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6호 김대희⁄ 2008.03.04 09:50:50
중국 정부가 경제·산업과 관련해 새로운 법규를 대거 도입하면서 중국 현지에 진출한 외국기업들, 특히 노동집약적인 업종에 있는 중소기업들의 경영환경이 극도로 악화되어 줄도산 위기를 맞고 있다. 일부 한국 기업들은 임금, 세금, 채무 등을 제대로 해결하지 않고 야반도주하면서 중국 내 사회적 문제로까지 비화되고 있다. 그 동안 우려됐던 차이나 리스크가 현실화되는 양상이다. 본지에서는 올해부터 시행되고 있는 신(新)노동계약법을 중심으로 중국의 법제환경 변화가 우리 기업과 경제에 미치는 영향 및 대응과제에 대해 알아본다. ‘차이나 리스크’는 수많은 기업이 중국 시장으로 뛰어들었고 지금도 뛰어들고 있는 가운데, 이런 기업들이 중국 시장에서 유의해야 할 함정을 의미한다. 올해는 중국이 개혁·개방의 길에 들어선 지 30주년이 되는 해로, 11차 5개년 개발(2006~2010년)의 후반기에 진입하면서 양적 경제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의 전환을 본격화하는 시기이다. 이 과정에서 ‘산업구조의 고도화’, ‘자원절약형·친환경 사회건설’, ‘윈윈 개방전략’은 중국의 정책기조가 되어 법제 변화로 구체화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최대 교역국으로 부상한 중국의 법제환경 변화는 우리 기업의 대중국 투자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중국에 진출한 우리나라 기업들은 제조업 위주의 산업구성 및 규모의 영세성 등으로 이 같은 환경 변화에 취약한 것으로 드러나 대응방안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그야말로 신(新) 차이나 리스크가 등장한 셈이다.
■신노동계약법 3대 핵심조항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은 이제 자국에서처럼 중국에서도 임금상승세를 극복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노동계약법’은 1995년부터 시행돼온 기존 ‘노동법’에서 ‘노동계약’ 부분만 떼어내 특별법으로 제정한 법령으로, 노동자를 ‘사회적 약자’로 규정하고 그들의 권익을 대폭 강화했다. 총 8장 98개조로 구성돼 있는 신노동계약법의 핵심 조항은 크게 세 가지로 규정할 수 있다. 첫째, 단기 고용계약의 횟수와 기간을 제한하여 장기 고용을 유도한 제14조이다. 이 조항은 회사측과 ‘기한을 정한 노동계약’을 연속 2회 체결하거나, 해당기업(혹은 계열회사)에서 합계 10년 이상 근무한 사람은 회사와 ‘기한을 정하지 않은 노동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즉, 회사측은 이런 직원에게 1년짜리 혹은 3년짜리 단기 고용계약을 할 수 없으며, 정년까지 보장하는 ‘무고정기한 노동계약’을 체결해야 한다는 뜻이다. 둘째, 노동자에 대한 경제보상금의 적용범위를 확대하고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두어 노동자의 경제적 권익을 크게 강화한 제46조와 47조, 63조이다. 회사는 노동자와 계약기간이 끝나 더 이상 추가 계약을 하지 않을 때에는 노동자에게 경제보상금(일종의 퇴직금)을 지급해야 한다. 또, 계약기간 도중이라도 노동자가 사용자측의 계약이행상 하자를 문제 삼아 자발적으로 사직할 경우 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 아울러, 파견직이라도 동일 업무라면 정규직과 같은 보수를 줘야 한다. 셋째, 근무시간, 노동의 보수, 휴식 및 휴가, 보험복지 등 ‘기업 내 법률’이라고 할 수 있는 ‘취업규칙’을 노동자와 사용자가 합의하여 제정하도록 한 제51~56조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중국 내의 대다수 노동자들은 사용자와 평등한 입장에서 협상하고 쌍방 합의하에 관련 규칙을 정할 수 있다. 이 밖에, 서면 노동계약 없이 노동자를 고용할 경우 1개월 초과할 때마다 2배의 임금을 지급하도록 하고, 무계약 노동기간이 1년을 초과하면 자동적으로 ‘무고정기간 노동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간주한다. 중국 산동성에 따르면, 이번에 새롭게 제정된 2008년 최저임금 기준은 760위안, 620위안, 500위안 등이다. 작년의 5등급을 3등급으로 통합조정하는 한편, 작년보다 23.4% 상향조정됐다. 