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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숭례문 화재 계기로 본 해외 목조 문화재 보존 실태

일본, 거국적 방재체제… 중국, 문화재에 소방서 상주… 네덜란드, 최첨단 방재설비 구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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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4호 ⁄ 2008.02.18 17:18:14

긴 설 연휴가 끝나던 날. 조상의 유산을 홀대한 후손들에게 조상님께서 노한 탓일까? 대한민국의 자존심 국보 1호 ‘숭례문’이 화마(火魔)에 휩싸여 610년 된 민족의 위대한 유산이 불과 5시간 만에 처참히 무너져 내렸다. 사건 발생 3일 후인 2월 14일 경찰은 토지보상 문제로 사회에 불만을 품고 숭례문에 불을 질러 전소시킨 혐의(문화재보호법 위반)로 채모(70) 씨를 구속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숭례문 화재사건’은 대한민국의 허술한 문화재 관리·감독 체계와 부실한 방재 시스템 등의 문제를 다시 한 번 점검하는 계기를 주었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반성하자 이번 사건을 보는 외신의 반응도 뜨거웠다. 특히, “한 국가와 민족의 자존심이 무너졌다”며 국내 문화재의 허술한 관리에 일침을 놓았다. 일본의 교토통신은 “남대문은 한국의 국보 1호인데, 소화기 이외의 소방설비가 없고, 심야에서 아침까지는 경비원도 없다”고 지적했다. 숭례문 화재가 이처럼 커진 이유로 전문가들은 “첫째, 문화재 화재에 대비하는 기본적인 대응 매뉴얼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는 사실, 둘째, 숭례문에는 스프링 클러·화재경보장치와 같은 최소한의 화재 안전장비가 갖춰져 있지 않았다는 사실(누각 1,2층에 4개씩 놓여 있던 소화기 8대만이 국보 1호의 밤과 낮을 지켰다), 셋째, 오후 8시 이후의 경비체제는 외부인의 출입 사실만 감지할 수 있는 무인 적외선 카메라가 전부였다는 사실, 마지막으로, 문화재청과 소방방재청의 합동훈련이 제대로 실시되지 않았다는 사실” 등을 꼽고 있다. 하지만, 현재도 문화재청과 소방방재청 등 국가기관들은 서로 책임을 미루고 있고, 분개한 시민들은 숭례문의 처참한 광경을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재빨리 가리기에 바빴던 당국의 졸속 처사를 비난하며 “책임자는 나와서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한다”고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그러나,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이미 숭례문은 과거의 웅혼한 위용을 잃어버렸고, 2~3년 내에 수백억원을 들여 재건한다 해도 이미 역사적 가치를 찾을 수 없게 되었는데…. 지난 2005년의 강원도 낙산사 화재사고 당시에도 이번과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았던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자나 깨나 불조심”의 평범한 진리를 재차 되새겨본다. 매번 비난의 화살을 받는 정부도, 관리와 감시에 소홀한 담당 기관도, 평소에 관심 없다가 이런 사건만 터지면 흥분하는 국민도, 우리 모두가 반성해야 할 일이다. ■세계적 문화유산 화재 피해 사례 ‘숭례문 화재 사건’과 가장 비슷한 사건으로, 가까운 나라 일본에서 50여년 전인 1950년 7월 2일 교토시 로쿠온지(鹿苑寺)내 연못에 자리잡은 국보 긴카쿠(金閣)에 화재가 나 전소된 일이 있다. 실연당한 21세 사미승이 사회에 복수를 하기 위해 지른 불로, 일본 열도를 충격에 빠트렸다. 한편, 이 사건을 토대로 일본의 극우파 작가 미시마 유키오(본명 히라오카 키미타케, 平岡公威)는 <금각사>라는 소설을 써 1957년 ‘요미우리 문학상’을 거머쥔 바 있다. 그 전해인 1949년 1월 26일에는 일본 나라(奈良)현 소재 천년 사찰 호류지(法隆寺) 금당에 화재가 일었다. 해체 수리 공사 도중 일어난 화재로, 고구려 승려 담징이 그린 12면 벽화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담징의 벽화를 베끼던 연구원이 전기 담요를 끄지 않아 일어난 불이었다. 독일에선 2004년 9월 3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아나 아말리아(Anna Amalia) 도서관에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하여 문화재로 지정된 도서관 건물(16세기 건축)과 함께 5만여 권의 책이 불에 타 사라졌다. 이 도서관에는 1543년 발행된 루터 성경, 훔볼트 연구 저서 등 85만여 권의 희귀 서적이 보관돼 있었다. 또한, 가장 최근인 2007년 8월에는 그리스에서 대형 산불이 나 그리스 국토의 절반을 불태우고 50억 유로(약 6조8,000억원)의 막대한 피해를 냈다. 불길은 고대 올림피아 유적을 위협했으나, 다행히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을 맞아 그리스 정부가 스프링클러 등 화재 방지 장치를 대폭 개선한 덕택에 최악의 상황만은 피할 수 있었다.

