 어림없어요. 남모르는 기술, 앞서가는 기술이 없으면 공장문 닫는기라예.” 간고등어에 무슨 하이테크냐고 슬쩍 질문을 던졌더니, 곧바로 되돌아온 대답은 단호했다. 주식회사 동해유통(경북 안동시 임하면 추목리 130-14)의 대표인 최희동 사장(49)은 간고등어에 관한 한 자타가 공인하는 일류 기술자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기술이란, 소금이나 뿌리는 ‘염장 지르기’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과학을 응용한 하이테크 기술이다. 1984년에 대구대 수학과를 나온 최 사장은 이공학도답게 기술에 밝아, 현재 간고등어 가공·유통과 관련하여 이미 1개의 특허를 가지고 있고, 출원 중인 또 하나의 기술특허도 곧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특허 말고도, 그의 회사에는 자랑할 만한 첨단기술이 많다. 이처럼 간고등어 회사에 첨단기술이 많다는 사실도 신기하거니와, 그런 기술이 간고등어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원래 최희동 그는 한우를 50마리나 키우던 축산업자였다. 그런데 아버지의 뒤를 이어 2대째로 물려받은 그 축산업을 그는 과감히 정리하고 만다. 그리고 뛰어든 사업이 간고등어 가공·유통업이었다. 2005년 2월 1일, 그는 이렇게 간고등어와 연을 맺었다. 그렇다면, 간고등어의 어떤 매력이 그의 운명을 바꿔 놓았을까. 간고등어의 약사를 되짚다 보면,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안동 간고등어의 유래 어찌하여 안동은 간고등어로 유명해졌을까? 간고등어를 탄생시킨 안동의 조건은 생선에 관한 한 매우 열악하였는데, 실은 그 악조건이 도리어 호조건이 된 경우다. 안동은 내륙 중의 내륙인데다 수로도 없어 뱃길이 닿지 않아 냉동시설이 없던 옛날에는 싱싱한 생선을 구할 길이 없었다. 갯가에서 80km나 쑥 들어간 내륙 안동에선 그래서 기껏 소금에 절인 고등어로 입맛을 달래야 했다. 구한말부터 장사치들은 영덕 강구항에서 고등어 등짐을 지고 안동 챗거리 장터까지 200리 길을 걸었다. “살아서 썩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썩기 잘 하는 고등어가 도중에 상하지 않게 강구에서 한 번, 안동에서 또 한 번 이렇게 두 번 절인 것이 안동 간고등어의 유래다. 고등어를 영덕에서 안동까지 싣고 오는데 꼬박 이틀이 걸렸다. 고등어를 잡은 지 이틀이 지나 가장 맛이 좋을 때에 물간, 밑간을 하면 꼬랑지까지도 빨아 먹고 싶다는 전국 제일의 진미 안동 간고등어가 되는 것이다. 고등어에 굵은 왕소금을 잔뜩 뿌려 절여서 가져와야 상하지 않을 수 있었으니, 그렇게 염장한 자반 고등어는 여간 짠 게 아니었으나, 그래도 맛은 그만이었다. 이 자반 고등어에는 세 가지가 있다. 배에서 금방 잡은 싱싱한 고등어에 곧장 소금을 쳐 절인 것을 뱃자반이라 하는데, 이것을 제자리간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포구까지 운반한 뒤 소금을 치는 자반이 있고, 상하기 직전에 다시 소금을 치는 자반이 있으며, 이것이 바로 안동식 자반 고등어였다. 어려서부터 여기에 입맛을 길들인 안동 사람들은 밥상에 간고등어가 없으면 서운해하며, 안동에만 틀어박혀 산 아이들은 간고등어 말고 생선은 이 세상에 없는 줄로 알고 자랐다. 그런 사람을 일러 ‘안동 답답이’ 또는 ‘안동 갑갑이’라 하였는데, 이 말은 우물 안 개구리로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을 빗대어 쓰기도 하였다. 간고등어에 접목되는 최첨단 신기술 7년 가까이 한우를 기르던 최희동 사장은 어느 날 문득 이러한 간고등어에 주목하게 된다. 법인이든 개인이든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간고등어 업체들은 하나같이 염장 지르는 일에만 몰두하였다. 이를 본 최 사장은 무릎을 쳤다. “그래! 간고등어에도 새 기술이 필요할 거야!” 사실 간잽이 이동삼 노인이 천직으로 여기고 수십 년 동안 해오던 염장 지르는 기술은 더 이상 특별한 기술이 아니었다. 아이디어가 번득인 최 사장은 그 길로 축산업을 접고 간고등어 사업에 손을 댔다. 다른 회사의 제품들을 가져다 밤을 새워 연구하며 기술개발에 매달렸다. 그러다가 막히면 문헌을 뒤적이고, 인근 대학교를 찾아가 자문을 구했다. 또 포장재와 소스 업체를 찾아다니며 공동 개발을 제의하기도 했다. 그런 노력이 결실을 맺으면서 그는 새로운 기술을 하나한 축적해 나갔다. 