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중국산’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 하면 곧 싸구려 저품질 상품으로 인식했다. 하지만 이러한 중국 상품의 이미지가 개선되고 있다. 중국은 ‘저렴하지만 쓸 만한 상품’이라는 이미지를 앞세워 세계시장으로 나서고 있으며, 국내 소비자들도 ‘중국산’에 대한 거부감이 점차 엷어져 가는 듯하다. 더불어 상품구매의 기준이 상품의 생산지에서 상품의 브랜드로 바뀐지도 오래 됐다. 실제로 중국은 컴퓨터, 휴대전화 등 IT 산업 전반에 걸쳐 급격한 기술성장을 통해 산업구조 전반에 다각화와 고도화를 이루어내고 있다. 중국은 이미 2004년에 미국을 제치고 최대 IT 제품 수출국이 되는 등 양적으로 가파르게 성장하며 컴퓨터, 휴대전화, 반도체 등의 세계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또한 이러한 성장은 거의 모든 산업분야로 확산되고 있다. 이제 중국은 생산기지적인 기능에서 벗어나 구매, 판매, 유통에 이르는 모든 기능이 빠른 속도로 현지화되고 있으며, R&D 기지 역할도 점차 확대해 나아가는 추세다. 비록 양적인 성장에 비해 기술적인 면은 초기단계에 머무른 부분이 아직 많지만, 우리나라와의 본격적인 기술경쟁이 발등의 불이 되고 있다. 일선 생산현장에서 전하는 중국산 제품의 위력은 우리 업체의 생존을 위협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는 게 공통된 지적이다. 기술력이 한층 가미된 중국산 제품은 이미 ‘저가’ 이미지에서 탈피, 국내시장을 빠르게 잠식하면서 한국의 기업과 산업을 점점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기술 부메랑, 국내 기업 설 자리 좁아져 우리 정부 통계에 따르면, 중국에 진출한 업체는 지난해 9월 말 현재 1만9,525개다. 하지만 중국 정부 통계로는 4만개 이상이다. 진출 당시 중국 시장 선점을 이유로 기술이전ㆍ합작 등 여러 형태를 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같은 중국 진출 붐이 이제는 우리의 목을 죄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가격은 물론 기술 경쟁력까지 갖춘 중국산 제품이 한국 시장 점유율을 급속도로 높이면서 ‘메이드 인 차이나’의 역습이 현실화되고 있다. 가전 등 생활제품의 경우 중국산이 한국 소비시장의 최대 40% 가량을 장악한 것으로 나타나, 해외시장뿐 아니라 내수에서도 한국 업체들의 설 자리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가전업체 등 우리의 중저가 제품 생산기업들은 당시 중국으로 둥지를 옮기면서 현지화를 통해 시장개척에 나섰고, 중국 업체가 기술축적을 할 계기를 만들어줬다는 지적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가전업체 등을 중심으로 현지 중국 기업으로부터 버림받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자체 기술력을 확보한 중국 업체 입장에서는 더 이상 한국 기업이 필요 없게 된 셈이다. 이는 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의 경영난 악화로 연결되면서 ‘울며 겨자 먹기’식 철수의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중소 선풍기 제조업체 관계자는 “최근 고객사인 중국 현지 업체로부터 물량공급을 중단해 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직접 모듈을 개발할 수 있는 기술력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한국 업체는 더 이상 필요 없다고 한다”고 말해 그 심각성을 더했다. ■한국 기업 중국서 무단철수까지 최근에는 급격한 물가상승과 경영환경 악화 등으로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의 무더기 무단 철수가 문제점으로 떠올랐다. 수출입은행이 지난 12일 발표한 ‘칭다오 지역 투자기업 무단철수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8,344개의 한국 기업이 칭다오(靑島)시에 투자했으며, 이 가운데 약 2.5%인 206개 기업이 무단 철수했다. 또한, 한국 기업들의 진출이 집중된 칭다오 지역에서 무단 철수한 기업 206개사 중 42.2%가 지난해에 ‘야반도주’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기업들의 무단 철수는 2003년 21개 업체를 시작으로 매년 증가해 지난해에는 무려 87개사가 무단 철수한 것으로 조사됐다. 보고서는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에 대해 현지 은행의 특별한 지원 움직임은 없는 상황이다”며 “수출입은행의 대(對) 중국 여신과 관련, 신규 지원의 경우 해당 업종이 이른바 중국 정부의 ‘투자유치 기피대상’또는 해당 품목이 ‘가공무역 제한조치’에 속하는지 여부를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이어 “이미 여신을 지원한 업체 중 노동집약적 업종 기업에 대해서는 영업현황 점검 등 꾸준한 사후관리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한 중소 소형 에어컨 생산업체 사장은 “3년 전까지만 해도 고객사였던 중국 업체가 지난해부터 자체 제품을 생산해 한국 시장에 진출했다”며 “최근에는 국내 기술인력을 대거 영입하면서 무시 못 할 경쟁사로 부각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중국 가전업체들이 국내 시장에 하나 둘 진출하면서 우리 기업은 중국 현지뿐 아니라 국내시장에서도 위협받고 있다. ■2015년, 기술격차 없거나 일부는 뒤질 듯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이에 대한 정답은 역시 ‘고부가가치 기술의 개발’이다. 