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6호 박성훈⁄ 2008.03.04 09:46:03
2월 27일과 28일 양일 간 이명박 정부의 15부를 구성할 국무위원 후보자들의 인사청문회가 열리면서 각 후보자들의 면면이 드러났다. 이명박 대통령은 2월 10일 국무위원 후보자들을 단상에서 한명 한명 소개하면서 “ ‘베스트 오브 베스트(Best of best)’인지는 모르겠으나, 저와 함께 일을 한다면 ‘두잉 데어 베스트(Doing their best)’는 하게 될 것”이라며 신중에 신중을 기해 내각을 구성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베스트는커녕 문제점 투성이 내각인 것으로 드러났다. 부동산 투기와 논문표절 의혹, 본인 또는 자녀의 병역문제, 가족의 이중국적, 탈세 등 편법·탈법 의혹이 줄줄이 불거졌다. 이 같은 문제들과 연루돼 인사청문회를 통한 본격적인 자격검증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춘호 여성부 장관과 박은경 환경부, 남주홍 통일부 장관 등 3명의 국무위원 후보자가 줄줄이 낙마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특히, 남주홍, 박은경 씨는 27일 인사청문회가 시작되기 직전에 사퇴의사를 밝혔다. 남주홍 통일부 장관 후보자는 친미의 이념편향성과 자녀의 이중국적 취득, 부인의 부동산 투기, 교육비 이중 공제 등의 의혹으로, 박은경 환경부 장관 후보자는 부동산 투기와 위장전입, 편법증여 등의 의혹으로 사퇴압력을 받아왔다. ■김성이 후보자, 각종 의혹들 우물쭈물 시인 이번 인사청문회의 뜨거운 감자로 가장 치열한 설전이 예상됐던 남주홍, 박은경 씨가 의외로 쉽게 사퇴하자, 오히려 인사청문회에서 가장 많은 도덕성 논란을 불러일으킨 사람은 김성이 보건복지가정부 장관 후보자였다. 김성이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5공 시절 신군부의 정화사업에 대한 이론적 지침을 제공한 현대사회연구소 연구부장으로 재직했고, 정화사업으로 유공표창을 받은 경력이 있으며, 이는 장관으로서 큰 결격사유라는 지적을 받았다. 그는 표창장이 어디 있느냐는 통합민주당 장복심 의원의 질문에 잃어버렸다고 얼버무렸다. 또한, 저서의 표절시비를 가리는 가운데 ‘부적절했다’ ‘잘못했다’는 말을 함으로써 표절을 사실상 시인하기도 했다. 통합민주당 장향숙 의원은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보여주며 김 후보자가 쓴 <사회복지 발달과 사상>이라는 책의 상당 부분이 다른 학자의 책과 똑같다고 지적하자, 김 후보는 그런 일이 없도록 노력하겠다고 대답했고, 8개 학회지에 본인의 같은 논문이 실린 데 대해서도 적절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탈세 의혹에 관해서도 기존의 해명를 뒤집거나 사실과 다른 부실한 답변을 해서 의원들의 거친 질책을 받았다. 그는 일산 오피스텔의 임대수입을 축소 신고해 탈세를 했다는 통합민주당 노웅래 의원의 지적을 받으면서 세무사의 실수로 월세 신고가 누락됐다며 세금을 내지 않은 사실을 인정하여 세입자가 사업부도로 임차금을 지불하지 않았다는 기존의 해명을 뒤집었다. ■이윤호 후보자 딸, 미국인 되고도 국내서 건강보험 혜택 누려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는 맏딸이 미국 국적을 취득하고도 국내에서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등록돼 5년 간 42건의 보험혜택을 받은 점을 가장 치열하게 지적받았다. 통합민주당의 우제항 의원은 이 후보자의 맏딸이 2002년에 한국 국적을 포기한 후부터 2007년까지 모두 42건의 건강보험을 받은 내역이 담긴 건강보험공단의 자료를 제시하면서 집중 추궁했다. 그러자 이윤호 후보자는 2002년에 호적등본에 딸의 기록을 말소했으나 주민등록에서는 실수로 지우지 못했다며 건강보험 혜택을 받은 전액을 반납하겠다고 했다. 이 후보자는 장관 내정이 거론되던 1월 30일 여의도 동사무소에서 딸의 주민등록을 말소했다. 이윤호 후보자 청문회에서 서갑원 의원은 이 후보자가 여의도 아파트에 살면서도 송파구에 아파트와 오피스텔을 분양받은 부분에 대해 투기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에 이 후보자는 출퇴근이 어려워 여의도에 아파트를 마련했는데 가족은 송파구에 살기를 원해서 각각 10억 원, 4억 원씩이나 하는 아파트와 오피스텔을 분양받았다고 변명했다. ■유인촌 140억 재산, 축재경위 집중추궁 당해 문화관광위원회에서 열린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서는 140억 원에 이르는 재산의 형성경위를 가지고 야당 의원들의 지적이 빗발쳤다. 