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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통령 2人 집무中

오프라인 대통령 이명박 vs 온라인 대통령 노무현
서울 청와대 對 봉하마을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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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7호 김원섭⁄ 2008.03.10 14:45:49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은 이명박 대통령. 헌정사상 처음으로 정권교체에 성공한 DJ에게서 바톤을 물려받아 5년을 누리고 물러난 노무현 전 대통령. 지금 이명박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리는 바뀌었지만, 노 전 대통령의 인기는 상승세를 타고 있다. 특히, 온라인상에서 노 전 대통령의 인기가 높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노 전 대통령을 ‘대한민국 온라인 대통령’으로 칭하고 있다. 반면, 이명박 대통령은 인터넷보다 현장을 중시하는 실용주의를 택해 발로 뛰는 대통령으로 나섰다. 특히, 이 대통령은 각종 업무보고도 A4 용지 1장 정도의 간단한 보고를 좋아한다. 이 대통령은 언론에 대해서도 온라인보다 종이언론을 선호하고 있다. 그래서 이 대통령은 오프라인 대통령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에 따라 이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은 오프라인과 온라인상에서 서로 군림하며 그들의 세상을 통치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초로 낙향한 대통령, 고향에서 정치참여 시민으로 특히 퇴임 후 최초로 귀향한 대통령이 된 노 전 대통령은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관광지로 만들어 놓았다. 연일 많은 인파가 노 전 대통령을 보러 봉하마을을 찾고 있다. 이에 노 전 대통령은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손님을 융숭하게 대접하고 있다. 여기에다 최근 노 전 대통령은 ‘know-how’란 온라인 사이트를 개설,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사이트가 개설되자마자 누리꾼들의 방문이 폭주해 한때 사이트가 다운되는 사태까지 일기도 했다. 이와 관련, 노 전 대통령은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현실 정치의 문제점 등에 대해 조언하겠다고 밝혀 정치참여를 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설까지 나돌고 있다. 이와 관련, 옛 선비들이 조정에서 물러나 낙향해 곧은 말로 어려운 나라를 바로 잡은 정치를 노 전 대통령이 택하고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는 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 등의 전임 대통령들이 서울에 안주하며 섭정을 펴는 것과는 사뭇 다른 정치행위다. 노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 때 퇴임 후 부산시장 출마, 국회의원 출마 등을 준비한다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부산시장 선거는 3년 남아 있어 출마할지 모르지만, 4월 9일 치러지는 총선은 기일이 임박해 출마설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났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의 세력으로 불리우는 친노 그룹이 이번 총선 후 새로운 세력을 형성할 것으로 예측된다. 노 대통령 만들기 1등 공신인 유시민 의원이 지역구를 옮겨 고향인 대구에서 출마하는데 이어, 최측근인 안희정 씨도 충남 논산에서 출사표를 던진 것을 비롯, 참여정부에서 장차관을 지낸 인사들이 총선을 위해 뛰고 있다. ■노무현, MB 총선서 과반수 실패 때 개헌 재집권 노려 여기에다, 출마하면 당선이 확실시되는 이해찬 전 총리가 4·9 총선 출마를 포기하고 큰 그림을 그리는 데 헌신하겠다고 한 말도 의미심장하다고 볼 수 있다. 이 전 총리가 그리는 그림은 이명박 정부가 이번 총선에서 패할 경우 대선공약을 내세운 개헌론에 다시 불을 지펴 개헌을 통해 재집권할 묘책을 구상하는 설계이다. 이명박 대통령 임기 내에 개헌을 할 경우 새 헌법에 의해 새 대통령을 뽑아야 하기 때문에, 이들 세력들은 잃었던 정권을 다시 찾아올 수 있다는 희망사항을 맘속에 갖고 있다. 이에 따라, 노 전 대통령의 홈페이지가 총선 후 새로운 정당의 창당 모티브가 될 것으로 보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노 전 대통령은 홈페이지를 통해 흩어진 노사모를 다시 결집시켜 이번 총선에서도 지난 17대 총선처럼 선거운동을 벌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개나리꽃이 만발하는 4월에 전국적으로 다시 노란 물결이 일렁일지는 노 전 대통령의 행동반경에 달려 있다. 이렇게 될 경우,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동반자’가 될 수도 있고 ‘적과의 동침’이 될 수도 있다. 왜냐 하면, 이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은 의외로 코드가 맞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국정운영에서 격식을 파괴하는 한편 토론 마당을 즐겨 노 전 대통령의 행동과 부합하는 측면이 있다. 그래서 노 전 대통령의 당이 만들어져도 동반자가 될 수도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총선 후 노무현 신당 탄생? 반대로, ‘적과의 동침’은 노 전 대통령이 직설적 언행을 좋아해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 대해 과감하게 공격을 가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다. 아무튼, 노 전 대통령의 정치 참여는 현실로 비춰지고 있다. 이와 관련, 정치권에서는 노 전 대통령이 총선을 앞두고 인터넷을 통해 네티즌 정치를 시작했다면서 곧 ‘인터넷 정당’을 창당 할 것으로 보는 관측도 있다.