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민주당의 느닷없는 비리 전력자 공천 배제 결정에 한나라당이 우왕좌왕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올 초 이방호 사무총장의 40% 영남 물갈이론을 기점으로 당내 개혁공천에 대한 이목이 집중됐다. 물론 이명박 대통령 역시 18대 총선을 앞두고 대거 물갈이를 예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곧 ‘친이-친박’계의 공천 대립으로 번져 급기야 분당 논란까지 초래하는 등 극심한 내홍을 앓아야 했다. 물론 비리전력자 공천 탈락 기준도 슬그머니 자취를 감춰버렸다. 개혁과 혁명이란 말 자체가 무색할 정도다. 반면, 민주당의 공천 개혁 움직임은 거침이 없다. 민주당 공천심사위원회는 뇌물죄를 비롯한 ▲알선수재 ▲공금횡령 ▲정치자금 ▲개인비리 등 모든 형사범을 포함해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비리전력자를 심사에서 제외한다는 방침을 확정, 당 대표 측의 재고 요청조차 무시될 만큼 강경했다. 이는 곧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차남 김홍업 의원,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 10여명의 유력인사들이 공천에서 대거 탈락했다는 소식으로 이어졌다. ■ 한나라당, ‘개혁공천’ 목소리 부쩍 늘어 한나라당은 통합민주당의 이러한 예외 없는 비리 전력자 공천 배제 결정에 혹시나 자신들이 빈약해 보이는 않을까 걱정이 태산이다. 한나라당이 최근 개혁공천이란 말을 부쩍 자주 입에 올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강재섭 대표는 “(민주당이) 옛날부터 한나라당이 하는 것을 벤치마킹해 따라오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이라며 민주당 공천 개혁을 아예 ‘따라하기’로 폄하해 버렸다. 이어 그는 “민주당이 개혁 공천을 하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데 우리는 몸부림을 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천만의 말씀이다”라며 “한나라당은 당헌 당규를 고쳐서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분들은 아예 신청도 못 받게 창구에서 거부했다”고 말했다. 안상수 원내대표 역시 “민주당은 왜 그렇게 비리 전과자가 많은지 모르겠다. 그 열 명 중에 당 지도부와 중진 의원이 대부분이다”라며 “비리 전과자가 많은 민주당 지도부가 공심위의 결정에 저항하는 것은 당 지도부가 국민의 눈높이도 모르는 국민 무시 태도”라며 비아냥댔다. 한나라당 측의 이런 태도에 야당 측은 ‘사촌이 잘살아서 배가 아픈 격’이라며 억지스럽다는 식의 반응일색이다. 즉, 무시하겠다는 뜻이다. 한나라당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당 내부는 이제라도 본격적인 개혁공천에 나서야 한다는 주문이 쏟아지고 있다는 것. 무엇보다 민주당이 개혁공천 이슈를 주도하는 상황에 대한 우려가 높다. 한 핵심인사는 “지금 이대로 나가면 한나라당이 타격을 받는 건 시간문제다”라며 “안 그래도 계파 나눠먹기, 비리 전력자 공천, 철새 공천 논란 등으로 비판을 받고 있는데 걱정이 크다”고 우려했다. 지난 3월 5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는 “이러다 우리가 죽는다”는 우려까지 터져 나왔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임태희 의원은 “민주당의 경우 개혁공천에 대한 논의가 많은데 한나라당이 계파를 아직도 따지고 있다는 것은 국민에게 송구스러운 일”이라며 “공천이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총선에서 냉정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 대통령은 최근 핵심 측근들로부터 당 공천 상황을 보고받으며 개혁 공천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 역시 최근 청와대에 당내 소장파 의원들을 불러 이 같은 사항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3월 4~5일 양 일간에 걸쳐 박형준·정두언 의원은 각각 이 대통령을 찾아가 “국민으로부터 공감을 받을 수 있는 개혁공천이 이뤄져야 한다”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 친이-친박 갈등 다시 불거져 하지만 일부 인사들의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나라당은 ‘개혁=뜬 구름 잡는 소리’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많다. 친이-친박 간의 계파 갈등은 오히려 공천 탈락 발표를 한 지난 6일, 더욱 악화된 양상을 보였다. 이규택을 비롯한 ▲한선교 ▲이재창 ▲고조흥 ▲고희선 의원 등 현역 지역구 의원 5명이 공천에서 탈락되자 박근혜 전 대표는 “표적 공천”이라며 강한 반발에 나섰다. 탈락한 의원들을 살펴보면 친이 측에 이재창-고조흥-고희선 의원과 친박 측에 한선교-이규택 의원으로 나뉘어져 있다. 하지만 눈여겨볼 만한 점은 친이 측에 비해 친박 측인 한선교, 이규택 의원은 계파 내 핵심의원이라는 점이다. 즉, 박 전 대표의 핵심인사들을 뽑아 낸 셈이다. 반면,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의 이 같은 결정에 현역 물갈이가 예상보다 빨리 시작됐다는 반응도 있다. 당초 한나라당은 본격적인 개혁공천 계획이 없었거나 구체적인 대안조차 마련되지 않은 상태였던 것은 아닐까. 한나라당은 위 다섯 명의 공천 탈락자들과 관련, 갖 가지 추측들이 난무하는 상황이다. 최근 잇따라 불거진 공천잡음을 잠재우기 위한 당 지도부와 공심위의 ‘속도내기’라는 목소리와 함께 심지어 ‘물갈이 태풍’을 예고하는 신호탄이라는 의미도 있다. 한나라당의 경기지역 인사는 “계파 간의 색이 너무 짙고, 봉합될 수 없는 지경이다. 때문에 개혁이라는 단어조차 (한나라당에서는) 의미 없는 말이다. 민주당 처럼 될 수 없다는 뜻이다”라며 “공천 탈락자들로 인해 공천자들까지 불이익을 받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