즉 IT 산업의 고도화 전략과 차별화를 수립해 R&D 사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함으로써 기술적인 우위를 지켜나가는 전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중저가 가전제품의 경우, 일선 현장에서 느끼는 중국산 제품의 경쟁력은 우리 제품의 90% 수준이다. 산업연구원 관계자는 “국내에서 시판되는 자전거는 거의 중국산이다. 그런데 우리 소비자들은 아무런 불편 없이 좋은 제품으로 인식하여 쓰고 있다”며 “이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기술력 격차 축소는 최근 발표된 자료에서도 확인된다. 한국산업기술재단의 ‘한중 산업 및 기술경쟁력’ 자료를 보면, 지난 2006년 현재 기술력 격차가 1~2년에 불과한 품목이 적지 않다. 한 예로, 디지털 가전의 셋톱박스는 2006년 한중간 기술력 격차가 1.5년에 불과했다. 광부품 중 트랜스시버는 1년, 게다가 환경산업에 쓰이는 탈황용 열교환기는 중국이 이미 우리 기술을 앞선 것으로 조사됐다. 산업경쟁력도 중국은 이미 우리의 목전에 도달했으며, 이런 추세라면 오는 2015년에는 오히려 우리가 중국을 추격해야 하는 상황으로 역전된다는 게 보고서의 설명이다. 한국산업기술재단 관계자는 “2015년이 되면 한중간 기술 경쟁력은 거의 차이가 없거나 우리가 오히려 뒤처지는 분야가 더 늘어난다”며 “한 예로 공작기계인 프레스는 2006년 말 현재 격차가 12년이지만 2015년에는 2년으로 줄게 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산업연구원이 철강, 가전, 컴퓨터, 자동차 등 4개 분야에서 지난 2005~2007년 국가별 세계시장 점유율 추이를 분석한 결과도 이를 뒷받침해준다. 우선, 철강의 경우 생산량 기준으로 중국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2005년 31.0%에서 2007년에는 37%로 상승했다. 가전제품도 2005년 29.1%의 비중으로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했으며, 2007년에는 31.9%로 더 높아졌다. 컴퓨터는 세계시장 점유율이 2005년 32.6%에서 2007년 40.4%로 상승했고, 자동차도 이 기간 동안 8.6%에서 12.5%로 올랐다. 반면, 한국은 4개 산업 중 자동차만 1% 포인트 상승했을 뿐 나머지는 하락 또는 주춤하는 모습이다. 미국·일본 등은 중국산에 밀려 시장 점유율이 일제히 하락했다. 중국은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밀려드는 한국산 수입품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 중국은 빈번히 우리 제품에 반덤핑 관세 등을 부과했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전세가 역전돼 중국산 제품에 대하여 우리가 무역구제에 나선 경우는 총 8건인데 반해, 중국은 우리 제품에 대해 고작 1건에만 반덤핑 조사를 벌였다.
■세계 섬유시장까지 뒤흔드는 ‘중풍(中風)’ 세계 섬유시장에서 중국산 제품이 고품질로 인정받으면서 이제 중국산 옷을 저품질의 ‘메이드 인 차이나’라고 얕봤다간 큰 코 다치게 됐다. 지난 4일 코트라가 펴낸 ‘대중 섬유수입규제 해제와 세계 섬유시장의 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시장에서 중국산 섬유류의 시장잠식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됐다. 유럽연합(EU)과 미국이 내년까지 중국에 대한 섬유류 수량규제를 해제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 동안 중국 섬유류 수출은 미국과 EU의 수입규제에도 불구하고 계속 늘어나는 추세였다. 보고서는 최근의 중국 섬유수출은 과거 물량위주의 저가제품과는 대조적인 양상을 보인다고 전했다. 단순한 가격상승 측면이 아니라, 기술력이 향상된 중국산 제품이 저가제품군에서 중저가제품군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 섬유업계는 이미 저가 이미지를 탈피한 고급 ‘메이드 인 차이나’의 등장을 대비하고 있다. 이같은 세계 섬유시장의 중국 강세 열풍 속에서 우리나라와 홍콩, 대만 등은 원가상승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미 섬유수출은 2005년 이후 매년 두 자리 수 감소를 보이고 있다. 지금의 중국발 위기를 통해 다시 한 번 우리만의 기술력 개발과 역량 높이기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이 위기를 기회로서 활용해야 하며, 위기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그 기회는 여러 가지 형태로 돌아올 수 있다. <김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