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독립기관으로서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받아온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와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대통령 직속 기구로 옮기게 되면서 독립성을 저해받을 수 있다는 의견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이를 준비한 인수위는 “독립성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나서 모순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우리의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미 국내에서 인권 신장에 기여한 부분이 상당하며, 국제적으로도 아태 국가인권기구 포럼의 주요 회원기구로서 세계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기관이다. 인권위가 대통령 소속 기관이 될 것으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의해 결정됨에 따라 세계적인 관심이 우리나라에 쏠리고 있다.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UNHCHR)의 루이즈 아버 판무관은 인수위가 인권위를 청와대에 복속시키기로 한 소식을 듣자마자 서한을 보내 인권위의 독립성을 해치는 방향의 조직개편 시도를 재고해 달라고 요청했다. ■ 인권위 위상 격하, 권력 견제기능 줄어들 것 인권위를 대통령 직속으로 전환하면 우리나라 국가인권위의 위상이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아버 판무관은 “한국 인권위는 아시아·태평양 국가인권기구 포럼의 주요 회원기구로서 국내적·지역적·세계적 수준에서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는 역할을 앞으로도 계속 수행하는데 지장이 생길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인권위원회 내부와 관련 단체, 범여권 등에서도 인권위를 대통령 직속으로 두는 순간 인권위의 본질적 기능이 훼손된다는 주장이 빗발치고 있다. 인권위는 행정부와 대통령의 인권침해 여부까지도 감시대상으로 삼는데, 인권위를 감시대상인 대통령 직속으로 두는 것은 그 자체로 모순이다. 인권 전문가 송호창 변호사는 “인권위를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두면 인권정책분야에 대한 의제설정과 권고 및 조사 기능이 대통령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휘둘릴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이렇게 되면 국가인권위원회가 이라크 파병 문제, 비정규직 법안 문제,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등의 국가를 견제하는 모습을 다시는 찾아볼 수 없게 될 것이라는 비판도 일고 있다. ■ 언론친화에서 언론통제로? 또한 기존 방송위원회에 통신 업무를 더해 신설하기로 한 방송통신위원회를 대통령 산하에 두기로 한 인수위의 결정에도 반대의 목소리가 거세다. ‘프레스 프렌들리’를 기치로 내걸고 언론 친화적인 태도를 견지하겠다고 공언한 이명박 당선인이 언론을 마음대로 통제, 조절하여 또 다른 언론 탄압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이다. 이 논리라면 참여정부의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을 위시한 기자실 통폐합을 비판하던 이 당선인의 태도와 방통위 청와대 직속 조치는 결국 모순이 되는 셈이다. 방송계 일각에선 정책의 운영 및 결정을 사실상 담당하는 방송통신위원회가 대통령 직속이 되면 방송의 독립성 훼손은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지배적이다. 또한 언론 관련 시민단체들은 대통령 직속기구로 가더라도 방송의 독립성을 철저히 지킬 수 있는 방안 마련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장호순 순천향대 교수(신문방송학)는 “역대 정권이 방송의 정치적 이용이라는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서 “위원 추천권이 적어도 현행 방송위원회처럼 대통령·국회·정당에 분산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대통합민주신당 손학규 대표도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매스컴을 담당하는 위원회를 대통령이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게 될 경우, 시대 퇴행적인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피력했다. 이혜연 자유선진당 대변인도 권력이 언론을 장악, 통제하겠다는 의도라고 인수위의 개편안을 비판하며 몇 주 전 있었던 언론사 간부 성향조사와 같은 맥락의 언론통제 수순일 가능성을 제시했다.
■ 한나라당, 인권위 독립해야 한다더니… 그렇다면 인수위가 독립기관으로 존속해야 할 양대 주요 위원회를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전환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그 독립성의 유지에는 전혀 변화가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인수위 기획조정분과 박형준 위원은 기존 독립체제인 두 위원회가 “현재 헌법체계에서 3부의 어디에도 속하지 않아 소속의 모호함이 있어 이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다”라며 두 위원회를 규제할 뜻은 전혀 없다고 못박았다. 박형준 의원은 방송통신위가 합의제에 의해 구성될 것이고, 국회 방송특위가 정치적 중립 보장을 위해 앞으로 할 논의를 상당 부분 존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인권위에 관해서도 독립성을 ‘업무수행상의 독립성’으로 이해해야 한다면서 ‘소속상의 독립성’으로 해석해 그 어디에도 책임지지 않는 조직으로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기실 국가인권위원회가 독립기관으로 존속된 경위에는 한나라당의 입김이 컸다. 2001년 한나라당이 야당이었을 시절, 한나라당은 국가인권위를 당론으로 정하고 소속의원 전원의 발의로 법안을 제출했다. 당시에도 독립성 보장과 헌법상 권력분립 위반 여부가 쟁점이었으나, 권력통제로부터 자유로워야 권력을 견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당위성을 찾아 결국 국가인권위가 탄생했다. 그러나 지금의 한나라당은 당시와 입장을 바꿨다. 한나라당은 부대변인의 논평을 통해 국가인원위원회가 노무현 정권 시절 지나치게 권력층의 코드에 맞춰 ‘정권의 시녀’ 노릇을 해왔기 때문에 인권위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이 요구된다고 주장했다. 국가인권위의 대통령 직속안을 담은 정부조직 개편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나온 말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논평대로라면 독립기관으로서 ‘정권의 시녀’ 역할을 감당한 국가인권위원회가 대통령에게 복속될 때 정권의 시녀역할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점이 의문이다. ■ 방통위, 정치권력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방송통신위원회의 출범은 분명 환영할 일이긴 하다. 방송통신 컨버전스 시대에 방송과 통신에 관한 정책을 체계적이고 일관성 있게 수행하기 위한 기구의 구성이 요청돼 왔기 때문이다. 지난 2001년 7월에도 방송위와 정통부의 상호 협의로 방송통신위원회를 출범시킬 것을 권고한 바 있었다. 노무현 정권도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를 공약으로 내세웠기 때문에 방통융합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통합기구가 노무현 정권 초기에 탄생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정통부와 방송위원회의 입장이 평행선을 그려오면서 방송통신 융합의 정책을 논의할 위원회가 꾸려지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자기의 영역이든 아니든 무소불위의 힘을 행사하려는 게 정치권력의 속성인데 방송통신위가 대통령의 권력 아래 있게 되면 이 또한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받을 수 없다. 이효성 전 방송위원회 부위원장은 “미국의 통신위원회나 영국의 오프콤도 행정부가 아닌 의회에 책임을 지는 독립적인 행정기구로 만들어졌다”며 “정치권력과 관련이 있는 기구를 만들 때나 어떤 업무를 수행할 때 그 기구나 업무의 독립성이 중시된다면 제도적으로 독립성을 보장해야지 정치권력의 선의에 의지해서는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박성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