■‘문화재 보호 선진국’ 일본 … 국민과 정부가 일심동체 1949년, 세계 최고의 목조건물로 일본이 세계에 자랑하는 사찰 호류지(法隆寺)에서 일어난 화재로 담징의 금당 벽화가 한순간에 사라지자, 자신들의 대표적인 문화재를 잃게 된 일본 국민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으며 실의에 빠졌다. 일본 정부는 “세계적 예술인 금당 벽화가 불에 타 없어진 날을 영원히 잊지 말자”는 취지로 불이 난 1월 26일을 ‘문화재 화재 방지의 날’로 지정했으며, 이듬해 ‘문화재 보호법’을 제정하고, 매년 전국적인 소방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이날만 되면 문화재를 화재로부터 지키기 위한 훈련이 일본 방방곡곡에서 펼쳐진다. 소방대원과 신사 관계자, 공무원, 시민 등이 집결해 국가 중요 문화재인 신사의 화재를 가정한 대규모 소방훈련을 실시한다. 훈련은 실제 상황을 방불케 하듯 입체적이며, 참가자들은 실전처럼 진지하게 임한다. ‘문화재 보호 선진국’ 일본 정부는 문화재 주변에 첨단 방재시설을 설치하는 작업을 위해 2007년 관련 예산에 무려 11억9,200만엔을 책정한 바 있다. 화재를 조기에 발견하고 초기에 진화한다는 전략으로 피뢰 시설, 열 감지기, 자동 화재 경보기, 소화 펌프, 옥외 소화전 등을 설치했다. 지자체 등은 화재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없앤다는 취지로 만일의 문제를 일으킬 우려가 있는 문화재 주변의 나무까지 베어내는 작업을 펼쳤으며, 문화재 주변의 일정 구역 내에서는 라이터 등 화재를 일으킬 만한 물품의 소지를 금하는 조치를 취하는 곳도 많다. 일본 불교 성산인 와카야마현(和歌山縣) 고야산(高野山) 소재 일본 국보인 부동당(不動堂)에는 아예 건물 지붕에 물을 뿜는 방재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또 건물 정면과 후면, 측면에 여러 개의 물대포를 설치해 화재 발생시 소방차가 오기 직전까지 초동진화를 할 수 있도록 한 곳도 많다. 일본의 한 언론사가 나라시 소방국 예방과장 구보타 방재관과 가진 인터뷰에 따르면, 그는 “문화재 경비는 단순히 시설과 인력 보강만으론 불가능하다”며 시민들의 문화재 보호의식을 강조했다. 그는 화재감지 장치가 설치된 동대사와 같은 아주 큰 절을 빼고는 “24시간 경비를 펴는 곳은 없다”며 경비 등 물리적인 대처만으로 문화재 보호에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13억 인구’ 중국 … 전국민이 문화재 관리 동참 오래된 역사와 넓은 땅 덩어리만큼이나 화재에 취약한 목조 유물이 많은 중국도 1978년 ‘개혁개방’ 이래 문화재 관리에 13억의 모든 국민이 신경을 쓰고 있다. 모두 118곳의 문화재급 목조 건축물을 가진 중국은 화재로 인한 소실을 막기 위해 24년 전인 1984년부터 ‘고건축물 소방관리규칙’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중국의 주요 문화재 시설들은 아예 자체 소방서를 두고 있다. 6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베이징의 자금성(紫禁城) 고궁은 8,700여 칸의 목조건물로 이뤄져 있는 만큼 언제나 화재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1975년 설립된 ‘자금성 소방중대’가 궁 내부에 상주하면서 화재가 발생하면 1~2분 내에 긴급 출동할 수 있는 24시간 화재 감시체제를 구축해 놓고 있으며, 162개의 소화전과 1,300여 개의 소화기도 비치되어 있다. 