유 후보자의 부인이 비과세 대상인 일본 국채를 9차례나 거래해 환차익 2억 원을 낸 것이 세금을 물지 않기 위한 꼼수가 아니었는지 추궁이 이어졌고, 이에 유 후보자는 증권회사의 권유로 투자를 시작한 것이고 비과세인지 몰랐다고 해명했다. 또한, 부인의 재산이 2005년부터 해마다 10억씩 늘어난 것에 대해 추궁이 이어졌고, 유 후보자는 자신과 부인의 소득과 투자수익으로 얻은 돈이라고 대답했다. 다른 재산은 배우시절에 광고를 촬영하고, 방송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출연료로 받은 돈이라고 해명했다. 이영희 노동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서는 35만 원짜리 비눗갑, 3000만 원짜리 붙박이장, 1000만 원짜리 샤워 부스 등으로 구성된 최고급 오피스텔을 부인 명의로 소유한 사실에 대해 집중 추궁이 이루어졌다. 이처럼 내각 구성원들의 도덕성 관련 문제점이 잇달아 지적되면서, 과연 제대로 된 검증을 거치고 나서 내각을 구성한 것인지, 즉 인사검증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이번 내각 인선은 10명의 인사검증팀이 5000여 명의 인재 프로필을 두고 검증했다고 알려졌다. 지금까지 밝혀진 장관 후보자들의 면면을 보면, 위장전입이나 투기성 부동산 거래에 대해서는 검증팀이 간과한 듯 보인다. 국무위원의 인선을 비밀리에 진행하다 보니 지극히 폐쇄적인 분위기에서 검증했기 때문에 인사검증의 객관성이 결여됐다는 지적이다. ■전문성 결여된 김도연 교육, 이영희 노동 내정자 이명박 대통령의 ‘도덕적 흠결이 있어도 일만 잘하면 된다’는 잘못된 인식이 실용주의라는 명분으로 포장돼 문제를 일으켰다는 지적도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인식대로 국무위원 후보자들이 능력만큼은 검증된 인사들이라면, 과연 이들이 전문성이 필요한 소관업무에서 일을 잘하고 실무대처 능력이 뛰어난 인재들인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밝혀졌듯이, 교육과학기술부의 수장이 될 김도연 내정자는 정치에 대한 감각과 교육정책에 대한 식견이 부족해 장관 자격에 미달된다는 우려가 인사청문회를 통해 드러났다. 김도연 후보자는 이명박 정부의 대입 본고사와 현행 수능 등급제 등 현안 교육정책들에 대해 두루뭉수리한 답변으로 일관했다. 김 후보자는 1994년 본고사가 시행됐다가 다시 금지된 배경을 아느냐는 통합민주당 유기홍 의원의 질문에 대해 잘모르겠다고 답변했다. 대학 수능시험 등급제 폐지에 대해서도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며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노동전문가여야 할 이영희 노동부 장관 후보자도 비정규직 문제 등 핵심 노동 현안에 대해 모른다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이 후보자는 ‘보험설계사 등 특수고용직 보호 입법’의 방향을 묻는 질문에 그들이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사실은 알지만 깊이 생각을 못 해봤다며 아마추어적인 대답을 했다. ‘비정규직법을 피해 가려는 기업의 외주용역화 대책’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우원식 통합민주당 의원은 “중앙노동위원회 근로자위원 경력은 동명이인의 것이어서 거짓으로 드러났고, 정치권과 인연을 맺은 90년대 이후로는 연구 논문도 제대로 없고 노동 관련 경력이 전혀 없는데 장관을 맡을 수 있겠느냐”고 따졌다. 이에 이 후보자는 “나름대로 노동법을 학교에서 계속 강의했고 책도 썼지만 보는 관점에 따라서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겠다”며 “잘 헤아려 달라”고 슬쩍 넘어갔다. 심지어는 급하게 장관으로 내정돼 아직 뭘 하겠다는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워보지 못했다며 노동부 장관으로서의 정책 비전의 부재를 드러내기도 했다. 심지어는, 청문회장에 참석한 한나라당 이경재 의원이 “이 후보자가 노동문제 일선에서 오랫동안 벗어나 있어 현장감이 떨어져 있다”며 “관료들에 대한 의존도가 심해질 것 같다”면서 장관 자질을 문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