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 체제가 만료되는 2012년 이후 이를 보완, 대체할 포스트 교토 체제에 대한 다양한 시나리오가 제시되고 있다.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전지구적 노력에 동참하면서도 우리 산업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지구온난화 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전지구적 차원의 공동 노력의 일환으로 현재 전세계의 온실가스 배출을 통제하기 위한 가장 광범위한 국제 협약인 교토 의정서(Kyoto Protocol)가 발효되어 시행 중에 있다. 그리고 교토 의정서가 만료되는 2012년 이후 이를 보완, 대체할 포스트 교토 체제(Post-Kyoto Regime)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일견 아직 5년이나 남은 미래의 중장기적인 제도 변화이기 때문에 기업들의 입장에서 시급하지 않은 이슈로 비추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를 미리 파악하고 기술 개발, 에너지 관련 비용 절감, 신사업 기회 모색 등 다양한 대응 방안을 찾고 준비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는 만큼 사실은 시급을 다투는 긴급한 사안이라고도 할 수 있다.
■포스트 교토 체제의 예상 시나리오 2007년 12월 포스트 교토 체제를 위한 발리 로드맵이 미국과 중국 등의 협조로 극적인 합의를 이루었지만, 교토 의정서의 시한이 만료되는 2012년 이후 지구온난화 방지라는 대의명분을 위한 외교적 노력이 어떤 결실을 맺게 될 것인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이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각 국가 및 산업군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 있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EU는 교토 체제의 연장을 통해 감축 목표의 강제할당을 주장하고 있는 반면, 미국은 개별 국가의 현실을 고려하자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또한 중국의 경우 각국의 경제성장의 정도와 연계한 자율적이고 개별적인 감축을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이상과 현실이 엇갈리고 있는 상황에서 전지구적 환경 외교의 결과에 대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예상해볼 수 있다. 1. 반(反)에코 시나리오 = 이는 각 국가들이 기후변화의 위험성, 대책 마련의 시급성을 잘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포스트 교토 체제에 대한 합의에 실패하는 경우이다. 선진국들은 나름대로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한 각종 정책의 변화를 꾀하며, 중국 또한 에너지 효율성 및 재생 에너지 활용도 제고 등의 방식을 통해 국제적인 노력에 동참하려 하지만, 이해 관계자들의 단견적 행태로 인해 구속적인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이 경우 중장기적인 미래 리스크를 현재화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며, 기업들 역시 장기적인 기후 안정 목표보다는 단기적·재무적 이익의 제고를 가장 큰 목표로 삼을 것이다. 선진국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국민들 또한 에너지 과소비적인 생활 패턴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중국을 포함한 개도국들은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는 경제성장을 고려하지 않으며 지구온난화에 대한 선진국의 역사적인 책임을 강조하는 포지셔닝을 취한다. 강력한 경제성장을 통한 사회안정 도모가 장기적인 생태계의 안정성보다 앞선 의제이기 때문이다. EU와 여타 선진국들은 추가적인 공약을 위한 준비가 되어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개도국의 참여를 전제로 하고 있으며, 개도국들은 반대로 선진국의 책임을 강조하며 참여를 꺼리게 된다. 이러한 자기방어적, 비협력적인 행태의 만연으로 각국의 온실가스 관련 규제 및 대응방안은 통일되지 못하고 제각각 나뉘게 된다. 미국 또한 2008년 대선 이후에도 온실가스 포집 및 저장기술(CCS)을 강조하는 기존의 입장에서 크게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자국의 산업계와 국민들의 반발에 밀려 포스트 교토 체제 협상을 위한 과감한 노선 수정이 이루어지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선진국은 선진국대로, 개도국은 개도국대로 각자의 진영에서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는 상황(trench mentality)에 처하게 된다. 기업들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반(反)에코 시나리오하에서 일견 규제 비용이 낮아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세계 각국 및 지역별로 환경관련 규제가 복잡해지고 개별적인 양상을 띠면서 이에 각각 대응하는데 더욱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될 수 있다. 