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마다 처한 현실이 다르고 이에 대처하는 전략과 전술도 모두 각양각색이지만, 요즘 한국 기업들에는 뚜렷하게 정해진 공통점이 있다. 그건 바로 글로벌화(glo balization)다. 웬만한 규모의 기업 치고 ‘글로벌’을 외치지 않는 한국 기업은 거의 없을 정도다. 글로벌 경영은 세계적인 시야와 활동 범위로 생산과 조달의 거점을 옮겨 시장 수익원을 분산하고 국제 분업의 조직화를 꾀하는 경영방식을 말한다. 제품을 만들 때 환율·관세·운임·품질 등의 국제 변화를 고려해 가장 품질이 좋고 가격이 싼 부품을, 가장 유리한 생산 거점에서 생산해, 세계시장에 판매하는 방식이다. 정체된 내수시장, 가파르게 떨어진 원·달러 환율, 풍부한 사내 유보금, 성장을 향한 기업인들의 끝없는 욕구는 우리 기업들이 해외로, 해외로 뻗어 나가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수출입은행에 따르면, 우리 기업들이 해외에 공장을 짓거나 외국 기업을 인수·합병(M&A)하는 방식으로 해외에 투자한 금액은 2003년 41억6,000만 달러에서 2006년 108억9,000만 달러로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지난해에는 9월 말까지 투자금액(108억7,000만 달러)이 2006년의 전체 투자액과 맞먹을 정도로 국내 기업들의 글로벌화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최근 재정경제부는 지난해 해외 직접투자가 신고 기준으로 276억4,000만 달러(5497건)로 2006년 185억3,000만 달러(5140건)보다 49.2% 증가했다고 밝혔다. 해외 직접투자는 2003년에 59억4,000만 달러에 그쳤으나, 2005년 91억7,000만 달러를 거쳐 2006년에는 185억3,000만 달러로 급증했다. 재경부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정체됐던 해외 직접투자가 규제완화와 자원개발 투자의 확대, 기업의 글로벌 경영전략 등에 따라 해매다 큰 증가세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한국 기업들, 운영방식·조직문화 여전히 ‘로컬’ 수준 그렇다면 한국 기업들이 GE나 IBM처럼 스스로를 다국적 기업, 혹은 글로벌 기업이라 부를 수 있을까. 삼성전자 정도를 제외하고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할 기업은 별로 없다. 심지어 많은 경영 전문가들은 “삼성도 여전히 로컬 기업”이라고 말한다. 해외 사업의 크기는 커졌지만 이를 운영하는 방식과 조직문화는 여전히 ‘한국적 기업’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이다. 오랜 글로벌 경험을 갖춘 다국적 기업의 한국 법인 사장은 대부분 한국인들이 맡고 있다. 반대로, 한국 기업들이 설치한 해외 법인 중 현지에서 채용한 인재가 법인장을 맡고 있는 회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대부분이 서울 본사에서 파견된 주재원들이다. 바로 여기서 차이점을 느낄 수 있으며,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지 우수 인재 확보는 어렵게 된다. 이에 국내 주요 기업들은 국내를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 성장 동력을 확충하고 세계 강자에 맞서 이기기 위해 기존 조직을 개편하고 해외 마케팅을 강화하는 등 총력체제에 돌입하고 있다. 최고경영자(CEO)들의 글로벌 현장 경영도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 friendly)’를 표방해온 이명박 정부가 2월 말 출범하는 상황에서 글로벌 리더로 도약하려는 국내 대표기업들의 노력이 결합돼 상승작용을 일으킬 경우 올해는 한국경제가 한 단계 도약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이와 관련, 최근 롯데그룹은 임원 142명의 승진 인사를 포함하여 155명 임원에 대한 대규모 2008년 정기 인사를 단행했다. 롯데그룹은 “글로벌 경영 속도를 높이고 신규사업 부문을 강화하기 위해 젊은 인재를 대폭 기용한 사상 최대 규모다”라고 설명했다. 재계 관계자는 “새 정부가 기업경영의 규제를 풀고 경제 살리기에 나서는 등 적극 노력하고 있어 주요 그룹들도 움츠렸던 글로벌 경영을 본격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글로벌 기업경영 키워드… ‘힘의 이동’과 ‘성장축 변화’ 올해 글로벌 기업경영의 키워드는 ‘힘의 이동’과 ‘성장축의 변화’로 요약될 전망이다. 또 이러한 변화에 대비해 국내 기업들은 이머징 마켓을 지키는데 만전을 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삼성경제연구소가 발표한 ‘2008 글로벌 기업경영의 7대 이슈’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는 세계경제의 장기 호황이 막을 내리는 가운데 세계경제에서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가의 비중과 중요성이 날로 확대되는 등 힘의 이동이 발생할 전망이다. 