이는 초과근무수당, 특수근무환경수당, 각종 보조금 및 기타 국가가 규정한 노동자 복리대우 등을 제외한 것이다. ■규제강화 ‘5대 신법’도 시행 중국이 지난 10여 년 간 적용해온 내·외자 기업의 부동(不同)세율 시대는 이제 막을 내렸다. 올해 중국에서는 신노동계약법 외에 신기업소득세법, 반독점법, 에너지 절약법, 순환경제법, 신수오염방지법 등이 시행된다. 우선, 신(新)기업소득세법은 내·외자 기업에 각각 33%와 15%로 다르게 적용했던 기업소득세율을 25%로 단일화해 내·외자 기업 간 차별을 두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외자 기업의 조세부담이 커지고 세무조사 확대에 따른 비용이 상승해 수익성 악화가 우려된다. 그러나 외국기업의 경우 당장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매년 2%씩 올려 2012년까지 이러한 비중을 맞춘다는 얘기다. 또한, 현재 시행되고 있는 4대 보험의 강제시행과 함께 노조설립 의무화와 환경보호비 등 각종 준조세도 더욱 강화할 계획이다. 한 예로, 세계적 유통기업이자 본사에 노조가 없기로 유명한 월마트의 베이징 점포에 지난해 노조를 설립하도록 했다. 이는 중국 정부의 노동정책에 한 획을 긋는 큰 변화였다. 반독점법은 같은 업종에 속한 기업 간의 담합이나 시장지배적 지위의 남용, 과도한 경제력 집중에 대한 규제를 주요 내용으로 하며, 외국 기업이 중국 기업을 대상으로 인수 합병을 추진할 경우 의무적으로 국가안전심사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반도체, 통신, LCD 등에서 시장점유율이 높은 우리 기업들은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과 관련된 규제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이 밖에, 에너지 절약법은 에너지 사용에 대한 관리감독 주체와 감시대상, 위반시 책임 등을 규정했으며, 순환경제법은 자원의 효율적 사용에 관한 정부의 행동지침, 강제요건, 위반시 책임 등이 포함돼 있다. 아울러 신(新)수오염방지법은 오염물질 배출 허가제와 총량제 실시, 오염원 통제과정에서의 정부책임 강화 등을 담고 있다.
■中 경영환경 악화…청산절차도 만만찮아 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의 30% 가량이 중국의 경영환경 악화로 철수를 고민했으며, 이 가운데 일부는 실제로 청산 준비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10년 전에 중국 칭다오 지역에서 사업을 시작한 S사는 최근 중국의 평균임금이 오른데다, 올해부터 노동계약법마저 변경되면서 인건비가 지난해보다 30~40% 가량 더 책정될 형편이라 문을 닫을 지경에 이르렀다. 회사 관계자는 “직원 퇴직시 경제보상금 강제지급, 최저임금 20% 상승, 5대 보험 강제 가입 등이 주원인으로 회사 운영이 어렵다”고 털어놨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중국 현지에서 운영하고 있는 중국한국상회 회원사 350개 업체를 대상으로 ‘재중 한국기업 경영환경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25.0%의 재중 기업이 ‘중국에서의 사업청산을 진지하게 고려해 본 적이 있다’고 응답했고, 3.1%는 ‘현재 청산을 준비 중’이라고 답했다. 경영환경 전망에 대해서는 85.8%의 기업들이 ‘중국의 기업환경이 악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호전될 것’이란 기업은 3.9%에 그쳤다. 지난해 3월 같은 조사에서 악화될 것이라고 내다본 기업 비율이 33.1%였던 점을 감안하면 1년 사이에 비관적 시각이 52.7% 포인트나 대폭 올랐다. 기업들은 경영활동의 애로사항으로 43.1%가 ‘노무관리’, 21.4%는 ‘잦은 법규·제도 변경’, 13.3%는 ‘내수시장 개척’, 10.5%는 ‘현지 금융조달’을 제기했다. 기업 청산의 어려움으로는 56.7%가 ‘복잡한 청산절차’, 18.7%는 ‘토지사용료 및 세제상 감면 금액 소급 반납’, 14.7%는 ‘지방정부의 비협조’를 들었다. 특히, 기업들의 80%는 중국과의 기술격차가 ‘4년 이하’에 불과하다고 답해 위기의식이 드리워지고 있음을 나타냈다. 