또한 향후 온실가스 관련 국가간 논의의 진행 방향이 불투명해짐으로써 장기적인 사업계획을 수립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2. 명분 반-현실 반 시나리오 = 2012년 이후의 포스트 교토 체제에 대해 국제 사회가 성공적인 합의에 도달하지만,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한 합의의 수준은 매우 낮으며 미국은 여전히 제외되는 경우이다. “먼저 움직이는 사람이 경기에서 패한다(First mover loses the game)”는 인식을 선후진 각국이 모두 하고 있기 때문에 협상에 적극적이지 않으며, 따라서 지리한 정책 협상이 이어진 후 교토 체제가 거의 만료되는 시점에 이르러서야 낮은 수준의 합의에 도달하게 되는 시나리오이다. 각국의 정부와 기업들은 온실가스 저감을 위한 제도의 구조적 변화에 여전히 주춤거릴 것이다. 근본적인 제도 변화가 가져올 리스크는 매우 크게 느껴지는 반면, 그것이 가져다 줄 기회에 대해서는 확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며, 각국의 유권자들과 각 기업의 투자자들이 그러한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아직 되어 있지 않다고 믿는다. 미국은 기술 개발을 통한 온실가스 저감 입장을 고수하며, EU를 비롯한 교토 체제의 온실가스 의무 감축국들은 교토 체제의 연장 수준의 감축 할당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개도국들은 일부 국가의 경우 의무 감축국으로 재분류될 수 있으나 대부분은 여전히 에너지 효율성 제고, 재생 에너지 사용 등을 통한 자발적 감축 노력만을 지속하게 된다. 이러한 시나리오는 부분적으로는 특히 전통적인 에너지 산업 부문 등의 강력한 로비가 있는 경우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윤리를 내세워 전지구적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국가와 경제적 실리를 추구하려는 산업계의 로비 게임(Lobby game)의 결과 명분과 현실이 적당히 타협하는 결과가 빚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 필연적으로 원하는 만큼의 온실가스 감축을 이루어내지도 못하고, 산업계 및 기업들은 규제 비용의 증가로 경영에 애로사항이 발생하는 애매모호한 정책 환경이 도래하게 된다. 3. 친(親)에코 시나리오 = 발리 로드맵에서 제시된 대로 2012년 이후의 포스트 교토 체제에 대한 국제적 합의가 2009년까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이다. 이 시나리오에 따르면, 선진국들은 현재의 교토 체제에서와 같이 고정된 감축 목표를 할당받으며, 다른 국가들의 경우 경제 발전과 온실가스 배출 정도에 따라 차등화된 목표를 부여받는다. 그 동안 교토 체제에 미온적이었던 미국과 우리나라를 비롯한 모든 국가들이 감축목표를 설정하고 그 의지를 천명하는 내용에 합의하게 될 것이다. 협상 과정에서 난항이 있기도 하지만 그러한 상황이 잘 통제되며, 선진국과 개도국들은 이 과정에서 서로간에 신뢰를 확인하게 된다. G8 국가들은 산업계의 로비에 굴하지 않고 지구온난화의 완화(mitigation)라는 대의명분을 더욱 중시하여 2012년 이후의 환경 정책에 대한 주춧돌을 마련하게 된다. EU의 감축 공약 이행의 전례에 따라 일본과 캐나다 등도 좀 더 강화된 공약에 동의할 것이다. 이러한 목표는 기후변화를 중장기적으로 완화하기에 매우 충분한 수준은 아니지만, EU와 각국의 의지는 충분히 상호간에 전달되며 추가적인 감축 노력에 대한 제도적인 여지를 2013년 이후에도 계속 열어놓게 된다. 미국의 경우 새로운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발리 로드맵에 따른 포스트 교토 체제에 적극 참여하게 된다. 기후 변화를 심각한 의제로 다루면서 기존의 연방 정부와 주정부가 도입한 다양한 기제를 적극 활용하며 장기적인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세우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정책들은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의 지지를 받는다는 측면에서 ‘초당파적’이다. 이 정책의 핵심에는 EU가 도입한 것과 유사한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 시스템이 자리잡고 있으며, 기술 개발을 통한 신재생 에너지도 적극 활용하게 된다. 이러한 미국의 태도 변화는 2009년 말 포스트 교토 체제에 대한 결론이 내려지는 시기에 맞추어 스스로 구속적인 국가 환경 정책을 공표하는 형태 등을 취함으로써 신흥국들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낸다. 미국의 이러한 태도 변화에 발맞추어 중국 등 개도국이면서 대표적인 온실가스 다(多)배출국들 또한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국제적 의무를 이행할 것임을 어떠한 형태로든 표명하게 된다. 개도국 각각에게는 그 목표 수치는 낮지만 선진국들에게 부여된 것처럼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정량적으로 주어지게 된다. 발리 로드맵에 정의된 대로 ‘측정, 보고, 확인가능한’ 방식으로 온실가스 배출 억제를 위한 조치를 시행하게 된다. 