또한, 건물 한채 한채마다 최신식 연기 감지기와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어 자금성의 내·외부를 24시간 감시한다. 중국 최고의 관광명소로 꼽히는 자금성 안에는 카페뿐 아니라 국숫집 등 각종 음식점이 있다. 그러나 자금성에는 가스 공급이 되지 않아 제한된 양의 전기로만 조리가 가능하게 되어 있다. 또, 일반인의 불씨 반입 금지를 비롯하여 저녁에는 외부인의 출입도 금지된다. 5시 이후에는 혹시 모를 화재를 대비해 조명을 밝히지도 않는다. 더욱이 최근 올림픽을 앞두고 대대적인 수리공사가 한창인 가운데 고궁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은 모두 분말 소화기를 휴대해야 한다. 소화기 휴대는 개인에게 문화재 화재를 판단하고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는 증거. 한편, 중국 남서부에 위치한 티베트 라싸에 있는 포탈라(Potala) 궁전도 1984년부터 200명 규모의 자체 소방대를 상주시켜 정기적으로 화재 예방에 힘쓰고 있다. 근처에 있는 역사 유물 다자오쓰(大昭寺)는 화재 방지를 위해 아예 참배객들이 향불을 절 밖에서 피우도록 하고 있다. 또 목조 문화재 보호를 위한 규정도 계속 강화하고 있다. 백열등은 커녕 60W를 초과하는 조명도 사용 금지이며, 향불 등도 반드시 밖에서 지핀 뒤에 안으로 가져오도록 하고 있다. ■‘목조 문화재 국가’ 노르웨이 … 화재 대비 소방체제 구축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석조 건물이 많은 중부 유럽과 달리, 동아시아처럼 목재 문화재가 많은 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들도 대부분의 문화재 시설에 스프링클러와 특수 소화장치를 장착하는 등 평소에 화재에 대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르웨이 문화재청은 1955년 베르겐 지역 전통 목조가옥의 거의 절반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린 화재사건 이후, 1960년대부터 스프링클러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보르군트, 우르네스 두 목조교회를 시작으로 1980년대까지 목조교회의 화재예방을 위해 스프링클러보다 90% 이상 물이 적게 살포되는 안개분무(water mist)식 소화설비를 도입, 설치했다. 이는 물이 목조가옥을 썩게 할 우려가 제기됐기 때문에 취해진 조치이다. 일부 최고수준의 문화재 화재 진화에는 물 대신 특수한 화학 가스를 뿜어 불씨를 조기에 차단하는 건식 스프링 클러가 도입되기 시작했다. 1980년대 노르웨이 문화재청은 당대 최고 수준의 소방 컨설턴트에게 목조교회의 소방관리를 맡겼다. 또한, 1992년 베르겐 시 외곽 판트호트의 몇몇 목조교회 화재 사건은 평소 철저히 화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노르웨이 문화재청은 1800년 이전에 지어진 400여개의 목조교회를 택해 집중적으로 열 탐지 장치와 감시 비디오를 설치하는 등 방화에 대비하는 소방체계를 구축했다. <이우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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