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우리나라 담배 맞아요?”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낙원시장 근처에서 가짜 담배를 팔고 있는 상인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돌아온 반응은 대답 대신 짜증스런 눈흘김 뿐이었다. 앞에 놓여 있는 쇼핑백 안을 들여다보니 ‘에쎄’, ‘if’ 등 국내 정품과 구별할 수 없을 만큼 정교하게 제조된 포장지에 싸인 담배 50갑 정도가 눈에 들어온다. 상인의 인상이 무서워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고 얼른 5,000원짜리 한 장을 내밀어 ‘에쎄’ 담배 한 값을 샀다. 거스름돈으로 3,000원을 받았으니 2,500원짜리 한 값당 2,000원씩에 팔리고 있는 모양이다. 국산 담배와 500원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포장지를 뜯고 담배 한 개비를 피워 물었다. 엄청나게 썼다. 목구멍이 콱 막히며 ‘콜록 콜록’ 콧물과 침이 동시에 튀어나오면서 머리까지 피잉~ 한 바퀴 도는 느낌이다. 더 이상 피기가 무서워 담배를 통째로 근처 쓰레기통에 버리고 도망치듯 그 자리를 떠났다. 최근 국내 담배시장에 불법 제조된 ‘짝퉁(가짜) 담배’가 서울을 비롯한 전국 대도시의 재래시장과 거리, 그리고 인터넷상에서 버젓이 유통되고 있어 사회적인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산이 대부분인 이 가짜 담배들은 포장지만 보면 국산 정품 담배와 전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다. 하지만 내용물은 차이가 많이 난다. 직접 피워보면 알 수 있듯 필터 처리도 제대로 되지 않았는지 국내산 담배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독하고 맛도 써서 혀가 얼얼할 정도다. 이렇다 보니, 흡연자의 건강을 해치는 것은 물론, 외산 담배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국내 담배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가짜 담배 유통, 서울이 전국의 70% 이와 관련해 한국담배판매인중앙회가 지난 2006년 12월부터 2007년 12월까지 1년 동안 서울 종로지역을 중심으로 전국에서 불법 유통되고 있는 가짜 담배에 대한 조사를 벌인 적이 있다. 중앙회는 이때 전국에서 1,111건에 47만2,966갑의 가짜 담배를 적발해 사법당국에 고발조치했다. 금액으로는 약 12억원에 달한다. 특히 지역별 적발현황을 살펴봤을 때, 서울지역의 가짜 담배 유통은 매우 심각한 실정으로 밝혀졌다. 서울지역은 종로와 영등포, 관악, 강남, 성동구 등 5개 구를 중심으로 유통이 이뤄지고 있었다. 이때 적발된 담배는 36만 5,836갑으로 전국의 약 70%를 점유하고 있다. 이처럼 서울지역에 가짜 담배 유통이 집중된 것은 그만큼 수요가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으로 업계는 분석하고 있다. 최근 담뱃값 인상으로 어르신 계층과 일용직 근로자 등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치솟고 있다는 분석이다. 가짜 담배를 피워본 경험이 있다는 이모 씨(34. 일용직 근로자)는 “담뱃값이 오르다 보니 돈은 없고 담배는 피워야겠고, 어쩔 수 없어 피워본 적이 있다”며 “맛은 독하지만 별 거부감이 없어 기회가 있으면 다시 구입해 피워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국담배판매인중앙회 하종철 홍보실장은 “현재 국내에서 판매되고 있는 가짜 담배는 ‘에쎄’, ‘레종’, ‘던힐’ 등 줄잡아 30여종이 유통되고 있는데, 포장이 워낙 정교하게 위조되다 보니 식별이 곤란한데다 유통이 철저하게 점조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단속이 매우 어렵다”며 “이제는 한술 더 떠 전국의 대형 유통 할인점에서도 판매되고 있고, 심지어 지역 경로당에는 배달까지 해주는 사례도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관세청, 밀수 가짜 담배 205억원어치 적발 이에 더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박재완 의원(한나라당)과 관세청에 따르면, 최근 3년 동안 밀수로 국내에 반입되다 적발된 가짜 담배는 모두 867건, 금액으로는 205억 9,400만원이나 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담배 내수시장의 규모가 최대 9~11조원에 달한다고 보면 가짜 담배의 음성적인 시장 점유율은 무시를 못할 정도다. 