또한 글로벌 기업들은 새로운 성장 모멘템 확보를 위해 미래지형적 사업구조로의 전환 등 성장축의 변화를 시도할 것으로 분석했다. 이를 통해 연구소는 ▲이머징 마켓 공략 본격화 ▲이머징 마켓 기업의 'Buy Global' 증대 ▲글로벌 금융산업의 판도 변화 ▲성역 없는 사업 구조조정 가속화 ▲최고경영자(CEO)의 역할과 평가 사이의 딜레마 확대 ▲다양상과 개방성을 지향하는 경영 시스템 구축 ▲그린 이코노미(Green Economy) 시대 대비 등을 올해 글로벌 기업경영의 7대 이슈로 꼽았다. ◆ 이머징 마켓 공략 본격화 = 미국 등 선진시장이 침체국면으로 진입하면서 글로벌 기업들이 그 대안으로 신흥시장에 주목할 것으로 보여 글로벌 기업, 로컬 기업, 아시아권 신흥 글로벌 기업들간 무한경쟁이 예상된다. 신흥시장은 개방화와 고성장으로 인해 ‘신소비 시장’으로 자리매김했다. 글로벌 기업들은 기존 브랜드를 기반으로 현지 소비자에 어필하는 상품을 출시해 시장점유율을 더욱 확대할 예정이다. 글로벌 기업들은 기존의 ‘고가·고기능’제품에서 탈피해 ‘저가’ 시장까지 공략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르노-닛산은 인도에서 3,000달러 이하의 자동차를 출시할 예정이며, 노키아는 저가 폰으로 신흥시장을 공략, 중동·아프리카, 중국과 아시아 태평양에서 30% 이상의 판매 증가를 실현했다. 글로벌 기업의 업종 역시 기존 제조업에서 탈피해 금융과 물류 등 서비스업으로 다양해질 전망이다. ◆ 이머징 마켓 기업의 ‘Buy Global’증대 = 신흥시장 기업의 해외진출도 활발해진다. 특히 중국 금융기관들은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해외 금융기관 인수에 박차를 가할 전망이다. 선진 금융기법 습득과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 등 글로벌 M&A를 최우선적으로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미국과 유럽 기업 주도의 글로벌 인수합병(M&A)이 위축되는 것과 대조적으로 중국, 중동 및 인도 기업들의 글로벌 M&A는 확대될 전망이다. 고유가로 오일 달러를 축적한 중동계 기업의 파상적인 해외투자 역시 전망된다. 대규모 지분투자 형식을 빌려 글로벌 기업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한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왈리드 왕자가 소유한 ‘킹덤 홀딩’은 이미 HP, P&G, 펩시코와 포시즌 호텔 등에 230억 달러 상당의 지분을 이미 획득했다. 지난해에는 인도 '타타'가 재규어와 랜드로버 인수전에서 우선협상자로 선정된 바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민간기업 주도형인 인도의 글로벌 M&A 파워가 정부주도형 중국의 M&A 파워를 추월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 글로벌 금융산업의 판도 변화 =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해 월가(街)의 대표적 금융기관들의 사업 구조조정이 본격화돼 글로벌 금융업계의 판도가 재편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해 3/4~4/4분기 중 모건스탠리(36억 달러), 메릴린치(23억 달러), 베어스턴스(9억 달러) 등이 창사 이래 최대 적자를 기록했다. 메릴린치는 지난해 12월 메릴린치 캐피털을 GE 캐피털에 전격적으로 매각했다. 또한 국부 펀드가 글로벌 금융업계의 구조조정에 적극 참여할 전망이다. 최근 AMD와 소니 등 자금력이 취약한 제조기업들이 국부 펀드로부터 긴급 자금을 수혈 받았다. ◆ 성역 없는 사업 구조조정의 가속화 = 삼성경제연구소는 향후 사업전망이 불투명한 부문에 대해서는 현재 경영성과가 양호하더라도 사업 철수나 매각 등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했다. IBM은 하드웨어 부문에 대해 15년 만에 제품별 영업조직을 해체하고 전면적인 조직개편을 단행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GE가 플라스틱 사업부를 중동 최대의 화학기업 베이식 인더스트리에 매각한 것이 전형적인 사례다. ◆ CEO의 역할과 평가 사이의 딜레마 확대 =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주문을 모두 만족시켜야 인정받는 팔방미인형 CEO상이 더 크게 요구된다. 여기에 CEO에 대한 평가가 재무성과뿐 아니라 조직문화, 평판, 이사회 및 주주와의 관계 등을 함께 고려하는 추세다. 하지만 기업과 사회가 모두 팔방미인형 리더십을 요구하면서도, CEO를 해고하는 결정적인 사유는 바로 재무성과라는 모순이 있다. 결국 CEO의 다양한 역할 수행은 CEO직을 유지하기 위한 필요조건에 불과하다는 얘기로, 대다수의 CEO는 기업의 실적 향상과 사회적 인정 사이에서 고민하는 딜레마에 봉착하게 된다. ◆ 다양성과 개방성을 지향하는 경영 시스템 구축 = 글로벌 기업들은 획일적인 대량 채용방식이 아닌 다양하고 차별화된 인재채용 방식을 통한 창의적 인재 확보, 조직문화 및 시스템 혁신을 통한 자율성과 개방성을 확대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구글은 대학에서 ‘Google Games(게임 경연대회)’를 열어 우승자에게 취업 우선권을 부여한다. 