세척에서부터 염장·숙성·비린내 제거·부패방지·유통기한 연장 등 전과정에 걸친 연구가 이어지고, 마침내 그는 특허 1호를 취득하게 된다. 레몬즙을 이용하여 비린내를 없애는 독자적인 기술이었다. 그는 요즘 이미 출원한 또 하나의 특허 등록을 기다리고 있다. 산소 흡수제인 ‘탈산큐’를 개발하여 냉장 보관 유통기한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신기술이다. 이 특허가 등록되면 그는 현재 생산하고 있는 전품목의 유통기한을 최대 3배까지 연장 할 수 있다. 유통기한에 관한한 경쟁상대가 없게 되는 셈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그는 지금 간고등어 시장에 새 바람을 일으킬 ‘작은 혁명’을 준비하고 있다. 바로 ‘조리한 간고등어’의 출시이다. 지금까지 시중에 나온 모든 간 고등어는 냉동·냉장된 생고등어이다. 즉, 조리하지 않은 날고등어이다. 주부들은 그 생고등어를 굽거나 쪄서 조리해야 한다. “만일 조리한 생선을 전자 레인지나 뜨거운 물에 간단히 데워 먹는다면….” 이런 아이디어가 떠올라 개발에 들어간 신제품이 ‘조리한 간고등어’이다. 이 제품이 나오면 소비자들은 그것을 전자 레인지나 뜨거운 물에 데워 포장지를 벗기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다. 손질하고 조리할 필요가 없으니 ‘귀차니스트’나 시간에 쫓기는 직장인들에겐 그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최 사장은 마지막 ‘임상실험’을 계속하며 조용히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간고등어 올림픽 열어요” 여기서 다시 고등어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그렇다면,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생선은 무엇일까? 정답은 ‘고등어’이다. 고등어는 여러 조사에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생선’으로 꼽힌다. 모르긴 해도 그 1위에는 생고등어보다 간고등어가 큰 몫을 차지할 것이다. 그만큼 간고등어가 널리 알려져 소비되고 있기 때문이다. 맛 좋고 영양가 높고 값싼 고등어만큼 서민에게 익숙하고 정겨운 생선도 드물다. 그 중에서도 짭짜름하고 쫀득하여 구워도 맛있고 쪄도 맛있는 안동 간고등어. 배 가르고 소금 뿌리는 염장 지르기를 당하고도 간고등어는 태연히 서민들 밥상에 올라 입맛과 영양으로 위안하고 보시(布施)한다. 특히, 고등어에는 생선 가운데 참치 다음으로 많은 EPA·DHA(고급 불포화지방산)가 들어 있다. 오메가 3라고도 불리우는 이 영양 성분은 성장기 아이들의 두뇌발달과 시각기능 개선에 도움이 되며, 성인병의 원인 물질인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어 준다. 두뇌를 많이 쓰는 수험생들에게 안성맞춤인 영양 덩어리다. 그 안동 간고등어의 매출이 연간 1,000억원을 넘어섰다고 한다. 제조업 불모지인 안동에서는 최대 효자산업이다. 10년 전에 한 업체가 상품화를 시작했을 때 여느 자반 고등어보다 비싼 값에 누가 사 먹겠느냐며 외면하던 의구심은 간 곳이 없다 명성이 높아지자 생산업체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더니, 이제는 안동 땅을 벗어나 부산과 제주도에까지 공장이 들어섰다. 과연, 그곳에서 나오는 간고등어도 안동 간고등어라 할 수 있을까? 아무튼, 안동 간고등어는 대관령 황태, 포항 과메기와 더불어 연간매출 1,000억원을 돌파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3대 생선 가공식품으로 자리잡았다. 이런 간고등어의 명성은 해외에까지 알려져, 동해유통은 작년 9월부터 미국에도 수출을 시작했다. 동해유통의 기술과 품질은 현지 소비자들에게도 높이 평가 받아 ‘동해 것이 으뜸’이라는 낭보가 지금도 심심찮게 날아든다고 한다. 안동 간고등어 인기가 워낙 높다 보니 요즘 불량 상품이 범람하여 걱정이 태산 같다는 최희동 사장은 소비자들에게 ‘짝퉁’ 간고등어에 현혹되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 그러면서, 기술과 품질만큼은 동해유통이 최고라며 덧붙이는 그의 마지막 한마디가 인상적이다. “간고등어 올림픽 한 번 하입시더. 이 세상 간고등어 다 덤비라예! 우리 동해유통 간고등어, 금메달 자신있심더!” <방효균 기획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