가짜 담배가 시장에서 이렇게 설쳐대다 보니, KT&G 등 내수시장을 점유하고 있는 담배회사들의 심기도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업계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담뱃갑 인상과 더불어 국민의 건강의식 증대로 담배 흡연율이 떨어지면서 담배 판매가 부진한 추세를 보이고 있는데, 공식적인 통계에서 제외된 가짜 담배의 시장잠식이 국내 정품 담배 판매율의 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담배 판매율이 떨어지면 흡연율 하락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국민 건강에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 있겠으나, 음성적인 가짜 담배 판매가 통계에서 제외됐기 때문에 흡연율이 떨어진 것처럼 보인다면 기분이 썩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이에 대해 KT&G 관계자는 “가짜담배의 유통규모가 우리 회사의 담배판매에 큰 걸림돌이 될 정도는 아니지만 신경이 쓰이는 것은 사실”이라며 “우리로선 사법권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 손쓸 방법이 없어 사법당국에 신고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가짜 담배 진짜 피해자는 15만 담배 소매상 이런 가짜 담배 유통으로 정작 피해를 보고 있는 피해자는 소비자도 담배회사도 아닌 지역 소매상들이다. 주머니가 가벼운 흡연자들이야 싼 가격에 담배를 피울 수 있기 때문에 그야말로 ‘단비’를 만난 격이고, 담배회사들은 애써 무시해버리면 끝나는 상황이다. 역시 가짜 담배 흡연 경험자인 회사원 김모 씨(38. 서울 용산구 한남동)는 “담배의 질이 좋아봐야 얼마나 차이가 나겠느냐”며 “차라리 값을 내리면 이런 가짜 담배의 유통은 사라질 것”이라고 불만을 드러냈다. 한편 한국담배판매인회중앙회에 따르면, 현재 전국에 퍼져 있는 담배 소매상은 모두 15만개. 이 중 80%에 달하는 약 12만개의 소매상이 생계형 구멍가게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가게의 매출은 50% 이상이 담배판매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 중앙회 하종철 홍보실장은 “우리에게는 법적 단속권한이 없기 때문에 산하 조합으로 구성된 인원으로 단속을 벌인다 해도 고작 112를 통한 신고가 방법의 전부”라며 “신고를 해도 경찰의 출동이 늦어지면 모두 도주한 뒤라 적발활동에 한계가 있어 근본적인 불법담배 근절은 매우 어려운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이 같은 불법 밀수입 가짜 담배로 연간 약 6억원 이상의 세금까지 빠져나가고 있는 실정이므로, 국민의 건강도 문제겠지만, 우선은 시장진입부터 막아야 국가의 경제적 손실도 줄어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가짜 담배, 좌판→오토바이 동원한 기동판매로 “요샌 좌판에서 담배 안 사. 공원에 앉아 있다 보면, 오토바이 배달꾼이 담배를 건네거든. 그러면 사서 피지.”(김현철 씨.가명.68) 최근 ‘가짜 담배’의 유통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면서 당국의 단속이 심해지자 유통방법도 좌판을 이용하는 대신 오토바이를 이용하는 등 ‘치고 빠지기’식 게릴라 전법이 동원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달 30일, 가짜 담배 유통이 집중돼 있는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여기서 만난 김 할아버지를 통해 이런 사실이 확인됐다. 공원 근처 담배 소매점 업주 강모 씨도 이런 사실을 뒷받침해 주었다. 탑골공원 근처에서 담배 소매점을 열고 있는 강모 씨에 따르면, 지난 2006년부터 단속이 심해지면서 가짜 담배 판매상들이 가판을 이용하는 대신 오토바이의 짐칸을 개조해 담배를 싣고 공원과 낙원동 일대를 대상으로 호객행위를 하고 있다. 강 씨는 “지금은 겨울철이라 어르신들이 공원에 많이 안 나와서 이들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없지만, 날씨가 풀리면 이런 행위는 점점 더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강 씨에 따르면, 이런 게릴라식 방법뿐만 아니라 공원 근처 일부 가게에선 알게 모르게 가짜 담배를 판매하고 있는 곳도 여러 군데 있다는 지적이다. 다른 소매점 업주 박모 씨는 “이들 가게는 담배회사가 지정한 간판이 없기 때문에 쉽게 구별할 수 있는데도 아직까지 적발된 적은 없었던 것 같다”고 사법당국의 철저한 단속을 촉구했다. 한편 낙원동 주변 담배 소매상들에 따르면, 내국인 중에서도 가짜 담배 판매를 원하는 사람들이 유통조직망을 찾아 탑골공원 등 낙원동과 일부 종로지역을 배회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신정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