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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칼럼] 언론은 이성으로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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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2호 ⁄ 2008.01.28 16:51:49

지난 1월 22일, 조간인 H신문에 섬뜩한 느낌을 주는 그림 한 컷이 실렸다. 지면의 한복판에 세로로 길게 그려진 그림 속에는 수십 층 높이의 고층 건물 하나가 어둠을 배경으로 을씨년스럽게 우뚝 섰는데, 건물의 정수리에는 보잉747보다 몇 배는 커 보이는 식칼이 절반이나 들어가 내리꽂혀 건물 벽이 조각조각 갈라지면서 붕괴되려는 모습이 보기에도 아슬아슬하였다. 그렇게 무너져 내리려는 그 건물의 옥탑 꼭대기에는 삼성그룹을 상징하는 타원형 로고가 작지만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다. 영낙없이 그 그림은 9·11 테러 때 미국 뉴욕의 쌍둥이 무역 빌딩에 비행기가 날아들어 처박히는 눈에 익은 광경 그대로였다. 다만, 빌딩에 꽂힌 식칼이 상징하는 가학적 이미지는 9·11의 처참한 광경에 비해서도 훨씬 도발적이고 저주스러운 끔찍한 인상을 남겼다. 삼성을 향한 증오가 얼마나 처절하기에 식칼을 정수리에다 꽂았을까. 칼을 맞은 대상이 건물로 표현되기는 했으나, 그 자리에 생사람을 세워 놓았다면? 상상조차 하기 싫은 끔찍한 그림이 눈앞에 떠오른다. 그렇다면, 저 소름끼치는 아이디어는 순전히 그림을 그린 화가만의 강박이었을까. 설령 그렇다 한들, 정론을 외치는 신문이 저런 그림을 보란 듯이 게재해도 좋단 말인가. 회사측과 사생결단으로 싸우는 노동조합의 노보(勞報)에서나 볼 법한 그런 그림을. 하기는, 그림이 실린 지면은 여론란이었으니, H신문은 그 그림을 단지 독자가 투고한 작품이었노라고 발뺌할 속셈이었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인신 공격을 멀리 하며 합리적인 논거를 담은 제의·주장·비판·반론 글을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하고 쓴 여론란의 안내문은 무색해질 수밖에 없다. 그 안내문의 바로 아래 실린 살기 가득한 그림에서는 인신 공격을 멀리 하려 한 의도도, 합리적인 논거를 담으려 애쓴 흔적도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특검 수사로 초상집이 된 삼성그룹을 보면서 국민의 심정은 참담하다.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으로서 국부를 창출하여 국민의 자긍과 기대를 한몸에 받던 삼성이 국민의 눈을 속여 그들만의 잔치를 벌인 탈법·비리 의혹에 휩싸이자, 국민의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국가경제 발전에 지대하게 기여한 공을 인정한다 해도, 그것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여론은 욕설을 퍼붓고 주먹질을 해 대며 허탈과 분노를 삭이고 있다. 그러나 언론마저 그래서는 안된다. 진실을 있는 그대로 알릴 책무를 가진 언론은 오직 이성으로만 말해야 한다. 감정을 앞세워 극단적인 일부 여론에 영합한대서야 어찌 언론이라 할 수 있는가. 그것은 불구덩에 기름을 붓는 부화뇌동일 뿐이다. 하물며, 언론이 앞장서 여론의 분노와 증오를 부추긴다면, 그것은 선동꾼이지 이미 언론이 아니다. 비리는 응당 밝혀져야 하고, 탈법은 마땅히 의법 처리돼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법을 집행하는 사법 당국의 몫이다. 언론은 진실만을 추구하여 그 결과를 국민에게 알리는 소임을 다하면 그만이다. 그에 대한 국민의 평가는 결국 구독률과 시청률로 나타나게 된다. 입으로 정론 직필을 말하기 전에, 언론의 본분을 되새겨 이성을 가다듬고 공평무사(公平無私)를 다짐해야 할 것이다. 삼성 의혹과 관련해서는 우리 언론이 국가와 국민과 기업 모두에게 득이 되는 지혜를 발현하리라 믿는다. <발행인 최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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