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가 재래식 무기인 오프라인을 갖고 대선 전선에 뛰어든 반면, 노무현 후보는 온라인으로 무장해 전선에 나서 젊은 층의 표심을 잡아 16대 대통령에 등극했었다. 그 당시 개혁당으로 노 대통령 만들기의 1등 공신인 유시민 의원은 지난 1월 대통합민주신당을 탈당하고 이번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대구에서 출사표를 던졌는데, 노 전 대통령과 공동전선을 형성할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유 의원은 지난 1월 탈당하면서 “한나라당을 지지하지 않지만 달리 사랑을 줄 정당을 찾지 못하는 많은 국민들을 위해 선택할 만한 가치가 있는 새로운 대안을 만들고 싶다”며 무소속으로 총선에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네티즌 개혁당이라는 사이버 정당을 만들 것으로 보는 관측도 있다. 이와 관련, 지난해 10월부터 개혁국민정당 출신 그룹이 순도 높은 고품질의 개혁세력을 한 데 담아낼 수 있는 ‘순도 100% 개혁의 질그릇’인 ‘네티즌 개혁당’을 창당하기 위한 물밑 작업에 들어갔다. 이들은 4월 총선에서 원내 의석을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가칭 ‘네티즌 개혁당’은 말이 아닌 글로써 과시용 전문지식이 아닌 실천을 전제한 이론과 사상을 공유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원칙’과 ‘상식’에 준한 ‘개혁의 실천’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키로 했다. ‘네티즌 개혁당’은 돈 드는 정치, 계보정치를 지양하고 선진정치를 구현해 선진 대한민국의 미래를 설계하는 개혁정당으로 만들기로 했다. ‘네티즌 개혁당’을 창당하게 된 배경은 원칙을 실천하려는 참여정부를 부정하며 사리사욕을 추구하는 정치집단과 수구보수세력이 창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특히, 현 정치집단은 국가와 국민, 원칙과 상식을 찾아볼수 없고 오로지 탐욕만이 자리잡고 있다고 비판했다. ■인터넷 정당 성공 여부는 미지수 이들은 지난 10년 간 일군 개혁의 성과를 물거품으로 만들수 없다며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98%를 무시한 2%만을 위한 개혁을 수구보수세력들이 주장하고 있다며, 98%의 개혁을 위해서라도 더 늦기 전에 개혁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지난 2002년 대선 전에 유시민 씨가 개혁당을 창당해 노무현 후보를 대통령으로 당선시켰듯이, 총선에서 원내 교두보를 확보할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노 전 대통령 측근들은 지난 대선 때 노무현 정당을 만들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그 당시 정치권에서는 노무현 신당 얘기가 나온다. 이수성 신당이 노 대통령의 지원으로 창당되었다는 얘기가 나왔다. 친노세력 상비군의 역할을 하게 될 영남 신당은 이수성 전 총리와 김병준 B.H 정책기획위원장, 김혁규 전 우리당 의원, 김원웅 대통합민주신당 의원, 강운태 전 내무부 장관 등 5명이 주도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 지난해 10월 초 김병준 위원장의 핵심 측근은 “친노 진영이 10월 15일 민주신당의 대선후보로 선출되면 좋겠지만 지금 손학규 전 경기지사나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 유리한 상황”이라며 “이를 그냥 지켜볼 수만은 없어 신당 창당을 추진키로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김원웅 의원은 대전, 강 전 장관은 광주이니 영남 신당이 아닌 전국 정당”이라며 “정책 신당이 정확한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다른 진보 세력의 판도가 민주신당에 쏠려 있기 때문에 영남 진보세력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말이 나왔다.

■노무현 신당, 그들만 리그로 민심이 반(反) 그 당시 김원웅 의원 측도 “진정한 친노 주자는 김원웅”이라는 입장이며, 김병준 위원장의 측근 역시 “시대가 요구하거나 여론이 받아들인다면 (출마를) 고려할 수 있다”며 “이 전 총리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노무현 신당은 또 다른 지역당으로 전락할 수 있다며 창당 작업을 접었다. 이는 노 대통령을 지지했던 30~40대가 보수화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강인하고 영특하지만 한 번 물면 놓지 않는 고집 있는 샤페이를 닮았더라는 노 전 대통령의 봉하마을 정치는 전직 대통령의 스타일과 사뭇 다른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관련, 박정희 대통령 피살 후 광주항쟁을 발판으로 대통령에 오른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간접선거로 5년 통치를 한 후 후계자를 지목한 노태우 전 체육부장관에게 대통령직을 물려줬다. 그 후 전두환 전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정치에 관여하려고 그린벨트까지 헐면서 서울 연희동에 대궐 같은 사저를 신축, 말썽까지 일었다. 특히 전 전 대통령은 섭정을 위해 국가원로회의까지 만들려고 했다. 문민정부 시대를 연 김영삼 전 대통령도 퇴임 후 서울 상도동에 머물면서 정치에 직간접으로 관여를 해오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역대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이명박 후보를 지지, 선거활동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YS의 아들 김현철 씨를 여의도로 보내려는 꿈은 실패하고 말았다. 첫 정권교체를 이룩한 김대중 전 대통령도 제 16대 대통령으로 노무현 후보가 당선됨에 따라 5년간 정권연장의 기회를 잡았다. DJ는 지난 대선 때 15년 정권을 위해 와신상담했으나, 지난 대선에서 정권을 한나라당에 넘겨주는 운명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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