이처럼 중국 내 경영환경 악화와 경쟁구조 심화에도 불구하고 약 70%에 달하는 기업들은 여전히 중국 내에서 비즈니스를 유지하거나 확대할 계획이어서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부 및 유관기관의 지원과 협조가 절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도약 계기로 삼아야… 정부의 적극적 지원 필요 산업연구원(KIET)은 ‘중국 투자기업의 3대 잠재적 난제’ 보고서에서 중국의 신노동계약법 시행과 당국의 정책방향 선회로 현지 기업의 노조 활성화를 비롯, 토지 사용세 문제와 공장 철거시 보상 등이 중국 진출기업의 3대 난제로 부상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따라 기존 투자 기업이나 투자희망 기업은 단체교섭에 의한 임금결정 메커니즘을 숙지하고 사전 대응책을 마련해야 하며, 중국 현지 투자의 목적과 대안에 대한 철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대경제연구원도 신노동계약법의 시행으로 노동 경직성이 심화되고 인건비가 상승해 현지 경영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전망하면서도, 중국의 법제환경 변화가 우리 기업에 위협인 동시에 도약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신기업소득세법의 경우 세제혜택 기준이 지역에서 산업으로 바뀌면 IT, 생명공학(BT) 등 하이테크 산업과 서비스, R&D 센터의 기업소득세율은 15%로 낮아져 이런 업종의 기업에는 진출 기회가 커진다는 게 연구원의 설명이다.
이에 우리 정부는 국내의 IT·서비스·R&D 등 첨단기술과 서비스 업체의 중국 진출을 지원하는 한편, 사업 철수를 희망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이전·철수를 돕는 지원책을 실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연구원은 아울러 중국의 경제정책 관련 정보 수집을 강화하고 데이터베이스 구축도 추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제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로서는 달라진 경영환경에 적응하든가, 아니면 새로운 선택을 해야 할 입장이다. 과거 ‘중국’ 하면 떠올랐던 이른바 저임금 메리트도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만큼 낮은 생산비의 장점을 염두에 둔 국내 기업들의 중국 진출 전략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하지만, 중국 당국이 외국기업들의 적응이 어려울 정도로 규제를 무더기로 쏟아내면서도 정작 철수를 원하는 기업들의 청산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점도 지적 받아야 마땅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제도적 문제는 기업들보다 정부가 나서 현지 기업들의 애로를 정확히 파악하고, 중국 정부가 청산을 원하는 기업들을 위한 합리적 절차를 마련할 수 있도록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기업들 또한 위기를 기회로 삼아 중국의 법제환경 변화를 도약의 발판으로 새로운 사업기회 발굴과 성장동력 확보에 적극 나서야 한다. ■무단철수 한국 기업인 사법제재 방침 정부는 중국에서 세무, 노동 관계 등을 제대로 정리하지 않은 채 무단 철수하는 등 현지의 문제로 대두된 우리나라 기업들에 대해 필요한 경우 사법 제재를 하기로 했다. 정부는 국내 기업의 청산절차를 지원하기 위해 베이징(北京) 주재 대사관에 애로기업 상담·지원 센터를, 칭다오 주재 총영사관에 기업청산 대책반을 각각 설치키로 했다. 또, 중국 정부에 대해서도 청산 관련 규정에 혼선을 없애고 ‘청산 원스톱 서비스’ 제공과 함께 기업인 신변안전 보장을 요청했다. 그러나 기업에 대한 재정적 지원에 대해선 검토된 바는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특히 임금체불, 사기 등의 범죄를 저지르고 무단철수한 기업인에 대해서는 사법 제재를 가할 방침이다. 산자부는 “중국측 피해자가 국내 사법당국에 형사 고소할 경우 입증자료를 근거로 국내법을 적용해 사법 처리하거나, 중국법상 형사처벌 대상으로 중국측 요청이 있을 때 범죄인 인도조약이나 형사사법 공조조약에 따라 조치하는 두 가지 방법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중국 진출 국내 기업은 총 1만9,529개로, 산둥성(35.1%), 동북3성(23.1%), 화북지역(18.5%)에 밀집해 있다. 중국 정부가 최근 가공무역에 대한 관세 환급을 폐지하거나 축소하고, 5대보험 등 노동계약법을 시행하는 등 외국 투자기업에 대한 수혜를 줄이고 있어 20년 만에 최악의 경영환경을 맞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