인텔의 인간행동 연구소는 인류학과 심리학 등 다방면의 인재를 확보해 인간의 생활과 행동방식에 대해 심층 연구를 하고 있다. 월마트의 경우 ‘꼴찌 격려 미팅’을 통해 본인의 실패에 대해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발표토록 하고 동료들도 문제해결을 적극 지원한다. 마쓰시타는 지난해 4월부터 사무직 3만명에게 재택근무를 시행해 업무의 탄력성과 창의성 제고를 도모했다. 이에 삼성경제연구소는 달라지는 글로벌 기업 이슈에 대한 한국기업의 적절한 대응을 주문했다. ◆ 그린 이코노미 시대 대비 = 지구 온난화 방지를 위한 온실 가스 규제 논의가 전세계 이슈로 부상하면서 글로벌 기업들의 친환경 경영에 대한 관심과 노력이 증대할 것이다. 특히 재생 에너지 개발 사업을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인식하고 이에 대한 투자를 확대할 전망이다. 지난해 12월, 2012년 이후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192개국이 온실 가스 의무 감축에 참여하도록 권고하는 ‘발리 로드맵’이 체결되면서 온실 가스 감축이 선택이 아닌 필수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로써 친환경 제품 생산뿐 아니라 청정기술 개발 및 친환경 프로세스 구축 역시 글로벌 기업들이 주력해야 할 필수요소로 부각됐다. 또한 태양광 발전 산업 등 재생 에너지 개발 사업 역시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떠오르면서 시장선점을 위한 글로벌 기업들의 경쟁과 함께 향후 기후변화협약의 본격 시행과 맞물려 급성장할 전망이다. 세계 태양광 발전시장은 2010년 361억 달러 규모로 증가해 2005년에 비해 두 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재생 에너지 사업은 ‘기업의 친환경 이미지 제고’와 ‘미래 유망사업 발굴’이라는 일거양득의 효과로 글로벌 기업들의 진출이 확실시 된다.
■한국기업, 시장상황 활용… 제품 현지화에 주력 힘의 이동과 성장축의 변화라는 글로벌 기업경영의 흐름 속에서 한국기업은 우선 텃밭으로 인식돼온 이머징 마켓의 시장 잠식을 대비해야 한다. 이머징 마켓인 BRICs(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에서 한국의 수출은 지난해 1~11월 911억 달러로 10년 전에 비해 5배 확대됐다. 특히 1997년 수출 순위 3위였던 중국은 2002년부터 수출 대상국 1위로 급부상했다. 그러나 이들 시장에 대한 글로벌 기업의 공략이 본격화되면 더욱 경쟁이 심화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또한,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으로 글로벌 M&A가 위축되면 오히려 한국기업에는 전략적 M&A를 추진할 기회라고 연구소는 조언했다. 또한 경쟁국 기업이 먼저 선진업체를 합병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경우 한국기업의 입지가 축소될 우려가 있다고 경고했다. 글로벌 M&A의 기회와 위협이 공존하는 만큼 한국기업은 시장 확대, 기술 확보, 신사업 진출 등 M&A 목적을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 두산 인프라코어는 밥캣을 M&A할 때 건설장비의 풀라인 확보 및 글로벌 판매망 확대라는 전략목표를 갖고 추진했으며, 이는 한국기업의 글로벌 M&A 사례 중 최대 규모인 49억 달러였다. 연구소는 이와 함께 성장전략에 있어 발 빠르게 ‘선택과 운신의 폭’을 넓히고 있는 글로벌 기업들의 전략적 유연성을 한국기업들이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우선 CEO가 성장전략을 모색할 수 있는 ‘사색의 시간’을 가져야 하며, 한국기업 전반에 만연된 자국주의나 자사주의를 탈피하는 한편, 개방적 인재확보 전략을 강화하고 조직 전계층에 외국인 영입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글로벌 경영의 성공 여부는 지속적인 재구매로 드러나는 현지인들의 제품 충성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를테면 제품의 현지화가 매우 중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오히려 현지에 생산 거점을 두지는 못했지만 각 나라의 문화와 특성에 맞게 제품의 형태와 색을 다르게 하고 포장에까지 현지 문화 특색을 반영해 수출에 성공을 거두는 방법도 있다. 물론, 글로벌 경영의 완벽한 성공은 마케팅을 하기 가장 좋은 입지에 생산 거점을 마련해 저비용으로 양질의 제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현지 진출시에는 현지 인력을 적극 활용하고 현지인 중에서 팀장급 간부를 육성하여 자리에 앉히라고 충고한다. 현지인 간부가 현지인을 다스릴 때 생산성 향상 효과가 크게 나타나며, 직원은 물론이고 현지인의 기업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질 수 있다. <김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