또한 선진국에 의해 청정개발체제 등을 통한 온실가스 감축 기술이 개도국으로 확산될 것이다. 한편 저개발 국가들의 경우, 그들의 경제 발전 단계를 고려하여 의무감축 목표가 부과되지 않지만, 재생 에너지의 활용과 기후변화 적응체제의 구축 등에서 선진국들의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본격적이고 강력한 온실가스 규제 체제가 작동하게 됨에 따라 이에 잘 적응하여 온실가스 저감에 성공하고 이로부터 신사업 기회를 창출하는 기업들에게 부의 쏠림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반면, 그렇지 못한 기업들의 경우 규제 비용의 엄청난 증가로 영속성에 위협을 받게 될 것이며, 결국 온실가스 배출에 민감한 산업 영역에서는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Winner takes it all)하는 결과가 발생한다. ■윤리적 책임과 산업 경쟁력 모두 고려 앞서 언급한 세 가지 시나리오 중에서 향후 어떠한 방향으로 포스트 교토 체제의 논의가 진행될 것인지 점치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전세계가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공동의 대응노력을 하고 있는 만큼 중장기적으로 온실가스 관련 국제 규제가 점차 증대하여 시간이 지날수록 보다 친에코 시나리오에 가까워지거나 그 이상의 규제 수준이 달성될 가능성이 높다. 포스트 교토 체제를 거치면서 궁극적으로는 최종적인 온실가스 규제에 관한 단일 체제(Ultimate Regime)가 도입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우리나라 정부의 입장에서는 윤리적, 정책적 관점에서의 국제적인 대응 노력에 적극 동참하면서도 산업 및 국가경쟁력의 측면도 감안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 10위의 온실가스 배출국이면서 교토 체제에서는 개도국으로 분류, 온실가스 감축 의무할당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현재 교토 의정서상의 의무감축 대상국 중에서 우리나라에 경제력이 미치지 못하는 국가들이 많다는 점과 이미 우리나라가 OECD의 회원국이라는 점 등을 고려한다면 향후 논의 과정에서 선진국으로 재분류, 의무감축국에 포함되는 시나리오까지 상정해야만 한다. 따라서 우리의 이익을 최대한 대변할 수 있는 주된 시나리오를 선정, 이를 중심으로 대응책을 마련하되 국제적 논의 동향에 따른 다른 모든 가능한 옵션에 대한 대비책(Complete contingent plan)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또한 관련 산업계 및 기업들과 더불어 온실가스의 근본적 감축을 위한 관련 기술 개발을 유도, 장려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 기제를 마련해야 한다. 이와 관련 Gold man Sachs는 산하 연구기관인 글로벌 시장연구소(Global Markets Institute)를 통해 발표한 보고서에서 각국에서 현재 시행되고 있는 대표적인 대체 에너지 개발 장려책들을 예시하였다. 현재 우리 정부도 2007년 12월 기후변화에 대한 4차 종합대책을 내놓은 상태이며 새롭게 출범하는 정부에서도 2008년 2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통해 에너지 효율화와 신재생 에너지 개발, 원자력의 활용이라는 3가지 수단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향후 장기적 비전과 세밀한 정책적 지원이 잘 조화되어야만 국가의 윤리적 책임과 산업계의 경쟁력 강화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장기적 관점에서 전략 수립 필요 각 산업계에서도 이에 대한 대응을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으나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전략의 마련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따라서 기후변화의 영향이 산업의 특성에 따라 어떻게 나타날 것인지를 구체적인 항목별로 세세히 분석하고 이를 다시 자신의 기업에 적용하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그러므로 자신이 속한 산업 영역이 물리적, 제도적, 평판적, 경쟁적, 신사업적으로 기후변화에 따라 각각 어떠한 긍정적, 부정적 영향을 받는지 정성적, 정량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화학 산업의 경우 공해배출 산업이라는 측면에서 평판이나 제도적 측면에서 부정적인 영향이 예상되지만, 신재생 에너지 개발 등 신사업적 관점에서는 큰 기회요인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발리에서의 합의 이후 포스트 교토 체제에 대한 밑그림이 조금 더 구체화되기는 했으나 일반적으로 매우 오래 걸리는 외교 협상 프로세스의 특성상 산업계에서는 인내심을 가질 필요 또한 있다. 따라서 최고경영자나 오너십의 교체와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지구온난화 및 기후변화 문제에 천착할 수 있는 태스크포스 팀을 만들어 영속성 및 일관성을 갖고 대응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야만 향후 도래할 온실가스 규제 사회에서 기업의 생존성과 지속가능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